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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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만화를 본 누군가가 만화가를 꿈꿀 수 있었으면. 내가 그랬던 것처럼. : <임금님의 사건수첩> 허윤미 작가

이선균, 안재홍 배우의 찰떡 호흡으로 올 상반기 좋은 반응을 이끌어 낸 영화 <임금님의 사건수첩>은 허윤미 작가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다. 영화부터 접한 사람은 원작 만화를 보고 조금 당황할지도 모르겠다. 순정만화잡지 ‘윙크’에 2012년부터 연재된 원작 만화 <임금님의 사건수첩>은 애민군주 예종을 주인공으로 한 순정만화다. 유려하고 깔끔한 작화는 그야말로

2017-06-22 송경원


이선균, 안재홍 배우의 찰떡 호흡으로 올 상반기 좋은 반응을 이끌어 낸 영화 <임금님의 사건수첩>은 허윤미 작가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다. 영화부터 접한 사람은 원작 만화를 보고 조금 당황할지도 모르겠다. 순정만화잡지 ‘윙크’에 2012년부터 연재된 원작 만화 <임금님의 사건수첩>은 애민군주 예종을 주인공으로 한 순정만화다. 유려하고 깔끔한 작화는 그야말로 예쁘다. 반면 영화는 코믹어드벤처에 가깝게 각색이 됐고 인물들도 좀 더 선이 굵어졌다. 그럼에도 <임금님의 사건수첩>은 원작의 매력을 잘 살린 영화 중 한 편인 것 같다. ‘궁 넘고 담 넘는 추리활극’이라는 만화의 부제처럼 <임금님의 사건수첩>은 모험, 활극, 코미디의 요소를 모두 품고 있는 입체적인 작품이기 때문이다. 웹툰이 대세인 가운데 만화잡지로 데뷔, 벌써 8년째 작품을 그리고 있는 허윤미 작가에게 물었다. 순정만화의 매력은 뭔가요. 잡지만화의 힘은 무엇일까요. 순정만화, 잡지만화 굳이 수식어로 구분하고 싶지 않은, ‘만화가’ 허윤미의 우문현답을 전한다.

Q.  만화잡지 연재 중이라는 게 도리어 이색적으로 느껴지는 요즘입니다. 보통 자기소개를
A.  4차 산업혁명이 유행어처럼 회자되고 있는 이 시대에 아직 흑백만화를 그리고 있는 8년차 만화가 허윤미입니다. 벌써 8년이나 되었는데도 만화가라고 타인에게 소개하는 것이 조금 낯설고 쑥스럽습니다. 아마 만화가라는 무게를 받쳐줄 만한 작품을 만들지 못해서가 아닌가 싶어요. 언제가 ‘당당히 나도 작가다!’라고 말할 작품을 많이 그리고 싶은 병아리 만화가입니다. 병아리라고 하기에는 나이가 좀 있나요? 그럼 중닭? (웃음)

Q.  단편 <저승강>로 서울문화사 신인만화가 대공모전 동상을 수상하였습니다. 어떻게 데뷔하셨는지 궁금합니다.
A.  저는 스스로 출판 만화세대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출판만화잡지 공모전에 당선되는 것이 로망 아닌 로망이었습니다. 당연히 우리나라에서 규모 있는 출판사 잡지 공모전들에 문을 두드렸지요. 겨우 7번의 낙방 끝에, 운이 좋게 서울문화사에서 당선이 되었습니다. 정말 운이 좋았습니다. 이후 <매점에 가자> 등 장편 연재를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Q.  어릴 적부터 꿈이 만화가셨나요.
A.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막연히 그림과 관련된 직업들을 선망했죠. 화가 만화가 디자이너 등등 다양한 길을 상상해봤습니다. 결국 제일 그리고 싶은 걸 찾아 만화학과를 가게 되었고 대학 때 처음 만화를 그려 봤습니다. 이야기를 짜고, 콘티를 짜고, 원고용지에 그림을 그리는 과정들은 그때 처음 해본 거죠. 당시엔 24페이지를 만드는데 한 학기 정도 걸렸던 걸로 기억합니다. 처음이란 걸 감안해도 속도가 빠른 편이 아니죠. 그러다보니 당선이 되고 연재 초반에는 매우 힘들었습니다. 잡지는 15일안에 24페이지를 완성해야 하니까요. 다행히 지금은 나름 패턴을 익혔습니다. 5일 동안 스토리와 콘티를 짜고 편집부에서 담당자님의 피드백을 받은 후 10일 동안 그림을 그리는 작업을 합니다. 그렇게 완성된 원고를 넘기면 편집부에서 대사 식자 작업한 후 업로드가 됩니다.

