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웹툰 하면 일상을 소재로 한 개그물을 우선적으로 떠올리던 시기가 있었다. 바야흐로 지금은 장르도 다양하고 그림체도 세밀한 작품이 쏟아지는 시대다. 그 중 한 자리를 ‘갓 오브 하이스쿨(이하 갓오하)’이 차지하고 있다. 네이버에서 연재되고 있는 격투 액션물이다. 6년째 연재되고 있는 데 그 인기가 좀처럼 식을 줄 모른다. 무엇보다 액션 장면이 사이다처럼 시원하다는 평가가 많다.
‘갓오하’의 박용제(35) 작가는 ‘노블레스’의 손제호/이광수 작가, ‘신의 탑’ SIU 작가 등과 함께 웹툰 생태계를 풍성하게 만들고 있는 3세대 작가로 꼽힌다. 그는 2008년 데뷔작 ‘쎈놈’에 이어 ‘갓오하’까지 격투 액션의 한 우물을 파며 액션 장인을 꿈꾸고 있다. 갓오하’가 주목받는 또 다른 이유는 원소스멀티유즈(OSMU)의 대표사례 중 하나이기 때문. 지난해 5월 모바일 게임으로도 선보여 사랑받고 있으며 피규어나 열쇠고리 등 캐릭터 상품도 큰 인기다. 여세를 몰아 지난해 12월 대한민국 콘텐츠 대상에서 만화 부문 대통령상을 받았다. 내용상 실사 영화로 만들어지긴 쉽지 않겠지만, 언젠가 TV애니메이션으로도 볼 수 있지 않을까.
최근 경기 부천에 있는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서 박용제 작가를 만났다. 주간 연재 전쟁을 벌이는 차림 그대로였다. 일주일 대부분의 시간을 만화진흥원에 있는 화실에서 보내지만, 원고를 마무리하면 하루 정도 서울 동대문에 있는 원룸에 다녀오며 머리를 식힌다고 한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과 꾸준히 운동하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푼다고 소개한 그는 중압감이 많으면 내용이 점점 무거워진다며 ‘갓오하’는 어깨에 힘 빼고 그리고 있다며 웃었다.
Q. 격투 액션물에 집중하고 있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A. 솔직히 잘하는 게 이거밖에 없어서 아닐까 싶다. 하하하. 데뷔작 ‘쎈놈’을 끝내고 후속 작품으로 다른 장르를 해보고 싶어 청소년 연애 성장물을 편집회의에 올렸지만 통과되지 않았다. 수많은 작가들이 본인이 제일 잘할 수 있는 무기를 갖고 필드에서 싸우고 있는데 어설프게 준비된 무기로는 싸울 수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쎈놈’을 끝냈을 때만 해도 다양한 장르를 경험해 봐야 작가적 역량과 인지도를 키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다르다. 액션 장르 하나만 파더라도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이다. ‘고수’의 문정후 작가님은 무협 액션 장르로 20년 가까이 해오고 있는 분인데 그 내공을 보면 내가 액션 장르 하나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섣부르게 생각했다고 본다. 물론 ‘갓오하’가 끝나면 다른 장르에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이 또 생길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공부할 게 많은 영역이라 계속할 수 있을 것 같다.
Q. ‘갓오하’에는 어떤 마음으로 임했는지.
A. 내가 찔러 넣는 데로 편집회의에 통과되는 그런 작가도 아니고, ‘쎈놈’을 끝내고 일 년 정도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공부하는 시간이 있었다. 차츰 이름이 잊혀 지더라. 치열한 경쟁 속에서 한 줌의 먼지 같은 존재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공부도 좋지만 우선 인지도를 끌어올리고 싶다는 욕망이 생겼다. 완전히 대중적인 것을 그려 소위 히트 한 번 쳐보자는 생각뿐이었다. 그런 생각으로 이를 꽉 깨물고 작업에 들어갔다.
