언어 문화에 따라 다른 만화 번역
이재민(웹툰 전문 기자)
2020년은 여러 가지 의미로 ‘글로벌’이라는 말을 실감할 수 있는 해였다. 코로나19로 비대면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면서 모바일로 즐기는 웹툰이 주목받았고, 전 세계에서 웹툰이 성과를 거뒀다. 네이버 웹툰은 지난해 스페인과 프랑스에서 서비스를 시작했고, <여신강림>과 <외모지상주의>는 물론 <전지적 독자시점>역시 준수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카카오페이지의 <나 혼자만 레벨업>은 일본과 중국에서 성과를 거두는 한편, 브라질과 독일에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북미지역 인기 웹툰인 <로어 올림푸스>가 네이버 웹툰에 연재를 시작하는 등 단순히 진출만이 아니라 작품이 국적에 관계없이 섞이는 현상이 벌어지기도 한다.
이런 ‘크로스’의 밑바탕에는 번역이 있다. 하지만 만화 번역은 전통적으로 ‘어려운’ 번역에 속한다. 애초에 원작 국가의 서브컬처로 여겨졌던 만화는 이미지와 텍스트를 동시에 사용하기 때문에 ‘익숙함’이 중요하다. 문화적 요소뿐 아니라 연출에 따라 글 중심, 그림 중심으로 비중이 다르기 때문에 일률적인 번역 전략을 택하기 어렵다. 더불어 말풍선과 의성어, 의태어 등의 효과음을 적을 물리적 공간의 제약 역시 만화 번역을 어렵게 하는 대표적인 요소다.
뿐만 아니라 문화적 요소도 장벽으로 작용한다. <슬램덩크>는 강백호, 서태웅 같은 강렬한 이름으로 우리에게 남았지만, ‘강백호’의 원어 이름 ‘사쿠라기 하나미치(桜木花道)’, 즉 벚꽃이 가득 핀 길이라던가, ‘서태웅’의 원어 명인 ‘루카와 카에데(流川 楓)’가 그리는 단풍잎이 흐르는 냇가라는 의미는 살리기가 불가능하다.
단어를 그대로 쓰거나, 바꾸거나, 병렬로 표기하거나 이처럼 번역을 할 때는 한 언어권에서 오래 살았던 사람은 쉽게 눈치채기 어려운 차이들이 생겨난다.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의 영어 번역본에서 ‘언니’를 발음 그대로 “Onni”로 번역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우리말에서 ‘언니’나 ‘형님’은 친형제가 아니더라도 쓸 수 있는 말이지만, 여러 문화권에선 형제에게만 쓰는 말이 되기도 한다. 때문에 <허니 블러드>의 경우 프랑스어판에서는 ‘오빠’를 ‘Oppa’로 번역했지만 영어판에서는 ‘Bro’로 번역하기도 했다. 이렇게 단어를 바꾸는 경우는 뉘앙스에 따라 굉장히 흔한 편이고, 해당 문화가 익숙해지면 그대로 외래어로 굳어버리는 경우도 흔하다. <허니 블러드>가 처음 연재될 때만 해도 ‘Oppa’라는 표기는 어색했지만, 이후 K-POP 붐이 일면서 외국인들도 ‘Oppa’라는 말을 일상어로 사용하게 된 것처럼 말이다.
△ [미국(좌),프랑스(우) 이미지 파일]
이런 단어의 변화뿐 아니라, 같은 것도 다르게 표기해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프랑스판에서는 한국판과 마찬가지로 키를 표기할 때 1m 80cm과 1m 60cm으로 표기했지만, 미국판에서는 같은 표기 아래에 피트와 인치를 써서 현지인이 이해하기 편하게 현지에서 쓰이는 표기를 병기해주기도 한다. 사실 미터법을 따르지 않는 미국에 콘텐츠를 유통할 때 ‘마일’과 ‘킬로미터’를 바꿔주는 것은 사소하지만 큰 차이를 만드는 요소기도 하다.
웹툰-만화 번역에서 ‘물리적 공간’은 꽤나 큰 제약이 된다고 앞서 설명했다. 특히 한글은 자음과 모음을 겹쳐 써서 효율적인 공간 활용이 가능하지만, 영어는 가로로 길게 늘여서 쓰기 때문에 더 많은 물리적 공간을 필요로 한다. 여기에 PSD 파일이라도 남아있다면 수정할 수 있지만, 원본 PSD가 없는 경우에는 원어에 맞춰진 공간을 수정하기도 어렵다.
△ [미국(좌),프랑스(우) 이미지 파일]
이런 사례가 바로 <신의 탑> 1부 39화에 나타나는데, <신의 탑>에서 일주일에 한번 연재되기 때문에 현재 상황을 한 컷으로 알려주기 위해 배치했던 지도가 영문판에서는 삭제된 사례다. 특히 해외판은 국내 연재분이 쌓인 상태에서 한 번에 많은 회차가 공개되는 경우가 흔했고, 이런 경우에는 국내 독자를 위해 배치한 이런 컷을 과감히 삭제하는 경우도 있다. <신의 탑>의 경우 시즌 2 110화까지 약 180화 분량이 2014년 7월 1일에 한 번에 업로드되었고,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정주행하는 독자들에게는 불편하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삭제한 것으로 보인다.
‘서브컬처’로 여겨지는 만화는 그 문화에 깊이 빠져든 사람이 아니면 번역하기 어렵다. 하지만 잘못된 번역은 독자들이 작품 밖으로 튕겨 나가게 만든다. 번역을 통해 웹툰의 글로벌 크로스를 만들어내고 있는 번역자들에게 응원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