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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너리그 리포트 <할배툰> 증조할배 작가를 만나다

커뮤니티 연재부터 레진코믹스 정신 연재까지, 증조할배 작가의 웹툰 속 생존 활동 이야기를 들어보자

2024-05-01 수차미


증조할배(본명 오민석)의 만화를 처음 접한 건 10여년 전의 디시인사이드에서였다. 넥슨에서 서비스하는 사이퍼즈라는 게임이 있었고, 그와 나는 게임의 유저이자 갤럼이었다. 롤과 유사한 이 게임은 AOS 장르인만큼 다양한 형태의 인간군상들이 있었고, 그만큼 다양한 이야기들이 오갔다. 한판에 10명씩, 30분 정도를 소요하는 이 게임은, 사실상 1:9의 싸움이나 다름없어서 유저에게 많은 감정을 제공했다. 여기서 증조할배의 웹툰 인생이 시작한다. 그는 당시 사이퍼즈에서 ‘우리증조할아버지’라는 닉네임을 사용했다. 이후 ‘증조할배’라는 이름으로 업로드한 ‘드렉슬러 분열창 만화’가 절찬리에 흥행하면서 그에게 본격적인 웹툰 인생이 시작된 것이었다.

여기서 증조할배의 “~하는 만화”가 비롯됐다. 기본적으로 일상툰을 그리는 그이지만, 이 포맷의 성공에 힘입어 그는 다른 게임에도 영역을 확장했다. 그가 다룬 게임들 목록은 아래와 같다. 


[할배의 스카이림 하는 만화](2016), [할배의 환세취호전 하는 만화](2017), [할배의 배틀그라운드 하는 만화](2017~2018), [할배의 마비노기 했던 만화](2017), [할배의 아스가르드 했던 만화](2017), [할배의 하스스톤 확장팩 하는 만화](2017~2018), [할배의 FTL하는 만화](2017), [할배의 데카론 했던 만화](2018), [할배의 블러드 본 하는 만화](2018), [할배의 디트로이드 비컴 휴먼 하는 만화](2018), [할배의 갓 오브 워 하는 만화](2018), [할배의 배틀필드 1 하는 만화](2018), [할배의 어쌔신크리드 오리진 하는 만화](2018~2019), [할배의 레드 데드 리뎀션 2 하는 만화](2018), [할배의 로스트아크 하는 만화](2018), [할배의 다크 소울 하는 만화](2019), [할배의 하데스 하는 만화](2019), [할배의 폴 가이즈 하는 만화](2020), [할배의 아이작의 번제 하는 만화](2022), [할배의 엘든링 하는 만화](2022) 


일상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말하며 [마음의 소리], [선천적 얼간이들], [레바툰] 등의 작품을 워너비로 꼽은 그는 게임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한다. [할배툰]에서 밝힌 술회에 따르면 그는 항상 담당자에게 게임을 다룰 기회를 엿봤다고 한다. 하지만 전체이용가이기도 한 그의 일상툰은 모두가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소재를 다뤄야만 했다. 그런 고로 게임에 관해 이야기하는 일은 지양되었으나, “~하는 만화”가 남긴 유산은 여전하다. 가령 그에게 “~하는 만화”라는 제목은 작품의 스타일을 대변한다. 일상툰의 한 부류가 재미있는 소재에서 비롯된다면, 그에게 일상툰은 말하기의 방식에 더 가깝다. 

말하기 방식으로서의 일상툰은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다. 사실관계만 놓고보면 크게 웃기거나 재밌지 않을 수 있지만, 바라보는 법에 따라 폭소를 자아낼 수도 있는 것이다. “~를 한다”라는 시제로 제시되는 이야기는 억지로 꾸며진 이야기가 아니라 살아가는 개인의 모습을 강조한다. 쉽게 말해 “한다, 하고 싶다, 했다”의 세 가지 시제는 이들 만화가 작가 개인의 삶에 가깝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러니 그는 만화에서 게임을 다루고 싶기보단, 게임을 하는 일상을 그리고 싶어하는 것에 더 가깝다. 게임을 자질구레하게 설명하기보단 자신이 게임을 하며 느꼈던 감정에 대해 말하는 정도라면, 일상툰으로서의 게임툰도 꽤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Q: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바쁘신 와중에 시간을 내어주신 점에 감사드립니다. 인터뷰를 하기에 앞서 간단한 자기소개를 듣고 싶습니다. 

