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간단하게 부서 소개를 부탁 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시공사 만화팀 편집자 이상민, 조영우입니다. 2008년 <왓치맨>을 시작으로 꾸준히 그래픽노블을 펴내고 있습니다. 현재는 마블, DC 코믹스를 다양한 형태로 선보이는 데 주력하고 있고, 그 외 일본 만화와 국내 만화도 모두 다루는 팀입니다. 팀장님 한 분까지 셋이서 전부 하고 있어요.
Q. 시공사는 히어로 코믹스를 꾸준히 출간하고 있었는데, 웹툰으로 전환하는 방식의 연재를 결정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 종이책을 웹툰으로 변환하는 것에 대해서는 마블과 DC에 모두 저희(시공사)가 먼저 제안을 했어요. 처음에는 바로 감을 잡지 못했다가, 샘플을 만들어서 건네줬더니 바로 이해하고, 사업을 본격적으로 진행하게 됐죠.
계기라고 할 만한 건, 영화가 개봉하면서 히어로 코믹스 매출액이 높아질 때가 있긴 하지만 전체적인 종이책 시장이 커지기는 어려운 상황이고, 반면 웹툰 시장은 빠르게 성장하는 것이 눈에 보였죠. 그래서 웹툰으로 진출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는 계속 있었어요. 그걸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했는데, ‘기존에 나온 책을 웹툰 형식으로 바꿔보자’는 생각을 계획으로 옮기게 됐죠. 시장성에 한계가 있었으니까요.
그러다 본격적으로 사업을 진행하고 싶다고 문의를 했더니, DC코믹스에서 먼저 흔쾌히 OK를 해 줬고, 이후에 마블과도 사업을 진행하게 된 거죠. 마블은 사실 오리지널 콘텐츠 개발에 더 관심이 있었는데, 샘플을 보내줬더니 ‘너무 좋다’고 하더라고요.
사실 ‘웹툰’에 대해서는 DC와 마블에는 더 설명할 필요가 없었어요. 마치 한국의 ‘먹방’이 ‘MUKBANG’으로 알려진 것처럼, 이미 ‘웹툰’ 하면 이미 다 알고 있는 상황이었고요. 하지만 이미 책으로 만든 작품들이 스크롤 방식으로 다시 고쳐질 수 있다는 걸 눈으로 확인하는 작업이 필요했던 것 같아요.
Q. 작업 공정은 어떻게 되는지 궁금합니다. 책으로 완성된 작품이 웹툰으로 재탄생하는 공정을 알 수 있을까요?
- 책으로 편집이 되어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버티컬라이징을 해 주실 전문가 분들이나 업체들 컨택이 먼저 필요했고요. 기존에 미국 만화에 대해 관심이 높고, 만화에 대한 이해도가 높으신 분들 중에 작업을 맡아줄 분들을 섭외하는 것이 가장 먼저 했던 작업이죠. 다행히 그 분들이 저희와 함께 일을 진행해 주셔서, 파일을 마블이나 DC에서 받으면 저희가 책으로 만들면서 한글 번역을 거치고, 그걸 다시 웹툰화 작업을 담당하시는 분들께서 세로 스크롤 방식으로 형태를 완전히 바꾸는 형태입니다.
파일 같은 경우는 이미 예전부터 디지털화가 되어 있어서 다행히 작업이 수월한 편이었어요. 미국 만화는 2000년대 이후로는 대부분 디지털로 작업이 되어 있어요. 그래서 어도비 일러스트로 말풍선 열고, 포토샵에서 배경 그림 열고 하는 식으로 편집이 가능하죠. 이게 미국에선 잉커, 펜슬러, 레터러(식자) 등 분업화가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이게 가능한 것 같기도 해요.
Q. 페이지 연출로 만들어지는 작품인데다 북미 코믹스의 특성상 텍스트가 많은 편인데, 가독성을 최우선으로 보는 웹툰으로 버티컬라이징을 할 때 가장 고민하셨던 요소가 어떤 것일지 궁금합니다.
- 지금도 해결되지 않은, 아직도 고민 중인 부분이죠. 어제도 고민하고, 오늘도 고민하고, 아마 내일도 고민하게 될 문제일 것 같아요(웃음). 사실 사전에 완성이 되어 있는 것이기 때문에, 라이브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고 해서 바로 반영하기는 어려워요. 또 출판물 번역이다보니 ‘원전이 있는’ 것이라서 해결되지 않는 고민들이 있긴 하죠.
