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만화작가를 배출해 낸 유명한 아마추어 만화동호회 결의 창립회원으로서 활동하다가, 1989년 르네상스 1회 공모전에 입선,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는 만화작가 문계주는, 아마추어 만화계를 기반으로 잡지를 통해 데뷔하여 활동한 1세대 작가군이라 불리울 수 있다. 주로 아동지나 청소년지에서 따뜻하고 동화적인 감수성을 바탕으로 독특한 작품세계를 보여주고 있는 작가 문계주를 지난 4월 6일, 인터뷰하였다.
같이 가기로 한 큐레이터 일행이 1시간 30분 이상 늦을 것이라고 일방적으로(!) 통고받은 후, 기자는 쑥쓰러워하며 혼자서 홍대입구 근처, 문계주 선생님의 화실을 찾아갔다. 1시간 정도 기다려야 인터뷰를 시작할 수 있다는 기자의 말에 흔쾌히 "이곳에서 기다리세요."라고 응수한 문계주 선생님은, 곧이어 기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롤플레잉 게임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어깨너머로 훔쳐보다가 곧이어 흥분해서 옆으로 기어가(!) 구경하기 시작한 기자는, 뻔뻔스럽게도 저녁도 얻어먹기로 마음을 먹었다. 2시간 후에 큐레이터 일행이 (과자와 만두)선물을 가지고 들어와, 함께 저녁을 먹고, 인터뷰를 시작하였다
사실은 대담에 가까운)인터뷰 참가자들
문계주 : 만화작가
하 림 : 운 전 수
치 즈 : 선물배달원
차대원 : 기 자
Q. 하 림 : 결의 창립회원이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우선 데뷔전의 활동상에 대해서 말씀해주셨으면 합니다.
A. 문계주 : 86년 결 창단 후에부터 본격적으로 활동했지요. 회장은 문혜란(문혜란씨와 문계주는 자매다.). 회지내고, 결자체 전시회 등을 했습니다. 데뷔하고 나서도 아마추어 활동을 1년 정도 지속하였구요, 그 이후로는 명예회원으로 있었죠.
단독전시회는 겨울입문이라는 제목으로 역삼동에서 했어요. 타동호회나 개인자격으로 참여한 사람도 있었고. 결에서 주최하고 다른 작품 받아서 하는 거죠.
회지는 일년에 네 번, 계절별로 냈어요. 당시는 서클들이 얼마 되지 않았고, 회지를 열성적으로 했죠. 그때는 인쇄가 별로 일반화 되어 있지 않아서 복사 회지가 태반이었습니다. 한번은 복사가게 아저씨가 원고를 가지고 도망가는 사건까지 있었어요. 원고 다 잃어버린거죠. 그걸 다시 하느라고 얼마나 고생했는지... 세상에... 원고를 가지고 도망가다니... (잠시 회상에 잠기는 듯하다)
이대근처에 복사가게를 자주 이용했는데, 한창 시위가 많았을 때여서, 그때 원고 들고 가면 전경들이 뭐냐고 물어보고 검사하고 그랬지요.
Q. 치 즈 : 저희도 그런 적이 있었어요. (제가 있던 동호회에서)전시회를 하면서 만화일러스트를 이젤 놓고 사용했는데 어떤 아저씨가 이젤을 들고 튀는 거에요. 어찌나 황당했는지 ...
A. 문계주 : 하하하. 그런 일도 있었군요. (원고를 갖고 도망갔던) 그 아저씨는 나름대로 꿈이 있더라구요. 출판사를 하고 싶다라는 이야기를 평소에도 하고 그랬거든요. 그런데, 약속날에 가보니까 가게 문닫고 가버린 거에요.