A: 안녕하세요 증조할배입니다. 자기소개부터 웃기게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뭉게뭉게 솟아오르는데, 인터뷰인 만큼 그런 충동은 내려놓고 사뭇 진지하게 제 소개를 드려야 될 것 같네요. 

저는 레진코믹스 ‘할배툰’으로 정식 데뷔한 전 증조할배입니다. 또한 B급 감성을 사랑하고, 스스로가 B급 감성을 잘 그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작가입니다. 데뷔 전이나 후나 이렇게 인터뷰를 요청받은 것은 처음인데요. 좋은 기회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Q: 근황에 대해 먼저 이야기를 드리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레진코믹스에서 연재하신 [할배툰]은 4월의 “손 통증 치료하는 만화 (1)”을 끝으로 휴재에 들어갔습니다. 말미에 (1)이 붙었다는 건 시리즈라는 뜻이고, 1편으로 끝나지는 않을 테니 아직 남은 시리즈가 있다는 뜻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대로 휴재에 들어갔다는 건, “손 통증이 아직 치료중”이어서인 것으로 보입니다. 

이후 6개월이 지나도록 휴재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간간이 블로그에 근황을 남겨주셨지만 전황은 불투명해보였습니다. 그러던 중 개인 블로그의 2023.10.02일자 게시물을 보면 “정식 연재로는 만화를 볼 일이 없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요. 이는 절필 선언인 듯 보여서, 인터넷 등에서 오래도록 응원해주셨던 팬분들이 슬퍼하시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 막 시작된 창작인생에 먹구름이 낀 듯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에 관해, 혹시 추후의 활동계획 등을 공유해주실 수 있을까요. 

A: 말씀대로 ‘사실 정식연재로는 만화를 볼 일이 없을 것’ 이라는 글을 올렸었다가 지웠었습니다. 다만 이는 절필 선언은 아니었고, 데뷔 이전처럼 아마추어 만화로 뵙겠다는 내용이었어요. 이는 사전에 레진코믹스 담당자님께 먼저 말씀드리고 업로드한 글이긴 했지만, 여러모로 좀 더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였던 것 같아요. 

휴재가 서너달 차에 들어서니, 휴재기간이 하릴없이 길어져서 레진코믹스와 독자분들 모두에게 기약없는 기다림만 드리는 것 같아 ‘정식연재는 그만 해야겠다’ 라는 마음이 아주 커졌었어요. 그래서 할배툰을 마무리하고 이전처럼 아마추어 만화가의 신분으로 돌아갈 생각을 깊게 하고 있었습니다만, 블로그에 글을 올리고 나서야 이는 여러모로 좀 더 고민해볼 문제라는 생각이 들어 슬며시 삭제를 하였었죠.

할배툰은 계속 연재할 생각입니다. 손목이 아직 완전히 낫지 않았고, 오른손뿐 아니라 왼손목도 같이 시큰거리긴 하는 상황이지만, ‘이 정도로 쉬었는데도 회복되지 않으면 쉬어서 낫는 병이 아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게다가 현재 협의 중인 사항이라 자세히 말씀드리긴 어려우나, 제 유리손목에 최대한 부담을 덜 주는 방향으로 할배툰을 연재할 수 있는 가능성도 생겨서 더욱 연재 재개를 긍정적으로 검토해 볼 수 있게 되었고요. 레진코믹스 담당 피디님께서 많은 편의를 봐 주시고 진심으로 함께 고민해 주셔서 고마울 따름입니다. 

사실, 말씀드리기 민망하지만 저의 얇아진 지갑도 할배툰 연재 재개 결정에 어느 정도 영향을 주었습니다. 창작은 그 자체로도 가치있고, 남들이 제 만화를 좋아해 주시는 것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기쁨이지만, 현실적으로 할배툰이 제 생계 유지의 수단이기도 하잖아요? 장기간 휴재는 경제적으로 확실히 부담이 크더라고요. 특히 병원비와 약값으로 잡다하게 나가는 돈이 어마무시했습니다. 그나마 실비보험을 들어 놔서 어느정도 병원비 폭탄을 막아낼 수 있었지, 실비보험이 없었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군요. 

