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호 작가와 <장례식 케이크 전문점 연옥당> 이야기
![<장례식 케이크 전문점 연옥당> 산호 작가의 <장례식 케이크 전문점 연옥당> 1권 표지 [문학동네 제공]](https://www.kmas.or.kr/img/archive/webzine/bbs/images/000083/20260828094528700_7K5QI5IT.jpg)
여름의 끝자락, 반가운 소식 하나가 한국 만화계에 도착했다.
한국 만화 최초의 아이스너 상! <장례식 케이크 전문점 연옥당(이하 연옥당)>으로 아이스너 상을 받은 산호 작가에게 수하기 너머 그날 이후의 이야기를 들었다.
<연옥당>의 아이스너 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리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산호입니다. 만화를 그리고 있습니다.
만화<장례식 케이크 전문점 연옥당>과 <그리고 마녀는 숲으로 갔다>, <비와 유영>,<유리병 속의 나나니> 등을 그렸습니다. 책 표지와 포스터 등을 통해 일러스트레이터로서도 작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끈기가 없는 편인데, 유일하게 그만두지 않았던 것이 그림이기에 계속 해 나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이스너 상 수상 소식을 처음 접한 순간의 상황과 기분이 궁금합니다.
후보에 올랐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그 자체만으로도 감사한 기회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실제 수상 소식은 일을 하다가 잠깐 SNS를 보고 있을 때, <연옥당> 미국판을 낸 다크호스 출판사의 축하 게시물을 통해 처음 확인했습니다. 처음에는 ‘정말 맞는 소식인가?’, ‘다른 만화를 잘못 올린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당황했어요.
기쁘기도 했지만 곧바로 실감이 나지는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많이 놀랐고, 수상 사실 자체가 비현실적인 사건처럼 느껴졌습니다. 이후 주변에서 함께 기뻐해 주시는 모습을 보며 조금씩 실감하게 됐습니다.
![<장례식 케이크 전문점 연옥당> <장례식 케이크 전문점 연옥당> 본문 이미지 [문학동네] 제공](https://www.kmas.or.kr/img/archive/webzine/bbs/images/000083/20260828094624512_O563BH69.jpg)
<연옥당>은 어떤 작품인지 설명 부탁드리겠습니다.
<연옥당>은 고인에게 케이크를 만들어 영전에 올리며 추모하는 풍습이 있는 가상의 마을을 배경으로 한 만화입니다. 떠나간 사람들을 기억하면서, 그들이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남긴 흔적을 다시 돌아보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죽음과 애도를 다루지만, 상실의 슬픔만으로 고인을 기억하기보다 그 사람과 함께했던 즐겁고 행복한 기억도 함께 되새기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독자에게 무거운 감정만 남기기보다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편안한 자리에서 건네받는 듯한 감각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연옥당>을 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을까요?
<연옥당>은 제가 처음으로 완성해 본 만화입니다. 이 작품을 만들게 된 계기는 제가 왜 만화를 시작했는지와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영화를 전공하면서 선후배와 동기들의 영화 스토리보드를 그리곤 했는데 한 컷 한 컷이 모여 하나의 이야기를 완성하는 과정이 무척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 말도 이런 형식에 담아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이야기 자체에는 어린 시절의 경험, 가까운 사람들을 잃었던 기억, 그리고 오래전부터 좋아했던 괴물이라는 요소에 대한 흥미가 함께 섞여 있습니다. 당시 제가 이미지로 보여주고 싶었던 것들의 총체가 <연옥당>에 담겼다고 생각합니다.
![<장례식 케이크 전문점 연옥당> <장례식 케이크 전문점 연옥당> 본문 이미지 [문학동네 제공]](https://www.kmas.or.kr/img/archive/webzine/bbs/images/000083/20260828094703239_W5FZ7PRO.jpg)
<연옥당>에서 불교의 사십구재와 가톨릭의 연옥 개념을 결합한 것은 처음부터 의도된 것이었나요?
