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초기화
글자확대
글자축소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어디까지 갈 수 있나 : 웹툰 <고기인간>의 작가 모래인간 인터뷰

무더위가 한창이던 2016년 부천 국제만화축제 현장에서 스토리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모래인간 작가와의 진행했다. <좀비를 위한 나라는 없다>로 데뷔한 모래인간 작가는 SF장르에서 꾸준히 활동하고 있다.

2016-09-26 웹투니스타

무더위가 한창이던 2016년 부천 국제만화축제 현장에서 스토리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모래인간 작가와의 공개 인터뷰를 진행했다. <좀비를 위한 나라는 없다>로 데뷔한 모래인간 작가는 SF장르에서 꾸준히 활동하고 있다. 한국의 휴고상으로 불리는 SF어워드에 노미네이트된 <고기인간>과 딸을 구하기 위해 다른 차원의 생명체를 쫓는 한 아버지의 이야기를 다룬 <나는 너를 보았다>에 대해 스토리 작가인 모래인간 작가와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Q. 필명이 독특하다. ‘모래인간’이라는 필명을 선택한 이유가 있는지?
A. 특별한 이유는 없다. 중학생 때 게임 아이디를 ‘모래소년’으로 지었는데, 지금은 소년이 아니다 보니까(웃음)

Q. <좀비를 위한 나라는 없다>의 경우 다음 웹툰리그에서 1위를 하기도 했던 작품인데, 각종 플랫폼에서 진행되는 웹툰 공모전들과 다르긴 하지만, 작가님이 생각하는 공모전 당선의 팁이 있나?
A. 내가 데뷔할 당시엔 “본인의 색깔을 내라”는 말이 먹혔는데, 지금은 플랫폼 숫자에 비해 너무나 많은 실력 있는 작가들이 준비를 하고 있다. 때문에 먼저 독자들의 요구를 충족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드는 것과 자기 색깔을 내는 것 사이에서 고민해야 할 것 같다.

Q. 데뷔작을 제외한 모든 작품에 스토리 작가로만 참여하고 있다. 혹시 다시 그림을 그릴 생각은 없는지?
A. 생각은 하고 있지만, 상업작가로서 내 그림이 경쟁력이 있는가에 대한 확신이 없다. 언젠가는 도전해보고 싶지만, 또 내 욕심만으로 연재를 시켜주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웃음)

Q. 특정 한명과 꾸준히 작업하신 게 아니라, 나머지 두 작품 모두 그림작가가 다르다. 그림작가를 섭외하는 기준이 있다면? 또, 꼭 같이 해 보고 싶은 작가가 있나?
A. 한 분은 베스트 도전에서 연재하던 분이고, 또 다른 한 분은 지인의 소개로 알게 된 분이다. 직접 연락을 드려서 섭외하고 있다. 그림 스타일 등이 내 스토리와 맞는 분들께 연락을 드리는 편이다. 같이 해 보고 싶은 작가는 <노루>, <키스우드>등을 그린 안성호 작가님이다. 그림의 감성이 굉장히 좋기 때문이다.

<나는 너를 보았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자. 네이버에서 연재되었던 <나는 너를 보았다>는 현실파트와 거대 문어가 나타나는 가상의 공간, 무저갱을 배경으로 추격전과 재난물이 나란히 배치된 작품이다. 사이비 종교집단이 납치해간 딸을 찾기 위한 소설가 최경호의 사투와, 납치되어 간 사람들 간에 벌어지는 갈등을 그리고 있다.


Q. ‘리워야단’이라는 성경에 등장하는 괴물에서 이세계의 괴물 모티브를 얻은 것인가?
A. 그렇진 않다. 크툴루 신화(하워드 러브크래프트의 저작물을 기반으로 후대의 작가들이 만들어낸 가상의 세계관)에서 모티브를 얻었고, 익숙한 성경 구절을 인용했는데 틀린 구절이라고 하더라(웃음)

Q.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어디까지 갈 수 있나’ 라는 주제가 지속적으로 제시가 된다. 이 주제에 천착하는 이유가 있다면?
A. 특별한 이유가 있다기 보다는 하나에 집착하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그리기가 편하기 때문이다. 비합리적인 행동이나 비이성적인 행동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기도 하고, 또 그 사람의 갈등을 통해서 일어나는 다른 사건을 보여주기도 쉽고.