    

Q: 아마추어 웹툰을 연재하시면서 “만화를 그리며 돈을 번다면 행복할 것 같다”고 말씀하셨던 바가 있습니다. 이후 레진코믹스에서 연재를 진행하셨고, 연재제의와 함께 다니던 회사를 퇴사를 하신 걸로 압니다. 만화에서 그려진 걸 보면 회사분들과 사이도 좋았던 것으로 보이는데요, 회사 생활에서 재미있었던 일이나 이야기가 있으셨는지 궁금합니다. 

또한 궁금해하실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돈과 행복이라는 워라벨의 측면에서 회사원과 만화가의 차이에 대해서도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만화에서 그려진 걸 보면 커피를 못 드시는 분이 커피에 빠지실 정도인데 회사 생활은 그리 즐거워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만화에 회사 이야기는 나오지 않은건가 싶기도 하고요.  

A: 회사 생활을 하면서 참 재밌는 일화들이 많았습니다. 물론 그 중에 대부분은 제가 이불을 발로 수백번도 더 찰 실수들이 기억에 많이 남네요. 상사님께서 파워포인트로 자료를 만들어 보라고 하셨는데, 내용은 한없이 얕은데 글자 크기와 글씨체만 하루 종일 다듬어서 자랑스럽게 보여드렸던 기억이라던가요. 그래도 회사라는 배에 탑승해 다른 사람들과 같은 방향으로 노를 젓는 경험은 정말 귀중한 것 같아요. 다른 분들이 보시기에 제가 노를 반대로 젓는 것처럼 보였을 수도 있지만 말입니다. 전역 후 회사를 안 다닌 채 데뷔했다면 정말 아쉬웠을 것 같아요.

회사 생활이라는 것이 매일 매일이 즐거울 수는 없겠지만, 저는 꽤 즐거웠습니다. 특히 업무적으로는 뭔가 배워나가고 발전해 나아가는 느낌이 너무 좋았어요. 대학생때와 달리 당장 제 삶에 도움이 되는 스킬이라 그런지 성취감을 느끼며 즐겁게 생활했습니다. 다만 제가 만화적 표현이 서툴러서 독자 분들이 보시기에는 ‘회사 생활이라는 건 아주 힘들어 보이는 군’ 이라고 생각하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돈과 행복이라는 워라밸의 측면에서 회사원과 만화가의 차이’에 대해서 제가 의견을 드리기에는 저는 아직 여러모로 미숙한 사람이라 답변 드리기가 쉽지 않네요. 연예인 정형돈씨가 방송에서 말씀하셨듯 제 자신이 제가 정확히 모르는 분야에 대해 이야기한 것을 저보다 똑똑한 사람들이 조언으로 받아들여 그릇된 선택을 할까 봐 무섭더라고요. 특히 저는 만화가가 되고자 엄청난 각고의 노력을 한 사람이 아닐뿐더러, 일반적인 웹툰보다 훨씬 낮은 작화 퀄리티로 데뷔한 돌연변이 같은 케이스라 더욱 말을 조심하게 됩니다.

제 자신의 경우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저는 ‘만화가는 일반적인 회사원보다 여러모로 메리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단 직업 선택[취향(?)]의 메리트가 먼저 떠오르는데요. 저는 게임에서 직업을 고를 때 인기 있는 직업은 피하고, 대전 게임에서 미러전을 가장 혐오하는 소위 ‘힙스터’ 취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재밌게도 현실에서 만화가라는 직업을 선택한 것이 이런 면에서 제 삶에 묘한 행복감을 주더라고요 (반은 농담이지만 반은 진심입니다).

저의 이러한 행복감의 바탕은 제가 직장인보다는 만화가일 때 더 유니크한 삶을 만들어 나갈수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저는 거대한 톱니바퀴 같은 사람보다는 조그만 손목시계가 되는게 더 어울리고, 그걸 더 재밌어하는 사람인 것 같더라고요. 적어도 지금까지는요.