△ 스파이더맨, 데드풀 등은 대표적인 '말 많은' 캐릭터. <데드풀>중 일부 (출처=마블코믹스)
예를 들어 원전에는 큰 말풍선 안에 5~6줄씩 들어간 장면은 단행본 버전에선 그냥 쉽게 읽을 수 있지만, 웹툰 버전에선 말풍선을 쪼개서 길게 늘리는 방식을 택한다던가 하는 식으로 수정을 하죠. 아무래도 공간의 제약이 있는 출판만화보다 세로로는 공간을 늘려서 쓸 수 있다는 점을 활용한다던지 하는 식으로 가독성 확보를 위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사실 ‘다채로운 폰트를 통해 가독성을 높이는’ 건 전문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아무래도 출판으로 오랫동안 일을 했다 보니까요. 그걸 웹툰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작업자 분들이 여러분들이 있다 보니까 유료 폰트 사용 등에서 제약이 있어서 원하는대로 쓰지를 못 하고 있어요. 이런 건 조금 아쉽죠.
또 저희 입장에선 새로운 독자분들이다 보니까, 폰트 사용을 자유롭게 했을 때 ‘구분이 잘 된다’라고 받아들이실지, 아니면 ‘어지럽다’고 받아들이실지. 이런 부분들을 차츰차츰 저희도 데이터를 구축해 나가는 중입니다.
Q. 원작을 만드는 펜슬러, 잉커, 식자까지 전부 담당자가 있는 작품들인데, 버티컬라이징을 하면 그들의 작업물을 바꾸는 상황이 되는 거잖아요? 이 과정에서 버티컬라이징을 할 때 어려움은 없었나요?
- 마블과 DC코믹스는 2차적 저작물 활용권을 작가가 아닌 회사가 가지고 있어요. 때문에 이런 부분은 저희가 신경쓰지 않고 작업에 임할 수 있었어요. 마블과 DC가 사용허락을 하면 저희가 작업에 착수할 수 있는 거죠.
Q. <배트맨>, <블랙위도우>, <샹치>에 이어 공개 예정이라고 말씀하신 작품이 <스파이더맨>과 <이터널스>등 영화화 작품들 위주인 점이 눈에 띄었습니다. 이런 세계관을 지속적으로 노출하는데 웹툰 방식이 어느정도 효과가 있다고 보시나요?
- 종이책만 제공할 때도 두드러졌던 경향성이예요. 특정 영화가 개봉하면 이후에 관련 책의 판매고에 영향을 받았어요. 웹툰으로 제공할 때도 영화 개봉에 맞춰서 작품을 공개해서 관심을 유도하고, 여기서 다른 타이틀로 유도하는 것이 맞겠다는 생각을 했죠.
이미 10년 넘게 마블, DC의 작품 유통을 하다 보니까 ‘이미 볼 독자분들은 다 보시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했는데, 웹툰으로 넘어오니까 또 다른 독자분들이 계시고, 국내에 유통되고 있다는 걸 모르는 분들도 많으시더라구요. 이렇게 영화를 통해 조금씩 세계관을 넓혀 나가다 보면 점차 책에 관심을 가지는 분들도 계시지 않을까요?(웃음)
Q. <샹치> 댓글에서 재밌는 걸 봤어요. ‘이거 중국 작품이냐’는 물음에 마블 덕후 분들이 달려들어서 ‘샹치는 마블의 근본 히어로다’ 하면서 설명하시는 모습이었는데, 이걸 어떻게 보셨는지도 궁금해요.
- 일단 저희가 출판하는 종이 만화를 안 보셨더라도, ‘정식 한국어판’의 존재를 알고는 계실 줄 알았어요. 그런데 모르시더라구요(웃음). 그래서 그래서 독자분들이 달아주시는 댓글 등을 많이 참고해서 독자 반응을 살피고 있어요. 새로운 독자 분들이 유입되고, 그 분들에게 진입장벽이 될 수 있는 세계관을 설명해주시는 분들을 보면 아무래도 기분이 좋죠.