Q. ‘갓오하’는 제목만 보면 학원 액션물로 느껴진다. 도입부도 그런 분위기지만 지금은 ‘신들의 전쟁’ 수준으로 스케일이 확대됐다. 당초 어느 선까지 구상하고 시작했는지 궁금하다.
A. 처음부터 이 정도 뻥을 칠 각오는 하고 있었다. 애초부터 캐치프레이즈로 내건 게 막장 액션이다. 막장이라는 게 굉장히 허무맹랑하긴 하지만 보게 되는 힘이 있지 않나. 끝까지 가보려고 마음먹었으니 한 번 해보자 싶었다. 지금은 에스컬레이터의 끝에 와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 배가 산으로 갔다는 말을 종종 듣는데 애초에 이정표대로 가고 있는 것이다. 끝없는 세계관의 확장을 계속 재미있다고 하는 분들도 있고, 너무 가버렸다고 하는 분들도 있다. 옳은 선택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Q. 일본 소년 만화의 영향이 많은 것 같다. 캐릭터 디자인에서도 느껴진다. 굳이 감추지 않고 공공연하게 작품 속에서 언급하는데.
A.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경우 본인이 영향받은 것을 숨기지 않고 대놓고 전면에 내세우는 데 그게 예술이 되지 않나. ‘킬 빌’만 보더라도 수많은 클리셰가 있다. ‘쎈놈’을 마무리하고 가장 고민했던 부분이 내가 가진 장단점은 무엇인가였다. 윤태호 작가님처럼 듣도 보도 못한 온전한 창작물을 선보일 능력이 내겐 없었다. 그 대신 내가 읽었던 수백 권의 만화들을 한곳에 짬뽕시키는 능력은 있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어설프게 숨기지 말고 툭 까놓고 해보자 싶었다. 그렇다고 타란티노 감독처럼 예술까지는 바라지 않았다. 만화는 어차피 재미를 추구하는 것이니까.
Q. 가장 큰 영향을 받은 작품은 무엇인지
A. 토리야마 아키라 작가님의 ‘드래곤볼’이다. 소년 만화, 액션 만화의 바이블 아닌가. 리스펙트의 의미를 담아 캐릭터 디자인도 일부러 차용했다. ‘드래곤볼’의 영향은 세계관에서부터 일일이 따지기도 힘들 정도인데 ‘서유기’에 대한 내 나름의 해석을 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나였다면 제천대성을 이렇게 설정했을 것 같다는 아쉬움, 나만의 창작 의욕이라 할까. 그 밖에 지금도 공부하듯이 보는 작품들이 많다. 국내 작품 중에는 문정후 작가님의 ‘용비불패’, 임재원 작가님의 ‘짱’이 있다. 일본 작품 중에는 ‘원피스’, ‘나루토’. ‘블리치’ 등이다. 내겐 교과서 같은 작품이다. 작업을 하다가 중간에 막히면 이럴 때 어떻게 풀어가나, 문정후 작가님은 어떻게 연출하고, 어떻게 임팩트를 주나 그런 것들을 공부한다.
Q. ‘갓오하’에는 수많은 캐릭터가 나온다. 가장 아끼는 캐릭터와 가장 아쉬운 캐릭터.
A. 아끼는 캐릭터는 매번 바뀐다. 진모리는 당연히 애착을 갖고 있고, 최근에는 한대위를 너무 고생시켜서 안쓰럽다. 유미라도 마찬가지다. 아쉬웠던 캐릭터는 시즌2의 제갈 택이다. 미워할 요소들만 잔뜩 집어넣고 결국에는 죽음에 이르게 했다. 미안하다는 감정이 든다.
Q. 태권도 등 우리 무예나 단군신화의 웅녀를 빗댄 캐릭터가 등장하는 등 우리 느낌도 담으려 애쓴 것 같다.
A. 주호민 작가님의 ‘신과 함께’를 보며 우리 고전이나 설화가 어떻게 현대식으로 리뉴얼되느냐에 따라 강렬한 엔터테인먼트가 될 수 있구나,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 들었다. 항상 고민하는 부분 중 하나다. ‘갓오하’는 싸우고 성장하고 점점 강해지는 소년 만화 장르인 데 엄연한 일본 만화 포맷이다. 그런데 ‘갓호하’를 담고 있는 그릇인 웹툰은 한국에서 자생적으로 탄생한 것이다. 한국색이 짙은 만화 풀에 일본 포맷을 차용하고 있다는 묘한 죄책감이 있었다. 우리 것을 더 발전시켜야 한다는 책임감도 있었다. 그래서 포맷을 차용하더라도 우리 것을 녹이면 또 다른 재미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싶었다. 태권도는 전 세계적으로 유명하지 않나. 560도 돌려차기 장면을 보면 몸이 찌릿찌릿할 정도다. 그런데 정작 국내에서는 저평가되어 있다. 그렇다면 주인공의 무예를 태권도로 해보자, 그랬다. 용어도 우리 곁에 있는 것들을 많이 쓰려고 했다. 주인공 이름 또한 한국적인 느낌이 묻어나게 하려고 작명한 결과다.