처음부터 여러 문화권의 개념을 섞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작품 속 ‘연옥’은 현재 우리가 사는 실재 세계의 원본에 가까운 장소라는 설정이에요. 지금 세상에 존재하는 많은 개념이 이미 그곳에서는 혼재되어 있었고 이후 그것들이 사십구재나 가톨릭적 연옥 같은 개념으로 각각 나뉘어 나갔다는 식으로 생각했습니다. 현실의 종교 개념을 그대로 결합하기보다 세계관의 기원이 현실보다 앞선다는 역순의 설정을 둔 셈입니다.
그래서 두 개념이 충돌해 개별 규칙을 조정했다기보다는 애초에 서로 다른 문화와 관념이 한데 섞여 있는 세계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배경을 보았을 때 아시아권인지 유럽권인지 명확히 단정하기 어려운 세계, 익숙한 환경 안에 낯선 요소가 놓여 있는 세계를 원했어요.
망자를 위한 음식으로 케이크를 선택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케이크를 선택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어린 시절의 경험이었습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살던 집 바로 옆에 무연고 묘가 있었는데 이사 가던 날이 제 생일 무렵이었어요. 떠나기 전에 인사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냉장고에 있던 생일 케이크 일부를 묘가에 두고 왔던 기억이 있습니다. 나중에 다시 수거해 오기는 했지만 생일을 축하하려고 마련한 케이크가 돌아가신 분께 올렸다는 기억이 오래 남았습니다.
한국의 장례 문화에서는 케이크를 일반적으로 제의 음식으로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 그 기억을 떠올렸을 때 ‘있을 법하지만 낯선’ 이미지로 느껴졌습니다. 그 낯섦이 <연옥당>의 추모 방식으로 이어졌습니다.
케이크와 에피소드 중 무엇을 먼저 구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두 방식이 모두 있습니다. 어떤 케이크는 먼저 떠오른 뒤 그 케이크에 맞는 에피소드가 생각나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이야기를 갈무리하고 이어가다 보니 에피소드가 차곡차곡 쌓여 케이크의 층처럼 하나의 형태를 이루기도 합니다. 즉, 케이크가 먼저 서사를 이끄는 경우도 있고 서사가 쌓인 끝에 케이크의 디자인이 완성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실제 베이킹을 전문적으로 하지는 않지만 디저트를 좋아하고, 베이킹 서바이벌 프로그램과 오래된 영미권의 베이킹 책을 많이 보면서 케이크의 기법과 시각적 표현을 익혔습니다. 작품에서는 그 자료를 바탕으로 레시피 북 같은 분위기와 일러스트적 표현을 함께 살려보고 싶었습니다.
![<장례식 케이크 전문점 연옥당> <장례식 케이크 전문점 연옥당> 본문 이미지 [문학동네 제공]](https://www.kmas.or.kr/img/archive/webzine/bbs/images/000083/20260828094815956_4FNYYDN0.jpg)
죽음과 애도를 다루면서도 작품이 무겁게 가라앉지 않는 이유와, 의식적으로 사용한 연출이 있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연옥당>을 그리는 동안 외할머니를 떠나보냈습니다. 처음에는 슬픔이 너무 커서 할머니와의 즐겁고 행복했던 기억까지 압도해 버리는 듯했고 일상생활이 어려울 정도였어요. 그 경험을 지나면서 애도는 필요하고 피할 수 없는 일이지만, 남은 사람이 고인을 괴로움으로만 기억하는 것은 떠난 이가 바랄 방향이 아닐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작품에서는 떠나간 사람과의 즐거운 에피소드도 함께 담으려 했습니다. 핵심은 슬퍼하지 않자는 것이 아니라 슬퍼하되 그 슬픔이 그 사람 자체를 짓누르고 지워버리지 않도록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특정한 작화 기법이나 연출 장치를 별도로 언급했다기보다는, 죽음이라는 사건이 남기는 슬픔을 부정하지 않으면서 고인이 남긴 기억과 일상의 온기를 고스란히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지 고민했습니다.
<연옥당>에서 아쉬웠던 부분이나 넣고 싶었지만 넣지 못한 에피소드가 있을까요?