Q. 하 림 : 초창기 결의 모습에 대해서도 알고 싶습니다. 당시 회원구성이라든가, 다른 서클과의 교류라던가, 혹은 조금 넓혀서 당시 아마추어 만화계의 상황에 대해서도요
A. 문계주 : 그때 처음에 나하고 언니하고, 이향우, 이빈, 최인선. 이렇게 창단멤버였죠. 또 한 명이 더 있었는데, 누구더라... 필명을 자주 바꿔서 기억이 안나네요.
(필명을 자주 바꿔서 이름을 바꿨다는 위의 모 회원은 나중에 알고 보니 여만협의 창단멤버인 기민님이었다. 알고 보니 둘이서 꽤 친하시더만.)
Q. 하 림 : 전기멤버와 후기멤버 사이에 조금 세대차이 랄까 갭이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창립회원하고, 그 이후 권신아씨, 김나영씨가 주축이 되는 이후 세대의 차이가 꽤 보이는 것 같습니다.
A. 문계주 : (창립멤버들이 모두) 데뷔하고 나서 한동안 (결이) 좀 뜸했었죠. 데뷔작가들이 다 빠져나갔으니 당연한 일이었다고 생각하고는 있습니다. 그러다가 신입회원들이 대거 들어왔죠. 요새도 활동하는데 책이 일년에 한 번 나오는지, 잘 모르겠네요.
당시에, 결 회지는 많이 안찍었어요. 출판사에 보내고 주문받아서 하고 그랬으니까. 저도 언니랑 같이 둘이서 한부 받고 그랬죠. 저는 안가지고 있고 (이)향우가 갖고 있을까.
Q. 하 림 : 활동하실 때 출간되었던 결 회지를 볼 수 있을까요?
A. 문계주 : (이)빈이가 인터뷰 있다고 빌려갔는데 안갖다줬어요. 나중에 보면 달라고 하세요.
Q. 하 림 : 아마동호회에서 데뷔한 작가는 강경옥씨가 처음인가요?
A. 문계주 : 그럴거에요.
Q. 차대원 : 잡지데뷔 1세대로서 그 이전과 이후의 순정작가 사이에 어떤 세대차이 같은 것이 있다고 생각하시는지. 만약 있다면 어떤 것인지?
A. 문계주 : 글쎄요. 데뷔 초기에는 차이점을 많이 인식했던 것 같은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잘 기억이 나지 않는군요.
잡지 이전의 작가분들은 단행본으로 출발을 하셨기 때문에 작품활동이 활발했죠. 다작이랄까. 잡지세대 작가들은 다작을 하지 못하죠. 그런 차이점은 확실히 있구요.
Q. 치 즈 : 장편도 많이 준 것 같습니다.
A. 문계주 : 단행본 작가라고 부를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단행본 작가들은 기성작가라고 불리잖아요. 그런 호칭 때문에도 좀 틀렸던 것 같아요.
Q. 하 림 : 만화나, 혹은 만화가 아니더라도 작품세계에 영향을 준 작가나 작품이 있습니까?
A. 문계주 : 데뷔하기 전에는 김진 선생님 작품을 좋아했어요. 일본작가쪽에도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지요. 제가 하는 건 동화나 환타지 쪽이 대부분이니까.. 그런 쪽을 좋아하죠. 일본작가중에 메르헨 메이커라고 그런 필명을 쓰는 사람이 있었는데 ... 하도 오래되서 기억이 안나요.
Q. 하 림 : (작품이)메리 포핀스를 연상케 하기도 하는데요.
A. 문계주 : (유쾌한 이웃에서) 마녀의 이동수단으로 우산이 나오기 때문이겠죠? 빗자루가 (마녀를 표현할 때)너무 자주 쓰이는 상징이여서, 달리 해보고 싶었어요. 그것도 영향이 있었겠죠. 하지만, 그릴 당시에는 잊고 있다가, 누군가 메리 포핀스의 비디오테이프를 빌려주어서, 그때 다 보게 되었죠. 물론 유쾌한 이웃을 그린 후이지요.
Q. 하 림 : 그림체가 데뷔한 후 지속적으로 가지고 계시던 그림체와는 많이 달라진 것이 느껴집니다. 예전의 그림체를 좋아하는 사람도 많은데, 엄마는 요술쟁이 2부 초반쯤 해서 확실히 변화하였는데, 이유가 있습니까?
A. 문계주 : 그때는 확실히 틀려졌죠. 르네상스에 했을 때와 나나에 했을 때에 차이가 있지요.
아동지에 맞추다 보니 그림이 많이 이상해진거에요. 밍크에 연재를 계속하게 되면서 그림체를 많이 바꾼거 같아요.
