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뷰 기사가 끝나면 미역의 효능작가님께서 해외에서 대상 수상소식을 들었던 순간을 표현한 웹툰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국내 만화상 중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부천만화대상에서 파격이 거듭되고 있습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신예 작가의 데뷔 작품에 대상이 돌아갔습니다. 미역의 효능(필명·29) 작가의 웹툰 ‘아 지갑놓고 나왔다’(이하 아지갑)가 제14회 부천만화대상의 대상작으로 선정된 것입니다.
‘아지갑’은 아홉 살에 교통사고로 죽은 딸 노루와 홀로 남겨진 미혼모 선희의 이별 이야기가 과거, 현재, 미래 그리고 이승과 저승을 오가며 세대를 넘어 잔잔하게 펼쳐지는 작품입니다. 기존 만화 문법을 크게 무너뜨리는 그림체와 연출에 사색, 성찰적인 내용을 담아 공감대를 형성했습니다. 부천만화대상 선정위원회는 “성폭력, 낙태, 미혼모 등 민감한 사회적 이슈를 차분히 다뤄 낸 작가의 용기 있는 시도를 높이 평가하며, 웹툰의 다양성을 함께 보여 줬다”고 평가했습니다.
어려서부터 만화가를 꿈꾸거나 대학에서 만화나 애니메이션 전공한 웹툰 작가들이 대부분인 요즘, 미역의 효능 작가는 그러한 궤적에서 벗어나 있다는 점이 이채롭습니다. 어려서부터 낙서 삼아 그림을 곧잘 그리곤 했으나 대학에서는 심리학과 사회학을 복수 전공했고, 평범한 회사원을 꿈꿨다고 합니다. 만화가를 결심하게 된 것은 졸업 후 진로를 고민하면서부터입니다.
‘아지갑’은 다음 웹툰에서 2015년 3월부터 2년 넘게 연재되며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미역의효능 작가는 작품을 마무리하고 훌쩍 노르웨이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그래서 7월 부천국제만화축제에서 열렸던 시상식에 참여하지 못했습니다. 여행을 하고 있는 미역의 효능 작가를 이메일을 통해 짧지만 톡톡 튀는 인터뷰를 나눠봤습니다. 작가의 글투를 그대로 살렸습니다.
Q. 우선 부천만화대상 대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A. 감사합니다. 제가 받을 줄 몰랐어서 매우 놀랍고 기뻤습니다.
Q. 대상 수상 작가는 내년 부천만화축제 포스터를 그리고 특별전시를 여는 영예를 누립니다. 벌써부터 기대되실 것 같습니다!
A. 와아아!
Q. 이번 시상식에서 뵙지 못해서 아쉬웠는데요, 6월 초 연재 종료 뒤 노르웨이로 여행을 가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연재가 끝나고 나서는 살아남았다는 환희에 젖어 있습니다. 노르웨이에서 맛있는 음식을 많이 먹어서 세상이 급격하게 아름다워 보입니다.요 몇 년 사이 ‘아지갑’이나 앙꼬 작가님의 ‘나쁜 친구’, 허5파6 작가님의 ‘여중생A’ 등 세상에 상처 받은 여성의 이야기나 성장담을 다룬 만화 또는 웹툰 작품이 자주 등장해 여성 독자들 사이에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특히 ‘아 지갑’과 ‘여중생A’의 경우 간소한 그림체에 트라우마가 있는 주인공들이라 자주 비교되는 데 이런 흐름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A. 제 취향의 이야기가 늘어나서 좋습니다.
Q. ‘아 지갑’은 친족에 의한 성폭력과 트라우마, 미혼모, 낙태 문제까지 결코 간단치 않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습니다. 이 이야기를 어떻게 구상하고 떠올리게 되었는지요. 평소에 관심을 가졌던 이슈들인가요.
A. 아마도 그런 것 같습니다.
Q. 에피소드나 스토리 구성에 영감을 받았던 다른 작품이나 뉴스, 혹은 주변의 이야기 등이 있으실까요.
A. 없습니다.
Q. 심리 묘사가 돋보인다는 평이 많습니다. 심리학 전공이 작품에 도움이 된 부분이 있나요.
A. 임상 사례를 많이 접한 점입니다.
Q. 이야기에 판타지 요소를 가미한 것은 이야기의 밸런스를 맞추기 위해서일까요.
A. 그냥 제가 재밌는 걸 그리고 싶었어요...
Q. 2년간 연재하시며 고비는 없으셨나요. 이야기의 무게감이 부담스럽지는 않으셨는지요.
A. 이야기 짜는 건 즐거웠습니다. 단행본 작업은 고통스러웠습니다.
Q. 궁극적으로 아 지갑을 통해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무엇이었나요.
A. 독자의 몫이 아닐까요?
Q. ‘아 지갑’을 연재하며 특별히 신경을 쓴 부분은 무엇일까요.
A. 스토리. 대사. 최종까지 다 정해놓고 시작했다고 생각했는데 완결까지 더 해보고 싶은 게 많아져서 3부에서는 즉흥적으로 한 것이 많습니다.
Q. 가장 기억에 남는 독자들의 반응은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A. 준비생 시절에 달렸던 댓글인데........이런 작품을 공짜로 봐서 너무 미안하다는 댓글이 가장 기뻤고...........그래요 제가 속물이에요.......