<연옥당>은 에피소드 형식이라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계속 이어갈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지금의 제가 이 세계관 안에서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모두 했다고 느껴요. 그래서 특정 에피소드를 반드시 넣지 못했다는 아쉬움보다 연옥이라는 세계의 구성원들을 조금 더 다양하게 그려보고 싶었다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에피소드가 중심인 구조이다 보니 매력적인 인물들이 있어도 그들의 면면을 더 넓게 보여줄 기회가 적었습니다. 언젠가 기회가 닿는다면 그 구성원들을 더 다양한 방식으로 다루어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다크호스 코믹스와 작업하면서 한국 출판사와의 협업과 달랐던 점이 있다면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이번 영어판의 경우에는 ‘문학동네’가 번역판 제작 과정의 많은 부분을 담당하고 조율해 주셨기 때문에 제가 한국 출판사와 완전히 다른 시스템을 직접 체감한 부분은 크지 않았습니다. 인쇄나 책 안에 들어가는 내용, 해외 출판사와의 소통 등은 문학동네에서 세심하게 살펴주셨고, 저는 최종 데이터를 점검하거나 수정이 필요한 지점을 요청하는 역할을 주로 했습니다. 제가 요청한 수정도 원활하게 반영됐습니다.
다만 번역판을 만들 때 가장 큰 고민은 언어권에 맞게 특정 단어, 문장, 상호, 지명을 어떻게 옮길 것인가였습니다. 작품의 세계관과 정서를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번역을 찾는 일이 중요했어요. 미국판은 이미지 수정이나 별도 요구사항에서 한국판과 큰 차이를 느끼지 못했고 소통도 빠르고 배려가 있었다고 느꼈습니다. 반면 일본판에서는 표지 일러스트를 현지 시장에 맞게 조정하고 컬러 페이지를 추가하는 등, 현지화가 더 두드러졌습니다.
![<장례식 케이크 전문점 연옥당> <장례식 케이크 전문점 연옥당> 본문 이미지 [문학동네 제공]](https://www.kmas.or.kr/img/archive/webzine/bbs/images/000083/20260828095004703_KR96IR2E.jpg)
‘텀블벅 → 문학동네 단행본 → 다크호스 영어판 → 아이스너’라는 경로에서, 지금을 만든 분기점은 어디였나요?
저에게 가장 큰 분기점은 결국 시작점이었던 것 같습니다. 만화를 그리겠다고 최종적으로 결정할 때, 독립출판사를 운영하는 편집자님께서 “작가님, 만화 언제 하실 거예요?”라고 물으신 적이 있어요. 당시 사실 준비된 것은 거의 없었는데 저는 충동적으로 “지금 하고 있어요”라고 답해 버렸습니다. 그렇게 말한 이상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40쪽 정도의 단편을 생각하며 <연옥당>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또 대학 재학 중 독립출판을 해보고 싶다고 말했을 때 주변에서 수익성을 이유로 만류한 경험도 있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오히려 ‘독립출판으로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고, 만화 작업을 적극적으로 이어가게 됐습니다. 그래서 지금의 경로를 돌아보면 완벽하게 준비된 뒤 시작한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한 약속과 그 약속을 지키려는 마음이 가장 중요한 출발점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미국 만화 업계 종사자들은 <연옥당>의 어느 부분에 재미를 느낀 것 같나요? 한국 독자와의 차이도 궁금합니다.
