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시장이 급성장하면서 기존에 시장을 갖추고 있던 일본이나 북미 등의 시장뿐 아니라, 디지털 시대에 발맞춘 만화시장이 형성되고 있다. 소비수준이 일정 수준 이상 유지되는 선진국보다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인터넷 보급이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는 ASEAN과 인도 등지를 비롯한 신흥시장의 성장이 가파르다는 점은 기존 시장의 규모를 생각하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우리에겐 ‘예술만화의 고장’으로 인식되는 유럽 만화시장은 사실 우리의 시야에선 조금 떨어져 있는 시장이다. “땡땡의 대모험”이나 “스머프”로 대표되는 벨기에 만화나 뫼비우스, 바스티앙 비베스로 대표되는 프랑스 만화 등이 알려져 있을 뿐이다.
그러나 최근 프랑스에 진출한 델리툰을 시작으로 네이버웹툰이 2019년 스페인과 프랑스에 동시에 플랫폼을 런칭했고, 지난 4월에는 독일에 플랫폼을 오픈했다. 유럽 만화시장 진출이 본격화되고 있는 지금, 유럽 만화시장을 살펴보고자 한다.
유럽 시장에서 전반적으로 관측되는 현상은 출판만화시장의 감소세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유럽 콘텐츠 산업동향’에 따르면 2014년 4억 8,100만달러였던 프랑스 만화시장은 2018년 4억 5,100만달러로 3천만 달러 감소했고, 연평균 -1.6%의 성장률을 보이며 지속적으로 감소했다. 뿐만 아니라 영국은 연평균 -2.3% 성장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출판만화가 성장한 독일은 2.3%의 저조한 성장률을 보였다.
반면 디지털 만화는 프랑스가 2014~2018년 기간동안 17.5% 성장해 4,000만 달러에서 6,800만 달러까지 성장했고, 같은 기간 영국은 4,500만 달러에서 7,100만 달러로 연평균 14.4%, 독일은 3,200만 달러에서 5,600만 달러로 연평균 18.8% 성장을 기록했다. 이처럼 디지털 만화 성장세가 가파른 데에는 유럽의 광대역 인터넷 보급률이 높아진 덕을 본 것으로 풀이된다. OECD의 인터넷 이용률 보고서에 따르면 프랑스는 인터넷 보급률 80%를 2017년에 넘겼고, 독일은 2018년 89%에 달했다. 영국의 경우 94.9%로 세 나라 중 가장 높은 인터넷 사용률 을 보이기도 했다. 이처럼 인터넷 보급률이 높아지면서 온라인으로 쇼핑하는 비율도 늘었고, 동시에 e북 구매 등이 늘면서 자연스럽게 디지털만화 역시 성장한 것으로 볼 수 있다.
△ 프랑스 만화 형식 분포도. 출처: 한국콘텐츠진흥원
프랑스 문화부에 따르면 만화책 구매 경험자가 840만명으로 인구의 15%에 달한다. 여기에 평균 2명 이상의 자녀를 두는 등 인구증가 역시 긍정적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어 젊은 세대가 늘어날 것으로 기대된다. 프랑스는 디지털 네이티브(Digital Native)인 젊은 세대가 늘어남에 따라 향후 디지털만화시장 증가가 가장 기대되는 유럽 국가기도 하다.
2000년대 사양길에 접어들었던 프랑스 만화시장은 바스티앙 비베스 등을 중심으로 한 ‘망자리(Manjari)’를 위시한 젊은 작가들의 흥행으로 새로운 전기를 맞았으나, 2010년대에 다시한번 침체기를 맞는다. 흔히 우리에게 익숙한 ‘방드 데시네’ 형식보다 일본 만화와 BD를 접목시킨 프랑스 작가의 일본 망가 형식의 작품인 ‘망프라(Manfra)’등 이른바 ‘비전통 BD’의 비중이 높은 편이라는 점이 눈에 띈다.
유럽 대부분의 국가에서 일본 망가와 미국 코믹스가 가장 큰 파이를 차지하고 있는 것에 반해 프랑스는 자국시장을 잘 보호하고 있다는 점이 가장 눈에 띄는 점이다. 또한 고전만화 복원 전문지 파피에 나클리에(Papiers Nackeles)를 비롯해 만화비평전문 무가지 조(Zoo), 데베데(dBD), 레 카이에 드 라 베데 (Le Cahiers de la BD), 레 자르 데시네(Les Arts Dessines)등이 여전히 건재하다. 이러한 문화적 배경에 따라 프랑스는 만화의 다양한 형식에 열린 독자층이 형성되어 있다. 새로운, 실험적인 형식은 물론 기존 작가들이 온라인 웹코믹 형식으로 작품을 선보이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키다리스튜디오의 델리툰과 네이버웹툰(www.webtoons.com/fr)이 진출해 있으며, 슈에이샤의 ‘망가 플러스(Manga Plus)’, 고단샤 등 12개 출판사가 출자한 ‘망가모(Mangamo)’ 등이 진출해 디지털 만화 시장의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 영국 출판, 만화 시장 (단위 백만 달러)
영국의 만화시장은 출판산업의 침체와 함께 장기적인 불황을 맞고 있다. 2017년의 이례적 성장을 제외하면 지속적인 감소세는 여전하다. 이 장기적인 불황에 미국 만화시장의 인기 슈퍼히어로 작품들이 본격적으로 수입되기 시작하면서 영국 만화에 대한 수요 자체가 더욱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영국의 만화가 루 스트링어는 자신의 블로그에 “영국에는 이제 만화시장이라고 할 만한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예전으로 돌아갈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http://lewstringer.blogspot.com/2015/03/state-of-industry.html)고 이미 2015년 말하기도 했다. 실제로 자국 만화시장은 현재 거의 고사상태로, 독립만화 시장에서 명맥을 이어가고 있으며 오프라인 서점등에서 독립만화를 살리기 위한 운동을 벌였으나 코로나19 이후 사실상 맥이 끊겼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미 2017년부터 영국에서는 디지털만화만 전문으로 출간하는 출판사가 늘었고, 독립시장에서도 자신의 만화 PDF를 업로드해 두고 후원을 받는 형식의 시도들이 관찰되기도 했다. 하지만 디지털 만화의 비중은 3% 이하로 아주 낮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 자체적인 만화시장이 사장되는 분위기라는 점은 시장성에 대해 낮은 평가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영미권으로 묶인다는 점에서 새로운 만화시장 개척을 하지 못하고, 닐 게이먼, 앨런 무어 등의 걸출한 작가들이 DC코믹스에서 작품을 선보인 이후 그를 계승할 작가들이 나오지 못했다는 점이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스페인 역시 만화시장이 축소중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페인에선 카탈루냐 지역의 만화축제인 ‘살롱 델 망가’ 축제가 방문객 15만명 내외의 대형 축제로 성장했고, 축제에서 수여하는 상을 제정해 최고 스페인 작가상, 각본상, 극화상 등을 수여하기 시작했다. 2007년부터 스페인 정부 역시 ‘스페인 국립만화대상(Premio National Del Comic)’을 수여하기 시작했다.
