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드라마 그리고 웹툰을 넘나드는 좀비물
좀비 장르의 인기요인
류유희
2020년, 대한민국은 지금 보이지않는 바이러스의 공포에 휩싸여 있다. 일상을 방해하는 공포는 사람들에게 사라지고 있는 현재를 다시 한번 돌아보게 한다. 국내 콘텐츠 시장 공포 장르에서도 첫 번째로 꼽히는 소재는 ‘좀비’일 것이다. 영화 <부산행>(2016)의 성공 이후 최근 개봉한 후속작 격인 영화 <반도>와 함께 영화 <#살아있다>가 화제가 되고 있으며 시즌2를 거쳐 작품성과 인지도를 인정받은 드라마 <킹덤>까지, 좀비물의 연이은 등장과 성공은 국내에서 마이너한 장르였던 좀비물을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웹툰에는 이미 다양한 좀비물이 존재한다. 영화와 드라마의 성공으로 좀비 웹툰이 한 번 더 눈길을 끌기 시작했다. 좀비 웹툰들은 대부분 긴 분량의 작품이 많아 영화로 제작되기에 표현과 각색 상에서 한계가 생길 수 있는데, 넷플릭스와 같은 OTT는 긴 호흡의 좀비 웹툰을 성공적으로 영상화하기 적합한 플랫폼이었다. 또한 좀비물은 장르적 특성상 시각화를 위한 많은 자본이 필요하다. 웹툰 <신의 나라: 버닝헬>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 <킹덤>은 넷플릭스의 거대 자본을 등에 업고 현재까지 시즌2, 12회의 영상을 높은 퀄리티의 특수효과를 활용하여 부족함 없는 시각적 완성도를 선보였다. 이밖에도 많은 좀비웹툰들이 영상화를 준비중이다. 웹툰 <지금 우리 학교는>이 좀비물 후속 타자로 넷플릭스 드라마 제작을 대기중이다. <스위트홈> 역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제작이 확정되었다.
△ <신의 나라 : 버닝헬>과 <킹덤>
공포 장르 콘텐츠는 보는 이로 하여금 두려움과 무서움을 유발하며 다른 어떤 장르보다 목적이 매우 뚜렷하다. 이러한 특징은 공포 장르의 소비층을 다른 장르에 비해 제한시킨다.
인간의 감정은 주관적이기 때문에 공포 대상이 서로 다를 수밖에 없어 무엇이 공포인가에 대한 구분이 어렵기도 하다. 영화의 경우 수잔 헤이워드(Susan Hayward, 1997)가 공포영화를 크게 대학살 영화, 심리적인 공포, 비자연적인 공포라는 세 개의 큰 범주로 분류하였다. 대학살 영화는 슬래셔 영화로 설명할 수 있으며 심리적인 공포는 히치콕의 <사이코>와 같은 스릴러, 비자연적인 공포는 유령, 악마, 마녀와 같은 범주로 구분하였다.
원래는 인간이었을, 끔찍한 괴물이 되어버린 비자연적인 존재 좀비로 인한 공포가 그려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또한 이 작품들이 인기를 얻고 화제가 되는 이유가 무엇일까.
많은 좀비물에서 주인공은 갇힌 장소에서 좀비들에게 쫓기며 벗어나고자 한다. 또한 그들의 정체를 밝히고 일상의 안정을 얻고자 한다. 좀비가 등장하고 사람들을 쫓기 시작하는 곳은 직장, 집, 학교 등으로 대부분 주인공의 일상과 매우 밀접한 곳이다. 게다가 좀비들은 그냥 괴물이 아니다. 방금까지 내 옆에 있던 사람이 순식간에 나를 위협하는 존재로 변화하며 주인공을 더더욱 절망에 빠트린다. 재난이 바로 내 옆에서 일어난다.
각종 괴담을 웹툰화한 작품들도 마찬가지이다. 공포 웹툰하면 떠오르는 작품들은 지하철 역, 골목길, 주인공의 집 안을 배경으로 한다. 독자들은 집에서 또는 이동 중에 공포 웹툰을 보고 서늘한 목덜미를 붙잡고 슬그머니 뒤를 돌아볼 것이다. 아 이곳은 나의 집이지. 아무것도 없는 안전한 곳이라는 안도감과 함께 말이다.
사람들이 공포물을 볼 때, 공포상황에 처해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스트레스 호르몬 수치에 변화가 있다고 한다. 이후 그들은 실제 자신이 안전한 곳에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공포로부터 벗어났다는 것에 희열을 느낀다. 콘텐츠의 허구에 안심을 느끼고 불안한 무의식에서 해방되는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이다.
많은 콘텐츠들은 현재 우리를 저격한다. 코로나로 인해 고립되어 있는 사람들의 모습, 외부에서 밀려오는 바이러스와 위험에 대한 공포, 원인을 찾지 못하고 도망칠 수밖에 없는 현재에서 느끼는 절망감이 작품 속에 빗대어 있다.
작품의 이야기는 결국 끝이 있기 마련이다. 많은 사람들이 공포물을 보며 긴장하고 곧 그 이야기가 끝난다는 기대감과 상황이 해결되었을 때를 기다린다. 유난히 더울 이번 여름에는 발끝까지 전율이 흐르는 진정한 카타르시스를 기대하며, 고통의 종식과 평화로운 현실을 다시 그려볼 수 있는 작품들을 염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