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우라 켄타로의 죽음으로 돌아본 한국 만화가의 건강권
2021년 5월 6일, 일본의 만화잡지 ‘영 애니멀’ 편집부는 작가 미우라 켄타로의 부고를 전했다. 향년 54세. 그의 작품세계를 아껴온 이들은 큰 충격에 휩싸였다. 일본 남성의 평균 기대수명이 81.25세임을 고려할 때 그의 죽음은 꽤 이른 축에 속했다. 게다가 그는 베르세르크라는 미완의 대작을 작업 중인 현역 작가였다. 사인은 ‘급성 대동맥박리’였다. 대동맥벽은 높은 압력을 버티느라 세 겹으로 되어있는데, 대동맥 박리는 가장 안쪽 막이 찢어지면서 발생한다. 찢어진 내막으로 들어간 혈액이 내막과 중막 사이로 흐르면서 혈관이 부풀어오르게 된다. 극심한 통증이 동반하며 초기 사망률이 매우 높은 응급질환이다. 주된 원인은 고혈압으로 인한 혈관의 퇴행이지만, 다양한 이유로도 발생할 수 있다.
미우라 켄타로를 습격한 대동맥 박리가 왜 일어난 것인지 공식적으로 알려진 바는 없다. 그런데 그의 부고를 접한 독자들과 동료 만화가들은 이 의학적 진단명을 ‘과로사’로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왜일까. 부고가 알려진 뒤 얼마지나지 않아 웹상에는 미우라 켄타로가 베르세르크를 연재하면서 잡지에 남긴 작가노트가 회자되었다. “40도 이상의 고열이 있었는데 쉬는 날은 1년에 2일”(1993년 12호), “몸무게가 갑자기 5kg정도 줄었다”(1993년 21호), “잠을 못자고 있다” (1993년 23호). 과로와 신체 이상의 호소다. 이 심상찮은 호소는 이후에도 꾸준히 이어졌다. 2001년에는 “만화가 경력 13년, 처음으로 1주일가량의 휴식”이란 말이, 2005년에는 “과로로 또다시 쓰러졌다”는 말이 나온다. 2011년에는 벚꽃 한번 못 보고 봄을 보냈다고 한다. 집 밖을 나오지 않았다는 말이다. 이즈음 짧은 휴재가 반복되다 결국 2013년 건강상 문제로 약 2년간 장기 휴재에 들어간다.
문제는 과로만이 아니었다. 2004년 작가노트에는 “정신 차리고 보면 삼시 세끼 칼로리메이트”라는 말이 나오는데 2009년에도 “내 몸의 2/3는 칼로리메이트”라는 표현이 또 등장한다. 과장을 슬쩍 얹은 우스개일 수도 있겠지만, 작업에 몰두해 식사를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미우라 켄타로를 상상하기란 어렵지 않다. 미우라 켄타로는 이야기와 시각적 표현 모두에서 정교한 디테일과 스펙터클을 고집한 작가로 유명했다. 특히 작화는 보는 이가 압도당하는 기분이 들만큼 한컷 한컷을 밀도 높은 그림으로 채워 넣었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지니 마감을 맞추려면 더 오래 일할 수밖에 없었을 테다.
미우라 켄타로의 과거 작가노트가 웹상에서 퍼지자 SNS에는 미우라 켄타로의 치프 어시스턴트(chief assistant)의 이름으로 “오해”를 해명하는 글이 올라왔다. 작가노트에 묘사된 생활은 이미 오래전의 일이므로 사실과 다르다는 것이다. 해당 트윗은 미우라 켄타로가 “최근 15년 정도 꽤 제대로 된 식생활과 상식적인 운동”을 하고 있었다며 “심신이 튼튼하고 지병도 없었다”고 강조한다.
대동맥 박리라는 직접 사인을 넘어 미우라 켄타로가 ‘왜 죽었는가’를 밝히긴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죽음이 만화를 사랑해온 사람들에게 가지는 의미를 살피는 건 가능하고 필요한 일이다. 웹상에서 터져나온 목소리가 가리키는 것은, 지금, 만화가의 ‘삶’이기 때문이다.