2000년대 중반부터 웹코믹이 등장했지만, 웹툰 형식으로 발전하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웹코믹을 일종의 팸플릿으로 활용해 단행본 구매로 이어지도록 유도하는 방식이 발전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영국에 비해 카탈루냐 지역과 스페인 정부의 지원을 토대로 자국 만화 산업이 침체를 겪고는 있었지만 어쨌든 유지되었고, 언어의 유사성 덕에 프랑스 만화와의 교류도 활발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2017년 기준 스페인 최대 규모의 출판사는 마블(Marvel) 시리즈를 출간하는 파니니(Panini)사가 가장 많은 종수를 발간하는 출판사였고, DC코믹스의 작품을 유통하는 에쎄쎄 에디시오네스(ECC Ediciones)가 그 뒤를 잇는다. 이처럼 만화 문화가 형성된 것과 더불어 해외 만화시장에도 열려있는 독자들이 다수 분포한 것으로 파악된다. 이런 배경이 네이버웹툰(www.webtoons.com/es)이 스페인 만화시장에 진출할 수 있었던 원동력으로 파악된다.
독일 만화시장은 분단 시기였던 1950~60년대 미국의 매거진 매드(Mad)나 디즈니, 프랑스 만화 등의 영향을 받은 한네스 헤겐(Hannes Hegen), 롤프 카우카(Rolf Kauka)이 대표적이다. 이후 70~80년대를 지나며 만화 제작팀이 생겨나며 ‘코믹 아방가르드’가 대학에서 만화 친화적인 분위기를 조성하고, 통일 이후에도 동독과 서독의 문화가 섞이며 새로운 기조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PGH 밝은 미래(PGH Glühende Zukunft)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이 팀의 구성원은 안케 포이히텐베르거(Anke Feuchtenberger), 홀거 피켈셰러(Holger Fickelscherer), 헤닝 바겐브레트(Henning Wagenbreth), 그리고 데트레프 베크(Detlef Beck)로, 모두 동독 출신이다.
△ 독일의 일반 출판사&독립출판 발행종수 (출처: Tredtion)
독일의 출판산업은 2009년 10.4% 하락하는 등 2010년대 초반 급락을 보였다. 이후 2010년대 독일은 기성 출판사들의 출판 종수는 지속적으로 하락했지만, 2015년부터 독립출판물이 급속도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2015년 3만종이 채 되지 않던 독립출판문은 2019년 5만종을 넘었고, 2020년과 2021년에는 출판사에서 출간하는 종수를 앞지를 것으로 예상된다.
△ 독일의 e북시장 점유율 (출처: Tredition)
이런 흐름을 타고 독일 e북시장 점유율도 꾸준히 성장중이다. 독립출판을 e북으로만 하는 소규모 출판사도 늘면서 2019년까지 5.7%의 점유율을 보이며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이런 흐름을 타고 만화 제작 역시 다양한 방식으로 늘어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일본 만화, 미국 코믹스 등이 주류를 이루는 가운데 에를랑겐 국제 코믹 살롱 등에서 수여하는 ‘막스 앤 모리츠상(Max and Moritz Prize)’에 매년 노미네이트 되는 25작품의 리스트를 보면 장르의 다양성, 형식의 다양성이 먼저 눈에 띈다. 독일 내수시장에서도 다양한 독일 작가들이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10년대 중후반 독일 만화시장에서 자생적으로 발생한 자국만화 작가들이 온라인 상에서 활동을 늘리고 있다. 독일 역시 네이버웹툰(www.webtoons.com/de)이 진출한 유럽 3국가중 하나라는 점과 독일이 자생적인 시장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점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하다.
유럽시장의 동향을 살펴보면 전체적으로 출판시장은 감소세, 디지털만화 시장은 증가세에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자국 만화 문화와 내수시장을 형성하는데 성공한 국가들은 새로운 시장에 적응을 빠르게 하면서 동시에 해외 만화에도 적극적인 수용태도를 보이는 반면, 그렇지 못한 영국의 경우에는 해외 만화도 진입이 쉽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다만, KOTRA 및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유럽 만화시장 통계가 2017년 이후로는 대부분 ‘전망’에 그치고 있어 보다 자세한 시장조사를 위한 통계자료 구축이 필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