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축제를 즐기다”란 기획으로 만화와 축제 전문가들의 글을 받았다.
박인하, 한상정, 정형탁의 앞선 글이 그것이다.
이어서, 만화축제에 대한 전문가들의 좌담을 마련했다.
이 기획은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의 디지털만화규장각과 크리틱엠이 공동으로 기획하고 진행한다.
(편집자 주)
만화축제 특집 좌담: 만화, 축제를 즐기다 때: 2015년 9월 4일 곳: 한국만화영상진흥원 이사장실
좌담에 함께 한 사람들 박재동(부천국제만화축제 조직위원장) 한창완(세종대 만화애니메이션학과 교수) 김종옥(상명대 외래교수, 전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 사무국장) 장상용(부천국제만화축제 사무국장) 박건웅(만화가, 2014부천만화대상 대상 수상) 조희윤(카툰캠퍼스 대표) 사회: 이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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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식
안녕하세요. ‘만화, 축제를 즐기다’ 좌담회에 함께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이번 기획은 만화축제를 주제로 한 좌담인데요, 축제를 비롯해 우리 만화사의 기억할 만한 큰 전시나 이벤트 등은 토론 범위에 해당합니다. 예를 들면, 우리 만화 100년을 맞아 한 ‘만화100주년 전시회’입니다. 또 한국만화박물관과 서울 명동의 재미랑, 얼마 전 문을 연 둘리뮤지엄 등 만화 상설 전시 공간 등을 만화 축제와 관련해 말씀해주셔도 좋겠습니다. 이 자리에 모인 분들 서로 잘 아실 텐데요, 개인적인 소개는 않고, 축제와 관련한 소개를 간략하게 하겠습니다.
박재동 선생님, 부천국제만화축제(이하 비코프, BICOF) 조직위원장으로 있으시죠. 어린이만화축제를 제안하셨고요,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축제(이하 시카프, SICAF) 태동 전부터 준비위원으로 참여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창완 교수님은 1995년 시카프 초대 대회의 수석 큐레이터를 맡으셨습니다. 김종옥 선생님은 시카프에 사무국장으로 오래 참여하셨지요. 몇 년인가요? (김종옥: 9년입니다). 네, 오랫동안 시카프에서 일하셨고요. 장상용 선생님은 현재 비코프 사무국장으로 있으시죠. 축제 상설 조직의 첫 ‘전문’ 사무국장으로 봐주셔도 될 것 같은데요, 이전에 시카프 등 만화전시에 큐레이터로 참여하신 적 있으시고요. 박건웅 선생님은 지난해 비코프 만화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하셨는데요, 올해 비코프 특별 전시관을 직접 꾸미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조희윤 대표님은 만화전시를 오래 전부터 해오셨지요. 서울 명동의 재미랑을 기획하고, 집을 지으셨지요.
여러 분야의 전문가 선생님들 모실 수 있어, 토론이 기대됩니다. 저는 대화에 최소로 개입하는 것으로 진행을 돕겠습니다.
박재동
‘축제’라고 하면 주마등처럼 지나가는 게 있는데, 시카프 행사 이전부터 살펴봐야 하고, 여기에 대해선 내가 말해야 될 것 같아요(이하 박재동 선생님은 좌담에서 평어체를 사용한 것을 현장감을 살리기 위해 그대로 살림. 편집자 주) 1994년에 우리만화연대(이하 우만연)가 아직 사단법인이 아닌 상태일 때 우만연에서 “만화전을 하자”라는 기획이 있었어. 만화전을 하자, 그것도 인사동에서 하자는 거였는데…. 그 전에는 만화 전시라는 게 없었어. 그래서 최초로 만화전시를 인사동 인데코 화랑에서 하자고 했어. 전시 제목은 “만화는 살아있다.”
그게 지금 축제의 축소판이라고 볼 수 있지. 그때 옛날 만화 원고들도 있고, 지금으로 말하자면 작가들의 ‘일상툰’이지, 카툰 같은 원고도 골고루 볼 수 있었어. 처음으로 볼 만한 전시 같은 게 이루어진 거지. 그때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왔는지, 인사동에 그 화랑이 오픈한 이래 그렇게 사람이 많이 모인 경우가 없었다고 해. 심지어는 2층 건물이 무너지지 않을까 걱정할 정도로 엄청나게 온 거지. 그때 대중의 반응이 너무 대단하니까 당시 문화관광부에서도 사람들이 왔어. “이게 도대체 어찌 된 일인가.” 싶어서. 나중에는 차관도 오고 난리도 아니었어. 나중에 시카프를 담당한 사무관이 “만화가 이런 저력이 있는 줄 몰랐다”면서 놀란 거야. 그래서 우만연을 사단법인화를 하자고 했지. 왜냐하면 우만연이 사단법인이 돼야 같이 일을 할 수 있다는 거고, 정부 입장으로서는 믿음직한 만화계의 파트너가 필요했거든.
그때 (전시회를 보고) “아! 만화가 보통이 아니구나! 폭발력을 가지고 있구나!”라고 생각을 한 거지. 그래서 문광부에서 “이것을 키워보고 싶다!”라고 생각을 한 거야. 그래서 그때 처음 시카프라는 걸 만든 거야. 코엑스에서 처음 시작을 했어. 인사동에서 처음 붐을 일으킨 것처럼 (코엑스로 옮겨진 후) 장소의 확대만큼이나 그 붐이 전국적으로 일어나게 된 거야. 왜냐면 ‘만화 전시회’, ‘만화 축제’라는 것이 이제까지 한 번도 없었어. “무슨 만화를 가지고 축제를 하냐?”라고 생각할 정도로 당시에는 익숙지가 않았다고.
그전에 만화라고 하면 뭔가 좀 어둡고 낮고 그랬던 것이 햇빛 아래에서 마음껏 즐길 수 있게 되었으니 신선하기 짝이 없는 거야. 그때 만화가 ‘문화’이면서 ‘문화산업’이라는 인식이 생겼어. 그때 만화계가 단결했지. 만화가 천시 받고, ‘하위문화’로 인식되었던 것들에 대한 한이 다들 있었던 거야. 그래서 이것을 드러내놓고 ‘만화는 훌륭한 문화다’, 또 ‘문화산업이다’라는 걸 드러내놓고 싶었던 거지. 출판사 사장, 교수, 만화 원로작가, 관료들이 만화를 키워보자고 단결했어.
