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독 지망생의 첫 독립 출판 이야기 (하) 김의진(독립출판작가)
드디어 인쇄 사이트에 주문을 넣고 책이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잘못된 부분은 없나 걱정이 많이 됐지만, 마지막까지 인쇄소 측과 통화하며 꼼꼼히 여러 가지 사항들을 점검했다. 그들은 나보다 더 전문가였으므로 내가 실수한 부분이나 놓친 부분에 대해서 다시 한번 체크하며 인쇄에 문제가 없도록 끝까지 친절하게 안내해주었다.
두근두근한 마음으로 며칠 뒤 택배를 받았다. 택배를 뜯고 책을 펼쳐보니 컴퓨터 화면으로만 보던 나의 만화가 종이 위에 수놓아져 있었다. 처음 인쇄된 책을 받았을 때의 그 뿌듯함은 아직까지도 잊을 수가 없다. 나는 그때 회사에서는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달콤한 성취감 같은 것에 젖어있었던 것 같다. 졸업 이후 처음으로 무언가 스스로 해낸 느낌이었다.
보통 독립서점에서는 주요정보와 기획 의도, 대표 이미지 등을 포함한 입고 신청서를 메일로 받는다. 서점별로 선호하는 장르도 다르고 입고 기준도 상이하다. 이렇게 온라인을 통해 입고 신청을 하는 방법도 있었지만, 나는 책을 매개체로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 나누고 내 책에 대한 이야기를 직접 들려주고 싶은 마음이 컸다. 함께 워크숍을 들었던 몇몇 작가분들과 좋은 인연을 맺게 되었고, 같은 뜻을 품고 있던 우리는 하나의 ‘크루’를 만들어 각종 북 페어에 참가신청을 했다.
△ 소소 예술시장 참가 당시 테이블
그 결과 매년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리는 북 페어 ‘소소 예술시장’과 경의선 책거리에서 열렸던 ‘서울독립출판 축제’에 참가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정해진 부스와 테이블을 꾸미고 판매품목과 가격을 정하는 것 모두 우리 몫이었다. 마치 레스토랑 메뉴판을 꾸미듯 책에 대한 간략한 내용과 가격을 적어 걸기도 했고, 스티커나 책갈피 같은 사은품을 직접 만들어 준비하기도 했다. 책의 가격을 정하는 것이 매우 어려운 일이었는데, 나는 비교적 저렴한 6,000원으로 첫 판매를 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호객행위를 할 정도의 자신은 없었지만 테이블로 다가와 내 책에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들에게 신나게 책에 대해 소개하고 있는 나의 모습에 조금 놀랐다. 책이 팔리지 않아도 내가 세상에 던지고 싶었던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들려줄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만으로 그저 좋았다. 축제에 참여하고 있는 것만으로 가슴이 벅찬 느낌이었다.
그러던 중 한 분이 다가와 내 책에 관심을 보이며 이것저것 물어보셨다. 그분은 잠시 후 명함을 내밀었다. 강릉에서 작은 독립서점을 운영하시는 분이셨다. 내 책이 마음에 드셨는지 선뜻 10권을 구매해가셨고, 나는 DC된 가격으로 책을 건네드렸다. 머나먼 강릉까지 건너가 진열되어 있을 내 책을 상상하니 가슴 벅찬 기분이 들었다.
독립출판계의 스타 작가들(!)만큼 많은 권수의 책이 팔린 것은 아니었지만, 각 북 페어에서 20권가량의 책을 판매할 수 있었다. 축제가 끝날 무렵 작가들끼리 서로의 책을 교환하는 시간을 가졌다. 여러 가지 색의 꿈이 담긴 책들이 가방 안에 쌓였고 그 어느 때보다 마음이 풍성해지는 기분이었다. 꿈을 함께 하는 사람들과 서로를 응원하며 보냈던 그 찬란했던 순간들을 잊지 못한다. 그중에서는 2년이 지난 지금까지 꾸준히 책을 만드는 사람도, 이제 더이상 책을 내지 않는 사람도 있지만, 모두가 자신의 첫 책을 내던 그 가슴 부푸는 기억을 함께 간직한 채로 지금도 소중한 인연을 이어나가고 있다.
2년 후 지금의 나는 두 번째 책을 준비하고 있다. 그동안 더 많은 책을 만들고 싶었지만 먹고 사는 문제 속에서 다수의 독립출판물을 내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한 번쯤 자신의 책을 만들어보고 싶은 꿈을 가진 모든 이들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일단 도전해보았으면 하는 말을 전하고 싶다. 혼자가 힘들고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면 다양한 독립서점에서 운영하는 책 만들기 워크숍에 참여해보길 권한다.
꼭 대단한 작가가 되지 않아도 된다. 내가 만든 책 한 권이 책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사실만 알아두었으면. 무수한 체념과 실패가 가득한 세상 속에서 내가 만든 책 한 권이 나에게 주는 큰 위로의 선물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