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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와 식욕 : (2)식욕을 자극하는 만화 7선

무더운 여름이 지나고 바야흐로 가을이 찾아왔습니다. 이 천고마비 계절에 ‘식욕을 더욱 자극하는 만화 7선을 만나봅시다!

2007-10-09 만 편집부
[연중기획 Comic & Culture ⑦] 만화와 식욕

자오선을 지나다 中 <말이 살찌는 오후>
한혜연

잡지 오후에 실렸던 단편 <말이 살찌는 오후>는 먹을 복을 타고난 한 여대생의 일상을 담고 있다. 돌잔치에서 백설기를 잡을 정도로 어릴 때부터 먹성이 좋았던 그녀는 취업전선에서 미역국을 먹고도 회초밥을 얻어먹고 나올 정도로 먹을 복이 따라다닌다. 그녀의 먹거리에 대한 추억은 남자친구에게 선물한 초콜렛과 두근거리던 첫 경험 후의 아침 등 달콤하고 씁쓸한 이야기들.
다른 이의 고민도 먹는 걸로 해결하라고 조언하는 그녀, 예쁘고 맛도 좋은 먹거리를 즐기는 보통의 아가씨들과 별 다를 게 없다. 그리고 그 별 다를 것 없는 그녀의 이야기가 독자의 마음에 부드러운 동심원을 그려나가는 것이다. 읽다보면 저절로 마음이 그득해지는 한혜연의 기분 좋은 단편._chocochip 유혜영

 

제멋대로 함선 디오티마
권교정

어쩌다보니 작품마다 옹기종기 모여 식사하는 장면을 자주 그리게 된다는 권교정의 SF만화. 우주 스테이션 디오티마의 역장(본인은 함장이라 칭함) 나머 준과 디오티마 직원, 승객들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권교정 특유의 부드러운 전개와 코믹한 개그컷, SF 마니아들의 호감을 얻은 꼼꼼한 설정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 작품 때문에 한동안 만화독자들의 관심을 모은 음식이 있는데 바로 라자냐이다. 부역장인 지온이 근무 중 햄버거를 씹으며 핏발 선 눈으로 먹고 싶다! 먹고 싶어!를 중얼거리는 장면 때문. 라자냐를 너무도 좋아하는 그가 결국 식당에 가보지만 이미 품절. 울면서 역무실에 돌아오자 평소 지온이 구박하던 함장 준이 선물한 특대 사이즈의 라자냐가 기다리고 있는 것 아닌가!
갑자기 특정 음식이 먹고 싶어져 한밤 중에 안절부절한 경험이 누구나 한번쯤 있어선지 이 에피소드와 라자냐는 그 뒤 만화독자들의 기억에 오랫동안 남았다. 이탈리아 음식점에서 메뉴판의 라자냐만 봐도 저절로 떠오를 정도로 말이다._chocochip 유혜영

 

아이의 체온
요시나가 후미

아내가 죽은 지 1년 만에 사카이는 모처럼 아들과 함께 처가집에 방문한다. 장인, 장모가 느닷없이 말다툼 하는 현장에 동석한 사카이는 장인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다음 날 있을 장인과 그 친구들을 위한 음식을 준비하기로 한다. 그리고 중년과 노년의 두 남자는 냉장고 속에 있는 재료를 다 털어 요리를 시작한다. 장모가 숨겨둔 비장의 발사믹 식초도 털어서 두 남자가 만든 것은 미네스트로네, 닭고기 구이, 콩깍지 소테, 시푸드 샐러드, 케이크! 요리 과정도 간단히 그려져서 읽다 보면 저절로 입에 침이 돈다.그리고 이것은 단지 음식남남에 대한 에피소드로 그치지 않는다. 이 메뉴는 가족에게 추억의 음식이기 때문이다. 장모에게서 아내, 그리고 사위에게로 이어져 마지막으로 장인에게 전달되는 요리법. 죽은 아내와 딸에 대한 추억을 두 사람은 하루 밤 사이좋게 요리를 하면서 나눈다. 이렇게 은근슬쩍 감동을 전하는 것이 요시나가 후미 작품의 매력이다._chocochip 유혜영

 

하루칭
나나난 키리코

작품이 국내 정식발매된 적이 없어 아쉬운 나나난 키리코는 <딸기 숏 케익>, <호박과 마요네즈> 등의 작품에서 20대 여성의 불안하고 예미한 감수성을 풀어낸 작가이다. 그의 가볍고 발랄한 소품 <하루칭>은 애칭이 하루칭인 20대 초반 여성과 그녀의 예쁜 친구 치이가 주인공이다. 액세서리 샵에서 일하는 둘은 하루칭의 털털하고 두서없는 성격과 치이의 깔끔하고 꼼꼼함이 대비되는 좋은 콤비. 스파게티를 만들다가 온 집안을 뒤집어엎는 하루칭부터 상대가 시킨 음식이 맛있어 보여 침을 삼키는 이야기까지 먹거리에 대한 에피소드가 가득하다. 특히 동심을 상기시킨다며 달달한 아이스크림이나 초콜렛, 과자를 실컷 먹고 나서 술 생각이 난 하루칭과 치이의 이야기는 일품. 어느새 성인의 음식에 익숙해진 두 사람에게서 독자들은 자신의 모습을 오버랩 하게 되는 것이다._ chocochip 유혜영