그때 당시 내가 지금 장상용 사무국장 같은 비슷한 일을 했는데, 당시에는 만화부스를 내면 대원이니 학산이니 다 와서 해야 했어. (부스에서) 장사한다고 돈이 남는 건 아니지. 애들이 와서 인건비 대비, 책을 많이 사는 것도 아니거든. 부스비도 내야 하고. 아무튼 속으로는 다들 별로 하고 싶지는 않은 거야. 적자거든. 그래도 “만화계를 위해서 해라.”라고 하면 어쩔 수 없이 부스 비용을 내면서 오는 거야. 마지못해 하는 것도 있었겠지만 “그래도 해야 안 되겠나.”라는 마음으로 했겠지. 어쨌든 그렇게 해서 수십만의 사람들이 미어터지도록 들어왔어. 사람들이 막 몰리고 있었는데 그 김이 빠지기 시작한 게 내 기억으로는 캐릭터페어가 분리되면서부터야.
캐릭터페어를 같이 했어야 했어. 축제란 사고 팔고, 주고받는 어마어마한 거거든. 구경만 하는 게 아니고 직접 만지고 사고 팔고 해야 되는데 그때는 잘 몰랐던 거야. 캐릭터페어를 사력을 다해서 잡았어야 했어. “같이 하자. 캐릭터도 만화의 일부 아니냐.”라고 했지만 결국 나가버린 거야. 근데 애들한테는 캐릭터페어가 더 재밌는 거지. 결국 경쟁이 되어버린 거야.
당시 시카프만 해도 젊은이들 가봐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어. 이번에는 무얼 할 건가, 작가부스는 누가 나왔나 하면서 팬들이 어마어마하게 몰리고 그랬거든. 열기가 대단했지. 근데 해가 갈수록 이제 새롭지가 않은 거야. 축제가 진화를 하고 새로운 걸 보여줘야 하는데, 그게 아니었던 거야. 한다고 했지만 만화축제가 더 이상 특별할 게 없었던 거지. 이제는 축제에 가지 않아도 만화를 볼 수 있으니까 축제에 오는 사람들도 점점 줄어들고 그러다 보니 점점 시카프도 힘이 빠지고 축소되고… 급기야는 예산도 떨어지고 힘겨워진 거야. 그런 만화축제의 모습을 지켜본 거지.
그 다음에 비코프가 있잖아. 근데 비코프는 시카프랑 달랐지. 시카프는 크게 시작을 했다가 점점 그 열기가 식어 갔던 거고, 비코프는 조그맣게 시작했어. 내가 볼 때 처음은 거의 학예회 수준이었지. 그랬는데 여기 부천은 점점 커져 온 거고.
그래서 만화축제에 대한 고민은 결국 “축제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런 것들을 이제 앞으로 같이 얘기를 나눠야 되겠지. 만화는 늘 보지만 그것을 축제로 했을 때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오고 싶어 하게 만들 수 있는가, 그런 고민을 치열하게 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와야 할 이유가 없는 거지.
특히 요즘 웹툰은 너무 쉽게 접하고 볼 수 있는데 웹툰을 전시하는 게 제일 어려워. 한국만화 100주년 전시도 내가 총괄했는데 거기에서 ‘만화의 현재’를 두고 웹툰을 전시하는 게 있었는데 전혀 새로운 게 아니었어. 웹툰은 늘 보는 건데 어떻게 전시를 해야 하는가, 이것도 정말 고민이야.
축제라는 건 사람들로 하여금 가고 싶게 만들고 오고 싶게 끌어야 하는 건데…. 이제 시카프와 비코프가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하나. 앙굴렘국제만화페스티벌이나 코믹월드 같은 걸 보면서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방향이 어떤 것인가 논의하는 자리가 되었으면 좋겠어.
박건웅
선생님 말씀을 들어보니까 앙굴렘국제만화페스티벌과 비교가 되는 부분이, 거기도 작가들이 좌판을 깔면서 시작을 했잖아요. 처음에 앙굴렘이라고 하는 전혀 알려지지 않은 시골의 소도시에서 만화가들이 좌판을 깔았던 것이 축제의 시작이었는데, 이후 “만화축제를 했더니 다른 도시 사람들이 만화를 보러 오더라.”해서 시에서도 지원이 들어와서 결국 그 정도로 커지게 된 거죠.
시카프도 처음에는 작가들이 무엇이든 해보자는 시도로 행사를 만든 건데 어느 순간부터 점점 작가들은 뒤로 빠지게 되는 모습들이 보이는 것 같아요. 어떤 연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순간부터 작가들은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게 되고 그 자리를 산업적인 부분들이 채우기 시작하면서 앙굴렘에서도 작가들이 소외되는 과정들이 있다고 하는데… 그러면서 (축제의 기획에서) 작가 참여도가 줄어들고 기획에 참신도가 떨어지면서 사람들이 점점 오지 않게 되었다는 얘기가 들려오게 되는 거죠. 결과적으로 작가들이 주도적으로 행사를 참여하는 부분이 초창기보다 많이 미흡해지지 않았나 싶어요.
박재동
내가 작가의 입장에서, 기획자의 입장에서, 또는 집행자의 입장에서 봤을 때 초기에는 작가들의 참여가 굉장히 열성적이었어. 아까도 말했지만 그때는 만화가 억압당하고 천시되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우리가 기를 모으자, 서로 돕자 하는 마음으로 모였다고. 작가들도 자기 일로 여기고 많이 참여도 하고 그랬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제 피곤한 거야.
전시 기획하는 쪽에서는 “이게 당신들(작가들) 일 아니냐? 그러니 당연히 공짜로 시간을 내서 와서 참여해야 하지 않냐?” 이런 인식이 있던 거야. 그건 내가 작가로서 불쾌했어. 작가들 다 바쁘거든. 바쁜데, 또 전시기획자로서의 입장에서는 좀 왔으면 좋겠어. (나는) 그런 두 가지 입장이 있지만 (집행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그런 태도가 있었어요. 초기에는 그게 통했지. 같이 말하고 기획하니까. 하지만 해를 거듭하면서 기획들도 새로울 게 없는 데다가 이들이 작가들을 대접하질 않는 거야. 작가를 존중한다든가, 모셔온다든가 적절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거야.
