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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상반기 독립만화의 현재

코로나19로 더욱 위축되고 있는 21년 상반기 독립만화 현황을 살펴보자

2021-07-21 성인수

2019년부터 오늘까지, ‘다양성의 결핍'과 ‘새로운 주제의 향유'를 필두로 한국의 독립만화 시장은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속엔 전 세계에 불었던 ‘여성 서사의 재정립'과 ‘소수자의 목소리'가 한몫을 했다. 메이저 시장에서 다룰 수 없었던 이야기들을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던 작가들의 절실함이 새로운 이야기를 찾는 독자와 결합하여 나타난 현상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개인이 원고 제작부터 출판 및 홍보, 배송까지 가능하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증명되자 더욱 큰 기대를 모았다. 그리고 이런 분위기를 타고 더욱 다양하고, 더욱 날 것의 작품을 전하며 한 단계 넓어져야 했던 2021년의 한국 독립만화 시장은 과연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을까? 우선 텀블벅의 크라우드 펀딩 내용을 정리해 보면 작년 동월 기준으로 지표가 떨어진 양상을 보였다. 




그것을 알아보기 위해 이 글을 쓰고 있는 2021년 상반기 대표적인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인 텀블벅(tumblbug.com)에서 진행된 만화책 크라우드 펀딩을 조사해 보고, 작년 같은 기간과 비교해 보았다. 2020년 7월까지는 총 45개의 작품이 펀딩에 성공했고, 총 18,871명이 펀딩에 참여했다. 총 펀딩 금액은 492,915,800원으로 평균 약 10,953,680원 정도의 후원을 받았다. 반면 2021년 상반기 크라우드 펀딩은 총 23편(진행 중인 프로젝트 포함)이며 총 3,450명의 후원을 받고 있다. 펀딩 총액은 85,033,500원이며 평균 약 3,610,152원의 후원을 받았고 평균 150명의 후원을 받고 있다. 그리고 평균 후원금액보다 상위의 후원을 받은 프로젝트들을 제외하면 2020년은 총 36개의 프로젝트가 9,558명에게 총 116,363,023원을 후원 받았고, 약 3,232,300원을 평균 후원받은 반면, 2021년은 총 13개의 프로젝트가 1,118명에게 27,963,555원을 총 후원 받았고 작품당 약 2,151,050원의 평균 후원을 받았다. 크라우드펀딩의 특성상 이 금액 안에는 작가의 원고료, 책 제작비, 포장 및 기타 인건비, 배송비가 모두 포함되어 있다.



독립만화 펀딩이 줄어들었다

이렇게 갑자기 독립만화 펀딩이 줄어든 이유는 뭘까? 먼저 책을 반복해서 만드는 과정에서 작가들과 독자들이 인지하고 변화하게 된 생각도 분명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추측된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19 만화 산업백서'와 ‘2020 만화 산업백서'에 의하면 만화 형태별 이용 경험 중 디지털 만화만 이용하는 층이 2018년 67.4%에서 2020년 68.6%로 여전히 증가하고 있다. 젊은 세대의 경우 스마트폰을 통한 감상에 익숙하고, 상대적으로 생소한 출판만화에는 적극적인 소비를 보이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같은 조사에 따르면 27%에 달하는 디지털 만화와 종이만화를 모두 이용하는 독자들 역시 새로운 독자들이 출현하기보다 <원피스>, <열혈강호>, <명탐정 코난>, <슬램덩크>등의 오래된 작품들을 주로 읽는 것으로 보인다. 

독립만화 분야에선 이런 흐름에 맞춰 요즘 새롭게 등장하는 독립만화들은 웹툰의 스크롤 방식을 따르거나 인스타그램 등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연재하는 경우가 늘었다. 수신지의 <며느라기>와 고사리박사의 <극락왕생>은 이런 흐름을 가장 성공적으로 증명한 작품들이기도 하다. 