Q: ROTC 장교 출신이기도 하신 걸로 압니다. 한국에서 대부분의 남자들이 현역으로 군생활을 하기 때문에 ROTC 또한 인기있는 소재가 될 것 같습니다. 실제로 만화를 보면 군생활에 있었던 일화도 가끔 그리셨는데요, 언젠가 “ROTC 입대 결정하는 만화”를 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하튼, 간부출신으로서 간부숙소에 거주하셨으니 개인 시간이 많았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군대에서는 만화를 그리셨는지 궁금합니다. 어려서 연습장에 그림을 그리셨다는 걸 보면 왠지 그럴 것 같아서요. 그리고 혹시 군대에서 얻은 경험이나 지혜가 창작에 도움이 되었는지도 궁금합니다. 

A: ROTC 입대 결정하는 만화는 분명 나중에 한번 그릴만 한 소재인 것 같습니다. 공군사관학교 면접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고, 분명 재밌는 편이 될 것 같네요.

군대에서도 만화를 그렸습니다만, 군대 내는 아니고 제 숙소에서 많이 그렸습니다. 대표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재밌게 보아주신 ‘폴가이즈 하는 만화’가 숙소에서 그린 만화였어요. 그 외 여러가지 만화들을 재밌게 그렸었는데, 생각해보니 휴가 나와서 만화를 몰아 그리지 않고 군생활 하면서 편하게 만화를 그릴 수 있었던 것도 제가 장교로 군생활을 해서 가능했던 장점이었네요.

군대에서 얻은 경험은 사회생활에는 도움을 주었지만, 안타깝게도 아직까지 창작에 큰 도움은 못 된 것 같습니다. 장교로 군생활을 했던 경험이 분명 유니크하고 만화로 풀기에 재미있을 것 같기는 한데, 저랑 같이 군생활하고 아직도 해당 부대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있다 보니 구체적으로 만화를 그리는게 부담스럽더라고요. 하지만 버리기에는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많아서 아마 꽤 많은 부분을 각색한다면 제 창작생활에 좋은 소재가 될 것 같습니다.


  

Q: 연습장을 언급한 김에 생각난 게 있습니다. [낙서의 추억] 편을 보면 어린 시절에도 연습장에 그림을 그리신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서는 만화를 그리고, 이를 친구들과 돌려보았던 추억이 언급되는데요. 작가님의 미래는 어쩌면 여기서부터 예견된 게 아닐까 싶습니다. 인터넷에 만화를 업로드해서 다른 이들과 함께 나누는 일은 연습장 만화의 연장선처럼 보이거든요. 

하지만 어렸을 때와는 달리 인터넷 세상은 냉혹합니다. 독자들은 냉철한 평가를 하는 일에 거리낌이 없습니다. 그러니 인터넷에 만화를 올리는 과정에서 반응이 좋지 않다면, 그 평가가 단순한 표현으로만 다가오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대놓고 ‘노잼’이라고 말하면 그나마 낫지만, 욕을 하는 분도 있죠. 그럴 때마다 어떻게 대처하셨는지, 자기만의 방법이 있으셨는지 궁금합니다. 

A: 특히 ‘카툰 연재 갤러리’가 인터넷 종합장으로서의 아주 날것의 느낌이 있죠. 다만 종합장 만화를 보던 반 친구들과 달리 카툰 연재 갤러리 유저들은 거리낌없이 *욕을 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이 큰 차이점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웃기게도 저는 욕을 하는 것보다 ‘노잼’ 이라는 단어가 더 기분이 좋지 않더라고요. 길거리에서 철없는 고등학생이 제 멱살을 잡고 *욕을 하는 것보다, 제 직장 상사나 중대장님이 제 보고서를 읽고 한숨 한번 푹 쉬면서 ‘잘하던 놈이 왜 이러냐’ 한마디 하는 게 저에게는 더 스트레스일 것 같은, 그런 느낌이라고 말씀드리면 이해가 되실지 모르겠습니다. ‘예전엔 재밌었는데 퇴물 다 됐네’ 라는 말이 아주 상처주기 좋은 말인 게, 예전에는 분명 재밌었다는 것을 인정해줌으로써 작가로 하여금 댓글 쓴 이의 말에 좀 더 무게감을 느끼게 해 주거든요. 하지만 퇴물이라는 건 그만큼 저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거니까 좀 더 좋은 쪽으로 받아들이려고 노력 중입니다. ‘나도 나름 인터넷 유명인이구나’ 하고요.