Q. 데뷔하게 된 과정이 요즘 다른 분들과 비교하면 남달랐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A. 그런가요!! 그냥 비슷한 것 같은데요.
Q. 대학 졸업 뒤 원래는 어떤 직업을 꿈꾸셨나요. 만약 취직이 되었더라면 지금 작가님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A. 꿈꿨던 모습은 일반적인 회사원이었습니다. 취업해서 자택근무를 못했으면 좀 더 우울했을 것 같습니다. 자택근무 사랑.
Q. 집안 환경이 예술, 특히 그림 쪽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전업 작가가 되는 데 당연히 영향을 주었을 것 같습니다.
A. 가족들도 하는데 개나 소나 다 할 수 있는 건가보군, 까짓 거 내가 못 할 거 없지 우후후후 이런 건방짐이었습니다. 멍청한 해초 같으니.
Q. 어렸을 때는 어떤 만화가 유행했고, 또 그 중에서도 어떤 작품을 즐겨 보셨는지 궁금합니다. 또 요즘에 인상 깊게 본 작품은 어떤 것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A. 어릴 때 본 만화는 딱히 기억에 남는 건 없고...지금은 ‘스티븐 유니버스’(*카툰네트워크에서 방송하고 있는 판타지 애니메이션)를 좋아합니다. 메시지나 캐릭터 디자인도 좋고 특히 노래가 좋아요. 동물만화를 좋아해서 ‘머츠’(Mutts*미국 카투니스트 패트릭 맥도널의 카툰집)도 읽습니다. 개랑 고양이들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따뜻해지는 기분...
Q.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존경하는 작가나, 인생의 만화 작품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또는 정신적 스승으로 생각하는 분이 있으시다면.
A. ㅇㅁㅇ.......없습니다...죄송합니다......
Q. ‘아 지갑’은 독특함 투성이입니다. 우선 필명이 독특합니다.
A. 원래는 ‘남루한 미역’ 이었다가 이름이 너무 비루해서 좀 더 있어 보이는 제목을 찾다 보니 언젠가 ‘미역의 효능’을 치면 영양성분보다 내 닉네임이 먼저 나오면 재미있겠다 우후훗 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Q. 제목 또한 독특합니다. 연재 말미에 의미를 말씀해주셨지만 한 번 더 부탁드리겠습니다.
A. 집에 가자.
Q. 그림체도 정말 독특합니다. 펜선이 아니라 먹선으로 느껴집니다. 이러한 그림체를 어떻게 갖게 된 것인지요. 그림 작업 과정이 궁금합니다.
A. 처음엔 종이에 연필로 그려서 붓펜으로 그리고 스캔하다가 하루 지우개질 1시간의 중노동을 견디지 못하고 신티크로 바꿨습니다. 최대한 붓펜과 비슷한 브러쉬로 쓰고 있습니다.
Q. 그림을 특별히 따로 공부하지는 않으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떻게 그림체를 키워 나갔는지도 궁금합니다.
A. 그냥 그리고 싶은 대로 그립니다......그러다 보니 준비생 시절에 가족 모두에게 못 그린다고 욕을 먹었고... 연습을 조금 했는데........... 안 늘고............그래서 에이 모르겠다 싶어서 열심히 연재를 했습니다.
Q. 작품을 만들 때 이야기와 그림 중 어느 쪽에 더 비중을 두시나요. 이야기에 따라 그림체에 변화를 주실 생각인지요.
A. 이야기. 그림체도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아 지갑’이 대충 그렸다는 말을 많이 듣는데 그게 나름 열심히 그린 그림이라 이것이 못 그리는 나의 운명이구나 하고................... 그래도 그리고 싶은 걸 다 표현했다면 그런 데로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딱히 다른 그림체가 없습니다....
Q. SNS도 자주 하시지만 인터뷰를 하더라도 얼굴이나 실명은 공개 안하시는 것 같습니다.
A. 제 이름보다 제 닉네임이 더 멋있습니다.
Q. 팬들은 차기작을 궁금해 할 것 같습니다. 어떤 작품으로, 언제쯤 컴백하실 계획인가요.
A. 요즘 계속 마음이 바뀌고 있어서 잘 모르겠습니다.
Q. 만화 또는 애니메이션 비전공으로 만화가를 꿈꾸는 분들에게 조언을 해주신다면.
A. 만화에 관심 없던 시절에 내가 파던 분야도 의외의 보물창고 빠바바밤
Q. 끝으로 팬들에게 한 말씀 해주신다면.
A. 우리 다 같이 비타민을 먹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