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 좋아하는 마음은 어떻게 이야기가 되는가 <요나단의 목소리> 정해나 작가
‘만화 속 인문학 톺아보기’ 두 번째 대담, 정해나 작가 × 한유희 만화평론가

좋아하는 연극을 서른 번씩 관람하고, 공연이 끝난 뒤에도 그 작품을 잊지 못해 다시 무대에 오르기를 기다린다. 작품의 배경이 된 장소를 찾아 영국으로, 인도로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그렇게 좋아하는 것을 따라 움직인 시간은 다시 글과 그림이 되고, 새로운 이야기로 이어진다.
<요나단의 목소리> 정해나 작가와의 만남은 쉽지 않았다. 마침 그날은 비가 쏟아지다 그쳤다를 반복하는 요상한 날이었다. 그리고 신청자가 너무 많아 장소를 넓은 곳으로 옮겼고, 그마저도 부족해 신청을 급하게 마감하였다.
<요나단의 목소리> 의 정해나 작가는 자신을 오랫동안 무언가에 깊이 빠져드는 사람이라고 소개한다. 아마도 작가의 이야기를 듣고 싶은 사람들 역시 무언가에 빠지고 싶은 사람들이었던 것 같다. 그 날씨에 그렇게 적극적으로 그곳에 모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한유희 평론가와 함께 다양한 작가의 모습을 만날 수 있었다. <요나단의 목소리>가 상처와 사랑, 종교와 정체성의 문제를 조용하고 섬세하게 다룬 작품이라면, <나의 오타쿠 생활>과 <타지마할에 미친 여자>에서는 좋아하는 마음을 숨기지 않고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작가의 또 다른 모습이었음을 이야기했기 때문이다.

한유희 평론가는 이러한 정해나 작가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키워드로 ‘사랑의 정신력’을 제시했다. 무언가를 좋아하는 마음이 단순한 감정에 머무르지 않고 사람을 움직이게 하며, 때로는 삶의 방향을 바꾸고 창작의 동력이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 ‘만화 속 인문학 톺아보기’ 대담은 <요나단의 목소리>에 관한 기존의 작품 해설에서 조금 벗어나, 정해나 작가가 무엇을 사랑하고 어떻게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사람인지에 집중했다.

좋아하는 마음은 오래 지속된다
정해나 작가에게 좋아한다는 것은 단순히 작품을 감상하는 일이 아니다. 좋아하는 작품이 생기면 여러 번 반복해서 보고, 그 안에서 새로운 의미를 찾아내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적극적으로 알린다.
“저는 영업을 하고 활동을 하면서 오래 간직하는 편이에요. 제가 ‘덕질’을 정말 많이 했는데, ‘덕질’하는 기간이 굉장히 길어요. 뭔가를 좋아하면 정말 큰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한 계속 좋아하거든요. 그런데 제가 대체로 좀 ‘마이너’한 작품들을 좋아해요. 그러니까 계속 영업을 할 수밖에 없게 돼요. ‘왜 다들 이걸 안 좋아하지? 왜 이렇게 좋은 걸 나만 좋아하지?’ 하면서요. 그런데 영업이 그렇게 성공적이지는 않습니다.” (웃음)
작가가 특히 좋아하는 작품은 연극 <타지마할의 근위병>이다. 2017년 초연 당시 서른 번 가량 관람했고, 8년 만에 다시 무대에 올랐을 때도 비슷한 횟수로 공연장을 찾았다. 그것도 모자라 작품의 배경이 된 인도의 타지마할까지 직접 찾아갔다. 작가는 실제 한 손에 가득 입장권들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런 성향은 어린 시절부터 이어져 왔다고 한다. 만화 대여점에서 타네무라 아리나의 <신풍괴도 쟌느>만 반복해서 빌려 보다가, 대여점 주인에게 그 돈이면 만화책을 두 세트는 샀겠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정도다.
“계속 다시 보고, 두 번째 세 번째 보면서 새로운 걸 찾아내고 새로운 생각을 하는 게 저의 오랜 습관이고 작품을 대하는 태도인 것 같아요.”
그렇다면 이렇게 오랫동안 지속되는 취향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는 것일까. 정해나 작가는 취향이 발견되는 동시에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처음 연극에 빠졌을 때는 연극이라는 이름만 붙어 있어도 재미있었지만, 여러 작품을 접하면서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좋아하지 않는지 점차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좋아하는 마음은 그렇게 반복되는 경험 속에서 조금씩 구체적인 취향으로 만들어진다. 그리고 정해나 작가에게 그 취향을 드러내는 일은 곧 자신을 소개하는 일이기도 하다.
“제 경우에는 ‘나는 이것을 진짜 좋아해’라고 말하는 건 ‘내 이름은 정해나야. 나는 만화를 그리고 있어’라고 말하는 것과 거의 똑같아요. 저를 소개하는 일이나 매한가지인 것 같아요. 저랑 친해지려면 제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아야 하잖아요.”
작가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더 많이 이야기하고, 무언가에 푹 빠져 있는 자신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나의 오타쿠 생활>이라는 제목에 굳이 ‘오타쿠’를 넣은 것도 그러한 생각에서였다.
좋아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일. 정해나 작가에게 그것은 자신을 드러내는 가장 솔직한 방식이다.