Q: 스트레스 대처 능력에 관해 생각해보니 작가님의 재수생활이 떠올랐습니다. 작가님이 그리신 만화들에서 재수생활은 언급되지 않습니다. 생각하면 재수생활 동안 공부말고 더 할게 없으니 당연한가 싶으면서도, 회사생활이 재미있을리 없다는 점과 상통하는 점이 있는 듯합니다. 

제가 궁금한 것은 유년기에 만화가를 꿈꾸셨다는 대목이 성인이 되어 부활하기까지의 과정입니다. 계기에 관해서는 고등학생 시절에 사이퍼즈를 하며 다시 만화를 그리신 걸로 압니다. 이후 꾸준히 만화를 그리시던 중, 레진코믹스에 연재를 하게 되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때 회사원이셨던 걸 고려하면, 회사를 다니면서 만화를 그렸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만화를 다시 그리게 된 원동력이 궁금합니다. 유년기의 꿈을 타오르게 한 건 무엇이었나요? 꿈을 지속하게 하는 힘이 있을까요?

A: 유년기의 꿈을 타오르게 했던 것은 역시 독자들의 댓글이에요. 제가 사이퍼즈 갤러리나 카툰 연재 갤러리, 고전게임 갤러리 등지에서 열렬한 호응을 받지 못했다면 저는 분명 만화 그리는 것을 중간에 그만두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괴발개발 그린 만화가 재미있다며, 재능있다며 칭찬해 주는 독자분들의 댓글이 저를 춤추고 날뛰게 하였습니다. 이것이 그려서 동전 한 푼 나오지 않는 만화임에도 제가 꾸준히 만화를 그릴 수 있게 해 준 원동력이었습니다. 


Q: 이어지는 질문입니다. 일상툰에서 중요한 건 소재를 찾는 일입니다. 소재를 찾는 일의 어려움은 아마 작가라면 누구나 겪을 고민이라고 생각되는데요. 제가 생각하기에 일상툰은 그 발견의 방식에 따라 세부적으로 구분된다고 봅니다. 일상에서 이야기를 마주하는 쪽과 이야기 안에서 일상을 발견하는 쪽이 있이 있는거죠. 

작가님의 만화는 전자에 가까워보입니다. 이야기란 것은 기본적으로 ‘서사’와 연결된다는 점에서 시작과 끝으로 갈무리하는 능력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일상툰은 항상 어딘가에 초점을 맞췄다가 다시금 빠져나오는 형식이 될 수밖에 없는데요. 작품의 소재로서 이런 발견을 어떻게 하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아 이게 소재가 되겠구나” 싶은 때가 있었나요? 

A: 제 경우 만화 소재에 대한 탐구는 온종일 끝나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항상 패시브 버프처럼 옆에 떠 있다고 해야할까요? 우리가 평소 지나가면서 별 생각 없이 마주치는 비둘기들, 고장난 버스 정류장의 전광판, 정수기 위의 바구니 등 일상의 모든 것이 소재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다만 그것을 어떤 이야기로 서로 엮어나갈 것인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정수기 위에는 약이 든 바구니가 있다’ 라는 사실을 물을 마시며 발견했다면, 일단 이를 메모합니다. 그 후 시간이 날 때 이것을 ‘우리 집 물건 정리에 대한 이야기’로 풀 것인지, ‘약과 관련된 나의 이야기’로 풀 것인지 생각해야겠죠. 여러 가지 방향 중에서 가장 이야기하기 좋은 방향을 선정하여 풀어나갑니다. 여기서 말하는 좋은 방향이라는 것은 적절한 분량이 될 수도 있고, 재미있는 이야깃거리의 유무가 될 수도 있습니다. 정수기 위 바구니의 경우에는 정리정돈이라는 방향보다는 약 관련 이야기로 끌고 가는 것이 재수학원에서 만났던 약을 꼼꼼히 챙겨먹는 형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지기에 후자를 선택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소재에 대한 선정은 로봇이 일을 하나하나 수행하는 느낌이라기보다는, 뇌에서 순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에 가깝습니다. 저 또한 직접 글로 쓰는 과정에서 ‘내가 이런 식으로 생각해서 소재를 다듬었던 것이구나’ 라고 새삼 느끼게 되네요. 막상 실제 삶에서는 메모만 확실히 이루어질 뿐 중간 단계들은 머리속에서 뭉뚱그려 처리되곤 하네요. 