Q. 온갖 무술이 등장한다. 무협 소설 단골 소재까지 나온다. 작품을 위해 공부를 한 것인지.
A. 공부를 했다기보다 좋아하는 것을 담았다. 김용의 소설 ‘영웅문’을 좋아해서 거기서 클리셰처럼 가져온 것도 있고, 중고 시절 좋아하던 격투 게임을 통해 알음알음 관심을 갖고 있던 무술들을 한 곳에 집약했다. 무예를 사랑하는 분들에게서 허술하다는 항의도 많았다. 특히 ITF 태권도에 대한 불만 메일이 많았다. 애들에게 끼치는 영향이 적지 않는데 얼마나 자랑스러운 ITF 태권도를 빨갱이 태권도로 만들고 있냐는 비판이 많았다.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는 한편, ITF 태권도를 어디서 배울 수 있냐는 독자 문의도 제법 많다는 이야기를 전하며 저변을 넓히는 긍정적인 효과도 있다고 설득하곤 했다.
Q. 게임을 연상케 하는 설정이 적지 않다. 작품 구상 당시 게임화도 염두에 뒀나.
A. ‘갓오하’가 게임으로도 만들어져 인기를 끌게 될 줄 정말 몰랐다. 처음엔 그저 만들어지면 좋겠다는 어렴풋한 생각 정도였다. 5~6년 전까지만 해도 모바일 게임 시장이 간단한 내용 위주였지 지금처럼 다양하지는 않았다. 아까도 언급했지만 ‘갓오하’는 제가 어렸을 때부터 좋아하던 콘텐츠를 집약시켜 놓은 것이다. 격투 게임 중에 ‘킹 오브 파이터스’를 무척 좋아했다. 3대3 대전, 팀 에디터 시스템, 체력 게이지 표시 등은 거기서 따온 것이다.
Q. 5년 이상 작품을 연재하며 가장 힘든 부분은 무엇인지.
A. 시나리오다. 지금도 한계를 느낀다. 시나리오가 탄탄하지 않고 캐릭터 밸런스도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많이 받는다. 시나리오와 콘티만 끝내도 한 주 작업의 5분의 3을 끝낸 느낌이다. 남에게 받아서 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그러면 내가 그리고 싶은 것을 마음껏 그릴 수 없을 것 같다. 탄탄함이 부족하기는 하지만 대중적인 인기를 받을 수 있는 수준까지는 그럭저럭 해내는 것 같다. 언젠가는 대중적인 인기와 내용의 탄탄함까지 갖춘 작품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가창력은 좋은 데 작사 작곡 능력이 떨어지더라도 10년, 20년 노력하다 보면 좋은 아티스트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Q. 중간에 전진석 작가가 스토리 감수를 하기도 했는데.
A. 막다른 벽에 다달았다는 느낌이 들었던 적이 있다. 그때 전진석 작가님이 ‘닥터 프로스트’ 등 몇몇 작품에 자문한다는 것을 알고는 이종범 작가님을 통해 소개받았다. 제3자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많은 조언을 해주셔서 작품의 여러 부분을 보완할 수 있었다. 오래 가다 보니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 와서 다시 홀로서기 하고 있다. 사실 지금도 완벽하게 혼자 하는 것은 아니다. ‘나이트 런’의 김성민 작가님께 여러 조언을 듣고 있다.