Q.  최근엔 웹툰 등 온라인을 통해 연재를 주로 접하다 보니 오히려 만화잡지에 정식 연재를 하는 게 이색적으로 느껴집니다.
A.  잡지 공모전을 통해 데뷔 했으니 잡지연재를 하는 건 자연스러운 거죠. (웃음) 우선 잡지 공모전 당선 자체가 제겐 로망이 있었습니다. 온라인 쪽은 대부분 주간 연재인데 지금은 격주연재 사이클도 아등바등하는 제가 버틸 수 있을 것 같지 않습니다. (웃음) 게다가 컬러잖아요. 물론 컬러에 주간연재가 시대변화의 흐름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언제가 그 흐름에 적응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 내심 바라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직은 아닙니다. (웃음)

Q.  편집부의 분위기를 그린 4컷 만화를 봤습니다. 학교에 비유하셨는데 만화잡지 윙크의 편집부는 어떤 분위기인가요.
A.  기획 단계의 편집부 분위기가 학교랑 비슷하다는 생각을 자주 했습니다. 신입일 때는 모든 것이 생소하고 어려워 혹시라도 기획이 재미없다는 말을 들으면 꼭 학교 선생님께 숙제를 제대로 못해서 혼나는 것 같았거든요. 저는 선생님께 혼나면 의기소침해지고 우울해하던 타입이었던지라 정말 필사적으로 아이디어를 짜냈습니다. (웃음) 이제는 재미없다는 말을 들어도 ‘그럼 재미있어지려면 어떻게 할까요? 아니면 다른 아이템도 있는데~’ 라고 대처할 정도의 넉살은 배운 것 같습니다. 이것이 8년차의 얼굴 두께라고 할까요. (웃음)


Q.  순정만화를 원작으로 영화화 된 사례는 많지 않습니다. 영화화 제의를 받았을 때 기분이 어떠셨나요.
A.  영화 제의를 해주신 피디님께서 서점에서 책을 보고 편집부로 연락을 주셨다고 담당자님께 들었고 정말 신기했습니다. 혹시나 불발 될까 싶어 계약이 성사 될 때까지 주변에 말도 못하고 입이 많이 가려웠습니다. 계약서에 사인하고 나서야 동네방네 자랑을 하고 다녔습니다.

Q.  <임금님의 사건수첩>은 순정만화잡지 윙크에 2012년부터 연재된 작품입니다. 조선판 브로맨스를 컨셉으로 하고 있는데요.
A.  원래는 3부작 단편이었습니다. 편집부로부터 연재로 가자는 제의가 왔고 기쁘게 응했습니다. 셜록과 왓슨같은 관계의 브로맨스를 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주인공은 셜록처럼 다재다능하고 호기심이 많고 사건을 본인이 직접 풀어야 직성이 풀리는 캐릭터가 되었습니다. 다만 시대 배경이 조선이고, 사건을 추리하는 주인공의 신분이 왕인 관계로 제가 생각하는 정치인의 이상향이 첨가 되었습니다. 정치인이 가져야 할 덕목이 많이 있겠지만 그 중에서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애민정신입니다. 제 만화의 주인공인 예종은 다루는 사건들도 백성들과 직접 피부를 맞닿고 있습니다. 그 사건들을 통해 백성들을 위한 조치를 내릴 수 있는, 애민정신이 가득한 왕이 되었습니다.

Q. 그럼 윤이서는 왓슨 인가요.
A.  맞습니다. 그래서 윤이서를 왕권을 견제하는 사관으로 설정하여 둘이 티격태격하는 그림이 그려지도록 만들었습니다. 윤이서는 글로만 군주의 덕목을 배운 서생의 전형인데, 이런 인물이 예종이 백성을 위하는 마음을 지켜보게 되면서 그에 감화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글로만 정치를 배운 윤이서가 예종 덕분에 백성을 위한 현실정치를 하게 되는 좋은 정치인이 되어가는 것이 캐릭터의 방향이었습니다. 다만 작품에서 제가 이 부분을 충분히 표현하지 못한 것 같아 여전히 아쉽습니다.