기획자들은 “이거는 당신들(작가들)의 축제 아니냐.”라고 하지만 작가들은 그게 와닿지 않는 거야. “이게 내 축제다.”라는 느낌이 없는 거지. 나도 작가로만 있을 때는 비코프 이런 데 정말 할 수 없이 갔었어. 아무래도 만화계 선배인데 안 가면 좀 그렇잖아. 그래도 가능하면 안 가려고 했지. 왜냐면 새로울 게 없잖아. 내가 그랬는데 다른 사람들도 비슷할 수 있지. 그래서 작가들에게 “이건 당신들 일 아니냐.”라는 태도는 위험한 거야. 아무리 그래도 작가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준다든지 대우를 잘 해준다든지. 아무튼 뭔가 있지 않으면… 오겠나?
박건웅
작가 대우를 해줘야 한다는 게 돈을 많이 준다거나, 뭐… 인사 차리는 예우 같은 걸 말하는 게 아니라 작가들이 축제에서 무언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여건이랄까, 선택의 폭이 넓어야 하는데 현재로서는 굉장히 제한적이고 작가가 축제에서 본인이 하고 싶은 걸 하지 못한다라는 느낌을 많이 받아요.
가령 작가들이 가장 많이 하는 게 캐리커처잖아요. 자기 작품을 가지고 와서 판매하거나 본인의 하고 싶은 이야기를 중심으로 부스를 꾸미거나 창조하는 모습들이 많이 보여야 하는데 지금은 캐리커처 등, 굉장히 단편적으로 소재가 제공하고 있고, 이런 모습들이 관객들에게는 굉장히 지루한 모습으로 비춰질 수도 있다는 거죠.
박재동
이야기하다 보니까 뒤늦게 생각난 건데, 나도 가서 캐리커처나 그려줘야 한다면 골치 아프고 피곤하지. 하지만 누군가 (이벤트를 기획해서) “선생님. 이번에 팬클럽 몇 명이 행사에 와서 선생님이 오시는 걸 학수고대 하고 있다.”라고 한다면 오히려 안 가는 게 곤란하지 않을까? 작가에게 ‘당신이 오면 사람들이 올 것이다’ 이것이 아니라, 팬클럽 등을 미리 조직해서 팬클에게 ‘당신들이 직접 축제 기획을 해라. 약간의 지원을 하겠다.’하면 그럼 작가가 더 적극적으로 즐기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을 했지.
박건웅
제가 말한 것도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처럼 그런 아이디어들이 나와서 작가들이 좀 더 자유롭게 하고 싶은 걸 구상하고, 스스로 무엇을 할 것인지 창조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야 한다는 거죠. 지난 10년 동안 작가가 중심으로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하지만 갈수록 작가들은 뒤로 소외되는 현상이 나타나는 거죠.
한창완
결국 작가 중심이 되는 기획이 없는 거죠. 제 생각은 그래요. 아이디어가 없는 거죠.
박재동
사실상 작가는 축제의 들러리로서 이용가치가 있는 거지(웃음). 정말 작가 중심으로 뭔가 생각을 해야 해.
조희윤
축제 조직위원회에서 기획하는 게 있잖아요. 거기에서 작가분들과 관계자분들께서 그런 아이디어를 모아서 기획하려고 이 조직이 구성되어 있는 건데 어쨌든 그 안에서 이런 ‘꺼리’를 만들어내고 있는 거잖아요? 사인회가 필요하면 거기에 맞는 작가를 섭외하고, 주제전시가 필요하면 거기에 맞는 작가를 초대한다거나, 해외 특별전시를 위해 작가나 콘텐츠 수급을 하는데요.
제가 왜 이 얘기를 하냐면 지금은 제가 만화를 가지고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도 하지만 예전에는 기존의 기획 전시들을 진행하는 일을 비코프에서 했어요. 주제에 따라 진행하기 이전부터 “이번에는 이런 주제로 기획을 해보는 게 좋겠다.”고 아이디어를 내고 기획 단계서부터 (작가들과 관계자들이) 같이 들어갔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어요.
우리는 항상 용역인 거예요, 한마디로. 정해져 있는 주제에 (예를 들어) “김동화 특별전이 내년이니까 조희윤이 와(서 진행 해).” 또는 “인터렉티브 관련 행사가 있으니까 여기에는 누구(가 담당해서 진행해라).”라는 식으로 전시 내용도 뭔가 이미 정해진 퍼즐판에 하나하나씩 사람을 끼워 넣는다는 느낌이 들었죠.
비슷한 뉘앙스로 작가들의 참여공간을 닫아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작가들이 적극적으로 어필할 수 있는 통로는 과연 있을까요. 작가분이 운영위원으로 있고 집행위원으로 있어 목소리를 내더라도 운영하는 가운데서는 이미 짜여 졌던 뭔가가 계속 있어왔던 거죠.
그 부분을 어떻게 우리가 열어놓고 (작가분들이 참여할 수 있는) 공모를 할 건지, 혹은 새로운 아이템에 대해 같이 해보자고 한다든지, 그런 (연결통로를 통해) 작가들의 참여를 적극적으로 유발하는 동기가 된다는 거죠.
한창완
지금 작가 얘기가 나오는데요, 축제에는 주체가 여러 개가 있습니다. 기획하는 사람도 있고, 참여하는 작가도 있고, 행사를 보러 오는 일반 대중들도 있고, 그리고 스폰 하는 기업도 있고요. 이게 각각의 주체가 다 있는 겁니다. 그 주체들이 각각의 역할을 제대로 돌아가면서 할 수 있는 축제를 만들어 주는 것이 중요하지, 어떤 한 쪽에 편향되거나 그런 건 아니라고 보거든요.
