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네이버 웹툰 <덴마>의 업데이트를 사용자에게 알려주는 덴경대 어플리케이션 소개 이미지
덴경대 집합! 이 한 마디에 매주 세 번 댓글란에 갑론을박이 벌어진다. 기발한 시나리오들이 쏟아지지만 한참 떠들어봐야 소용없다. 모든 건 예상을 뛰어넘는 양형의 뜻대로 흘러가니까. 그럴 때마다 덴경대들은 말한다. 뭇시엘, 함부로 예측한 내가 나빠. 2010년 1월 연재를 시작한 <덴마>는 네이버 웹툰 코너의 간판 웹툰 중 하나다. 만화가 양영순을 아는 사람은 이미 많았지만 덴마가 이렇게 오래, 성실하게 연재되리라 예상한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았을 것이다. 데뷔작 <누들누드>를 시작으로 <아색기가>, <천일야화> 등 도발적인 상상력과 과감한 표현으로 만화계에 파란을 일으키며 등장한 양영순 작가지만 잦은 휴재와 마무리가 아쉬운 결말에 대한 오명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그렇게 독자들의 피로가 쌓일 때 즈음 덴마가 찾아왔고, 양영순의 세계는 이제 다음 단계로 접어든 듯하다. 재기발랄한 이야기꾼의 경쾌한 걸음도 좋았지만 이제 눈에 들어오는 건 신중하게 눌러 찍는 한걸음 한걸음에 담긴 무게다. 신뢰가 시간을 필요로 하는 책임과 무게의 다른 이름이라면 작가 양영순은 이제 그만큼 시간을 본인의 어깨 위에 쌓은 것처럼 보인다. 끊임없이 스스로를 의심하고 주변으로부터 배우려는 그의 태도를 보며 언젠가 <덴마>가 끝난다 해도 양영순의 세계는 확장을 거듭할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Q. 되짚어 보니 <덴마>가 정말 오래됐다. 이렇게 장기 연재를 한 건 처음 아닌가.
A. 맞다. 중간에 휴재 기간을 빼고 순수하게 연재를 한 기간만 해도 4년이 넘는다. 결말 장면만 가지고 연재를 시작했는데 이야기가 뜻밖의 방향으로 갈 때마다 수습하려다 보니 지금까지 왔다. 대표작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지금은 <덴마>다. (웃음) 개인적으로는 늘 작업 중인 작품이 대표작인 작가가 되고 싶다.
Q. 정말 많이 들은 질문이겠지만 <덴마>에 덴마는 언제 나오나.
A. 반대로 묻자면 <덴마>에 덴마가 꼭 나와야 할까? (웃음) 아마 이번 에피소드와 다음 에피소드가 끝나면 그다음에야 나올 것 같다. 전체 이야기의 결말을 짓기 위한 역할이다. 처음 시작할 때는 덴마라는 인물의 활극이었는데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덴마 프로젝트’로서의 ‘덴마’가 되어 버렸다.
△ 1화 파나마의 개(1)의 한 장면
Q. 이야기를 수습하고 말이 되게 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변화인가.
A. 사실 <덴마>처럼 장기 연재는 처음이라 내가 잘하고 있는 건지, 어디로 가고 있는 건지 불안할 때가 있다. 초기에는 그런 의심이 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많이 힘들었다. 힘든 건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매주 수습을 하다 보니 어느 정도 요령이 생긴 것 같다. <덴마>는 다루고 있는 세계관이 방대해서 그렇지 이야기 자체가 넓은 건 아니다. 굳이 말하자면 ‘큰 작품’이라기보다는 오래 연재한 작품이다. 물론 그것만으로도 내겐 의미가 크다. 만화를 시작한 이후 의도와 무관하게 주로 콩트 위주로 그려오다가 긴 시간 동안 하나의 제목 아래 동일한 세계관을 가지고 이야기를 연결시킨다는 건 내게 있어서 일종의 모험이다. 이걸 한다는 것 자체가 새로운 경험이란 말이다. 마무리를 잘 짓는다는 전제하에 <덴마>가 끝나고 나면 예전보다는 조금 나은 내가 되어 있지 않을까 막연히 기대한다.
Q. 정교한 복선과 치밀한 떡밥으로 팬들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그런데 의외로 즉흥적인 설정이 많다고 하던데.
A. 신기하고 궁금했던 것 중 하나가 다들 설정이나 자료 준비를 다 해놓고 시작하는가 하는 부분이었다. 막상 내가 해보고 나니 일단 던져놓고 이후에 맞춰나가는 게 대부분이지 않을까 싶다. 연재를 하면서 배운 건 캐릭터들이 자기 의지를 가지고 살아 움직일 때가 있다는 거다. 예전에 허무영 선생님께서 작가가 캐릭터를 어쩔 수 없이 죽여야 할 때가 있다고 하셨는데 그게 어떤 상황인지 이제는 이해가 간다. 물론 결말만큼은 확실하다. 다만 결말에 이르는 길은 무수히 다양할 수 있다. 매주 그 길을 찾는 게 내가 할 일이다.