Q.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이 아쉬운지.
A. 단편에서는 가상의 왕이었습니다. 장편화 하면서 실존했던 인물인 예종으로 바꾸었죠. 당시 시대상황을 반영할 수 있도록 실록 등 기록을 참고하되 이야기의 분위기는 되도록 가볍게 가고 싶었습니다. 저는 조선의 가장 빛나는 문화 중 하나가 기록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종이 서책수집가이고 사건을 풀 때 기록물을 많이 애용하는 것도 그런 부분을 반영한 겁니다. 많은 임금 중 예종을 택한 건 실제 예종의 치세가 매우 짧아 상상력을 많이 가미할 수 있을 것 같아서였습니다. 그럼에도 고증이 필요한 부분들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고증은 정말 어렵다는 것을 절감했습니다.

Q.  영화화 된 <임금님의 사건수첩>은 순정만화의 톤은 다소 줄어들고 코미디와 모험이 강화됐습니다. 원작자로써 이런 각색은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A. 영화에는 영화에 맞는 이야기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일단 제일 큰 차이는 스케일이 커겠죠. 만화에선 소소한 사건들을 주로 다루고 그 과정도 복잡하지 않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저런 부분은 나도 만화에 써볼걸 왜 나는 그런 생각을 못했을까 하는 부분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각색하신 작가님께 감사할 따름입니다. 특히 윤이서 역에 안재홍, 예종 역에 이선균 두 분의 합이 좋았어요. 피디님께 배우 두 분의 캐미가 좋았으면 한다며 캐미~캐미~ 노래를 불렀었는데.(웃음) 매우 만족합니다.

Q. 은근히 허를 찌르는 개그코드가 강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영화가 각색 방향을 코미디로 잡은 것도 원작에서 그 부분이 워낙 잘 살아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데, 본인이 지향하는 개그 코드가 있나요.
A. 우선 재미있다고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알아봐주시니 기쁘네요. (웃음) 저는 <논스톱>, <세 친구>, <프란체스카>, <거침없이 하이킥> 같은 코믹시트콤을 좋아합니다. 요즘은 시트콤이 적어서 슬프네요. 코믹한 상황으로만 10페이지 이상을 콘티로 짠 적도 있는데, 담당자님으로부터 24페이지 안에서 이정도 분량이면 이야기 진도가 너무 더디어 진다라는 지적을 받기도 했습니다. (웃음) 그만큼 좋아합니다. 다만 좋아하는 것과 할 수 있는 건 많이 달라서, 만화에스는 가벼운 말장난 개그로 주로 소화하는 편입니다.

Q.  <매점에 가자>와 <임금님의 사건수첩>을 완결하고 현재 윙크에서 <당신만의 앨리스>를 연재 중입니다. 신작 역시 조선 시대가 배경입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픽션을 좋아하시나요.
A.  <당신만의 앨리스>는 현대의 엘리트 여성이 조선시대 후궁의 몸에 빙의되면서 허수아비 왕을 진정한 왕이 되도록 돕는 내용입니다. <임금님의 사건수첩>이 끝나고 차기작 아이템을 두 개 잡고 편집부와 의논을 했습니다. 그 결과 전작으로부터 공부했던 배경지식과 배경자료들을 바로 활용할 수 있는 조선시대가 배경인 <당신만의 앨리스>로 진행하는 편이 낫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개인적으로 사극을 좋아하기도 하고요.

Q.  <당신만의 앨리스>도 영화, 드라마화 하기 적절한 콘텐츠하고 생각합니다. 바라는 캐스팅이 있나요. 각색을 할 때 당부하고 싶은 점이 있다면.
A.  바라는 캐스팅도 당부하고 싶은 것도 없습니다. 그저 연락만주세요~ 환영입니다!(웃음) 평면의 종이에서 만들어진 캐릭터가 영상으로 보이는 것은 정말 신기하고 좋더라고요. <당신만의 앨리스>도 그럴 기회를 얻는다면 정말 기쁠 것 같습니다.