Q. 이런 다층적 플롯과 엇갈리는 이야기를 그리게 된 이유는?
A. 군상극과 재난물을 한번 해 보고 싶었고, 처음 아이디어를 얻은 곳이 지하철이어서 지하철이 배경이 되었다. 그리고 ‘루프물’에 대한 관심도 있어서 조합을 하다 보니 나온 작품이다.

다음은 <고기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자. 레진코믹스에서 연재된 <고기인간>은 모래인간 작가의 가장 최근 작품이다. 화산폭발 이후 찾아온 빙하기 때문에 인류는 절멸위기에 처하고, 과학자들은 후세에 인간을 부활시킬 완벽한 한쌍의 남녀를 유전자 조작을 통해 만든다. 돔에 사는 남은 인류는 그들을 ‘천사’라고 부른다. 초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그들과 손가락이 기형으로 태어나 평생 따돌림 받으며 살았던 ‘하무사’라는 주인공의 갈등을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Q. 인류 전체의 운명을 짊어진 두 아이를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오히려 분노와 싸움이 주가 될 것 같은데.
A. 현실이었다면 봉기가 일어났겠지만, 서서히 다가오는 종말을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운명을 그리고 싶었다. <까페 알파>라는 작품에서 등장한 담담하게 종말을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좋았다. 종말이라고 해서 매드맥스처럼 광기에 사로잡힌 모습 보다는, 오히려 이렇게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Q. 주인공인 시가우와 미노아는 서로를 사랑하도록 유전적으로 설계되어 있다. 앞의 두 작품과 공통적으로 ‘사랑’이라는 주제가 나타나는데, 유전적으로 설계된 사실을 알고도 사랑할 수 있을까?
A. 공포와 같은 개념이지 않을까. 공포영화를 보면서 ‘내가 이것에 대해 공포를 느낀다’는 자각이 있는데도 공포를 느끼는 것처럼. 실제로 연인관계에서도 마찬가지 아닐까. ‘사랑한다는 사실에 대한 자각’이 영향을 끼치진 못한다고 생각한다.


Q. <고기인간>은 1부와 2부로 나뉜다. 시가우가 미노아가 동면캡슐에 들어가는 것이 충실한 재난물인 1부, 스포일러를 막기 위해 내용은 말하지 않겠지만 2부는 정말 충격적이었다. 2부는 어떻게 만들었나?
A. 사실 처음 2부를 만든 다음 1부를 덧붙였다. 처음에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2부였다. 종말 후의 이야기를 다루는 2부를 먼저 만들고 보니 1부의 종말을 받아들이는 인간에 대한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나오게 된 것 같다.

Q. 재난물에선 극한상황을 통해 독자에게 윤리적 질문을 던진다. <고기인간>에서 궁극적으로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가 있나?
A. 사실 이야기를 만들 때 개인적으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스토리의 구조 같은 것들이지 메시지가 아니다.

Q. 세 작품 모두 공통점이라면 재난물이라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재난물을 계속 다루는 이유가 있다면? 그리고 차기작에 대한 이야기도 듣고 싶다.
A. 사실 스토리를 만들면서는 스릴러라고 생각을 했지, 재난물이라고 생각을 하진 않았다. 한 장르로 규정을 할 수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차기작의 경우는 바다에 대한 이야기를 그려보고 싶다. 이번엔 재난물이 맞지만, 아직 준비단계기 때문에 말씀드릴 수 있는 게 많지는 않다. 바다는 다양한 존재들이 많기 때문에 흥미로운 주제라고 생각한다.

웹투니스타 : 모래인간 작가의 <좀비를 위한 나라는 없다>, <나는 너를 보았다>와 <고기인간>은 인간 3부작으로 봐도 될 것 같다. 첫 작품에서 ‘인간’이라는 종에 대한 경계를 묻고, <나는 너를 보았다>에서는 개인이 정의하는 인간, 그러니까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마지막 <고기인간>에선 ‘인간과 동일한 기능을 하는 다른 존재가 있다면’이라는 주제를 던져 인간이라는 종의 한계점에 대해서 질문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선 불모지에 가까운 SF 장르에서 꾸준히 활동하는 모래인간 작가의 건투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