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려 10번째 시즌이다. 최근 10번째 시즌을 <오무라이스 잼잼>은 음식만화로는 최장수 웹툰으로 등극했다. 9년째 독자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지만 정작 조경규 작가 본인은 몇 년을 연재했는지 별반 신경을 쓰지 않았다. 매일 꾸준히,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충실한 작가에서 숫자 같은 건 큰 의미 없기 때문일 것이다. <오무라이스 잼잼>은 신기한 만화다. 음식을 소재로 한 음식만화 카테고리에 넣어야 할 것 같지만 가만히 뜯어보면 이건 일상툰인 동시에 성장만화이며 추억을 쓰다듬는 힐링물이기도 하다. 사실 연재를 몇 년 했는지, 장르가 무엇인지 같은 요소는 이 만화를 설명하는데 딱히 필요 없는 정보일지도 모른다. 중요한 건 <오무라이스 잼잼>이 연재 초기부터 지금까지 한결 같은 그림체로, 한결 같은 즐거움을 주는 만화라는 사실이다. 물론 조경규 작가 역시 <오무라이스 잼잼>의 연재가 언제 끝나버릴까 하는 불안이 아예 없진 않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프리랜서에게 불안감은 친구 같은 감정에 가깝다며 기꺼이 이를 끌어안는 그의 모습에서 오랜 친구같은 이 만화가 계속해서 사랑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를 발견할 수 있었다. 앞으로 20년은 더 하고 싶다는 조경규 작가의 조심스런 포부가 앞으로도 독자들을 실망시키지 않겠다는 나지막한 각오와 다짐처럼 들렸다.
Q. <오무라이스 잼잼>이 무려 열 번째 시즌을 마쳤다. 축하드린다.
A. 감사하다. 벌써 그렇게 됐나. 늘 어제 시작한 것 같은데. 장기 연재의 비결은 정확한 계획과 적절한 휴식이다.(웃음) 1년 중에 실제 연재 기간은 3개월인데 보통 그 앞에 3개월 정도는 에피소드 및 스토리, 기본적인 작화 준비한다. 실제로 반 년 간은 <오무라이스 잼잼>에 매달린다고 보면 된다. 시즌을 마치고 나면 지난 건 기억에서 지우고 바로 다음 작품 준비하는 편이다. 그게 장수의 비결이라면 비결이 아닐까 싶다. 1년 내내 이 작품만 그리고 있으면 지칠 수도 있는데 지칠 만 하면 한번 쉬어 갈 수 있으니. 그렇게 몇 개월 지나면 또 하고 싶은 말이 자연스럽게 생긴다. 사실 연재 끝나면 이래저래 부탁받은 일과 연재 중에 미뤄뒀던 일들을 하면서 지내는 편이라 늘 뭔가 하고 있다.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말처럼 수입원이 여러 군데라.(웃음)
Q. <오무라이스 잼잼>은 웹툰으로 연재되지만 사실 책으로 출판되었을 때 더 매력적인 것 같다.
A. 원래부터 책을 좋아한다. 정확히는 종이로 출판된 결과물에 애착이 있다. 출판만화도 자주 그리는 편이고. 사실 웹툰은 마감을 지키게 해주는 일종의 가이드라인에 가깝다. 한 시즌이 끝나고 책이 나와야 하나를 마쳤구나 하는 실감이 간다. 아직 웹툰 작가라는 말도 조금 어색하다. 보통 그냥 만화가라고 소개하는 편이다. 웹툰이라는 플랫폼이 어떻게 바뀌어갈지 모르겠지만 어떻게 변형되어 소개되든 최종적으론 종이에 옮겨져야 안심이 된다. 최종 그림은 항상 출판 만화에 맞춰져 있기 때문에 작업 역시 인쇄용 칸 만화로 만든 후 그걸 뜯어서 웹툰 포맷에 맞추는 식이다.