재미있는 게 시카프 초기에 얼마나 작가를 우습게 봤는지에 대한 일화가 있는데, 그때 김진 선생님이셨나, 신일숙 선생님이셨나… 아무튼 사인회를 진행하는데 워낙 줄을 많이 서니까 동선이 막히는 거죠. 그때 코엑스에서 무슨 얘기를 했냐면 밖에 나가서 하라는 거예요. 근데 한여름이어서 코엑스 앞마당 뙤약볕에 (작가도 내보내고) 사람들이 줄을 200m를 서게 하는 바람에 난리가 났거든요. 작가가 와서 사인회 하는 것도 축제인데, 축제를 위한 동선을 만든다고 작가를 내쫓아버린 게 초창기의 인식이었던 거죠.
그래서 저는 아예 ‘만화축제가 왜 생겼는가’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봐요. 아까 시작하면서 박재동 선생님께서 94년에 우만연에서 ‘만화는 살아있다’ 전시를 시작한 게 “만화가 이런 것도 있다, 당신들이 만화방에서 만화잡지에서 보는 만화 말고도 이런 것들도 있다.”라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 그 열악한 환경에서 인사동에서 전시를 시작했던 것으로 말씀하셨죠.
그때 문광부에서 만화라는 콘텐츠가 문화산업이라는 걸 인식을 하던 땐데, <쥬라기공원>이 자동차 회사보다 더 많은 돈을 번다라는 연구결과가 삼성경제연구소에서 나왔죠. 그래서 당시에 김영삼 대통령이 했던 말이 “우리도 스필버그 감독처럼 뭔가 부가가치가 높은 걸 해야 하지 않겠냐.”라고 했는데 당시에 수출 실적이 영화보다도 많았던 게 애니메이션이었어요. 하청을 많이 했으니까. 그런데 이 애니메이션이라는 게 뭐냐? 그러다보니 만화를 하게 된 거예요. 만화와 애니메이션이 구분이 안 되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그러면 “애니메이션을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 “아, 그럼 축제를 합시다.”라고 해서 사람들을 불러 모아서 애니메이션에 대한 아이디어도 좀 얻고 기업들도 뭔가 붐을 조성을 합시다라고 해서 만들어진 게 시카프죠. 코엑스 한편의 조그만 공간에서 초창기엔 얼마 안 되는 돈으로 시작을 했습니다. 그때 우리의 가장 큰 목적은 사람들이 만화를 너무나 쉽게 생각하고 천시하는데, ‘만화가 얼마나 좋은 것인지 사람들의 인식의 패러다임을 바꾸자.’ 하는 생각이었죠. 그러면서 국가지원을 받았고요. 그런데 국가지원금만으로는 힘드니까 그러면 어디서 “스폰을 받아라, 시드머니를 받아라.”라고 해서 어쩔 수 없는 가장 돈을 많이 낸 기업의 부스가 중심이 되어서 축제를 진행했던 게 시카프의 초기 모습이었던 거구요.
게다가 90년대까지만 해도 시카프에는 만화, 애니메이션, 캐릭터, 게임이 전부 통합되어 있었어요. 그렇지만 2000년대로 넘어오면서 국가적으로도 캐릭터산업이 많이 커지면서 캐릭터페어가 따로 나가고, 영화도 따로 나가고, 게임도 또 따로 나가고. 그러다 보니 애니메이션 영화제를 제외하면 사실 ‘만화’라는 콘텐츠만 가지고 전시를 하기에는 (기획의) 한계에 부딪힌 거예요. 이게 20년을 해왔다는 건 써먹을 수 있는 아이디어는 다 써먹었다는 소리거든요. 그러니 처음에는 신기해서 왔던 사람들도 “몇 년 가보니 그게 다 그거더라.” 라는 인상이 심어지게 된 거죠.
박재동
그게 우리도 계속 같이 고민하는 건데 사실 초기에 시카프도 그렇고 각 단체에게 부스 자리 내주고 ‘알아서 해라.’라는 게 초기 모델들이었지. 사실 우만연에서 한다고 해도 시작하려면 이사회 소집해야 하지. 모여서 이거 할까, 저거 할까, 뭐할까, 하면서 아이디어 모으는 게 쉬운 게 아니지. 이런 걸 열정적으로 하자는 사람 하나만 있어도 되는데 그런 게 아니면 다 자기 일로 바쁜데 진짜 모이는 거 자체가 너무 어려운 거야. (조희윤 : 결국 희생과 봉사를 필요로 하는 일인 거죠.) 그렇지. 그래서 결국은 노동력이 적은 설비로 가게 되는 거야. 근데 그게 생각처럼 안 되는 거고 그러다보니 시들해지는 거야. 그래서 지금 다시 생각해 보는 거지만 작가들에게 무엇을 하고 싶은가에 대한 공모를 받는 거야. ‘나는 이런 기획을 하겠다.’고 하면 ‘그것에 대해 어떤 지원을 해주마.’ 하는 절차가 오가고…. 이런 과정으로 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
조희윤
20년 세월 지나면서 우리 업계 종사자들에게는 매년 같을 수가 있죠. 매년 무슨 전시를 하고, 컨벤션을 하고 똑같을 수 있지만 사실 매해마다 고민을 했을 거예요. 어떻게 하면 잘 보여줄 수 있는가 하는 걸요. 잘 생각해보면 그때는 시기적으로 안 됐지만 지금은 실행할 수 있는 아이디어가 있을 거라고 봐요. 예를 들면 그때 부천운동장에서 북페어 했을 때가 기억이 나는데, 당시에 출판시장도 막 엎어지면서 비코프에서 북페어, 북마켓을 한다고 했어도 결국 마니아 중심의 축제의 모습으로 자리를 굳히고 결국 북페어에 대한 아이템은 묻혀졌어요.
인디 출판을 중심으로 하는 ‘언리미티드 에디션’이라는 북페스티벌이 있어요. 올해는 일민미술관에서 11월에 하기로 되어 있어요. ‘책성애자들’이 있는 거예요. 이 디지털 시대에 없는 유니크하고 독특한 책들을 비싸더라도 사고 싶고, 보고 싶고, 소장하고 싶어 하는 게 있거든요. 그 가운데 작은 서점, 작은 책방들도 다시 움직이고 있고요.