△ 74화 사보이 가알(26)의 한 장면, 한나의 닭고기 크림 스파게티를 먹는 덴마
△ 304화 God´s lover(109)의 한 장면, 기억은 잃은 덴마가 닭고기 크림 스파게티를 먹는 장면
Q. 아이디어나 영감은 주로 어디서 얻는지.
A. 나올 때까지 쥐어짠다.(웃음) 그게 전부다. 아마도 20대 초반에 했던 얼마 되지 않는 독서들이 내 곳간의 크기일 것이다. 그래서 연재가 시작된 후엔 늘 내 안에 있는 것들을 소진하고 있는 느낌이다. SNS상의 이슈나 스쳐 지나간 단어들을 즉흥적으로 대사로 삼을 때도 있다. 아웃풋이 인풋이라는 말로 스스로를 위로해 보지만 사실 종종 두렵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체력 싸움이다. 만화가에게 가장 중요한 재능은 사실 체력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최근엔 일주일에 3번 정도는 꼭 운동을 하려 한다. 몸을 움직이다 보면 머리도 돌아간다.
△ Chapter 2 471화 2.A.E.(2-17)의 한 장면. 이애란의 백세인생 가사를 패러디한 대사
Q. 주 3회 연재가 쉬운 일은 아닐 텐데.
A. 주 5회 연재하는 <가우스 전자>의 곽백수 작가도 있지 않나. (웃음) 처음에는 단순히 적정선의 원고료를 맞추기 위해 주 3회 연재를 결정했는데, 나중에 내가 왜 그랬을까 후회했다. (웃음) 농담이고 일단 연재를 시작했으면 어찌 됐건 끝까지 보장해주는 네이버웹툰의 덕을 봤다. 작가라면 이야기를 마무리 지으라는 게 네이버가 요구한 유일한 원칙이었다. 사실 자의든 타의든 연재 중단도 많이 했고 그 과정에서 미안했던 캐릭터들도 꽤 있다. 작가라는 인식이 별로 없이 작업을 해왔는데 <덴마>를 통해 많이 배우고 있다. <덴마>가 끝날 때 즈음이면 조금이나마 달라져 있을 것 같다. 작가로서 생존할 수 있는 확률이 조금 높아질 것 같다고 해야 할까.
Q. 성장이라고 하니 최근 <덴마>에서 눈에 띄는 변화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공자, 가우스, 샵 등 여성 캐릭터들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A. 최근 페미니즘 이슈와 관련해 여러 일들을 겪으며 깨달은 바가 있다. 여성에 대한 이해가 이렇게 부족한 상황에서 잘도 작가라는 이름을 써왔구나 싶었다. 뒤늦게라도 작가로서 생존하려면 여성과 페미니즘에 대한 이해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아직은 제대로 이해를 한다기보다는 흉내를 내는 수준이다. 하지만 그렇게라도 시작을 해야겠다 싶어서 여성캐릭터를 등장시키고 그들이 주도하는 상황을 표현해봤다. 주변 지인들에게 이런저런 조언을 구하며 도움을 받고 있다. 후배 작가 중 한 명이 그런 태도만으로도 의미가 있다는 말이 큰 힘이 됐다.
△ Chapter2 555화 3. The knight(83)의 한 장면. 공자, 가우스, 샵의 첫 만남.
Q. 굳이 나누자면 선배 작가라고 할 수 있는데 유달리 ‘배운다’, ‘모자라다’라는 표현을 자주 쓰는 것 같다.
A. 실제로 많이 배우고 있다. 가령 남성과 여성을 구분하지 말고 그 자리에 사람이라는 단어를 넣어보라는 조언을 들었을 때 머리가 맑아지더라. 표현방식의 차이가 있을 뿐 기본적인 욕망은 다르지 않다. 그런 점들을 배우고 익히려 한다. 지금까지 무지했다는 게 창피한 일이고 그래서 지금도 배워나가는 중이다. 그게 독자를 대하는 작가로서의 책임과 의무라고 생각한다.
Q. 이전에도 빼어난 작품들을 선보였지만 <덴마>를 통해 단단하게 다져지고 있다는 인상이다. 작가로서의 목표가 있다면.
A. 내가 향하려는 방향의 끝에는 허영만 선생님이 계시다. 한 마디로 표현하면 ‘말에서 내리지 않는 무사’가 되고 싶다. 생계에 쫓겨서 말에서 내리지 못하는 게 아니라 땅을 디디고 있는 것보다 말 위에 있는 게 좋으니까 말 위에 머무는 것이다. 여러 번 연재 중단을 했던 내가 이런 말을 입에 담을 자격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만화를 그린다는 것 자체가 내게 가치 있는 행동이고 내 소명이라 생각한다. 어릴 땐 그 기회들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모르고 무책임한 짓도 많이 했다. 나이가 들수록 내게 주어졌던 기회들의 가치와 무게를 느낀다. 최후까지 버텨서 끝까지 말에서 내리지 않는 작가가 되겠다. 그게 그동안 나 때문에 마음고생 하셨을 분들, 미안한 캐릭터들에게 사과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Q. 그나저나 <덴마>는 언제까지 이어지나.
A. 남은 에피소드로 보면 멀지 않았다. 최종장을 향해 가는 중이다. 에피소드의 길이에 따라 앞으로 1, 2년 정도 예상한다.
△ 198화 God´s lover(3)의 한 장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