Q. <오무라이스 잼잼>은 음식 만화이지만 동시에 작가 본인의 가족을 소재로 한 일상툰이기도 하다. 10년이 되다보니 이제는 마치 성장영화를 보는 것 같은 기분도 든다.
A. 아이들이 5, 6학년이 되었다. 다음에는 중학생이 되니. 유년기를 마무리하는 느낌. 3, 4살 때 시작한 연재 초반에는 육아일기의 느낌이 강했다. 나도 나이가 들면서 변하겠지만 아이들과 함께 성장한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청소년 만화가 될 수도 있고 언젠가는 청년 시기를 그릴 테고 먼 훗날엔 할아버지, 할머니의 시점에서 그린 만화가 될 수도 있고.(웃음) 작가지만 나도 이야기가 어떻게 풀어질지는 모른다. 아직 벌어지지 않은 일이니. 관찰하고 메모하다보면 또 새로운 이야기가 찾아올 것이다.
Q. 만화만 보면 이렇게 행복하고 이상적인 가족이 또 없다. 실제와는 다소 차이가 있을 텐데 지명, 상호명을 그대로 쓰는 등 등 워낙 디테일한 묘사가 사실적인지라 진짜처럼 느껴진다.
A. 물론 각색된 부분도 있고 극적인 과장도 있다. 살다보면 좋지 않은 일도 있는 법이니까. 하지만 불편하고 자극적인 이야기들이 이미 넘쳐나는데 굳이 나까지 그런 이야기를 보태고 싶지 않다. 나는 주로 좋은 기억과 행복에 돋보기를 대는 식으로 접근하는 편이다. 최근 주변의 이야기들을 둘러보면 습관적으로 나쁜 일, 불편한 걸 찾으려고 애쓰는 게 아닌가 싶어 걱정이 될 때도 있다. 좋은 일을 생각하면 좋은 일이 더 자주 보이는 법이고 실제로도 좋은 일이 많이 생긴다고 믿는다. <오무라이스 잼잼>은 조금 더 따듯한 감성으로 감싸여진 만화였으면 좋겠다. 그 와중에 나만의 솔직한 감성들이 조금이라도 삐죽 튀어날 수 있으면 더 없이 만족한다.
Q. <오무라이스 잼잼>의 매력 중 하나는 유행을 쫓기 보다는 과거에 대한 향수를 자극한다는 점이다.
A. 예를 들어 내 경우 7,80년대를 떠올릴 때 좋았던 추억들이 먼저 생각난다. 물론 그 시대라고 다 좋았을 리가 없다. 하지만 개인적인 기억을 이야기로 각색할 땐 주로 긍정적인 방향에서 길어 올리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내 관점이 마음에 들지 않는 독자들도 있을 거다. 지나친 미화라고 받아들일 수도 있고. 애초에 모든 독자에게 사랑받기 위해 작업하진 않는다. 조금 편협해보일수도 있는데 내 만화와 취향을 공유할 수 있는 소수의 동조자들과 함께, 되도록 오래 가고 싶다. 옹기종기 모여서 좁고, 깊고, 길게. (웃음)
Q. 원래 댓글을 잘 챙겨보는 편인 걸로 안다. 하지만 공식적인 답변을 자주 하진 않았는데 이번에 연재 중에 과거 작품인 <차이니즈 봉봉>과 <팬더 댄스>의 표현 문제를 지적하는 댓글에 대해서 빠르게 공식적인 입장을 밝혔다.
A. 댓글은 좋은 면도 싫은 면도 있다. 자신의 의견을 표현할 자유가 있느니 가능한 관여하지 않았던 게 기본적인 입장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답답한 게 있었다. 연재 중인 만화와 아무 상관없는 예전의 일이 화제가 된 거라. 글을 쓰신 분께 답변 했다기보다는 잘 모르는 분들에게 이야기하는 마음으로 썼다. 그것도 지나보면 어떻게 기억될지 모르겠다. 좋은 방향으로 가자는 의도는 동의하지만 간혹 방법이 적절했는지는 고민이 될 때가 있다. 어떤 의미에선 소통을 위한 SNS가 더 폐쇄적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Q. <오무라이스 잼잼>은 그저 음식을 소개한다기보다는 백과사전 같은 다양한 정보를 접하는 느낌을 준다.