Q. 가장 아끼는 장면은 무엇인지. 또 가장 심혈을 기울였던 장면은 무엇인지.
A. 진모리가 제천대성이라는 게 밝혀지는 108~109화에 가장 많은 공력을 기울였다. 유료모델인 미리보기 작업을 해 2주 안팎의 비축된 원고가 있었는데, 미리보기를 포기하고 주간 연재분의 완성도를 높이려 했다. 독자들 입장에서 한 주 한 주 원고가 따박따박 올라온 셈이지만 나에겐 1회당 2~3주가량의 공을 들인 결과물이다. 진모리와 한대위가 처음 격돌하는 38화도 심혈을 기울인 장면이다. 38화는 치열함이 느껴져야 한다는 판단에 웹툰에서는 흔히 사용하지 않는 붓펜 기법을 사용했다. 강렬한 액션 장면을 연출하는 기법 중 하나다. 한 주만으로는 완성이 불가능해 사과문을 올리고 휴재까지 해야 했다. 붓펜 기법을 자주 사용하고 싶은데 마감을 지키지 않았을 때 독자들의 분노가 상상 이상이라 쉽게 도전하지는 못하고 있다. 하하하.
Q. 액션 장면을 연출할 때 특별히 신경 쓰는 부분은.
A. ‘쎈놈’과 ‘갓오하’는 차이가 있다. ‘쎈놈’ 때는 대중적인 연출 방식은 아닌데, 캐릭터가 얼마나 아프게 맞는지에 중점을 뒀다. 그런 감정이 전달되다 보니 독자들이 정말 아픈 것 같다, 고통스러울 것 같다는 반응이 있었다. ‘갓오하’는 멋있게, 통쾌하게, 사이다처럼 연출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런데 요즘 문정후 작가님의 ‘고수’를 보니 정말 아름답더라. 액션 연출에 이런 영역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Q. ‘갓오하’를 통해 무엇을 보여주고 싶었나.
A. 거침없이 질주하는 청룡열차를 탄 느낌을 주고 싶었다. 어느 지점에선 잘 먹힌 부분도 있고, 실패한 부분도 있다.
Q. 작가들은 마지막 장면에 대한 이미지가 떠올라 작품을 구상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는데, 이야기가 어디까지 진행된 것인지 궁금하다.
A. 전체 이야기 중 하이라이트이자, 클라이막스가 진행되고 있다. 에스컬레이션 구조로 따지면 최고로 가장 큰 스케일의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기승전결로 치면 ‘전’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이 싸움이 끝나면 아마 1~2년 정도 이후에 이야기가 마무리 되지 않을까 싶다. 이야기가 5분의 3, 5분의 4까지는 왔다.
Q. ‘갓오하’에만 5년 5개월 넘게 매달리고 있다. 다른 이야기를 그려보고 싶지는 않은지.
A. 주변 작가들을 보면 두 가지 부류로 나뉘는 것 같다. 하일권 작가님의 경우 하나를 그리고 있으면 다음 작품을 그리고 싶어 몸이 움찔움찔 근질근질한다더라. 강풀 작가님은 해야 할 이야기를 쌓아놓고 하나씩 풀어나간다고 한다. 모두들 전형적인 이야기꾼들이다. 나의 경우 ‘갓오하’를 하면서 다른 것은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있다. 비행기를 일단 공중에 잘 띄웠는데, 이륙만큼 어려운 게 착륙이라는 생각밖에 없다. 너무 높이 올라가 어떻게 하면 안전하게 땅에 착지시킬지가 유일한 관심사다. ‘쎈놈’할 때도 그랬는데, 지금도 차기작을 생각할 여유가 없다.
Q. 언제부터 만화가를 꿈꿨는지.
A. 멀리 거슬러 올라가자면 초등학교 2학년 때쯤 ‘드래곤볼’을 접하고서다. 어렸을 때 보통 막연하게 과학자가 되고 싶어 하지 않나. 그거랑 비슷하게 만화가에 대한 생각을 두루뭉술하게 했던 것 같다. 친구들에게 인정받고 싶어서 연습장에 낙서하듯 만화를 그리곤 했는데, 고3을 앞두고 진로 고민할 때 처음으로 만화로 먹고살고 싶다는, 앞으로 인생에서 만화를 그리며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전엔 무서워서 꺼내지 못했던 이야기를 아버지께 말씀드렸고, 굴곡이 있었지만 결국 허락을 받았다. 그때 처음 미술학원에 다녔다. 지금 생각하면 대구에서 선생님이 내려올 정도로 환경이 열악한 곳이었다. 나중에 서울에서 미술학원에 다닌 적이 있는 데 100~200명의 학생들이 매주 시험 치며 경쟁하고, 밀리면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봤다. 그게 좋다는 것은 아닌데 정말 치열하다는 것을 느꼈다.