미우라 켄타로의 죽음이 한국 만화계에서 주목받은 것은 그가 단지 특별한 영향력을 가진 작가였기 때문만은 아니다. 독자들이 그의 죽음에 놀라고 안타까워했다면, 만화가들은 단지 안타까움이라고만 말할 수 없는 심란함을 느꼈다고 말한다. “연재하는 작가 중에 안 아픈 사람 찾기 힘든” 현실 때문이다. <안녕 커뮤니티>의 다드래기 작가는 블로그에 미우라 켄타로를 애도하면서 “항상 이렇게 밤에 일하면서 50살이 고비일 것 같다”는 말을 남겼다. 미우라 켄타로의 모습에서 자신의 미래에 대한 불안을 느낀 것이다.
다드래기 작가의 불안은 그만의 것이 아니다. “주변 여자 작가들을 보면 35살 즈음부터 큰 병이 터지기 시작하는 거 같아요. 여성만화가협회 모임을 가보면 젊은 작가들이 많고, 나이가 아무리 많다 해도 중년인데, 갑상선이나 당뇨 때문에 약 드시는 분이 많아요. 내분비계가 망가지는 거죠.”
2015년 이후 한국 웹툰 시장의 규모가 눈에 띄게 커지기 시작하면서 건강 이상을 호소하는 작가들의 목소리도 함께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2017년 5월 창립한 한국웹툰작가협회는 작가들의 권익보호를 위해 가장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일로 작가들의 건강문제를 꼽았다.
사실 만화에 조금만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질병이나 각종 건강 문제로 휴재한 작가들의 이야기를 심심치 않게 접하게 된다. 잘 알려진 만화가들의 사례만 추려봐도 상당하다. <닥터 프로스트>의 이종범 작가는 허리디스크와 목디스크로 일시적으로 전신에 마비가 왔던 경험 후 건강관리에 매진한 이야기를 2019년 글로 쓰기도 했다. <신의탑> SIU작가도 손목통증과 허리디스크로 1년간 장기 휴재 끝에 올해 5월 연재를 재개했다. 근골격계질환은 사례를 쓰는 게 무의미할 만큼 만화가들에게 흔하다.
작가들의 건강 문제를 고발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최근 수년 사이 공신력 있는 실태조사가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는 2018년부터 2020년까지 매년 ‘최근 5년 이내 작품활동 경험이 있는 작가’를 대상으로 창작 환경과 작가들이 겪는 고충을 조사한 바 있다. 전국여성노조에서도 디지털콘텐츠창작노동자지회(디콘지회)와 함께 2020년 말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가장 최근 발표된 전국여성노조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10명 중 8명이 업무강도가 힘든 편이라고 느끼고 있었다. 지난 1년간 업무로 인해 발생한 질병에 대해서는 두통·눈의 피로(82.5%), 어깨·목·팔 등 근육통(76.8%), 요통(64.9%), 전신 피로(62.5%), 수면장애(57.5%), 복통(위장·소화장애)(52.6%), 우울증(52.3%)의 순으로 나타났다. 전반적으로 한국 전체 노동자 평균에 비해 질병 경험률이 매우 높은 것으로 파악됐다.
이러한 문제의 가장 직접적인 원인으로 지목되는 것은 장시간 노동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조사에 따르면 웹툰 작가들은 평균적으로 약 5.8일, 하루에 10시간가량을 일한다. 한 웹툰 작가에게 이 수치를 말하자 “10시간은 작가들이 계산하기 귀찮아서 그냥 대충 쓴 것 같다”는 웃음 섞인 말이 돌아왔다. 12시간, 13시간, 아예 날밤을 새우며 일하는 날이 흔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웹툰 작가들의 노동은 절대적 시간만 따져서는 그 강도를 제대로 헤아리기 힘들다.
웹툰작가 12명을 대상으로 심층면접조사①를 수행한 ‘일하는 여성 아카데미’의 최혜영 연구원은 작가들이 “눈뜨면 그냥 한다”, “하루종일 계속한다” “끝날 때까지 한다” 등으로 작업시간을 묘사하는데 주목한다. 웹툰 작가들은 별도의 작업 공간 없이 주로 집에서 작업하거나, 작업 공간이 별도로 있더라도 노동시간과 휴식시간을 구획하지 않은 상태에서 작업하는 경우가 많다. 식사나 휴식(처럼 보이는) 시간 중에도 마감에 대한 부담, 일에 대한 생각에 매여있기 쉽다. 최혜영 연구원은 작가들에게 “작업하지 않는 시간으로 명확하게 구분되는 시간은 거의 잠잘 때뿐”이라며 “(작가들의) 건강이 나빠지는 것은 부작용이라기보다는 예상되는 결과물에 가깝다”고 지적한다.