<요나단의 목소리> , 내 인생에 한 번은 필요했던 이야기
<요나단의 목소리>는 정해나 작가의 대표작이자, 그가 오랫동안 품어온 고민과 질문을 담아낸 작품이다. 그러나 작품이 많은 사랑을 받은 이후에는 다음 작품에 대한 고민도 찾아왔다. 첫 작품의 성공 이후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하지 못하는 이른바 ‘소포모어 징크스’가 자신에게도 찾아온 것 같았다는 것이다.
“내가 <요나단의 목소리>만 내놓고 은퇴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그 와중에도 이 작품을 그린 것에 대한 불만은 전혀 없었어요. 그냥 이 작품만으로 제 작가 인생이 끝나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어요. 너무 저에게 고마운 작품이에요. 이걸 읽으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저에게 일종의 살풀이 같은 작품이거든요.”
<요나단의 목소리>는 작가가 3년 동안 혼자 작업한 만화다. 정해진 마감도, 작업에 대한 보수도 없었다. 그럼에도 작품을 완성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있었다.
처음에는 자신이 품고 있던 고민을 세상에 이야기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작업을 이어가면서 그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자신 말고도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생겼다.
“그 확신이 드는 순간부터는 ‘이걸 내가 끝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이야기를 완결내고, 이 이야기를 통해서 최종적으로 어떤 말을 하고 싶었는지 독자분들께 보여드려야 한다고 생각했죠.”
한유희 평론가는 <요나단의 목소리>에서 특히 감정의 절제가 인상적이었다고 이야기했다. 감정이 폭발할 것 같은 순간에도 작품은 한 걸음 물러서고, 독자는 그 여백에서 스스로 감정을 받아들이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해나 작가에게 그 절제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제가 그 이슈에 대해서 너무 크게 폭발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 마음을 폭발한 상태 그대로 내놓으면 독자분들에게 닿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최대한 설명이 되는 마음으로 그리려고 많이 노력했어요. 그게 힘들었던 것 같아요.”
<요나단의 목소리>가 절제된 감정으로 이야기를 전달한다면, <나의 오타쿠 생활>은 좋아하는 것을 향해 달려가는 작가의 활기찬 모습을 보여준다. 두 작품의 분위기가 너무 달라 의외라는 반응도 많았다.
하지만 정해나 작가는 그 두 모습이 모두 자신이라고 말한다.
“살면서 받은 상처도 있고 우울한 지점들도 있겠죠. 그것을 작품으로 만들어내기도 하지만, 또 다른 시간에는 제가 우울하지 않을 수도 있잖아요. 어떤 것들을 너무 사랑해서 밝아지고,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고, 그것이 있는 곳으로 뛰어가고, 그런 에너지가 생기는 것도 다 저의 실제 모습이에요.”
조용히 상처를 들여다보는 사람과 좋아하는 것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 정해나 작가의 서로 다른 작품들은 결국 한 사람 안에 존재하는 다양한 감정과 사랑의 모습을 보여준다.

