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극 - 김동화
2001년 김동화는 그동안 <영챔프> 등에 발표했던 한국 단편 문학을 각색한 만화를 <한국단편문학선집>이란 제목의 단행본으로 출판했다. 이것으로 그의 작품 세계는 조금 더 확장되었다. 김동화는 독자에 따라 각각 다른 모습으로 기억되는 작가다. 1980년대 초반, 순정만화를 본 독자들에게 김동화는 <목마의 시>, <안녕 DJ>, <아카시아>, <내 이름은 신디> 등 달콤한 로맨스 만화를 주로 창작한 작가로 기억될 것이다. 조금 뒤 <보물섬>을 보고 자란 독
2001-04-01
박인하
2001년 김동화는 그동안 <영챔프> 등에 발표했던 한국 단편 문학을 각색한 만화를 <한국단편문학선집>이란 제목의 단행본으로 출판했다. 이것으로 그의 작품 세계는 조금 더 확장되었다. 김동화는 독자에 따라 각각 다른 모습으로 기억되는 작가다. 1980년대 초반, 순정만화를 본 독자들에게 김동화는 <목마의 시>, <안녕 DJ>, <아카시아>, <내 이름은 신디> 등 달콤한 로맨스 만화를 주로 창작한 작가로 기억될 것이다. 조금 뒤 <보물섬>을 보고 자란 독자에게는 <요정핑크>라는 귀여운 만화의 작가로 기억될 것이며, 혹 <곤충소년>이나 <달려라 썬더보이>, <소년 경찰대>와 같은 소년만화의 작가로 기억하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90년대 들어 성인만화를 본 독자들은 세련된 에로틱의 <황토빛 이야기>나 <못난이> 등의 작가로 기억할 것이다. 이처럼 한 작가가 다양한 스펙트럼을 지닌 경우는 쉽게 찾아볼 수 없다. 김동화의 특징, 김동화 만화의 매력은 변화하는 작가의 탐구 정신 혹은 도전 정신이다.
1950년 서울 마포에서 태어난 김동화는 1969년 당시 대중적 인기작가였던 김기백 선생의 문하에서 만화를 시작했다. 이후 차성진의 문하를 거쳐 1975년 김정의라는 필명으로 《소년한국일보》 공모에 <나의 창공>이라는 작품을 발표하여 데뷔했다. 그리고 1977년 한승원과 결혼한 이후 1979년 <우리들의 이야기>라는 다섯권의 작품을 통해 순정만화작가 김동화로 새롭게 데뷔했다. <우리들의 이야기>는 갸름한 얼굴선, 커다란 눈망을, 오똑한 코, 등신의 인체분할, 웨이브진 풍성하고 아름다운 머리카락 등 형식적인 면이나 여러명의 남녀 주인공간의 애정관계로 진행되는 정서 중심의 내러티브 구조 등 내용적인 면에 이르기까지 전대의 소녀취향적 만화와 다른 차별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후 1980년 여고시대에 연재한 <내 이름은 신디>에서 일본 복제판 소녀만화에 열광했던 80년대의 순정만화 세대를 빠르게 흡수하기 시작했으며, 82년 <아카시아>, <목마의 시> 등으로 인기를 이어가며 우리나라의 순정만화의 초기 양식을 정착시켰다. <내 이름은 신디>로 시작된 김동화 작품에 대한 수용자층의 지지는 <아카시아>, <목마의 시>로 이어지며 더욱 확고해졌다. 1, 2년을 사이에 두고 독자들을 찾은 김동화의 작품은 각기 차별점을 갖는 다른 작품이면서 동시에 세 작품을 일관하는 공통된 특성을 보여준다. 이러한 특성은 이후 순정만화의 독특한 양식으로 정착되어 열광적인 수용자 층과 더불어 순정만화가 안정적인 장르만화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1980년대 초반 우리나라의 순정만화는 김동화의 만화를 통해 장르의 컨벤션이 형성되었다. 80년대에 크게 유행한 특유의 캐릭터는 물론 주인공의 세밀한 감정상태를 표현할 수 있는 삽입 칸이나 겹침 칸과 같은 독특한 칸 분할 형식을 완성시켰다. 이런 성과는 김동화만의 것이라기 보다는 그의 부인이자 만화의 파트너인 한승원과의 조화를 통해 이루어낸 성과라고 평가하는 편이 정당하다.
1984년 <보물섬>에 연재한 <요정핑크>에서부터 김동화는 자신이 정착시킨 순정만화의 컨벤션을 거부하고 다양한 장르적 실험을 시도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섬세한 화풍을 소년만화에 도입시키기도 했으며, 조선 풍속화의 전통적인 선을 복원하기도 했다. 성인만화잡지에 연재되었지만, 노골적인 섹슈얼리티보다는 미세하게 칸을 타고 흐르는 관능에 집중했다. 1993년 <투유>에서 처음 선보인 <황토빛 짧은 이야기> 그리고 1995년 <투엔티세븐>에 발표한 <황토빛 이야기>나 <황진이>같은 작품은 이러한 김동화의 경향이 잘 드러난 만화다.
김동화는 대중적 인기를 버리고 장르적 실험에 들어가고, 다른 작가들이 펜을 놓을 때에도 계속 자신과의 싸움을 통해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있다. 바로 이 점이 다른 작가와 다른 김동화의 매력이다. 일제시대에서 50년대를 아우르는 국내 단편 소설을 만화로 옮기는 방대한 작업에 들어간 김동화. 그의 손끝에서 탄생한 단편의 맛을 느껴볼 차례다.
박인하
만화평론가, 서울웹툰아카데미(SWA) 이사장
웹툰자율규제위원회 위원
前 한국만화가협회 부회장, 前 청강문화산업대학교 만화콘텐츠스쿨 교수, 前 청강문화산업대학교 정책그룹 부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