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독 지망생의 첫 독립 출판 이야기 (상) 잠자고 있는 버리긴 아까운 소중한 내 이야기
홀로 선 영화감독 지망생이 책을 내기까지
김의진(독립출판작가)
나의 첫 책 <내가 그렇지 뭐>를 출간한 지 벌써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출판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것이 없었던 나는 우연한 기회에 좋은 사람들을 만나 짧은 시간에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고, 개별 작업이었으나 한데 모여 함께 기한을 정해 집중하다 보니 어느새 책 한 권이 완성되어 있었다. 어설펐지만 열정적이었고, 짧았지만 뜻깊었던 나의 첫 독립 출판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한다.
그 당시 내가 살던 동네에 작은 북카페가 생겼다. 이름은 ‘오키로북스(5kmBooks)’. 평소 아기자기한 소품이나 카페를 좋아했던 나는 그 근방을 지나다니며 호시탐탐 노리던 오키로북스의 문을 열었다. 시장에 들어서는 복잡한 골목에 어울리지 않게 예쁘게 자리 잡아 있던 오키로북스는 굉장히 협소했다. 좁은 계단을 올라 문을 열고 들어서자 양쪽 벽을 빼곡히 채운 다양한 책들이 시선을 끌었다. 그때가 난생처음으로 독립 서적들을 만나게 된 운명적인 순간이었다. 요가학원에 다닌 에피소드를 다룬 만화 에세이, 처음부터 끝까지 손 글씨로 빼곡히 채워진 책,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적인 책의 모양을 하고 있지 않은 독특한 디자인의 책들까지... 일반 서점에선 만나보기 힘든 소소하지만 독특한 기획의 책들이 가득했다.
그 순간 나는 독립 서적의 자유분방함과 한계를 정해두지 않는 비범한 매력에 푹 빠지게 되었다. 그렇게 집에 돌아와 인스타그램의 오키로북스 채널을 팔로우하게 되었고, 그때부터 독립서점의 소식 이모저모를 받아보기 시작했다.
인스타그램으로 오키로북스의 소식을 받아보던 중 눈에 띄는 게시물을 발견했다. 바로 ‘한 달 동안 책 만들기 워크숍’. 오키로북스 사장님께서 독립 출판의 기획부터 간단한 제작, 인쇄 팁까지 한 달간 속성으로 가르쳐주는 워크숍이었다.
그 시절, 서른 살이 되어서야 힘겹게 영화학과를 졸업하고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나 고민하며 회사에 다니던 나는 결국 회사에서 뚜렷한 미래를 그려보지 못한 채 퇴사를 했다. 하루아침에 그야말로 무계획의 백수가 되어버린 30대의 나. 영화학도가 되기 이전에 어렸을 때부터 어렴풋이 만화가를 꿈꿨던 나는 그동안 써왔던 단편 영화 시나리오들을 활용하여 만화를 그려보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어차피 영화로 만들 수도 없다면 그냥 컴퓨터 속에서 썩히기는 아까울 것 같은 생각에 한 달간 80컷짜리 단편 만화 하나를 완성했고, 국내에서 가장 큰 웹툰 공모전에 출품했다. 결과는 당연히 낙방이었지만 그 당시 나에게는 만화 한 편을 그리고 완성하는 것 자체가 모험이자 큰 도전이었다.
그래, 만들어진 원고는 이미 있다. 한 달 동안 이 워크숍을 통해 독립출판용 원고를 만들어보는 일, 해볼 만하지 않을까? 나는 살짝 들뜬 마음으로 워크숍을 신청했다.
△ 오키로북스에서 받은 독립출판 기획서
워크숍에는 6~7명 정도의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다. 인스타그램으로 이미 네 컷 만화를 연재하고 있는 사람, 딸의 그림을 엮어 책으로 만들기를 희망하는 엄마, 학창시절부터 십여년간 쓴 일기를 엮어 책으로 출간하길 원하는 사람까지... 주제는 다양했지만 모두 나처럼 책을 내 본 적이 없는 아마추어들이었다. 첫날 수업에서는 워크숍의 커리큘럼에 대해 들어볼 수 있었다.
첫째 주- 무엇을 쓸 것인가? 기획단계
둘째 주- 원고 중간점검과 꼭 필요한 인디자인 기능 첫번째
셋째 주 -원고 마무리 단계와 꼭 필요한 인디자인 기능 두번째
넷째 주- 최종 인쇄 주문 방법
△ 완성된 워크숍 수강생들의 책들
그야말로 책을 만들기 위한 매우 기본적인 사항만을 선별하여 들어볼 수 있는 커리큘럼이었다. 독립서점의 워크숍은 짧은 시간 내에 책 한 권을 만들기에 효율적인 면에서 최적의 방법이었다고 생각한다. 아직도 인디자인의 전문적인 기능은 모르지만, 워크숍을 통해 원고를 인쇄에 적합하도록 배열하고 디자인하는 방법을 습득할 수 있었다.
워크숍에 참여한 사람들은 매시간 각자의 원고를 읽어보고 피드백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아마 혼자 방안에서 끙끙거리며 했었을 작업을 함께 하다보니 다양한 의견을 들어보며 발전적인 방향으로 수렴해나갈 수 있는 장점이 가장 컸던 것 같다. 또한 모두에게 동일한 기한이 정해져 있었으므로 적당한 압박감을 느끼며 좀 더 책임감있게 책을 만들어나갈 수 있었다. 아마 혼자서 했더라면 꽤 어렵고 고독한 작업이 됐을 것이다.
나는 기존 원고를 인쇄가 가능하도록 인디자인 프로그램으로 옮기는 작업을 했다. 거기에 부족한 부분의 컷을 더 그려 넣거나 매시간 가졌던 피드백 시간을 통해 얻은 의견들을 토대로 기존 컷을 수정하는 작업을 했다. 표지도 기존 흑백 표지에서 생동감있는 컬러풀한 표지로 수정했다. 또한 전문가의 의견도 들어보고 싶었다. 일전에 만화진흥원의 K-COMICS 아카데미 (웹툰 작가 양성 강좌)를 수료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수업을 들었던 웹툰 작가님께 피드백을 받기 위해 원고를 메일로 보냈다. 밋밋한 구성에서 좀 더 힘을 줘야 할 부분에 대해 코멘트 들을 수 있었고 전반적으로 긍정적인 답변에 나는 용기를 얻었다. 한 달이라는 시간은 빠듯했지만 그만큼 긴장감을 갖고 설레는 마음으로 워크숍에 임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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