지금은 웹툰으로 많이 편중되었지만 작가들 가운데서도 직접 출판을 하거나 디지털 출판을 하는 꾸준한 움직임을 보이는 작가들이 분명이 있을 거예요. 그분들의 장을 다시 열어줄 수 있는, 출판사와 작가 간의 계약이 아닌 정말 작가들이 자신의 작품을 내보일 수 있는, 지금도 꾸준히 열리고 있는 독립작가들의 특별 전시존 같이 작가들이 직접 소통할 수 있고 작품을 내보일 수 있는 장을 만들어 주는 것도 할 수 있겠다 싶어요. 혹은 20년 전에 나왔던 아이템 중에 재미있는, 실현 가능성 있는 기획을 되짚는 것도 어떨까요.
박건웅
시카프에 참여하는 애니메이션 감독인 지인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만화와 애니메이션은 본질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두 장르를 하나로 묶어둔 것이 매우 버겁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오히려 본인들은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분리를 했으면 좋겠다는 식으로 얘기를 했는데요. 저도 예전부터 생각했던 게 두 장르에 대한 관객층이 다르다고 봐요. 이전에는 만화독자나 애니메이션 시청자들이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로 모두가 열광했다고 한다면 지금은 독자의 연령층도 달라지고 있다라는 느낌이 많이 들기 때문에 그런 의미에서는 축제를 좀 전문적으로 분리하는 과정을 거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갑자기 단번에 분리하는 것은 아니고 점차적으로.
한창완
지난주에 시카프 자문회의가 있었습니다. 당시 서울시 고위 공무원 한 분이 그 자리에서 지나가는 말로 했던 게 “서울프로모션플랜(이하 SPP)과 시카프를 합쳐 보지?”라고 한마디 하셨어요. SPP가 피칭데이도 하고 그러잖아요. 그거랑 시카프를 합쳐라, 라고 얘기가 나온 거예요. 제가 그때 뭐라고 했냐면 “그거 원래 같이 하던 겁니다. 원래 합쳐서 하던 건데 분리한 겁니다. 그리고 시카프는 뭔가 합쳐서 할 행사가 아니라, 오히려 자꾸 분리시켜나가야 합니다.”라고 했어요. 애니메이션 영화제는 영화제대로 가고, 만화축제는 만화축제대로 분리해야 하는 상황이에요. 예전에 앙굴렘에 갔었을 때 어느 언덕 위에서 기차를 보면 기차가 멈춰 있으면 군중들이 (기차에서 내려서 축제가 열리는 방향으로) 엄청나게 몰려와요. 떼거지로. 그게 장관이거든요.
그리고 코믹콘 같은 데 가보면 미국 전체 오타쿠가 다 모이는 거 같아요. 거기에 모이는 인원의 20~30%가 코스프레하고 나타나거든요. 이제 사람들이 참여하는 축제에 대해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예전에는 만화축제라고 하면 부모님들이 아이들 손 붙잡고 와서 보는 뭔가 소풍 같은 그런 분위기였다면요. 이제는 키덜트들이 많이 늘어나서, 맥도날드에서 어린이세트에 캐릭터 장난감 끼워서 판다고 하면 그걸 사기 위해 직장인들이 줄을 서요. 다시 말하면, 캐릭터 상품을 좋아하는 이런 키덜트 그룹이나 마니아 그룹이 많이 늘어났기 때문에 그들이 더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생겨서 그들과 작가들이 만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작가가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이 뭐냐면, 독자가 있어야 작가가 참여할 공간이 생기죠. 작가들끼리 모여서 작가들끼리 뭔가 하는 축제는 아닌 거 같아요. 독자와 만나는 공간도 있어야 하고, 작가들이 (평소에) 그림만 그리면서 살았으니까 서로 만나는 기회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것들은 섞어놓지 말고 전문화시키고 특성화시켜야 되지 않나 싶어요.
그래서 시카프도 애니메이션 영화제도 분리시키고 만화축제도 서울시에서 컨셉트를 확실히 잡아서 마니아들이나 전문가들이 모이는 축제로 할 건지, 아니면 서울 광장에서 애들이 가족들과 즐길 수 있는 가족중심의 축제로 꾸밀 것인지, 그런 확실한 정체성이 없이는 어렵지 않나 싶습니다. 부천이 운영하는 만화축제와 서울이 운영하는 시카프는 확실히 구분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종옥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1990년대는 잘 모르겠지만, 2000년대는 시카프의 저변을 넓히는 게 가장 중요한 거였어요. 아까 박재동 선생님 말씀하셨지만 당시 수출에서 가장 높은 실적을 올린 게 애니메이션이었다지만 사실 그게 창작이 아닌 다 OEM이었어요. 그러니까 만화나 애니메이션, 솔직히 ‘만화영화’죠, 다 같은 거라고 본 거예요. 그래서 당시 만화나 애니메이션에 대한 인식이 어땠냐면 한국 작품에 대한 관심이랄까 애착이 전혀 없었어요. 그러면서 한국 애니메이션을 본 기업들은 있고요. 하여간 그렇게 애니메이션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낮으니까 이 저변을 최대한 넓혀서 어떻게 하면 그 인식을 바꿀까, 창작자의 입장에서 어떻게 하면 만화나 애니메이션에 대한 인식을 변하게 할 수 있을까에 대한 문제제기가 있었던 거죠.
그러면서 2000년도 들어서면서 이게 산업으로 갔어요. 당시에 뭘 했냐면 출판사에서 만든 책을 코엑스의 우편서비스를 통해 공급해야하는 게 있었어요. 그 정도로 학생들이 행사에서만화책을 많이 샀어요.
애니메이션 같은 경우에는 어디서도 구할 수 없는 상품들을 거기서밖에 구할 수 없었어요. 그게 2000년도 초반이거든요. 그러다 보니 회사도 적자라고 우는 소리를 했지만 재미는 있었고, 거기에 나올 만했던 거죠. 그리고 사람들이 많이 모이다보니 작가님들도 즐거웠던 거예요. 내 만화를 보러 사람들이 저렇게 몰려오는구나, 그럼 내가 가줘야지 하면서요.