미국 독자들의 피드백을 아주 많이 받은 것은 아니어서 조심스럽지만, 전체적으로는 <연옥당>의 세계관 자체에 흥미를 느껴주시는 것 같았습니다. 케이크 역시 지금은 굉장히 글로벌하고 친숙한 소재이기 때문에 낯선 연옥의 세계로 들어가는 하나의 친근한 입구가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반면 한국 독자분들은 개별 인물들 사이의 관계성에 조금 더 깊이 들어가 주시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같은 작품이라도 문화권과 읽기 경험에 따라 매력적으로 느끼는 지점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습니다. 다만 이야기의 대중성에는 내용뿐 아니라 매체의 대중성도 작용한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에서는 그래픽노블과 페이지 기반 출판만화가 익숙한 문법이기에, <연옥당>도 그 형식 안에서 자연스럽게 읽힐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드디어 한국 만화의 차례가 왔다”는 평가를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한국에서 살아온 경험과 한국의 문화적 유산이 제 작업에 준 영향은 절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수상을 단순히 ‘K-만화의 승리’ 같은 경제적·사회적 지표로만 이야기하는 데에는 조심스러운 마음이 있습니다. 정말 좋은 한국 만화가 많지만, 그것들이 충분히 소개되고, 번역되고, 해외 독자에게 닿을 수 있는 창구는 여전히 적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저는 웹툰을 매우 좋아하지만 웹툰 외에도 다양한 출판만화와 독립만화가 손에 잡히는 책의 형태로 더 널리 유통되면 좋겠습니다. 특히 작고 마이너한 영역의 작품까지 발굴되어 번역되고 소개될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한국 만화의 차례’라는 말이 의미 있으려면 상징적인 수상에 그치지 않고 만화 자체를 더 깊이 바라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도서관과 유통 현장에서도 만화를 동등한 책으로 받아들이는 환경이 함께 마련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마녀는 숲으로 갔다>와 <비와 유영>을 해외 독자가 만날 기회가 예정되어 있나요? 소개된다면 어떤 부분을 흥미롭게 볼까요?
<연옥당>은 여러 언어로 번역·출간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녀는 숲으로 갔다>는 중국어 간체자판 출간이 예정되어 있으며 스페인어판도 논의 중이라고 들었습니다. <비와 유영> 또한 일본어판이 출간되어있습니다. 문학동네에서도 제 차기작과 다른 작품들의 해외 출판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논의해 주고 계십니다. 독자에게 가장 익숙한 언어로 작품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조금씩 늘어나는 점이 기쁩니다.
<그리고 마녀는 숲으로 갔다>에는 자연과 환경에 대한 관심, 더 많은 인물들이 얽히는 긴 이야기의 욕구가 담겨 있고, <비와 유영>은 도시적 해안인 광안리에 인어를 놓는 식으로 익숙한 일상에 낯선 존재를 배치하는 상상에서 출발했습니다. 그런 세계관과 이미지가 각 언어권 독자에게도 흥미로운 진입점이 되기를 바랍니다.
![<장례식 케이크 전문점 연옥당> <장례식 케이크 전문점 연옥당> 본문 중에서 [문학동네 제공]](https://www.kmas.or.kr/img/archive/webzine/bbs/images/000083/20260828095132717_YO6MVSDV.jpg)
웹툰이 주류가 된 시기에 출판만화 형식을 선택한 이유와 차기작의 형식이 궁금합니다.
저는 웹툰을 보며 자란 세대입니다. 학창 시절에는 네이버와 다음웹툰을 요일별로 찾아보던 어린이였고 보는 사람으로서는 웹툰이 매우 익숙한 형식이었습니다. 하지만 직접 만화를 만들려고 할 때는 스크롤보다 책을 펼쳤을 때의 가로 형식과 공간감이 저에게 더 잘 맞는다고 느꼈습니다. 영화를 전공해 가로 화면의 이미지를 오래 보아 왔기 때문에 큰 가로 이미지와 양면 펼침이 가능한 페이지의 공간을 더 필요로 했을 수도 있습니다.
저는 스크롤은 시간의 흐름과 독자의 시선을 설계하는 데 탁월하고, 페이지 만화는 한 페이지 또는 펼침면의 규모와 공간감을 전달하는 데 강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 작품은 처음부터 페이지를 전제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지금으로서는 출판만화의 형식으로 차기작을 계속 진행하려 합니다. 다만 언젠가 스크롤의 형태에 맞는 이야기가 떠오른다면 그때는 그 이야기에 맞는 형식을 선택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연옥당>과 <그리고 마녀는 숲으로 갔다> 두 작품의 주인공이 경계 밖 또는 중간 지대에 위치한 인물처럼 보입니다. 그렇게 설정한 이유가 있을까요?