만약 이 글을 읽으시는 독자님께서 만화 소재를 선정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신다면 마사토끼님의 만화 스토리 매뉴얼을 추천드립니다. 소재 메모 및 정리 과정에 대해 아주 상세하게 설명되어 있고, 일상툰 작가에게도 유용한 팁들이 다수 있습니다. 


Q: 일상과 잡화의 공통점은 별것 아닌 듯 보이지만 손에 쥐였을 때 소중하게 여겨진다는 점에 있습니다. 포스타입에서 올리신 공지나 디시인사이드에 올리신 만화로 미루어볼 때 “이세계 잡화상”이라는 제목의 시리즈가 계획되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할배툰]을 준비하시면서 포스타입을 접으셨는데요. 추후 [할배툰]의 연재가 종료되고 나면 “이세계 잡화상”을 만나볼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자잘한 질문도 몇 가지 드려보고 싶습니다. 평소 창작하실 때 사용하는 기계나 도구가 궁금합니다. 만화 중간에 언급되었던 [할배툰]의 콘티도 보고 싶습니다. 또한 평소 영화 리뷰도 자주 하셨는데요, 기억에 남는 영화나 만화 몇 개를 소개받고 싶습니다. 일단 [죠죠의 기묘한 모험]을 인상깊게 읽으신 것처럼 보이고요. 

A: ‘이세계 잡화상’까지 언급해 주실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중세 풍의 이세계에서 쓸데없어 보이는 현대의 물건을 판매하는 아이디어는 저 말고도 세계의 많은 작가들이 이미 한 번쯤 떠올려 본 아이디어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저는 이 소재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꽤나 소탈한 매력이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회사 사무실 바닥에 떨어진 고무줄은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쓰레기지만, 이것이 만약 중세 시대로 넘어간다면 얼마나 많은 대장장이들과 학자들이 고무줄하나를 둘러싸고 경탄을 금치 못할까요? 중세로 넘어간 라면 스프는 그 이국적이면서 환상적인 맛으로 황실에서 수프를 대접할 때만 쓰일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상상들이 너무나도 재밌었고, 소재도 꽤 다양하게 나올 것이라 생각하여 하나의 시리즈로 기획했었습니다만, 현재는 말씀대로 일상이 소재인 할배툰을 연재하고 있어 보류된 상황입니다. 하지만 할배툰에서도 중간에 별거 없는 초능력자들의 이야기가 등장하였듯이, 중간중간 이세계 잡화상과 같은 색다른 이야기를 보여 드리는 것을 적극 고려하고 있습니다. 레바 작가님의 ‘레바툰’을 보다 보니, 작가의 개인적인 일상 이야기와 더불어 다양한 이야기를 취급하는 이야기 잡화점처럼 할배툰을 운영하는 것이 꽤 매력적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창작할 때는 인튜오스 프로 pth-651 판 타블렛을 사용합니다. 중고 액정 타블렛을 구매해보기도 하였지만, 책상을 너무 크게 차지하고 무엇보다 목 건강에 좋지 않다는 느낌이 들어 다시 중고로 처분해 버렸습니다. 제 컴퓨터 본체는 군생활 때 샀던 녀석인데, 1070ti라는꽤 힙한 라인의 그래픽카드가 달린 녀석을 조립해서 아직까지 잘 쓰고 있습니다. 당시에는 고사양 축에 속했는데 이제는 중간보다 하위 라인이 된 것 같네요. 할배툰의 글 콘티[1]는 메일로 첨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림 콘티는 안타깝게도 제가 같은 파일 위에 작업을 해 버린 후 레이어를 삭제해버려서 현재 가진게 따로 없습니다ㅠㅠ)

기억에 남는 만화, 특히 애니메이션은 역시 ‘천원돌파 그렌라간’이네요. 제가 감수성이 풍부했던 고등학생 시절때 보았던 만화인 만큼 보는 동안 그 세계에 푹 빠져 살았습니다. 그런 스토리를 상상해내고 시각적으로 구현해내는 작업에 대해 엄청난 동경심을 가지기도 했고요. 그런 것 치고는 정주행을 많이 하진 않았지만, 처음 봤을 때의 감동과 몰입감은 엄청났습니다. 특히 극장판 마지막의 엔딩 노래와 연출이 너무 감동적이라 요즘도 가끔 유튜브에서 찾아보곤 하네요. 

