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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 소재 파헤치기 ④ 동양 판타지

네이버 웹툰 <호랑이 형님> 이성규 작가

2020-11-20 신보라



총천연색 동양 판타지의 집대성, <호랑이 형님> 속 캐릭터의 모티브
네이버 웹툰 <호랑이 형님> 이성규 작가


신보라



   

   어린 연령층을 타깃으로 한 학원물이 상위권을 차지하는 네이버 웹툰 중 5년째 상위권에 자리하고 있는 <호랑이 형님>은 단연 눈에 띈다. 호랑이와 사극이라는 신선한 소재로, 30대 연령층에게는 인기 웹툰 1,2위에 오르내릴 정도로 각광받고 있다. <호랑이 형님>의 인기 요인은 단연 ‘호환마마’라는 말이 익숙할 만큼 공포의 상징이자 신성시되던 맹수, 호랑이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는 점이다. 뿐만 아니라, 구미호, 수인화된 종족, 이무기, 귀신 등 전통적인 한국의 요괴들이 등장한다. 동명의 구전 설화 <호랑이 형님>을 모티브로 한 이 웹툰은 방대한 세계관과 철저한 고증으로 많은 독자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 <호랑이 형님>이 담고 있는 역사 속 호랑이와 호랑이 잡는 착호갑사, 등장인물 아린의 정체로 추정되고 있는 한국의 요괴에 대해 알아보자.


   


과거 우리나라에 살았던 호랑이는 검은 가로 줄무늬가 특징인 동물로, 단독 생활을 하며 산양이나 멧돼지, 토끼를 사냥해서 먹었지만, 배가 고프면 마을로 내려와 가축을 잡아가고, 사람을 해쳤다. 사람들은 두려움에 떨었고, 심지어 궁에까지 들어와 임금은 골머리를 앓았다.

"내가 듣건대, 창덕궁 안에서 어미 호랑이가 새끼를 쳤는데 그 새끼가 한두 마리가 아니라고 한다..." -선조실록 214권, 선조 40년 7월 18일 ... 호랑이가 경복궁(景福宮) 후원(後苑)으로 들어왔다. - 영조실록 75권, 영조 28년 1월 2일. 

이에 조선에선 호랑이를 잡기 위해 호랑이 잡는 특수부대 ‘착호갑사(捉虎甲士)’라는 군제를 시행했다. 무예가 출중하고 담력이 좋은 착호인들은 활과 창술도 뛰어나야 했고, 강한 체력과 힘을 필요로 했다. 호랑이 발자국이나 흔적들을 찾아 추적하고, 전략을 세워 호랑이를 잡는 착호갑사는 1마리만 잡아도 큰 포상과 높은 벼슬을 받을 수 있었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이후 조선에도 총기가 도입되면서 민간 사냥꾼이 등장하며 착호갑사의 위상은 점점 쇠퇴하게 된다. 능력이 출중한 착호갑사도 수십 명이 합동 작전을 펼쳐도 사냥하기 어려웠던 호랑이는 민간인에게 무섭고 신성한 존재였다. 

사람들은 공포를 이기기 위해 이야기를 만든다. 멍청하고 어리석은 호랑이. 이야기 속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호랑이에 대한 불안을 달랬다. 호랑이를 잡은 아이, 호랑이와 장기 둔 선비, 호랑이를 잡은 기름 강아지 이야기들을 만들어 냈다. 하지만 강한 힘과 용맹한 모습으로 산중의 왕, 산의 신으로 인정받은 호랑이는 십이지신, 사방신 중 하나로 사람들의 수호자 역할을 했다. 사람들은 '호랑이의 눈썹은 진실을 꿰뚫어 보고 뼈와 가죽은 사악한 기를 물리치며 발톱과 이빨은 잡귀를 쫓아준다'라고 믿었다. 

<호랑이 형님> 속 산군과, 무커 등 영웅 호랑이들이 영응왕의 비호를 받으며 정의에 편에 서 있는 것에는 우리 민족의 호랑이를 향한 오래 된 신성시 여기는 신앙적인 태도가 깃들어 있다. ‘

   

   

그렇다면 등장하는 다른 캐릭터에 깃든 한국적 판타지 요소는 어떤 것이 있을까.

산군과 무커처럼 완전한 정의에 편에 서 있지는 않지만, 매력적인 성격과 서사로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추이. 추이는 연암 박지원의 호질에 등장하는 범을 잡아먹는 짐승 중 하나다. 이것은 <호랑이 형님>에 반영되어 범의 가장 큰 천적으로 등장한다.

<호랑이 형님>에서 가장 치사한 술법 중 하나인 ‘창귀’ 또한 박지원의 호질에서 나온 것이다. 우리나라 고유의 정서가 담긴 소설 호질에서는 호환을 당한 (호랑이에게 피해를 입은) 사람의 귀신인 창귀가 나온다. 호랑이의 서식지인 산으로 이루어진 우리나라 지형에서는, 호랑이로 인한 실종과 목숨을 잃는 사건이 많았기 때문에, 그들을 위해 창귀가 되지 말라는 염원을 담은 ‘호식총’이라는 무덤을 만들어 주기도 했다. <호랑이 형님> 속 추이도 죽음 이후 ‘호식총’과 비슷한 일종의 장례를 치르는 모습이 나온다. 창귀에 관한 여러 가지 설화들은 <호랑이 형님>속 창귀호 장면에 모티브가 되었다.




호랑이 형님 세계관 최강자 '아린'은 흰산의 신령이자 호랑이 산군의 주인이다. 아린의 모티브가 된 설화 속 많은 영물들이 거론되는 가운데, 아린의 또 다른 이름인 영응왕이 백두산천지의 산신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는 것으로 보아, 백두산의 산신령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인간과 동물과 마물과 신수가 뒤섞인 특유의 세계관은 한국형 판타지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며, 대사 하나하나도 허투루 낭비하지 않고 복선을 까는 구성은 상당히 치밀하다. 극의 초반을 이끌어가는 호랑이 ‘산군’은 만화에도 인용되는 <호질>의 구절처럼 강하고도 어진 영물의 원형 같은 느낌이 있다. 즉 아직 인간의 세계와 괴력난신(불가사의한 존재나 현상)의 세계가 명확히 구분되어 살지 않는 판타지적인 세계관으로서의 조선을 직관적으로 표현하기에 신통력과 카리스마를 겸비한 산군만큼 좋은 캐릭터는 없어 보인다.

데뷔작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수준의 그림체로 산군의 전투를 역동적으로 그려내며 독자를 자신이 만든 세계 안에 빠르게 몰입시키는 이상규 작가의 <호랑이 형님>이 펼쳐갈 앞으로의 이야기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