Q. 새 연재를 들어갈 때 구체적으로 머릿속에 그리는 목표나 방향이 있나요. 독자들에게 어떤 작가로 기억되고 싶은 신가요.
A.  <당신만의 앨리스>도 슬슬 끝이 보이고 있어 새 작품을 구상해야 하는데 사실 아무 생각 없습니다.(웃음) 굳이 방향을 잡자면 재미있는 것을 그리고 싶다는 욕구가 아닐까 합니다. 우선 내가 먼저 즐겁고 재미있어야 하는 것 같아요. 만화를 보신 분들이 다른 사람에게 한번 보라고 추천할 수 있는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 제 만화를 보면서 누군가는 만화가를 꿈꿀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죠. 제 경우엔 <밤을 걷는 선비>의 조주희 작가님을 떠올리며 만화를 그렸습니다. 조주희 작가님은 작가이자 아내이며 엄마이고 또 교사이십니다. 저는 만화가라는 역할 하나를 제대로 하는 것도 버거운데 그 역할들을 전부 잘 해내시는 걸 보면 절로 존경이입니다. 작품에 대한 열정과 에너지도 항상 가득하시죠. 발자취를 쫓아 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늘 품고 있습니다.

Q.  작가님이 생각하시는 순정만화란 무엇인가요.
A.  저는 단지 하고 싶은 이야기를 그릴뿐인지라 그 부분에 대해 딱히 생각해 본적이 없네요. 굳이 나누고 싶지도 않고요. 질문을 주셔서 순정의 사전적의미를 찾아봤더니 ‘순수한 감정이나 애정’이라고 하더군요. 사람의 내적감정 사람과의 관계에서 오는 모든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순정만화인 것 같습니다. 그렇게 따지자면 모든 이야기는 다 순정인 것 같아요.

Q. 전업 만화가로 사는 것의 즐거움과 어려움을 각각 하나씩 꼽는다면.
A. 즐거움은 일하다가 마음껏 딴 짓을 할 수 있다는 점이고 어려움은 마감 앞에서는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그래도 계속 하고 싶은 게 또 장점이고. 계속 꼬리를 물고 반복되네요.(웃음) 당장은 올 하반기에는 신작을 들어가는 것이 가장 시급한 목표이자 과제입니다. 장기적으로는 참한 신랑 만나 결혼해서 내조도 하고 외조도 받고 싶네요. (웃음) 매번 시야를 넓혀가면서 건강하게 재미있는 만화를 계속 그려나가려 합니다.


Q. 좋아하는 작품(순정, 소년 만화 뭐든 상관없습니다.)을 하나 소개해주신다면. 그리고 좋아하는 영화도 꼽아주세요.
A.  좋아하는 작품이나 영화가 워낙 많은데 최근 것으로 꼽는다면 만화는 어쿠스틱 라이프입니다. 일상을 바라보는 작가님의 시선이 재미있으면서 공감되고 때론 깨달음도 얻어요. 빨리 새 시즌으로 돌아오시기를 바라고 있습니다.그리고 영화는 플립이요. 소년 소녀의 첫사랑 이야기인데 같은 상황을 두 사람의 시점이 교차로 보이면서 영화가 진행 되요, 정말 귀엽고 사랑스러운 영화입니다.

Q. 당연한 말이지만 그림체가 깔끔하고 예쁘십니다. 특별히 연습을 하는 방식이 있었나요. 머릿속에 이미지를 그리는 방식, 실제 작화의 작업 방식도 궁금합니다.
A. 저는 미려하고 유려한 그림체를 좋아하는데 제 손은 그렇게 못하더라고요. 이상이 너무 멀리 있으니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못 오를 나무 오르는데 힘들이지 않기로 했어요. 그보다는 제가 풀어나갈 이야기를 다른 이가 볼 때 어색하지 않도록 잘 전달되도록 그리는데 노력하고 있습니다.데생할 때 자료도 참고하고 머릿속에 있는 이미지를 실제로 그리기 위해 사진도 많이 찍습니다. 카메라를 쉽게 사용 수 있는 세상이 되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