Q. 이번에 버티컬라이징을 하시면서 가장 힘드셨을 것으로 생각되는 것이, 일본 만화 일부를 제외하면 레퍼런스가 없다는 점이었을 것 같아요. 어디에서도 시도되지 않은 방법인데 IP의 인지도나 파워가 있다 보니 '잘 해내야 하는' 부담도 있으셨을 것 같은데요. 준비 기간은 어느정도 걸렸나요?
- 처음 구상부터 본격화하기까지는 1년 넘게 걸린 것 같아요. 마블과 DC가 가진 IP의 힘이라는게 엄청나잖아요. 그런데 이렇게 매일 일로 접하고 들여다보고 있다 보면 무감각해질 때가 있는 것 같아요. 직업인으로써 매일매일 같은 걸 보고 일하는 사람이 ‘이 대단한 마블을 내가…!’하지 않는단 말이죠. 그런데 사실 그럴 겨를도 없었던 것이, 실제로 “이 일은 진행한다”는 게 결정되자마자 정말 쉴새없이 폭풍처럼 일이 몰아쳐서 어떤 감흥을 느낄 새도 없이 달려왔던 것 같아요.
△ <시빌 워> 표지 이미지 (출처=시공사)
그래서 최근에야 조금 그런 걸 느꼈어요. 지금 마블의 예전 고전들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그런걸 보다가 웹툰 작업을 하면 ‘아, 지금 내가 역사에 남는 일을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긴 하더라구요.
레퍼런스는 다른 훌륭한 사례들이 있었기 때문에 많이 참고를 하고, 배우고 있죠. 또 DC코믹스를 전담하시는 ‘이응규’님이 계시고요. 이 분은 미국 만화를 아주 좋아하시는 마니아시면서, 동시에 웹툰쪽 일도 하셨던 분이어서 완전 적임자였죠. 하지만 이 분 혼자서는 할 수 없을 만큼 일이 늘어나고 나서 ‘미디어팜’이라는 곳과 협업을 하기 시작했어요. 최근에 이런 버티컬라이징을 전문으로 하는 곳들이 생겨나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더 많은 작품을 선보여 드릴 수 있도록 협업의 폭을 넓히고자 하고 있습니다.
Q. 뿐만 아니라 특히 원래 '책'의 크기에 맞춰진 작품을 스마트폰 우선으로 변경하면서 우여곡절이 많으셨을 것 같아요. 초기에 어떤 어려움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 출판만화라면 다 똑 같은 고민을 하셨을 것 같아요. 전면 페이지 같은 경우 가로폭에 맞추면 이미지가 너무 작아지고, 세로 스크롤에 맞춰서 배치하면 시선의 방향이 달라지고. 결국 90도를 돌려서 이런 문제를 해결했는데, 이런 부분들은 지금도 계속 고민을 하고 있어요. 단행본에서는 더 강조되어 있는 부분인데, 모바일로 옮기면 임팩트가 줄어든다거나 하는 일들이 있거든요.
특히 히어로 코믹스에서는 액션이 중요한데, 출판만화 형식으로는 작은 공간 안에 시선의 흐름에 따라 처리할 수 있는 부분이 웹툰으로 넘어와서 각각의 컷으로 분리하면 엄청 길어지는 경우도 있거든요. 그럼 늘어지게 되니까 이런 것들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Q. 특히 <배트맨> 10화에서 일반적인 세로 스크롤로 진행되다가 중반부부터 가로스크롤로, 나중에는 아예 거꾸로 회전한 연출이 등장하면서 주인공의 혼란을 표현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원작 코믹스에서도 혼란스러운 연출이 돋보였는데, 사실 텍스트까지 옮기는 건 모험에 가까웠을 것 같아요. 이런 연출에서 어떤 고민이 있었나요?
- 출판만화 버전에서도 ‘파본 아니냐’는 문의가 가장 많이 오는 작품 중에 하나예요. 저희 마케팅 팀에서도 ‘이거 왜 이렇게 넣었냐’는 문의가 가장 많이 들어온다고 하더라구요. 그런 ‘혼란’을 주는 것이 목적이니까 원전의 의도를 살리는 게 맞다고 생각했고요. 독자분들께선 이걸 보고 이해해 주셔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죠.