책상 앞에 앉는 직업은 마치 ‘힘든 일’이 아닌 것처럼 여겨진다. 결코 그렇지않다. 장시간 비슷한 자세를 취하고 일할 때 신체에는 큰 부담이 가해진다. 이는 목디스크나 허리디스크와 같은 근골격계질환에 한정되는 문제가 아니다. 전문 어시스턴트로 활동하던 한 작가는 일정에 쫓겨 움직이지 않고 장시간 작업하다가 급성 신우신염이 오기도 했다. 직업환경의학과 김형렬 교수(가톨릭대)는 “만화가들이 겪는 위험이 상당할 수 있다”고 말한다. “작업 중 활동량이 적을 때 건강에 좋지 않다는 연구결과가 많다. 최근에는 앉아서 일하시는 분들에게 대장암, 유방암, 뇌혈관 질환이 많이 보고되고 있다. 작업 중 적당한 휴식을 취하고 움직여 주어야 한다.”
운동은 건강 이상이 발생할 위험을 낮춘다. 그러나 김형렬 교수는 운동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만큼이나 한계에 대해서도 강조한다.
“구조적으로 장시간 노동을 조장하는 산업 시스템에 대해서 문제제기할 필요가 있다. 가령 택배 노동자의 경우 개당 단가가 너무 낮게 설정되어 있어서 생활임금을 유지하려면 장시간 노동을 할 수밖에 없다.”
웹툰 작가들의 초장시간 노동은 플랫폼이 연재주기와 작업량을 과도하게 설정하고 있기 때문에 발생한다. 현재 웹툰은 주간연재, 회당 70컷, 풀칼라가 기본이다. 몸을 망가뜨리는 과도한 노동을 하지 않고는 도저히 그려낼 수 없는 분량이라는 비명이 꾸준하게 울려퍼지고 있다. 그러나 플랫폼은 요지부동이다.
지난해 8월 전국여성노동조합 디지털콘텐츠장작노동자지회, 한국여성만화가협회는, 만화계성폭력대책위원회가 플랫폼을 규탄하는 첫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플랫폼은 “악성 댓글과 작가의 건강 문제”를 책임지지 않으면서 “휴재는 안 된다”는 대답만 내놓을 뿐이라며 신랄히 비판했다. “일부 플랫폼은 몇 년간 휴재를 금지하는 조항을 삽입하기도 하고, 작품의 완성도가 떨어질 시 불이익에 대한 강요마저 있지만, 정작 플랫폼이 작가에게 보장하는 책임과 의무는 없다.”
윤정향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플랫폼과 작가의 관계가 “계약 형태로는 (노동자성을 판별하는) 전통적 기준의 핵심인 ‘전속성’이 약할 수 있으나 실상 ‘종속성’이 매우 강하다”고 지적한다. 종속성은 불공정계약으로 강화된다. 작가들은 대체로 한 플랫폼에서 연재하며, 연재기간 동안 근무장소와 시간대만 자유로울 뿐 작품에 대한 개입을 통해 노동을 통제당한다. 윤 연구원에 따르면 “작가들이 (작품에 대한) 수정요구 횟수와 수정결정권을 계약 내용에 반영하려고 하고, 특정 에이전시와는 계약을 기피하려는 모습”을 보이는데, 이것이 바로 플랫폼의 관리감독과 통제가 이루어진다는 증거라는 것이다②.
이러한 상황 속에서 미우라 켄타로에 대한 애도는 복잡한 이야기에 둘러싸인다. 그는 생전 인터뷰에서 작업에만 몰두하는 삶이 괴롭지 않느냐는 물음 앞에 이런 말을 남겼다.
“괴로운 일은 거의 없네요. 귀찮은 건 있지만. 그 귀찮은 것도 즐거우니 하는 거죠. 그렇지 않다면 할 수 없죠.”
온종일 만화만 그리느라 소위 ‘인간다운 생활’을 누리지 못하는 것이 그에게 비참하거나 억울한 일로 다가오진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다만 하고 싶은 일을 할 시간과 역량이 줄어드는 것에 대한 아쉬움만을 말했다. 그러니 단지 54세의 나이에 미완의 작품을 남겨두고 죽었다는 이유로 그의 삶을 쉽게 ‘비극’이라 말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그의 삶을 아름답게만 평가하기엔 어딘가 석연치않다.