단행본은 특별 이벤트로 소량제작해 곧바로 소진하고 웹과 모바일을 통해 연재하는 컨셉으로 방향을 바꾼 팀들도 적지 않다. ‘서서코믹스’의 우주 작가는 팟캐스트 ‘만화클래식’에서 오프라인 1호, 온라인 1호로 분별하여 작품을 업로드하고 있으며, 당분간은 온라인 위주로 활동을 할 계획이라고 했다. 인스타그램에서 4만여명의 팔로워를 둔 Y작가는 독립만화 온라인 서점 사이드비(SideB)와의 인터뷰에서 “집에 아직도 예전에 만들었던 책의 재고가 너무 많이 쌓여 있어서 볼 때마다 기분이 다운된다.”라며 “다음부턴 소량으로 제작해 필요한 만큼 소진하고 재고를 남기지 않는 방향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려 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책을 만드는 작가들 입장에선 재고 관리와 수많은 독립서점에 입고 문의를 하고, 책을 배송하고, 또 재입고에 맞춰 배송하는 것에 피로감을 드러내고 있다. 결국 디지털 디바이스를 통한 독립만화 역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독립만화의 다양성이 위협받는다


이렇게 독립만화의 절대량이 줄면서, 다양성에도 위협이 되고 있다. 만화는 연출되는 물리적 공간에 따라 형식에 많은 변화가 일어나는 표현방식이다. 같은 만화라도 스마트폰을 통해 모바일 환경에서 보느냐, PC의 가로 폭이 사람의 시야보다 넓은 디바이스로 보느냐, 독자의 시야 폭과 책의 간격을 스스로 조절하며 볼 수 있는 환경이 있느냐에 따라 작품 속 정보량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또한 독자가 스크롤을 어디서 멈출지 명확히 계산하기 어려운 웹툰의 스크롤 방식과 페이지를 넘기는 형태로 연출을 하는 만화는 독자에게 어필할 수 있는 연출의 매력이 전혀 다르다. 스크롤 형식의 웹툰과 페이지 기반의 만화가 각자의 개성을 지녔다는 점을 보면, 급격히 출판 형태의 만화 작품이 사라지는 것에 대해선 한번 고민해봐야 할 지점이 있다.



코로나19의 영향


이런 변화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것은 역시 코로나19다. 2020년부터 코로나19가 오프라인 마켓 시장을 포함한 인디 시장에 행사한 영향력은 엄청났다. 책 판매 자체의 수익보단 공간을 활용한 여러 행사(토크쇼 및 워크숍)를 통해 그나마 수익을 만들던 독립서점들에 사람이 모일 수 없게 된 것이다. 서점들은 궁여지책으로 인스타그램이나 줌(Zoom), 밋(Meet), 클럽하우스(Clubhouse)등의 소셜미디어를 통한 온라인 프로젝트들을 진행했지만, 대면의 매력과 친화력이 단절되는 온라인 활동은 수익을 동반한 여러 가지 면에서 기존 오프라인 미팅에 친숙한 소비층을 만족시키기 어려웠다. 그러다 보니 각 독립서점의 운영진은 수도권의 높은 월세를 감당하며 매장을 유지하기 위해 평소보다 더 많은 부업을 병행해야 하는 실정이다. 연남동에서 S 책방을 운영하던 J 작가는 “실제로 개인 작업을 병행하지 않으면 운영이 힘들고, 월세에 관한 부담도 있어서 조만간 새로운 곳으로 이사를 가야 할 것 같은데 그 마저도 잘 운영이 될지 모르겠다.” 고 토로한다. 그리고 이런 피로도는 그나마 남아있는 워크숍과 토크쇼의 기획 및 진행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독자들 또한 고민 끝에 매장 방문을 하지 않거나 잡혀있던 행사가 코로나 이슈로 몇 번 취소되는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더는 자신의 아까운 시간을 쓰려 하지 않고, 결국 ‘작가와 독자가 모이는 장소’가 해체되는 악순환은 계속되고 있다. 





