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2월 9일 첫 연재를 시작할 때만 해도 이 정도의 스테디셀러가 될 줄은 몰랐다. <실질객관동화>로 신선한 아이디어와 파격적인 형식을 선보였던 무적핑크 작가가 조선왕조실록을웹툰으로 그린다고 했을 때 한 편으로 걱정이 앞선 것도 사실이다. 그의 기발한 창의력이 역사라는 딱딱한 틀에서 얼마나 자유롭게 진행할 수 있을지, 역사를 가볍게 다룬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지가 문제였다. 2년이 지난 지금 무적핑크 작가의 <조선왕조실톡>은 재미와 교훈, 지식 전달까지 세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은 보기 드문 작품으로 거듭났다. 오직 웹툰이었기에 가능했던 도전. 웹툰을 웹툰답게 만드는 진정한 웹툰작가, 무적핑크를 만났다.
Q. 개인적으로 팬입니다. 인터뷰를 해주신다고 해서 한 걸음에 달려왔습니다.
A. 영광입니다. 요즘은 딱히 이야기할 거리가 없는지라 인터뷰를 자제 하는 중이었어요. 씨네21 기자신데 <실질객관영화>를 다시 연재하면 그 땐 씨네21과도 인터뷰를 할 수 있겠죠? (웃음)
Q. 스스로 작가라고 불리는 걸 꺼려한다고 들었습니다. 서울대 출신, 최연소 작가 등 수식어가 많은데 스스로를 설명한다면? 어떻게 불리고 싶으신가요.
A. 난감한 질문인데.(웃음) 그래서 요즘은 작가라고 불러주면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받아들입니다. 선생님이라 불리면 선생님 노릇을 해야 하고 작가라고 불리면 작가 노릇을 해야 할 것 같아서 부담이 됩니다. 미대출신인지라 작가라고 하면 빵모자를 쓴 선생님이 먼저 연상이 되거든요. (웃음) 이름의 무게가 무겁달까. 예전에 연재를 할 땐 매주 마감을 하며 수명은 연장하는 느낌이라 내가 무언가 작품을 만들고 있다는 실감이 없었어요. 요즘은 불러주시는 분들이 편하게 부르는데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결국 그건 불러주시는 분들의 몫이니까요. 제일 고급진 걸로 불러주시면 받아들이겠습니다. (웃음)
Q. 작품이라고 부르는 게 부담스럽다면 본인의 결과물을 뭐라고 생각하신건가요.
A. 그냥 웹툰이죠. 이젠 웹툰이라고 해도 충분히 알아들을만한 고유명사가 된 것 같아요. 데뷔 때부터 웹에 가장 적합한 모양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웹툰 독자들은 만화 독자, 네티즌과는 또 미묘하게 다른데, 저는 그런 독자들을 위하고 만족시키고 싶은 사람입니다. 이 일을 꽤 오래했구나 하는 생각이 든 건 얼마 전이었어요. <조선왕조실톡>의 효종 때를 그릴 즈음부터였는데, 남은 왕들의 숫자가 더 적어진 걸 보면서 나름 열심히 해왔다는 생각을 했죠. 시간으로 따지면 8년 정도 되지만 중간에 쉰 기간도 꽤 있고, 데뷔작이었던 <실질객관동화>만 사실상 온전히 완결을 냈고 나머지는 중간이 잠시 멈춘 형태거든요. 아마 <조선왕조실톡>이 두 번째 완결작이 되지 않을까 싶은데 솔직히 완결편 마감하는 그 순간까지 별로 실감은 안 갈 것 같아요.
Q. <조선왕조실톡>은 오래해주셨으면 좋겠는데. (웃음) 언제를 완결시점으로 보고 있나요.
A. 다들 조선왕조가 끝나는 시점을 완결로 생각하실 것 같은데, 아닙니다. (웃음) 대한제국을 여는 것까지 해서 1차적 완결일 될 겁니다. 다들 왕조의 마지막이라고 해서 비감이 있을 거라고 짐작하시겠지만 해피엔딩으로 끝날 예정입니다. 정확히는 이건 웹툰 완결이 아니라 단행본 완결이고요, 단행본은 출간 사정 상 태정태세문단세 식으로 순차 진행을 하거든요. 고종을 마침표로 7권 정도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이후엔 웹툰에서 세종 갔다가, 고종 갔다가 못다 한 이야기들을 자유롭게 진행해볼 생각합니다. 시즌2라고 불러도 좋겠네요. 아니면 <조선왕조실톡 프리퀄>? (웃음) 사실 처음 연재할 땐 그 때 그 때 생각나는 에피소드들을 툭툭 제시하는 방식이었는데, 단행본 계획이 진행되면서 순차 적으로 정리된 부분도 있어요. 정리가 된 건 좋은데, 아무래도 부담감이 느껴지긴 하더라고요. 놓친 건 없는지, 핵심은 잘 짚고 있는지 걱정되기도 하고. 시즌2는 다 털어버리고 다시 자유인으로 돌아가려고요.(웃음)