미우라 켄타로의 부고를 전한 국내 한 신문기사 중 눈에 띄는 대목이 있었다. 2년 동안 휴대전화 착신이 0통일 정도로 고립되어 만화만 그린 작가의 삶을 “작가와 만화의 ‘진검승부’”에 비유한 것이다. 진검승부라는 표현에 덧붙여 베르세르크의 대사 “도망쳐서 도착한 곳에, 낙원이란 없는 거야”가 인용됐다. 작품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는 사람, 한계까지 자신을 채찍질하는 사람이 예술가다운 것으로 칭송될 때 짙은 경계심이 든다. 사실 이러한 예술가상, 예술가에 대한 통념은 오랫동안 확고하게 자리 잡고 큰 영향력을 발휘했다.
웹툰 작가들을 대상으로 한 실태조사에서 작가들은 이 일을 택한 이유로 이 작업에 대한 열정을 가장 첫손에 꼽았다. 문제는 그 귀한 마음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 현실에 있다. 플랫폼은 작가를 언제든 대체될 수 있는 소모품으로 여기고, 작가가 품은 만화에 대한 열정과 애정을 작가를 쥐어짜는 채찍으로 바꾼다. 한 웹툰작가는 미우라 켄타로의 삶이 ‘그의 온전한 선택’이라는 관점에 조심스레 문제를 제기한다. “무엇이 예술이고 예술가다운 것인지를 평가하는 사회의 시선에서 작가의 욕망이 자유로울 순 없다. 자기를 소진하며 위대한 작품세계를 일군 작가의 삶을 쉽게 영웅화하기 전에, 그러한 시선이 작가를 몰아붙인 힘이 되지는 않았는가를 조심스레 점검해야 하는 게 먼저 아니겠냐”는 말이다.
<나의 살던 고향은>의 선우훈 작가는 건강검진에서 좋지 않은 소견이 나온 후 하루 작업시간을 7시간으로 제한하고 있다. 45분 작업 후 15분 휴식을 꼭 지킨다. 작업패턴을 바꾼 이후 작업 집중도가 훨씬 좋아졌다고 말한다. 당연한 결과다. 창작의 에너지도 신체에서 나온다. 선우훈 작가는 “이상적인 작가상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 달라져야 한다”고 말한다. 일상을 포기하지 않고 건강을 관리하며 오랫동안 꾸준한 작품활동을 보여주는 일이야말로 ‘작가다운’ 삶일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삶은 작가의 의지만으로 가능하지 않다. 선우훈 작가가 작업 패턴을 바꿀 수 있었던 것은 플랫폼에서 한 화당 연재 분량을 절반가량으로 줄이는데 합의해주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례는 아직까지 운이 좋거나 어느 정도 협상력을 갖춘 작가들의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
문제는 플랫폼이다. 웹툰 작가들을 대상으로 한 실태조사에서 작가들은 이 일을 택한 이유로 이 작업에 대한 열정을 가장 첫손에 꼽았다. 문제는 그 귀한 마음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 현실에 있다. 플랫폼은 작가를 언제든 대체될 수 있는 소모품으로 여기고, 작가가 품은 만화에 대한 열정과 애정을 작가를 쥐어짜는 채찍으로 바꾼다. 플랫폼은 자기 이익 계산에는 빠삭하지만, 공존을 위한 아주 기초적인 셈은 하지 않는다. 이 연재 분량은 일주일 동안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인가? 두 사람 세 사람이 해야 한다면 그에 합당한 비용을 지불하고 있는가?
“만화가는 예술가이면서 노동자”라는 작가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합리적 창작 환경이 보장되어 아프지 않고 죽지 않고 오래오래 만화를 그리는 게 당연한 일이 될 때, 우리는 미우라 켄타로와 같은 삶이 ‘작가 개인의 선택’이자 ‘충분히 의미 있는 삶’이라고 조금 더 편히 말할 수 있게 될 것이다.
① 최혜영, 디지털콘텐츠 창작노동자 노동실태: 면접조사 분석결과, 디지털콘텐츠 창작노동자 실태와 대책마련을 위한 토론회, 한국여성노동자회 주관, 2019
② 윤정향, 디지털콘텐츠 창작노동자 노동환경 개선과제, 디지털콘텐츠 창작노동자 실태와 대책마련을 위한 토론회, 한국여성노동자회 주관,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