저는 주류에서 벗어난 존재, 혹은 사회적 통념에서 어긋났다는 이유만으로 ‘괴물’로 낙인찍히는 존재들에 대해 오래 생각해 왔습니다. 저 역시 사회가 요구하는 정상성 안에 안전하게 편입되어 있다고 느껴본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어릴 때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일도 힘들어했습니다. 개인적인 정체성이나 삶을 이루는 요소들이 거대한 사회적 흐름과 항상 함께 갈 수는 없다는 감각이 있었고, 그런 감각이 작품 속 인물에도 자연스럽게 담기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제가 하고 싶은 것은 소외를 비극으로만 그리는 일이 아닙니다. 세상 바깥으로 밀려난 존재들도 이야기 안에서는 주인공이 될 수 있고, 그들이 머무를 집 같은 공간이 생길 수 있다고 믿습니다. 김언희 시를 읽으며 세상 가장 바깥에 있던 존재들이 시 안에서는 오히려 주연이 되는 경험에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또 <유리병 속의 나나니>처럼 주변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인물이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저는 픽션이 소외된 존재가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을 늘려 준다고 생각합니다. 제 책도 누군가에게 그런 작은 안식처가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연옥당>과 <그리고 마녀는 숲으로 갔다> 에서 ‘한 번 소멸한 뒤 다시 시작되는 것’은 작가님에게 원래대로 돌아가는 일인가요, 전혀 다른 무언가가 되는 일인가요?
저에게 다시 시작한다는 것은 원래대로 돌아가는 것보다는 전혀 다른 무언가가 되는 일에 가깝습니다. 한 번 모두 불타버리고 없어진 다음 그 위에서 새롭게 싹트는 것은, 이전과는 다른 결말과 진행을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을 품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두 작품에서는 결이 조금 다릅니다. <연옥당>에는 장례를 치른 뒤 살아 있는 사람이 자신의 삶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의미가 어느 정도 담겨 있습니다. 반면 <그리고 마녀는 숲으로 갔다>에서는 산불로 타버린 자리에서 절망이 아닌 다른 것이 싹트기를 바라는 마음이 더 큽니다. 잿더미가 새로운 것을 키우는 양분이 될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연옥당>과 <그리고 마녀는 숲으로 갔다>를 병행하며 세계관과 정서가 다른 작품을 오가는 일이 힘들지는 않았나요?
두 작품을 완전히 같은 시기에 동시에 진행했다기보다는 약 5~6년에 걸쳐 한 시리즈의 한 권을 마치고 다른 시리즈의 한 권을 작업하는 식으로 번갈아 진행했습니다. <연옥당> 1·2권은 비교적 연달아 작업했고 3권에는 간격이 있었으며, <그리고 마녀는 숲으로 갔다>도 1·2권을 이어 작업했습니다. 기획과 작업 시기가 맞물리며 결과적으로 두 작품이 퐁당퐁당 진행된 형태였습니다.
세계관이 달라서 큰 혼동이 있었다고 느끼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두 작품을 오가며 서로의 그림체에 영향을 준 부분은 있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연옥당> 1·2권과 3권을 비교하면 선이 점점 가늘어지고 화풍이 달라지는데, 그 사이 다른 작품을 작업한 시간이 변화에 영향을 주었을 수 있습니다.
해외 만화 업계의 인정과 국내 도서·문학계의 인정을 동시에 받은 경험은 어떻게 다가오나요?
국내든 해외든, 제 이야기를 재미있게 읽어주시고 상을 주시는 분들께는 우선 무한히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한국에서도 재미있게 읽어주시고 해외에서도 재미있게 읽어주신다면 그것은 결국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계속해도 된다는 용기가 됩니다.