A. 특별히 그런 부분을 의식해서 구성을 짜는 건 아닌데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다. 나름 균형을 잡기 위해 노력한다. 단순히 먹기만 하는 에피소드도 있고, 다른 이야기를 길게 하다가 끝에서 잠깐 먹기만 하는 에피소드도 있다. 소재가 없어서 고민한 적은 한 번도 없다. 넘쳐나는 소재들을 아쉽게 빼야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음식을 고르는 게 특히 어렵다.
배분에 특히 신경을 쓴다. 한국 음식을 다뤘으면 중국음식도 한 번, 짠 거를 먹었으니 달달한 것도 한 번, 고기를 다뤘으면 채소 위주로도 한번, 가끔 밑반찬도 그리고.(웃음) 비싸고 고급스러운 걸 하고 나면 싸고 서민적인 음식도 소개하고 싶어지고 특별한 음식을 소개한 후엔 공산품도 간간히 끼워 넣는다. 한 시즌이 하나의 코스요리라는 개념으로 접근한다. 전체 요리를 먹고 메인코스를 든든히 즐긴 후 후식으로 입가심하는 느낌? 기승전결을 그린다면 한 시즌에 두 번 정도 강조점을 찍으려고 구성을 짜고 있다.
Q. 이번 시즌 중에 특별히 기억나는 음식이 있다면.
A. 오징어 튀김과 물회가 기억이 난다. 아무래도 여름에 연재가 되다 보니 차가운 음식들이 많았다. 올해는 1월부터 연재했는데 추운 겨울에 시작하지만 여름을 상상하면서 구성을 짜는 편이다. 반대가 될 때도 있고. ‘밀크쉐이크’나 ‘깐포도 원샷’처럼 음료수를 다룬 것도 재미있었다. 약간 길티 플레져 같은 느낌이 있지 않나. 아련함이 있다. 자주 먹을 순 없지만 1년에 두 세 번은 생각나는 음식들을 다룰 때 그리는 재미도 있는 것 같다.
Q. 명실상부 최장수 음식 웹툰이다. 특별히 새로운 음식을 소개해야 한다는 강박은 없는 것처럼 보이는데 소재 고갈에 대한 걱정은 없는지.
A. 취재는 거의 생활이다. 먹어야 사니까. (웃음) 솔직히 나 역시 일상에서는 주로 먹던 걸 계속 먹는 편이다. 새로 오픈한 식당보다는 오래된 식당을 가는 걸 더 선호하기도 하고. 추억을 더듬어 가는 건 기본으로 깔고 가는 에피소드인 것 같다. 추억이라는 게 ‘할머니의 손맛’처럼 스테레오 타입에 국한된 건 아니다. 예를 들어 내 경우엔 맥도날드에 관한 추억이 있다. 내 기준에 맥도날드는 노포 같은 개념이다. 아마 내가 할아버지가 되어도 그대로 있지 않을까. 그런 게 좋다. 기존의 요리만화들을 보면 회차가 넘어가다보면 후반부엔 듣도 보도 못한 희한한 요리들이 나온다. 소재가 고갈되면서 점점 특이한 요리로 빠지는 건데 그런 부분은 경계했다. 눈높이를 일상에 맞추면 요리는 넘쳐난다.
Q. 무려 10시즌을 이어오는 동안 아이들이 성장한 것 빼고는 그리 바뀐 게 없다는 게 신기하다. 그림도 전달방식도 늘 일정하고 익숙하다.
A. 시간은 흘렀지만 나도, 독자들도 별반 달라진 것 같지 않다. 초심이라는 걸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라 최대한 변하지 않고 싶은 마음이 있다. 예를 들어 <슬램 덩크> 같은 만화를 보면 처음의 그림체와 마지막의 그림체가 확연히 달라져 있다. 물론 작가의 실력을 갈고 닦아 더 좋은 그림을 선보이는 것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같은 만화에서는 같은 그림체를 유지하고 싶은 게 내 마음이다. 처음과 같이 톤을 유지해주는 것도 중요하다.
