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밌는 것 + 재밌는 것 = 진짜 재밌는 것!
웹툰에서 장르는 어떻게 합쳐지고 있을까?
진짜 재밌는 융복합 장르 이야기
콘텐츠 분야에서는 장르 간의 융복합이 예전부터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특히 게임과 판타지가 융합한 게임 판타지, 현실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 소환되거나 이동하는 이계물, 다른 존재에 빙의하는 빙의물, 신과 같은 절대자의 존재가 인간인 주인공에게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성좌물 등 다양한 장르의 융합은 웹툰과 만화에서 오래전부터 인기를 얻고 있었다. 장르는 우리가 재미를 느끼는 정수를 모아 놓은 법칙과도 같은 것이고, 그것을 섞어 놓은 새로운 장르가 인기를 얻는 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웹진 ‘해킹’과 잡지 ‘찬스’에서 연재했던 <유레카>는 손희준 작가가 글을, 김윤경 작가가 그림을 맡았다. 1999년부터 2013년까지 총 41권 분량으로 출간된 <유레카>는 현실과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리얼리티를 살린 게임 ‘로스트 사가’ 세계 속에서 펼치는 모험, 특히 초반 이른바 왕도물과 비슷한 전개를 통해 많은 인기를 얻었다.
동시에 최근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가상현실 세계와 현실 세계의 정체성 문제, 가상현실의 악용 가능성이나 자아를 가진 강력한 인공지능의 등장으로 발생하는 문제를 다루고 있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뿐만 아니라 작품 속 ‘히든 피스’, 즉 게임 플레이에 영향을 줄 수 있지만 개발자가 의도적으로 숨겨놓은 설정을 도입해 이후 게임 판타지 장르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웹툰 시대 이전부터 웹툰 시대가 막 열리던 시점까지 연재했던 <유레카>는 한국 작품 중 이후에 나온 게임 판타지 소설은 물론 게임 판타지라는 장르 자체에 영향을 준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이윤창 작가는 ‘장르 간의 융합’을 가장 충실하게 선보이는 웹툰 작가다. 데뷔작인 <타임인조선>은 조선시대로 타임워프한 주인공이 선조를 도와 역사적 사건을 해결하는 작품이고, 두 번째 작품 <오즈랜드>역시 “오즈의 마법사” 속 도로시의 몸으로 빙의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리고 있다. 이윤창 작가가 네이버웹툰에서 세 번째로 연재한 <좀비가 되어버린 나의 딸>은 이윤창 작가의 작품들 중 ‘이세계’라는 키워드가 빠진 유일한 작품이다. 그럼에도 이 작품에서 좀비물이라는 장르와 가족 드라마를 섞었다.
기존의 좀비물을 비롯한 아포칼립스가 ‘생존’에 초점을 맞췄다면, 가족 드라마와 섞인 <좀비딸>은 아포칼립스가 지나간 뒤를 다루는 포스트 아포칼립스에 가깝다. 생존은 보장되지만 삶이 망가진 이후의 ‘삶’을 조명한다. <좀비딸>은 여기에 주인공의 딸이 좀비가 된 상황에서 딸을 키우게 되는데, 육아보다는 조련과 사육에 가까운 극한 상황에서의 서스펜스를 통한 긴장감은 물론 이윤창 작가 특유의 개그 코드로 일상과 삶을 끊임없이 환기시킨다. ‘좀비물’이라는 호러 장르와 가족 드라마, 그리고 개그라는 융합되기 어려울 것 같은 장르를 훌륭하게 융합시킨 <좀비딸>은 독자를 웃기고 울리며 복합적 장르뿐 아니라 복합적 재미까지 주는 작품이다.
최근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 장르 중엔 ‘성좌물’이 있다. 신, 또는 절대적 힘을 가진 존재가 주인공을 중심으로 한 인간 세계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면서 생기는 일을 그리는 성좌물은 신화적 요소를 바탕으로 현대 배경의 판타지, 무협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우른다. 그 중에서도 압도적 존재감을 드러내는 작품이 바로 <전지적 독자 시점>이다. 싱숑 작가의 웹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전지적 독자 시점>의 웹툰이 처음 공개되었을 때, “이렇게 잘하면 반칙이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압도적인 존재감을 드러냈다.
L7에서 제작하고 UMI 작가와 슬리피-C 팀이 함께 만드는 이 작품은 보잘 것 없는 능력으로 정규직 채용도 불투명한 주인공 ‘김독자’가 수년간 읽었던 웹소설이 완결된 후, 퇴근길에 웹소설 세계가 통째로 현실과 섞이면서 생기는 일을 다룬다. 넘치는 박진감과 호쾌한 액션은 물론 웹툰의 스크롤 연출을 활용한 연출도 돋보인다.
웹소설 원작 웹툰 중 전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작품을 꼽으라면, 단연 <나 혼자만 레벨업>을 꼽을 수밖에 없다. 한국은 물론 일본에서도 웹툰과 단행본 모두 대성공을 거두었고, 중국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 최근 독일에서는 아마존 판매순위 1위를 달성하기도 하는 등 ‘상업적으로 가장 성공한 복합장르물’이라는데 이견이 나올 수 없는 작품이다.
재능 없는 E급 헌터인 주인공이 모종의 이유로 ‘플레이어’가 될 자격을 얻어 홀로 빠르게 레벨업해 압도적 존재가 되어가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현대 판타지, 그리고 게임의 요소를 차용한 <나 혼자만 레벨업>은 웹소설을 원작 웹툰의 시대를 대중에게 알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야흐로 융합과 복합의 시대다. ‘n잡러’라는 말은 이제 일상이 됐고, 유명 연예인들의 ‘부캐’ 신드롬은 이미 지나갔다고 생각한 것을 새롭게 활용하는 방법을 제안했고, 코로나19 이후 그동안 분명히 구분될 수 있다고 믿었던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섞이지 않고는 내일을 생각할 수 없는 세상으로 변하고 있다. 우리에게 다양한 재미와 즐길 거리를 주는 웹툰 역시 매체, 장르, 세계관을 넘나들며 유연하게 변화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