국내 상과 해외 상의 성격은 다를 수 있지만 재미있는 이야기를 찾는 사람의 마음 자체는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두 인정 모두 ‘이 이야기가 만화로서 잘 읽혔다’는 뜻처럼 느껴져 기쁩니다. 동시에 수상을 계기로 더 많은 사람이 만화를 읽게 된다면 좋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펀딩과 독립출판에서 제도권 출판, 해외 수상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포기할 수 없었던 것과 포기해야 했던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연옥당>과 <그리고 마녀는 숲으로 갔다>의 경우, 편집부가 내용 자체를 수정하라고 요청한 부분은 없었습니다. 교정·교열 과정에서 대사를 더 좋은 방향으로 다듬자는 제안은 있었지만 책으로 만들기 위해 그리고자 했던 것을 포기해야 했던 경험은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하고 싶은 말을 모두 다 담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만들고자 한 이야기의 핵심을 그대로 책으로 낼 수 있었다는 점은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두 작품이 초등학교 도서실에도 놓일 수 있는 책이기를 바랐기 때문에 스스로 절제하거나 검열한 부분은 있었을 수 있습니다. 특히 포기하기 어려운 것은 문장의 운율과 대사의 무게입니다. 어떤 대사는 그 문장 자체가 들어가야 한다고 느껴질 때가 있어, 그때는 유지하는 편이 낫다고 말씀드립니다. 반대로 편집자의 객관적인 시선에서 나온 수정은 시간이 지난 뒤 더 나은 선택이었다고 느낄 때도 많습니다. 결국은 여러 사람의 도움 속에서 지킬 것과 조율할 것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장례식 케이크 전문점 연옥당> <장례식 케이크 전문점 연옥당> 본문 중에서 [문학동네 제공]](https://www.kmas.or.kr/img/archive/webzine/bbs/images/000083/20260828095442692_XXXFRPR4.jpg)
독립만화 전시 행사인 ‘하고 싶은 만화전’에 꾸준히 참여하는 이유와, 독립만화에 대해 하고 싶은 말씀을 들려주세요.
저는 만화가 조금 외로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혼자 그리는 시간이 많고, 이야기가 제대로 흘러가고 있는지 작업하는 사람조차 확신하기 어려울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고 싶은 만화전’이나 ‘칸새’ 같은 독립만화 행사에 가면 모두 함께 만화를 그리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창작자들이 서로의 이야기와 작품 이야기를 나누고 혼자 고립되지 않을 수 있는 커뮤니티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꾸준히 참여하고 있습니다.
독립만화에 대한 관심이 커질수록 실무자와 창작자가 의견을 나눌 장도 더 커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창작의 즐거움을 나눌 공간뿐 아니라 작품이 활발히 유통될 경로도 필요합니다. 행사에 나온 책들은 ISBN이 없어 일반 서점에 등록되지 않고 작가가 직접 판매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또 개인적으로는 독립만화 행사가 신작을 준비하게 만드는 현실적인 마감이 된다는 점도 큽니다. 저는 마감이 없으면 작업을 잘 못 하는 편이라, 행사 덕분에 책 두 권을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행사가 더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작업을 하며 힘을 얻은 원동력이나 조언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첫 번째로는 지금 세상에 나오고 있는 거의 모든 만화에서 힘을 얻습니다. 만화는 노동집약적이고 고된 일이지만, 신간 코너에서 많은 만화를 볼 때면 ‘다들 계속 만화를 하고 있구나, 우리 행복하게 끝까지 만화하자’는 동료 의식을 느끼게 됩니다.
또 통화하며 함께 작업하는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가 자기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아내는 태도에서 큰 용기를 얻습니다. 그리고 만화 가판대에서 책을 보는 독자, 후기를 남겨주는 독자에게도 많은 힘을 받습니다. 제 이야기는 읽어주는 분들이 없으면 혼잣말에 지나지 않지만 독자가 읽어 줄 때 비로소 하나의 이야기로 힘을 얻는다고 생각합니다.
첫 화를 그리려는 작가에게 실무적인 조언 한 가지를 한다면 무엇인가요?
완벽하게 시작하려고 하지 말고 엉성하더라도 하나를 끝까지 완성해 보는 경험을 해보셨으면 합니다. 첫 이야기를 시작할 때는 이미 많은 좋은 만화를 보고 자랐기 때문에 자기 결과물이 성에 차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를 시작해 완성까지 밀고 나가 본 경험이 다음 이야기로 나아가는 힘이 됩니다.
그리고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 솔직해지는 일이 중요합니다. 사람마다 살아온 모습이 다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이야기도 다르고 자기 이야기는 결국 자기만 할 수 있습니다. 남의 작품보다 조금 부족해 보일 수는 있어도 그 작품이 오롯이 나만의 것이라는 생각으로 시작하면 조금 더 편하게 작업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국 만화에 어떤 작가로 기록되고 싶은지 궁금합니다.