Q. 연재를 시작할 때도 이렇게 오래 하게 될거라고 생각하셨나요?
A. 사실 더 길지 않을까 싶었어요. 27명의 왕을 다뤄야 하니까 10년은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죠.(웃음) 단행본 기획이 들어가면서 도리어 틀이 잡혔죠. 3~4달에 한권씩은 나와야 하는데 한 권당 에피소드 30여개 내외가 들어가야 하니 차곡차곡 채워 넣는 기분, 골인지점을 계산하고 페이스를 조절하는 어른의 사정이랄까.(웃음) 단순 계산해보면 왕 한명 당 에피소드 10개 정도가 들어갈 수 있는 셈인데, 저는 모자라요! (웃음) 솔직히 시즌2 생각은 늘 있었지만 단행본 완결과 함께 웹툰을 끝내는 게 맞는 게 아닐까 싶지도 했거든요. 꽤 오랜 시간동안 고민 했는데 지금은 확실히 결론을 내렸지요. 그럴 필요 없다고. 아직 할 게 얼마나 많은데! (웃음)
Q. <실질객관동화>의 팬으로서 <조선왕조실톡> 연재를 시작하셨을 때 걱정도 됐지만 결과적으로는 이전까지 볼 수 없었던 방식으로 역사에 접근하는 작품이 나왔습니다.
A. 조선왕조에는 27명의 왕들이 있습니다. 일단 제가 그들을 알고 싶고, 매력적으로 만들고 싶고, 무엇보다 제가 그들의 입장이 되고 싶어요. 물론 재미가 중요하지만 그런 공감들을 놓치고 싶지 않습니다. 좋아하는 왕들도 있지만 예전에는 이해가 잘 안 되는 왕도 있었거든요. 자기는 나름 최선을 다했는데 상황은 최악으로 흐를 때가 있거든요. 가령 광해군을 질투 했던 인조 같은. 연재가 이어질수록 제가 잘 몰랐던 왕들에 대한 이해도 늘어가는 것 같아요. 이야기의 내용부터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까지 함께 배워나가는 중입니다.
Q. 아이디어는 어떻게 구상하나요.
A. 기본적인 자료는 실록, 승정원일기 등의 정사(正史)에서 찾습니다. 책도 보고 논문도 찾고. 그 이외의 소스들은 여러 곳에서 조금씩 가져옵니다. 아이디어는 겨울나기 준비하는 심정으로 평소에 미리 수집해서 둡니다.(웃음) ‘세종-고기’ 이런 식으로 아이디어 카드를 만들어 놓고 그 중에서 골라요. 매화 콘셉을 잡아나가는 건 그 즈음에 이슈를 고려하는데, <실질객관동화> 때도 비슷했어요. 발명가의 날이면 발명가와 관련된 에피소드가 없는지 뒤져서 장영실 이야기를 재구성하는 거죠. 때론 세조, 정조처럼 갑자기 확 꽂히는 인물들을 다루기도 합니다. 인물이나 사건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는 가지고 있는데, 그 사람을 현재로 데려왔을 때 어떤 형태가 나올지 아이디어를 쌓아나가는 겁니다. 장영실을 예로 들면 한 명의 인간이 그렇게 많은 걸 발명하려면 어지간히 야근을 했겠지 싶어 ‘집에 가고 싶어도 못가는 개발부 팀장’으로 설정하는 식이죠.
Q. 주 2회 연재인데 힘들진 않나요.
A. (잠시 침묵) 어떻게든 살아나가고 있다고 하면 적절할까요? (웃음) <실질객관동화> 때는 화수목이 달력에서 없었는데, 이제는 수, 일요일 연재다 보니 월화, 목금이 달력에 없어요. 네, 그런 인생입니다. (웃음)
Q. 연재 초반에 비해 가장 많이 달라진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A. 예전엔 이것도 알려주고 싶고, 저것도 알려주고 싶어서 욕심을 많이 부렸습니다. 요즘에는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는 이야기를 다루려고 해요. ‘세종이 고기를 좋아하는 게 귀여워.’ 이렇게 끝내는 거죠. 그리고 되도록 가치평가가 담긴 문장으로 요약하려고 애씁니다. 그래야 방향이 분명해지고 독자들도 어렵지 않게 받아들이거든요. <조선왕조실톡>은 중학생들을 독자라고 상정한 채 그리고 있어요. 아이들 입맛에 맞추면 어른들도 좋아하더라고요. 초반에 비하면 단어 수, 문장 수도 점점 간단해지고 있어요. 길이도 굉장히 줄였고요. 길이가 짧아졌더니 반대로 독자 반응은 점점 좋아지는 걸 느낍니다. 매화 그릴 때마다 적당한 분량과 적당한 리듬, 적당한 깨알 재미, 그 균형을 찾아가는 중입니다.