Q. 이쯤되면 <오무라이스 잼잼>의 초심이 궁금하다. 장기 연재를 위한 특별한 계획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어떻게 연재를 시작하게 됐나.
A. 맞다. 사실 불손한 동기로 시작한 만화다.(웃음) <차이니즈 봉봉>라는 중국 배경의 만화를 그렸고 <팬더 댄스>라는 개그 만화를 그렸는데 그리 반응이 폭발적이진 않았다. 기본적으로 마이너 취향인지라 그리다보면 늘 B급 정서가 묻어나는 것 같다. 그 즈음 정말 팔리는 만화를 그려보자는 마음으로 내 취향에서 뺄 건 빼고 모두가 즐길 수 있는 만화를 구상해봤다. 온 가족이 다 같이 볼 수 있는 만화, 오래 할 수 있는 만화, 기획만 잘 해놓으면 평생 먹고 살 수 있는 만화를 목표로 했다.(웃음) 음식은 워낙에 좋아하던 거라. 사실 그렇게 오래 고민한 것도 아니다. 한두 달 정도? 몇 가지 규칙은 있었다. 처음부터 3개월씩 끊어서 연재하려고 했었고, 메뉴 선정도 되도록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들로 잡아갔다. 또 한 가지, 드라마의 줄기를 일상툰으로 구성하되 가능한 좋은 점만을 보여주고자 했다.
Q. <오무라이스 잼잼>의 매력포인트 중 하나는 다름 아닌 후기다. 본편 에피소드만큼 보는 맛이 있다. 시즌 10의 후기는 자신을 알아봐주는 팬들에 대해 그렸다. 후기만 보면 ‘우리 동네 스타’가 따로 없는데.(웃음)
A. 연재하면서 반응을 보며 구상했던 후기를 수정하기도 하는데 이번에는 유독 여러 번 바꾸었다. 처음에 의도했던 후기는 기아대책단체와 함께 협의해서 그 쪽을 후원하는 내용이었는데 아쉽지만 다음으로 미루기로 했다. 내 만화를 쭉 봐주시고 좋아하는 분들을 위해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생각을 늘 가슴 속에 새긴다. 독자들이 많아지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나오고 구설이 생길 수도 있지만 시간이 지나도 그 마음, 누군가는 초심이라고 하는 기분만큼은 또렷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시즌 10의 후기를 그렸다.
Q. 추상적인 질문을 하고 싶다. 만화가라는 직업, 그림 그리는 일이 본인에게 어떤 의미인가.
A. 어릴 때부터 혼자서 그림 그리는 아이였다. 혼자 그리고 주변사람들이 보는 만화책을 만들기도 하고. 직업적인 접근이라기보다는 순수한 취미활동으로. 서른이 넘어서도 그렇게 하다 보니 그냥 내 일이 됐다. 우연한 기회에 원고료를 받고 만화를 그릴 수 있게 된 후엔 더 없이 만족하며 지낸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두 가지, 먹는 것과 만화 그리는 걸 함께 하면서 살 수 있다니! (웃음) 개인적으로 숫자에 큰 의미를 두지 않지만 그럼에도 새삼 뒤돌아보자면 개인적으론 대만족이다. 생각한 것 이상으로 잘 해왔다. 앞으로 20년은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다.(웃음)
Q. <오무라이스 잼잼> 시즌 11 이외의 차기작 계획이 궁금하다.
A. 현재 <차이니즈 봉봉> 새로운 에피소드를 준비하고 있다. 따져보니 7, 8년만이다. <차이니즈 봉봉>은 현재 단행본으로 총 3권까지 나왔는데 1, 2권은 서울에 있는 중국식당을 다뤘고 3권은 북경의 요리를 소개했었다. 이번에는 광저우를 무대로 한다. 워낙 좋아하는 도시이기도 하고 상하이, 홍콩, 대만 등은 자주 소개되었는데 광저우에 관련된 콘텐츠는 별로 보지 못했다. 반대로 말하면 아무도 원하지 않는 정보일수도 있지만. (웃음). 이번 여름 한 달 동안 머물면서 이미 취재를 마쳤고 간단한 스케치도 해놓은 상태다. 중국 4대요리라고 하는 북경, 광동, 사천, 상해 4권을 다 낸다는 장기적인 계획의 두 번째에 해당하는 시도다. 10년이 걸릴지 20년이 걸릴지 기약할 수 없지만 하고 싶은 일이니 서두르지 않고 즐겁게 작업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