조금 외로워서 만화책을 펼친 사람이 제 책을 편안한 공간이나 안식처처럼 느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또 ‘이 사람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잘 전달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드는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 지금보다 더 노력해서 적어도 제가 하고 싶은 것의 70~80퍼센트까지는 담아낼 수 있는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
한국 만화에 어떤 작가로 기록되고 싶은지를 생각하면, ‘할 말이 많았던 작가’,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서 만화를 한 사람’으로 남고 싶습니다. 나중에 누군가가 ‘이 사람은 왜 이렇게 만화를 많이 그렸지, 왜 이렇게 할 말이 많았지’라고 생각해 준다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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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식 케이크 전문점 연옥당> <장례식 케이크 전문점 연옥당> 2권 표지 [문학동네 제공]](https://www.kmas.or.kr/img/archive/webzine/bbs/images/000084/20260828095638240_T4XBCHX0.jpg)
[또 하나의 이야기]
문학동네 만화편집부 이보은 과장에게 듣는 <장례식 케이크 전문점 연옥당> 이야기와 문동 만화편집부
최근 문학동네 만화를 자주 사서 읽게 됩니다. <해변의 스토브>부터 <에도의 장인들> 등 서점에서 발길을 멈추게 하는 만화책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문학동네 만화편집부의 목표와 꿈, 그리고 운영과 결성의 배경 등에 대해 간략하게나마 알고 싶습니다.
문학동네 만화편집부는 다섯 명의 편집자가 일하며 종수만이 아니라 장르도 폭넓게 출간하고 있습니다. 오리지널 출판 만화, 구간 명작의 복간, 웹툰 단행본, 번역 만화 등 라인업이 다양해요. 최근에는 ‘빗금’이라는 브랜드를 론칭하여 만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취향을 두루 아우르는 작품을 선보이려고 합니다.
이렇게 다양한 만화책을 출간할 수 있는 것은 각 편집자의 취향이 반영된 기획 작품이 책으로 만들어진 덕분입니다. 그것이 문학동네 만화편집부의 특징이자 강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만화편집부의 일원으로서 제 목표와 꿈을 말씀드리면 ‘재미있고 이야기에 힘이 있는 만화책을 만드는 것’입니다. 책을 덮은 뒤에도 오래도록 기억나고 다른 사람과 함께 읽고 싶은 만화를요. 저 역시 만화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다른 사람에게 자꾸 추천하게 되는 작품이 있거든요. 그런 작품을 책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출판할 만화의 선정은 어떻게 하시는지? 어떻게 조사하고, 어떤 기준으로 선택하고, 어떤 과정으로 출판하는지 알고 싶습니다.
만화편집부는 기획회의를 해서 출간작을 선정합니다. 편집자가 검토하고 싶은 작품을 공유하면 편집부 모두가 함께 읽고 출간 여부를 살펴봅니다. 검토 의견을 나누면서 오퍼에 긍정적인 작품은 내부 승인을 거쳐 계약을 진행합니다. 오퍼할 작품은 재미뿐 아니라 편집부의 방향성과 잘 맞물리는지도 판단 기준이 됩니다.
작품을 검토하는 방법은 편집자마다 다를 듯싶습니다만, 저는 국내와 일본 만화를 조사하는 과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일본 만화는 웹에서 연재되거나 작가의 SNS에서 공개하는 작품도 많다보니 실시간으로 볼 수 있게 되었어요. 신간 정보는 출판사 홈페이지나 온라인 서점에서 찾아보고, 에이전시에서 소개해주는 작품도 살펴봅니다.
국내의 오프라인 만화 행사도 자주 찾아갑니다. ‘칸새’, ‘하고 싶은 만화전’ 등 창작자가 많이 모이는 행사가 열리는데요, 그 현장을 찾아가 다양한 창작자가 그려낸 작품들을 읽어봅니다. 오프라인 행사의 좋은 점은 만화를 바로 읽을 수 있고 사람들의 반응을 즉시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현장에 있다 보면 요즘 독자들이 읽고 싶어하는 만화가 무엇인지 동향을 짐작할 수 있어요.