그러면서 2000년도 중반으로 오면서 이제는 서점에서 만화책을 팔기 시작하고 여기저기에서 소규모로 대규모로 축제가 생기기 시작하니까 이 체질을 바꿔야 하는데 처음부터 컨벤션으로 시작한 그 체질을 (시카프가) 못 바꾼 거예요. 그러면서 2006년, 2007년 장소를 학여울로 바꾸면서 시카프는 점점 힘들어져 갔고요.
2005년도의 가장 큰 이슈가 뭐였냐면 시카프와 캐릭터페어를 합치는 거였어요. 그때 문광부에서 이 인프라에서 축제를 살릴 수 있는 환경이 안 된다 싶으니까 정부가 지원하는 유사행사와 합쳐서 시너지 있게 가자였거든요. 그래서 캐릭터페어랑 시카프가 만나서 합치라고 했어요. 그때만 해도 아직 캐릭터회사라든가 애니메이션 스튜디오가 많았을 때니까 좀 더 우리에게 (기득권이) 있었죠. 하지만 끝내 합치질 못했죠. 그러다 2007년에 판단을 잘못해서 학여울로 옮긴 사이에 캐릭터페어는 코엑스에서 자리를 잡은 거죠. 그러면서 2008년, 2009년 가면서 시카프는 ‘우리가 산업적으로 흐름을 타기에는 실패를 했다’, ‘이미 시기를 놓쳤다’고 생각했죠. 그러면서 이 축제의 성격을 컨벤션 공간에서 어떻게 할까? 무엇을 바꿀까? 이걸 가장 많이 고민했던 것 같고, 그 연장선에서 남산으로 옮긴 것도 있거든요. 서울시에서 지원을 해줄 테니 남산 쪽으로 가면 안 되겠냐, 이런 것도 있었지만요.
그리고 운영자의 입장에서 보면 항상 문제가 되는 게 피로도라는 게 있어요. 축제 참여에 의한 피로도. 작가들의 입장에서도 행사가 많으면 그거 다 쫓아다니고 언제 작품 할 시간이 나겠어요. 업체들도 그 행사마다 다 쫓아다니면 장사 언제 해요. 근데 해외에도 생긴 거예요. 작가들이 앙굴렘만화축제에 가야 하고, 업체들도 외부로 나가야 한다면 그에 맞게 시카프의 성격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고민했어요. 지역의 특색에 맞게 변하는 지역축제의 모습을 지향하면서 남산으로 옮겼지요, 지역주민들을 만나면서 새롭게 만들 수 있는 축제의 비전을 좀 찾아보자 하면서요. 이런 식으로 시카프에서도 다시 실험적인 시도들을 하고 있는 거죠. 이제 올해로 (남산으로 옮긴 지) 3년 됐는데 아직까지는 들쑥날쑥하지만 새로운 동력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여기서 가장 큰 문제는 일회성이라는 거예요.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서 운영하는 축제와는 다르게 불안정한 기반으로 축제만을 위한 조직이라서 여기에 예산이라든가 이런 문제들 때문에 관의 입김이 굉장히 세요. 그러다보니 시카프는 늘 SPP와 같이 해왔어요. 이 산업마켓이라는 게 컨벤션 공간에서 남산으로 옮겨왔을 때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가 고민하고 있을 시기에 서울시에서는 ‘합쳐.’라고 얘기가 나온 거죠. 이제까지 같이 해왔다는 걸 모르는 거죠.
저는 한창완 선생님과 의견이 조금 다른 게, 시카프는 이미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같이 움직여왔기 때문에 모든 것을 분리해서 독립적으로 운영해야 한다고 하면 시카프는 이제까지 해왔던 것을 버리고 모든 것을 무에서 다시 시작해야 해요. 이제까지 시카프가 해온 역사와 전통이 있는데 그걸 살리려면 포맷이 다른 만화와 애니메이션이 남산이라는 지역적 공간에서 어떻게 잘 어우러지게 만들까라는 고민을 했어요. 그걸 분리시키자는 게 아니라요.
김종옥. 전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 사무국장, 상명대학교 외래교수
이재식
네, 역시 만화축제의 시작은 시카프군요. 박재동 선생님께서 시카프 전에 인사동에서 있었던 ‘만화는 살아있다’ 전시회를 상기시켜주셨습니다. 한창완 선생님과 김종옥 선생님께서 시카프 초기의 모델과 지나온 과정에 대해서 생생하게 되짚어주셨고요. 기록을 보면 이렇습니다. 시카프가 1995년에 시작해 20년을 해왔고, 중간에 두 해를 건너 뛰어 19번 행사를 치렀습니다. 만화축제라고 하던 것을 2001년부터 공식 명칭에 ‘애니메이션’이 추가됐습니다. 초대 행사에 관람객이 15만 명이 모였고, 그 다음 해엔 무려 40만 명이 몰렸다고 합니다. 모토쇼 말고는 이런 규모의 관객이 모인 행사가 없다더군요. 마치 주식시장에서 주가가 너무 오르면 거래를 정지하는 것처럼 입장객이 너무 많으니까 잠시 입장제한을 둬야했다고 합니다. 축제의 가장 강력한 콘텐츠는 언제나 작가였지 싶습니다. 작가 사인회가 있다고 하면 개장 전부터 100미터에 달하는 줄을 서서 기다리는 관객들을 지켜봤습니다. 이후 시카프는 말씀하신 것처럼 변화가 있었습니다.
올해는 비코프에서 유료화라는 주목할 만한 시도를 했습니다. 큰 도전이고 적지 않은 변화라고 봅니다. 20년 역사에 대한 보다 냉철한 평가를 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처음에는 정부의 개입과 정책적 지원으로 시작했습니다. 반대로 정책적인 실패가 있었다는 진단도 있습니다. 시카프와 비코프, 우리 양대 만화축제가 정책적인 지원과 뗄 수 없기 때문인데요, 여기에 대해 어떤 평가를 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우리 축제가 시카프의 쇠락을 정책적인 실패로 볼 수 있는 것인지 평가를 부탁드리고 앞으로 축제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에 대해서 부탁드립니다.