Q. 데뷔 과정이 궁금하다.
A. 대학 1~2학년 때는 여한이 없을 정도로 신나게 놀다가 산업기능 요원으로 군 복무를 대체하게 됐다. 당시 유행하던 아바타 캐릭터를 만들던 IT 회사였는데 고3 때에 이어 두 번째로 정신을 차린 시절이었다. 회사 생활을 하며 자기 실력이 없으면 비참해진다는 현실을 절실하게 느꼈다. 사회가, 특히 그림 분야는 오로지 실력으로 승부 보는 곳이라는 것을 깨닫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그림 공부하며 수련하는 시간을 길게 가졌다. 그림 공부를 7~8년 하다가 작품을 해보려고 시나리오 공부를 시작하니 이 또한 족히 7~8년은 해야 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한두 달 한다고 좋은 시나리오가 나오는 게 아니고 생각했다. 그래서 폼 잡지 말고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생각해보니 학원 액션물이었다. 그렇게 꾸준히 ‘쎈놈’을 네이버 도전 웹툰에 올리다가 정식으로 연재하게 됐다. 그게 2008년이다.
Q. 이따금 웹툰의 선정성, 폭력성이 논란이 되기도 한다. 액션물을 그리다 보니 남의 일 같지 않을 텐데.
A. 안타까운 일이다. 국내 들어와 있는 일본 만화와 비교하면 대부분 낮은 수위인데도 불구하고 논란이 있는 것을 보면 우리 사회가 보수적이라는 생각도 든다. 나만 해도 데뷔작인 ‘쎈놈’이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심의 대상 목록에 오르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하위문화였던 웹툰이 메인 문화로 올라가기 위한 당연한 과정이라는 생각도 든다. 성장통이나 마찬가지다. 웹툰계 내부에서도 자연스럽게 어떤 지점이 생길 것으로 본다. 나만 해도 예전엔 자극적이고 재미있으면 되는 것 아니냐고 생각했는데, 최근에는 재미와 자극은 필수이기는 하지만 어디까지 표현해도 되는 것인지 고민이 많다. 물론 작가들마다 생각이 다르다. 자기 검열의 시작이다, 작품은 자유롭게 질러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다. 나는 메인 문화가 되려면 지킬 것은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Q. 셀레브리티가 된 작가도 많다. 1980년대 만화 르네상스를 재현하는 것 같은데.
A. 기분 좋고 행복한 일이다. 예전에는 만화가 하면 쟁이 정도로 여겼는데 요즘은 예술가로 인정하는 분위기다. 사인회를 하면 아침부터 줄 서서 기다리는 분들도 많다. 자녀를 둔 부모님들이 웹툰 작가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문의하기도 한다. 만화가의 사회적 위치가 올라갔다는 것을 실감한다. 기분 좋고, 자랑스럽고 긍지를 갖게 된다. 한편으로는 강한 책임감도 느낀다. 이러한 분위기가 그냥 만들어진 게 아니기 때문이다. 거의 고사했던 시장에서 1세대, 2세대, 3세대로 천천히 이어 왔는데 후배들에게도 그대로 물려주고 싶다. 표현 수위에 대한 논란은 성장통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시장이야 시장 논리에 따라 들쑥날쑥하겠지만 아티스트로서의 이미지, 사회적 위치를 유지하는 것은 오로지 만화가들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Q. 만화가로서 목표는 무엇인지.
A. 장인이 되고 싶다. 현재는 내공이 부족해 주간 연재 마감도 버겁다. 그림을 날릴 때도 있고 시나리오에도 빈틈이 있다. 현재 엔터테이너로서 만화를 그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언젠가는 장인으로 마스터피스를 그려내는 게 목표다. 믿고 보는 작가, 작품을 소장하고 보는 작가의 경지에 오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