![<장례식 케이크 전문점 연옥당> <장례식 케이크 전문점 연옥당> 3권 표지 [문학동네 제공]](https://www.kmas.or.kr/img/archive/webzine/bbs/images/000084/20260828095723462_WB1EVQ33.jpg)
이번에 <연옥당>이 아이스너 어워드에 선정된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작가의 공이 가장 크지만, 책을 잘 만들고, 잘 알린 편집부의 역할도 적지 않았을 거라 생각합니다.
처음 <연옥당>을 출판하게 된 계기와 과정이 궁금합니다.
이 작품은 ‘텀블벅’에서 처음 만났습니다. 작품 소개, 빨강과 검정만으로 그린 그림에 호감이 일었습니다. 작품과 함께 공개된 작가님의 일러스트도 강렬해서 ‘이 작가님 너무 궁금하다!’ 생각했어요. 다른 출판사에서도 작가님께 연락을 드릴 것 같아 서둘러 연락드렸던 기억이 납니다. 작가님을 만나보니 작가님이 가지고 있는 이야기가 정말 많고 매력적이라서 함께 책을 만들고 싶다는 마음이 더욱 커졌습니다. 편집부와 마케팅팀 모두가 출간하자는 의견이어서 그 마음에 힘을 실을 수 있었어요.
텀블벅에서 워낙 인기를 받은 작품인지라 1권을 출간할 때 고민이 많았습니다. 단행본만의 특별함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에피소드 한 편을 새롭게 그리고, 텀블벅판에 수록했던 만화는 원고를 많이 보완했습니다.
1권은 특별판과 일반판으로 출간했어요. 특별판에는 친필 사인과 다이어리, 스티커 등을 담아 작가님의 일러스트와 작품관을 잘 담아낼 수 있는 세트로 만들었습니다.
<연옥당>이 출판된 지 몇 년이 되었습니다. 또한 해외 만화상에 한국 만화가 후보가 되고, 선정이 되는 게 쉽지 않은 일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번역과 출품과 선정 과정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만화 작가와 출판사가 꼭 알았으면 하는 내용이 있으면 공유 부탁드려봅니다
문학동네가 출간하는 작품들은 영어판 라이츠가이드를 만들어 저작권 팀을 통해 해외 에이전시 및 출판사에 소개하고 있습니다. 해외 출판사의 오퍼 기준을 알 수는 없지만 아마도 저희가 해외 만화를 검토하고 계약하는 흐름과 거의 동일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요즘은 SNS로 작가들의 창작 활동이나 작품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기에 작가에게 직접 연락하는 해외 출판사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연옥당>은 현재 9개국에 수출되었는데, 국내 만화로는 수출이 많이 된 편입니다. <연옥당>이 수상한 아이스너 상은 ‘최우수 아시아 만화 미국판 부문(Best U.S. Edition of International Material–Asia)’인데, 영어판으로 출간된 아시아 만화 중에서 선정됩니다. 영어판이 출간된 덕분에 후보에 오르고 상을 받을 수 있었지요.
해외에 출간되기 위해서는 작품의 존재를 적극적으로 알리는 것이 첫 번째라고 생각합니다. 많이 눈에 띄어야 한 번이라도 더 읽히고 그 만화에 재미를 느끼는 사람이 늘어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 면에서 문학동네 만화편집부는 출간 작품들을 해외에 열심히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향후 국내 만화 작가들과의 작업 등 문학동네 만화편집팀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그리고 국내 만화출판계 및 독자들에게 남기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작가님들이 만화를 계속 그리는 한, 그 작품을 만화책으로 만들어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것이 꾸준한 목표이자 계획입니다. 나아가 만화편집부가 만든 책을 읽어줄 독자분들을 찾고, 그분들이 읽고 싶어하는 만화가 무엇인지 살피고자 합니다. 만화를 그리는 사람과 읽는 사람이 없다면 책을 만드는 출판사도 존재하기 어려우니까요.
편집자로서는 앞으로도 꾸준히 재미있는 만화책을 만들어 만화 애호가들에게 좋은 이야기를 전하고 싶습니다. 내가 읽고 다른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은 만화책을 많이 만들고 싶습니다. <장례식 케이크 전문점 연옥당>처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