또 2020년엔 오프라인 페어 자체가 거의 사라졌고 2021년까지도 그 기조가 이어지고 있다. 2020년 이후 오프라인 행사의 연쇄적인 취소와 소멸은 멀리서 보더라도 인지할 수 있다. 특히 2020년엔 너무 갑작스럽게 찾아온 재난에 여러 페어가 다른 방법을 생각해볼 시간 없이 취소됐다. 그나마 언리미티드 에디션(http://unlimited-edition.org)이 온라인으로 전환해 마켓을 열었을 따름이다. 주최 측의 몸집이 컸던 탓에 어떻게든 페어를 열어야 했던 한 페어의 경우 수도권을 벗어나 지방에서 페어를 여는 등의 무리한 진행으로 행사 내용도 좋지 못했고, 참여 작가들의 평가도 그리 좋지 못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2021년 코로나 방역에 크게 선방해서 20201년 하반기가 되면 지난 18개월 동안 제대로 열리지 못한 오프라인 마켓 행사 지난 7월 초까지 참가신청을 받아 확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7월부터 급격하게 늘어난 수도권 확진자와 방역기조는 다시 만화축제를 온라인으로 변경시킬 가능성이 높다. 이런 축제들과 함께 열고자 했던 독립만화 오프라인 마켓도 그 기조를 따라갈 가능성이 높다. 이미 수도권에서 7월 중 진행 예정이었던 오프라인 마켓 행사들은 모두 취소되었고 8월 말 한강 유람선에서 진행 예정이었던 커넥티드 북페어도 상황에 따라 변경 혹은 취소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런 분위기와 함께 메이저 서점 중 몇 손가락에 꼽히던 반디앤루니스를 운영하던 서울문고의 부도는 물성이 있는 책이라는 매체로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하게 만들기에 충분했고 그것은 독립출판만화를 제작하던 작가들에게도 간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작가들의 삶에 끼치는 영향


이처럼 팬데믹으로 인해 독립서점이 어려워지고, 페어 등의 오프라인 마켓이 꽉 틀어막힌 현실은 곧바로 작가들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언더그라운드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의 경우, 독립 서점과 협업을 통한 각종 워크숍 및 토크쇼로 활동을 한다. 또 각종 페어를 통해 자신의 책을 판매하고 행사장에서 평소 SNS를 통해 교류하던 작가들과 서로 친목을 다지고 알아가는 과정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이런 과정에 현재 약 18개월이 넘는 시간 동안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때문에 작가들이 개인 작업을 이어가야 할지 판단하기 어렵다. 

한켠에선 다른 생업을 가지고 독립만화를 만드는 작가들이 코로나19 때문에 직업을 잃은 경우도 있다. 때문에 다시 어느 정도의 삶의 안정을 찾고 궤도에 오를 때까지 개인 창작을 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이런 경우 아예 만화 창작을 멈추고, 다시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

이런 척박한 환경에서 웹툰이 급속도로 성장하면서, 만화 제작 스튜디오에 취업하거나 다양한 플랫폼의 공모전에 도전하는 등 독립만화 활동을 차선으로 미루고 직업 스태프로 활동하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의 영향이 디지털로 넘어가는 독립만화 시장의 변화를 가속화하고 있고, 이에 따라 텀블벅에서 작년까지도 활발하던 크라우드 펀딩이 급격히 현재 줄어들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다양한 형태의 만화 향유의 기회가 점점 줄어들지도 모른다는 뜻이기도 하다. 시대의 변화에 따른 주류의 변화 및 도구의 변화는 당연하다. 하지만 MP3와 스트리밍이 개발되었다고 해서 라이브 공연이 사라진 것이 아닌 것처럼, 독립만화가 영영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다양한 방식으로 즐길 수 있는 만화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에 대한 분명한 숙제를 안고 있다. 만화는 하나의 형식이고 그걸 목적에 따라 취향에 따라 또 만화를 담을 수 있는 그릇들을 다양하게 보존해야 한다. 그런 방안이 누군가의 선의로 자연스럽게 이뤄질리 없다. 결과적으로 다양한 유관기관의 노력으로 도움을 주기 위한 계획이 필요하다. 하반기에 들어선 오늘부터 준비가 필요하다. 


필진이미지

성인수

웹툰작가, 독립만화서점 ‘SideB’  대표
독립만화전문 팟캐스트 <성인수의 만화클래식> 진행, 서울웹툰아카데미(SWA) 출강
『만화 읽고 쓰다 1, 2권』 공저
<정신과 시간의 만화방 2호점, SideB>, <홍콩, 봄 초 단편 만화 온라인 전시회>, <독립에서 독립하기>, <하고 싶은 만화전> 전시 기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