△ 카카오페이지에서 연재된 New 52! <배트맨> 10화 중 일부. 연재본도 이와 같다. (출처=시공사)
그리고 여기에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은 분들이 있어요. 사실 히어로 코믹스가 진입 장벽이 있는 장르예요. 방금 말씀해주신 이런 연출이라던지, 긴 역사만큼 쌓인 스토리라던지. 그 세계를 알아가는 재미를 느끼는 것이 여기에 빠지는 시작이라고 생각해요. 세월이 쌓이면서 마니아 분들이 모이게 되고, 그분들이 웹툰으로 연재가 되었을 때 달려오셔서 댓글에서 궁금해하시는 분들께 알려주고 계시더라고요.
Q. 사실 기존 매니아층이 있다는 건 확실한 소비층이 있다는 거지만, 확장에 물음표가 들 수 있는 부분인 것 같아요. 혹시 기존 독자분들 중에 웹툰화에 거부감이 있다거나 하는 분들은 안 계셨나요?
- 저희 핵심 독자분들은 다 알고 계세요. ‘이제 출판물은 잘 팔리지 않는다’라는 걸. 그래서 같이 걱정하고 계신 분들이거든요. 이 분들은 웹툰화 소식이 알려졌을 때 ‘와 그럼 팬덤이 조금 늘어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먼저 해 주시더라고요.
미국 만화 팬덤은 ‘내가 더 많이 알아’ 하는 경쟁을 한다기 보다, 규모가 작고 더 커지지 못해 왔었기 때문에 지쳐 있는 부분도 있었어요. 그래서 저희도 그분들도 서로 동지애 같은 걸 느끼는 사이가 아닐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Q. 새로 미국의 히어로 코믹스를 알게 된 분들이 교양도서로 읽어야 할 고전들이 있잖아요. 이런 것도 웹툰으로 준비중이신게 있을까요?
- 계획과 생각은 있는데, 업무량이나 소화할 수 있는 역량에 대한 고민이 있죠. 또 종이 출판만화와도 병행을 해야 하고요. 이전의 고전 작품을 소개하는 것이 옳을지, 아니면 최신의 이야기를 전하는 것이 좋을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Q. 유통은 현재 한국에만 되고 있는 건가요? 다른 국가에선 어떻게 서비스가 되는지는 시공사에 여쭤봐도 될지 모르겠는데, 혹시 알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 마블이 미국에서 공개한 ‘인피니티 코믹스’가 9월 9일부터 마블 언리미티드 앱에서 서비스되고 있는데, 앞으로 또 다른 국가로 확장될지는 두고봐야겠죠. DC도 네이버와 함께 <웨인 패밀리 어드벤처>를 공개했고요. 이렇게 빨리 확장되고 변화하는 시장이구나, 하는 걸 실감하고 있죠. 그 과정에서 저희도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노력들을 하고 있는 거고요.
△ 마블 언리미티드가 공개한 <샹치> (출처=마블코믹스)
Q. 현재 준비중인 작품 중, 독자 여러분들이 기다릴만 한 작품은 어떤 것들이 있나요? 어떻게 준비되고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 영화와는 별개로 정규 편성해서 독자분들께 선보일 작품들이 준비돼 있습니다. <어벤져스>, <헐크>, <스파이더맨>을 먼저 선보여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그 외에도 다양한 작품들을 선보이기 위해서 논의하고 있고요. 코로나19가 잠잠해지면 오프라인에서도 독자분들과의 접점을 찾기 위한 방법을 찾기 위한 노력도 하고 있습니다.
Q. 독자분들께 인사 드리면서 마무리 하면 될 것 같습니다 :D
- 기존 독자분들과의 유대감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는데, 다시 한번 정말 정말 고맙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저희가 이렇게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전할 수 있는 작업들을 선보이려고 하고 있으니까 지켜봐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그리고 새로운 독자분들께는, 일본 만화나 우리에게 익숙한 작품들과는 문법이나 방식이 조금 다르지만, 봉준호 감독이 말한 ‘1인치의 벽’처럼, 마음을 조금만 열어 주시면 넓은 세계에 즐길 거리가 많으니, 마음껏 즐겨 주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