영화로서는 역시 ‘에일리언’ 시리즈를 추천합니다. 잔인한 것과 공상 과학 영화 둘 모두를 좋아하는 저로서는 정말 축복과도 같은 영화입니다. 다만 시리즈의 특성상 다른 사람에게 에일리언 시리즈를 추천하는 것은 인생 음식으로 쟁반짜장을 추천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들 먹으면 맛있는 음식인 건 알지만, ‘굳이?’ 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그런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하지만 저는 쟁반 짜장을 좋아합니다. 

또 아리 애스터 감독의 ‘미드소마’, ‘보 이즈 어프레이드’, ‘유전’ 등을 아주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적당히 불쾌하면서 적당히 공포스러운 느낌이 너무 좋아요.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헬보이’ 시리즈와 같은 영화들도 좋아합니다. 어두컴컴한 느낌이 참 매력적이에요.


Q: 마지막으로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하며, 이야기는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독자분들께 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을까요? 

A: 항상 감사합니다. 제 만화에 독자 캐릭터는 어느덧 하나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것 같습니다. 가끔은 투덜대며 욕도 하고, 가끔은 제 얼굴에 침도 뱉고, 가끔은 아무말 없이 저에게 맞기도 하지만요. 만화 외적으로도 내적으로도 증조할배에게 독자는 참 중요한 존재입니다. 기원후 2023년, 이 넓은 우주에서, 지구에서, 아시아에서, 대한민국에서, 작가와 독자로 만난 우리들은 얼마나 말도 안 되는 확률을 뚫은 것일까요? 한 시대 재미있게 살다 가 봅시다. 감사합니다.


▼ (편집자 주) 증조할배 작가의 실제 글콘티 작업 내용을 그대로 전달합니다.

글콘티 작업 방식을 궁금해 하시는 독자 및 예비 작가들에게 도움이 되시길 바랍니다. 



[1]글콘티

실내사이클만화 *의도를 살리고자 별도의 가독성 작업 없이 옮깁니다.  


사이클 타는중..

트르르륵! 크아악!!

인간 당고 되는줄 알았음 ㄹㅇ

낡아서 그런지 조임쇠가 좀 헐렁해졌는데 못봄


아버지가 예전~에 어디서 주워오신 사이클인데

2000년대 중후반 헬스장에 있을 것 같은 디자인임

요즘 신식 헬스장 사이클들에 비하면 투박하다


한동안 아버지가 좀 타셨지만

아버지는 사이클보다는 런닝파시기도 해서 애가 자주 놀았다

결국 여느 집과 매한가지로 빨래걸이로 잠시 전락했지만


요즘은 내가 다시 타고 있다

이거 최근에 좀 재미나게 타는법 알아냈는데

어른패드를 앞에 두고 선풍기를 튼다

땀도 덜나고 죙일 타기 가능함


이게 땀이 많이 나야 운동이 되는 줄 알았는데

우투브 찾아보니 꼭 그런게 절대 아니라고 한다

오히려 땀이 많이나면 운동에 방해가 된다고..!


일케 타면 진자 좋음

어른패드에는 뭘 트냐? 약간 선정적인걸 보면 좋다

피와 유혈이 낭자한거 보면 좋음

어디 노래방 '자연' 탭에 나올거같은

알프스 산맥 경치 이런거 보면 안된다

약간 힘든 상태에서는 불만이 많아지기때문에

알프스는 왜 이름이 알프스지? 개빡치네? 이런생각이듬!


따라서 막 치고박는 영화나 박고치는 영화를 보면 좋다

오우 예 쒯 맨

어차피 심장박동이 올라가는 영상물들..

몸과 정신이 개오개이거마냥 혼연일치가 된다


그렇다고 막 너무 성인틱한거를 보면 안된다

그럼 집중이 안됨!! 시도해보진않았는데 그럴거같음!


필진이미지

수차미

< 만화평론가> 
* 2019 만화영상진흥원 만화평론상 신인 부분 
* 2019 한국예총 평론상 영화 부문
* 2020 서울시립대 영화평론 공모전 대학원생 부문
* 2024 부산일보 신춘문예 영화평론 부문
* 저서 『안녕하세요 오즈 야스지로』,『포스트 시대의 영화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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