박재동
그 분리에 대한 말인데,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분리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 있잖아. 그와 비슷한 맥락에서 어른과 아이의 문제가 있어요. 원래는 부천도 아이들의 손을 잡고 오는 소풍 같은 축제가 콘셉트였어. 아이들이 많이 몰리면서 관객수가 엄청났거든. 특히나 대학생이나 젊은 층들이 많이 몰리면서 말이야. 그래서 나도 아이들의 손잡고 ‘하하호호’ 하는 축제에서 좀 성장해야 한다고 주장을 했고 이제 많이 성장했다고 봐. 우리도 이제 콘텐츠가 많이 깊어지고 그랬는데 그러다 보니 또 아이들이 즐길 수 있는 것과 소원해졌어. 그래서 앞으로 어린이 비코프가 있을 수도 있고, 아무튼 아이들이 뭔가 뛰어놀 수 있는 기회도 만들어야 하지 않나 싶은 거야. 예를 들어 앙굴렘만화축제에는 어린이 코너가 전혀 없어. 거기는 어른의 축제야. 현실적으로 보자면 어린이들이 갈 곳이 없는 거야.
박건웅
가족단위로 축제를 즐기러 왔는데, 엄마 아빠는 애들이 좋아할 줄 알고 데리고 왔는데 정작 애들이 좋아하는 게 없는 거죠. 어른들도 본인들이 좋아하는 건 아닌데 그냥 기왕 나왔으니까 보고 가자라는 식으로 둘러보고 가게 되는 거죠.
조희윤
시카프가 코엑스에서 남산으로 옮겨가는 과정을 봤을 때는, 마치 진지하게 봐야 하는 전시 옆에 왁왁 소리 지르는 트램폴린이 있는 느낌이었어요. 그럴 거면 아예 장소와 전시에 맞는, 관람객 타깃에 맞는 놀이공간을 만들자라는 생각이 있거든요. 이 실험에서 제가 가장 눈여겨본 건 이토준지 전시나 열혈강호 전시가 결코 아이들을 위한 전시는 아니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이제 관람객의 연령층 스펙트럼이 넓어졌어요. 특히 단편 애니메이션 같은 경우에 영화제에서 틀어주는 건 실험적인 게 많아요. 하지만 장편애니메이션은 상업적이기 때문에 다양한 연령층이 즐길 수 있다는 것이 있으니까 이것을 어떻게 하면 열린 공간에서, 적재적소에서 보여주고 엮어줄 수 있는가가 더 중요하다고 보는 거죠.
한창완
초창기에 시카프는 유료전시였어요. 그래서 전체 수익의 반이 입장수익이었거든요. 그래서 어떻게 보면 축제를 할 때마다 모험을 한 건데 전체 규모가 10억이었다면 국가지원은 5억밖에 되지 않았어요. 그렇다면 나머지 5억을 무턱대고 입장수익에 기댄 거죠. 그것도 기댈 수밖에 없었던 게 1회, 2회에 대박이 났으니까. 이 얘기를 하는 이유는 앞으로 비코프도 유료입장을 시작하면서 관객들로부터 오는 수익을 늘려가야 콘셉트 조정이나 기획에 대한 자율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비코프도 부천시와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서 주관하는 거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부천시의 말을 듣지 않을 수가 없거든요. 부천시민이 와서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만들라면 만들 수밖에 없거든요.
그래서 작가그룹이나 기획자나 큐레이터들이 축제에 대한 아이디어를 냈을 때 그 아이디어가 온전히 축제에서 설 공간이 아직 확립이 안 됐다는 거죠. 그게 자본의 독립이 되어 있지 않아서 그렇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이제 20년을 해오면서 이제는 자생력을 갖출 시기가, 그 임계점이 왔다고 생각해요. 축제가 자본의 독립을 통해서 작가의 공간과 마니아들의 공간과 키즈존 등을 만들어 한다고 생각해요. 노키즈존이 너무 많다보니까 축제만이라도 애들이 맘껏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자 이거예요. 이제는 자율적인 방향성을 지킬 때가 되지 않았나 싶어요.박건웅. 만화가, 2014 부천만화대상 대상 수상
박건웅
자본의 독립이 중요한 말 같아요. 유료화를 통해서 축제를 자유롭게 꾸밀 수 있다는 게 좋은 거 같은데 저도 운영위원회에서 있다 보면 시에서 간섭이 너무 많다보니까.
박재동
내가 모르게 간섭을 했었어?
이재식
이 부분은 정확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은데요, 시카프도 민간 전문위원회로 운영이 되고 있고, 비코프도 전문 운영위원회체제로 운영됩니다. 박재동 선생님은 시카프와 비코프, 양쪽에 다 계셨는데, 실제로 그런 외부의 간섭이 심했던지요?
김종옥
박재동 선생님은 기억이 없으실 거예요(일동 웃음).
박재동
실무자들은 있었을지도 모르겠네.
김종옥
왜냐면 박재동 선생님 앞에서 이번 축제 주제가 만화랑 맞니 안 맞니 할 수 있는 사람은 없거든요. 예를 들면 시카프가 10억의 예산을 시에서 받은 건 2003년인데요, 저는 2005년부터 참여했는데, 당시 실질적으로 시의 간섭은 거의 없었어요. 그 전에는 더욱 간섭이 없었을 것으로 예상되구요. 왜냐하면 그 당시에 작가그룹이나 애니메이터나 다들 (기가) 셌어요. 예를 들면 이현세, 박재동, 이희재 선생님 이런 분들이 “이번 주제는 이렇게 가야 한다.”고 한마디만 하시면 그 어떤 공무원도 “이번 주제가 왜 (이런 식이냐)”라고 반문할 수 없는 거예요.
아까 축제가 여러 축으로 움직인다고 하셨지만 시나 기관에서의 공적인 독립성은 이 공간 안에서 작가의 발언권이 얼마나 세느냐가 좌우를 해요. 지금이라도 시카프에서 많은 작가님들이 목소리를 내고 뭔가 움직이려는 모습이 보인다면 큰 그림으로 보면 (시에서) 크게 건들지는 않아요. 요즘은 관공서의 발언권이 굉장히 세졌거든요. 그렇기에 작가진과 회사들을 포함한 그룹이 축제운영의 실질적인 무게중심이 되는 추 역할인데 그 추가 움직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보거든요. 단순히 목소리만 내는 것이 아니라 관심을 갖는 거예요.