Q. 일상툰, 스토리툰 등 웹툰도 나름의 장르가 있는데 <조선왕조실톡>은 뭐라고 부를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그러고 보니 요즘엔 학습만화로도 인기라는 이야기가 있던데. (웃음)
A. 그러게요. 서점에 가보면 박시백 화백님의 <조선왕조실록> 옆에 진열되어 있더라고요. (웃음) 틀을 정해두고 시작한 게 아니라서 구분은 잘 못하겠요. 굳이 말하면 실험적인 작품? 다만 그 실험을 아주 길게 하고 있는 셈이죠. <조선왕조실톡>은 SNS대화창을 포맷으로 가져왔으니 기존의 형식과는 전혀 다르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스스로는 실험적이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그냥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걸 하는 거죠. 정확히는 이것보다 더 나은 포맷이 있을까 하는 생각을 매번 해요. 더 나은 방식이 있다면 그걸로 옮겨가는 게 좋겠지만 지금은 이 포맷이 최적이라고 생각하고, 했더니 사람들이 좋아해주시고, 그러면 계속 한다. 그런 흐름입니다.
Q. 만화라는 형식에 제한되지 않고 웹에서 최적화된 툰(Toon)을 매번 보여준다는 점에서 ‘웹툰’이란 개념이 자리 잡는데 상당한 공헌을 하셨다고 생각해요.
A. 웹툰 다운 게 뭐냐고 묻는다면 웹에서 봤을 때 제일 재밌는 콘텐츠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매체로 옮겨지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그게 웹툰만의 장점이 아닐까요. 예전에 <실질객관동화> 단행본이 나왔을 때 결과물이 너무 창피해서 도망 다닌 적이 있어요. 우선 웹에서 보는 것만 생각했던 포맷이라 제대로 구현이 어렵더라고요. 서로 다른 매체의 간극을 좁히기 쉽지 않았어요. 아무런 준비를 못하고 덜컥 교통사고를 당한 느낌이랄까요. <조선왕조실톡>도 웹에서 스크롤로 내리는 느낌을 살린 포맷이니 최적의 환경은 웹에서 보시는 거예요. 다만 <조선왕조실톡> 땐 단행본을 내겠다는 마음의 준비가 어느 정도 되어 있었던지라 종이 사이즈에서 어떻게 구현되는지 상상을 할 수 있었습니다. 출판사에서 워낙 잘 만들어주시기도 했고요. 그래도 조금 아쉬운 부분은 있는데 언젠가는 판형까지 아예 독특하게 구성해서 완전판을 만들어보고 싶어요. 단행본에서만 할 수 있는 시도도 해보고 싶고. 이제는 이런 아이디어를 시도해볼 만큼 경험도 쌓였고, 시야도 넓어진 것 같아요.
Q. 무적핑크하면 창의력이 연상됩니다. 매번 아이디어가 넘치는 것 같아요.
A. 솔직히 하고 싶은 게 정말 많아요. 매번 뭔가 시도해보고 싶은 아이디어도 생각나고요. 하지만 지금은 조금 호흡을 고르려고 하는 중입니다. <조선왕조실톡>에서 임진왜란을 연재할 때 의외로 다 알 것 같은 사건도 모르시는 분들도 많다는 걸 깨달았거든요. 그래서 그걸 잘 알려주고 싶었는데 그러면 안 되는 거였어요. 많이 알려줘야 한다는 욕심이 생기니까 어느 순간 제가 사람들을 가르치려고 하고 있더라고요. 그 때 반성을 많이 했습니다. 당시 순위가 좀 떨어졌는데 그런 무관심은 독자들을 화나게 했을 때가 아니라 피곤하게 만들었을 때 나오는 거거든요. 저 혼자서는 독자들을 ‘얘들’이라고 부르는데, ‘내가 어디서 얘네들을 피곤하게 했지?’ 하고 면밀히 검토했습니다. 그동안 내가 하고 싶은 것 많이 했으니 당분간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걸 하자는 마음이에요.
Q. 작가로서 성숙해지신 것 같아요. 하지만 배려는 잠시 접어두고, 정말 해보고 싶은 무모한 도전은 없나요.
A. 많아요! 일단 게임을 만들어보고 싶어요. 그걸 플레이 하는 유튜브 VJ도 해보고 싶고요. 디자인과 졸업할 때 출품한 작품이 가상현실 게임이었어요. <실질객관동화>를 활용한 거라 기괴하다는 평을 들었지만. (웃음) FPS게임 형태로 임진왜란, 위화도 회군을 재현할 수도 있을 거고, 미니게임 만들어서 플레이하는 모습을 찍어서 그걸 유튜브로 보여주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해봐요. 요리하는 걸 좋아하는 편이라 요리 방송도 해보고 싶습니다. (웃음) 어째든 <조선왕조실톡>은 제가 먹이고 입힌 제 새끼라는 느낌인데, 같은 포맷을 중심으로 또 다른 자식들을 만들 수도 있겠죠. 일제강점기, 혹은 현대사를 다룰 수도 있고 아예 다른 나라, 다른 역사를 다룰 수도 있고요. 어떤 작업을 하건 마지막에는 세상에서 제일 재미없는 걸 재밌게 만드는 사람으로 기억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 정말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요!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