 

허니와 클로버
우미노 치카

먹는 장면이 끊이지 않는 작품으로는 <허니와 클로버>를 빼놓을 수 없다. 등장인물들은 줄곧 뭔가를 먹는다. 붕어빵이나 롤빵, 초콜렛이 들어간 주먹밥을 먹을 때도 있다. 선배가 가져다 준 구급식량 = 햄을 먹기도 하고 어느 지역 특산품이라는 명물 국수를 끓여 먹기도 한다. 크리스마스엔 팔고 남은 케이크나 치킨을 먹기도 한다. 좌우지간 등장인물들은 쉴 만하면 무언가 먹어댄다. 그런 그들을 그들 자신의 대사로 분류하자면, "어른 되길 잘했다 = 돈에 구애받지 않고 맘껏 먹는다"인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으로 나눌 수 있다. 그래선지 지갑 속 동전의 딸랑거림에도 예민한 학생들은 식사를 마요네즈와 간장을 비빈 밥으로 떼운다. 직장생활로 지갑에 여유가 있는 이들은 이 학생들을 끌고 비싸지만 영양가 없는 주전부리를 사주고. 먹을 수 있을 때 열심히 먹고는 실컷 웃고 실컷 우는 이들 청춘의 이야기가 인상적이다._ chocochip 유혜영

 

심부인의 요리사
우후카미 린코

중국 사대부 집안의 젊은 안주인 심부인은 아름답지만 식탐이 강한 여인이다. 새로 들어온 요리사 이삼은 그런 심부인의 음식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매일매일 최고의 음식을 만들어낸다. 흥미로운 것은 요리사 이삼은 심부인이 괴롭힐수록 더 맛있는 음식을 내놓는다는 것. 심부인이 어려운 과제를 제시하면, 그 때마다 이삼이 그것을 풀어내는 과정이 이 만화의 볼거리이다. 여타 일본 요리 만화처럼 음식에 대한 과장되고 전형화 된 평과 미사 어구, 화려한 요리 대결은 없지만, 심부인의 말도 안 되는 과제를 풀어가는 이삼의 눈물겨운 노력이 재미를 더해준다. 맛있는 음식을 위해서라면 이삼을 괴롭히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 심부인과 혼내주지 않으면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천재요리사 이삼. 이들의 묘한 주종관계는 ‘사디스트-마조히스트’를 연상시키는데, 식욕을 권력 관계로 치환한 점이 매우 흥미롭다._지노(coolhot78) 백은지

 


서양골동양과자점, 사랑이 없어도 먹고 살 수 있습니다
요시나가 후미

요시나가 후미의 작품 속에는 대부분 무언가 먹는 장면이 나온다. 「서양골동양과자점」은 케이크 가게를 주 무대로 설정해 예쁜 모양의 케이크들이 잔뜩 등장한다. 「사랑이 없어도 먹고 살 수 있습니다」(이하 「사랑이~」)는 맛집 소개라는 목적에 충실하게 작가의 분신이 주변 사람들을 이끌고 식도락 기행을 떠나는 내용이다.
케이크에 대한 애착은 「서양골동양과자점」 전체를 지탱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케이크를 좋아하지 않는 사장, 마성의 게이, 은퇴한 젊은 복서, 연쇄 유괴 살인범이 모두 케이크를 위해「안티크」에 모인다. 만병통치약은 아니지만, 언제나 사람들 옆에 있는 케이크와의 관계가 그의 인생을 설명하는 것이다.

「사랑이~」는 줄곧 먹는 이야기만 한다. 주인공 Y나가는 맛집에서 여러 친구들과 어울리고, 맛집에서 그들의 개성과 관계가 하나씩 드러난다. 불편한 사람과 함께 하는 자리는 음식이 아무리 맛있어도 먹은 것 같지 않고, 점수를 따기 위해 좋아하는 여성과 같은 음식을 고른 일이 도리어 그녀의 심기를 건드리는 식이다. 요시나가 후미의 음식들은 등장인물들의 삶과 개성을 설명하지만, 그 전면에 나서지 못한다. 하지만 등장인물들은 계속 음식을 만들고, 끊임없이 먹는다. 작가가 식사의 즐거움과, 그것이 우리의 인생에 부여하는 의미를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마음 맞는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을 먹는 일은 언제나 행복하니까._금빛고양이(chaoslina) 김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