솔직히 요즘 시카프에 대해 얘기할 때 거의 이렇게 말하거든요. “누가 요즘 시카프에 관심이라도 갖나?” 그때 시에서는 이렇게 말할 정당성이 생기는 거예요. “오죽했으면 작가들조차도 재미없어하겠냐. 바꿔라.” 그렇기에 두 개의 축이 필요한데 이슈가 되는 작가와 경험이 많은 작가. 이 두 축만 있다면 무게 중심을 이쪽으로 가져올 수 있는 거죠. 그렇게 되면 (시에서도) 함부로 못하죠. 이제까지 10년을 해왔는데 어떤 시기에 간섭이 들어오는가는 이제 자명하거든요. 주변의 관심이 떨어지면 간섭이 들어와요.
그럴 때 저희가 (원로 선생님들께) 부탁드릴 수 있는 건 시에 가서 한마디만 해주십사 하는 거죠. “이 행사가 어떤 행사인데 너희는 감 놔라 배 놔라 하지 마라. 돈 지원해 주는 건 당연한 거다.” 이렇게 얘기가 들어가면 분위기가 바뀌어요. 자본의 독립도 중요하지만.
한창완
자본 독립의 성격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자면 축제가 처음 시작할 때 관의 지원금으로 시작을 합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시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죠. 그렇기에 큐레이터들의 자본의 독립을 위한 아이디어가 필요하다는 거죠. 예를 들면 어떻게 하면 매년 큰 기업들이 안정적으로 스폰서로 참여할 수 있도록 만들 수 있는가, 입장수익을 극대화 시키면서 스폰 수익을 안정적으로 자리 잡게 할 것인가가 중요한 거죠. 돈이 있어야 축제를 꾸려나갈 수 있으니까.
사실 코믹콘도 안정적인 행사가 된 게 다름 아닌 할리우드 자본이 들어왔기 때문인데 할리우드 자본이 안정적으로 들어오기 때문에 행사가 커진 거거든요. 지금 코믹콘에서 부스를 잡으려면 5년을 기다려야 한다고 해요. 유니버셜 스튜디오, 디즈니, 워너브라더스 같은 데에서 안정적으로 백업을 해주고 있거든요. 그 말은 그 행사에서 기업들에게 안정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무언가를 해줬다는 거거든요. 한국에서도 모바일게임이나 다른 업체에서도 뭔가 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보는 게 요즘 프라임타임에 나오는 광고의 절반 이상이 모바일게임 광고예요. 그래서 모바일게임, 모바일 콘텐츠를 중심으로 해서 그들에게 안정적인 공간을 제공함으로써 그들을 축제에 잘 버무릴 수 있다면 축제의 자본적인 독립이라는 게 훨씬 더 쉬워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인 거죠. 공적자금이 언제까지 들어올 거라는 장담이 없으니까.
김종옥
사실 공적자금이 투입이 된다라는 것이 충분히 그럴 만한 정당성이 있다고 봐요. 시민들의 문화적 향유를 위해 세금이 투입될 만한 공간이 된다라고 생각을 한다는 거죠. 그런 차원에서 공적자금에 대한 얘기를 하고 싶구요. 또 하나는 산업적인 문제에 있어서 잠시 ‘피로도’에 대한 얘기를 했는데 실무자의 입장에서 얘기를 하자면 기업들에서도 돈을 벌려면 글로벌로 나가야 한다고 하잖아요. 기업의 입장에서도 시카프보다는 몇 배의 돈을 지불해서라도 코믹콘이나 앙굴렘에 나가는 게 더 이득인거예요.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나와 달라고 하는 것도 한두 번이잖아요. 그렇다면 이 축제가 문화향유에 대한 장으로서 세금을 받아내는 행위가 얼마나 당위성이 있는가에 대해 고민을 하게 돼요. 기업들이 많이 참여를 해주면 좋지만 그게 만화나 애니메이션에서 시너지를 내기 때문에 참여를 한다고 하기 보다는 여기에 사람들이 많이 오고, 문화 향유를 위해 사람들이 몰려드니까 기업들이 참여를 하는 거예요. LG도 참여하고 삼성도 참여하고. 이런 공간을 만드는 쪽이 우리에게는 더 필요해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박건웅
저는 시카프를 보면서 ‘아, 이게 몇 년 더 지나면 코믹콘처럼 장르가 융화되면서 더 큰 행사로 발전할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을 했는데 시간이 가면 갈수록 그 시너지 효과가 더 안생기고 오히려 장르가 충돌되는 지점이 보이더라구요. 그런 맥락에서 만화와 애니메이션의 분리를 말씀 드렸던 거고요. 이제는 웹툰 장르가 거의 만화계의 주류를 형성하다시피 가고 있고 지망생들도 자기는 만화가가 아니라 웹툰작가할 거라고 말할 정도로, 지난 3년 간 만화계에서 웹툰 시장이 급성장하는 바람에 오히려 그 주류 문화를 선두에 세워서 축제에서는 웹툰 장르를 더 주요하게 다루는 것이 어떤가 생각도 하구요.
한창완
20년 전에 만화축제라는 게 어떤 국가의 정책적으로 만들어지기는 했지만 20년 동안 해오면서 만화에 대한 패러다임도 많이 바꿔놨고요. 또 아이가 만화를 한다고 했을 때 부모가 뜯어말리는 문화도 없어졌고, 이번에 대치동에도 만화학원이 생겼다고 하고요. 만화가라는 직업적인 것에도 희망하고 공감하는 것이 생겼고, 만화와 애니메이션과 게임이 어떻게 다른가도 사람들에게 인식을 시켰고, 그런 정도의 역할은 분명히 있었죠. 그럼 앞으로의 축제는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을 해야겠죠.
브랜드 웹툰의 아이디어가 좋은 것 같아요. 예를 들어 드라마에서 화장품이 PPL로 들어가려면 적어도 5억에서 10억 정도는 줘야하는데 브랜드 웹툰은 적어도 8천에서 1억 정도를 주면 충분히 효과를 볼 수가 있거든요. 기업들에서도 브랜드 웹툰을 많이 하고요. 그런 식의 (기업에서 돈을 내고 입점하는 형식의) 시스템이 축제에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보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