덕질과 창작 사이에는 선이 거의 없다
정해나 작가의 창작에서 흥미로운 지점은 좋아하는 작품을 감상하는 일이 다시 자신의 작품을 만드는 계기가 된다는 사실이다.
<요나단의 목소리>의 출발점에도 연극을 좋아하는 마음이 있었다. 대학을 졸업한 뒤 진로를 고민하던 시기, 정해나 작가는 좋아하는 연극 <히스토리 보이즈>의 배경을 찾아 영국으로 여행을 떠났다.
여행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좋아하는 작품의 흔적을 찾아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새로운 만화의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 여행을 갔을 때 <요나단의 목소리>를 처음 구상하기 시작했거든요. 처음부터 이런 내용으로 그려야겠다고 생각한 건 아니었어요. 그 여행에서 영감을 받아서 ‘이런 캐릭터가 나오는 만화를 그리면 좋을 것 같은데?’라는 생각으로 시작했죠.”
이러한 경험은 <타지마할에 미친 여자>에서도 반복된다. 좋아하는 연극의 배경이 된 인도의 타지마할을 찾아간 여행이 새로운 만화의 소재가 된 것이다.
정해나 작가에게 중요한 것은 유명한 관광지를 방문했다는 사실이 아니다. 자신이 사랑하는 이야기의 공간에 직접 서 있다는 경험이다.

“제가 타지마할이라는 건축물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그곳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를 좋아하는 거잖아요. 그래서 그 현장에 가서 제가 사랑한 인물들과 이야기를 떠올리는 게 너무너무 만족스러웠어요.”
작가는 여행에서 돌아온 뒤 자신의 경험을 만화로 기록하기 시작했다. 누군가 만들어낸 작품을 좋아하는 마음이 그 작품을 좋아하는 자신의 이야기로 확장된 것이다.
“제 경우에는 덕질과 창작 사이에 선이 거의 없어요. 있다고 해도 굉장히 희미한 것 같고요. 덕질이라는 건 원래 다른 사람이 만들어낸 무언가가 있었던 거잖아요. 그런데 그것을 좋아하는 ‘나’라는 이야기로 확장되는 것 같아요. 그러면서 저만의 이야기를 만들어내기도 하고요.”
그렇기에 다른 작품에서 영향을 받는 일을 두려워할 필요도 없다고 말한다. 좋아하는 작품을 만나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그 경험이 쌓이면서 자신만의 새로운 이야기가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작품이라는 건 나에게 레이어를 쌓아주는 거거든요. 영향을 받는 건 당연하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다른 것들을 아무것도 보지 않고 완전히 무(無)에서 대단한 작품을 만들어낼 수는 절대 없거든요.”
이러한 생각은 그가 창작자로서 품고 있는 바람과도 이어진다.
“누가 제 만화를 읽고 ‘나도 만화 그리고 싶어졌어’라고 생각해서 작품을 하시면 정말 여한이 없을 것 같아요. 너무 감동적일 것 같아요.”
누군가의 작품이 자신을 움직였던 것처럼, 자신의 작품도 누군가를 움직이게 만드는 것. 좋아하는 마음이 또 다른 창작으로 이어지는 순환이다.
대담의 마지막에 한유희 평론가는 정해나 작가에게 사랑이란 무엇을 만드는 힘인지 물었다.
“제 생각에 사랑은 사랑을 생각하게 만드는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이 무언가를 좋아하면 그것에 대해서 계속 생각하게 되잖아요. 그래서 사람이 자기 삶과 생활과 생각을 넓히는 데에 사랑이라는 요소가 굉장히 중요하고, 가장 중심이 되는 요소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요나단의 목소리> 에서 오랫동안 품어온 질문을 풀어내고, <나의 오타쿠 생활>에서 좋아하는 것들을 이야기하고, <타지마할에 미친 여자>에서 그 마음을 따라 새로운 장소로 향하는 정해나 작가.
작가에게 사랑은 하나의 감정으로 머무르지 않는다. 끊임없이 생각하게 하고, 움직이게 하고,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힘이다.
좋아하는 마음이 이야기가 되고, 그 이야기가 다시 누군가의 좋아하는 마음을 움직이는 것. 정해나 작가가 보여주는 ‘사랑의 정신력’은 그렇게 다음 이야기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