독자에게서 온 편지를 읽어보면, 귀엽다는 말은 있어도 예쁘다는 말은 없더라구요. 그래서 "예쁘게 그려주마." 하고 그림체를 바꾼거에요. 출판사에서도 압력이 강하게 들어옵니다. 아동지(에 연재하는 만화)는 무조건 그림이 예뻐야 한다, 그림을 이쁘게 옷도 화려하게 해야한다. 요구가 까다로와요. 그런 요구에 맞추다 보니까. 그림체도 이상해지고, 얼굴도 바뀌고... 그게 좀 안 맞았고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Q. 하 림 : 작품은 어떤 방식으로 하시는지요.
A. 문계주 : 저는 스토리를 짜고 콘티 단계까지 머릿속에서 짜요. 그런 후에 뎃생에 들어가죠.
Q. 하 림 : 작가로서 자신의 작품 중에 좋아하는 것은?
A. 문계주 : 유쾌한 이웃하고 별똥별이 지나는 길... 이거 하면서 많이 울었어요. 독자들도 울었다고 하는데, 항의 편지도 많이 받았어요. 어린왕자를 30대로 그려서 이미지를 깼다는 항의가 많았죠.
Q. 하 림 : 중편 캠퍼스 락에 대하여 조금 설명을 해주시겠어요?
A. 문계주 : 초창기에 그린거에요. 겨울풍경으로 데뷔하고 나서 출판사에 낸건데 받아만 두었다가 유쾌한 이웃 끝나고 잠시 쉴 때, 저한테 어떤 연락도 없이 그냥 들어간 작품이죠. 들어가고 나서 전화가 와서, 고치지도 못하고 그냥 실렸던 작품이죠. 그리고나서 항의 편지를 받았죠. 그림이 왜 이러냐, 문하생 시켰냐. 등등. 그때 참 황당했죠. 그때는 신인작가는 원고를 막 열심히 냈으니까 많이 실어주긴 했죠.
Q. 차대원 : 원고는 다 보관하고 계시는지요. 작가들 중에 출판사에서 소홀히 관리하는 바람이 자신의 원고를 잃어버리신 분들도 꽤 계시더군요.
A. 문계주 : 원고는 거의 다 가지고 있습니다만, 김치텍사스 원고는 전부 잃어버렸어요. 착한아이 콤플렉스의 원고도 없어요. 윙크에 내기 위해, 문하생이 들고 갔는데 택시 안에 놓고 내려서 다시 그리게 된적이 있지요. 아마 그때 이틀동안 울었을 거에요. 방송에 광고도 냈었는데, 결국 못찾았어요.
Q. 하 림 : 1995년 즈음에 엄마는 요술쟁이 애니화 계획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 이후 소식이 없었던 게 무척 아쉬웠습니다만, 그에 관해 뒷이야기가 있습니까?
A. 문계주 - 그때 계약까지 다 했는데, 애니화 직전에 깨져버렸지요. 당시는 애니메이션 붐이 한창이었던 때였는데, 실제로 영화판에서 흥행에 실패하니까 겁이 나셨는지 뒤로 미루더라구요. 처음에 TV 시리즈였다가 비디오 2편만 먼저 내자고 제안하셨습니다만, 그것은 제가 거절했죠.
Q. 하 림 : 만화 외의 작업을 하신 것이 있다면?
A. 문계주 : 게임 캐릭터일을 하려고 했다가 계약단계에서 파기되었어요. 게임은 일본에서 만드는 거였어요. 내가 계약금을 너무 많이 불렀는지.
Q. 하 림 : 문선생님의 밑에서 공부하고 데뷔한 작가라든가, 영향을 주었을 후배작가가 있습니까? 혹은 문하생으로 활동했던 분들도 가르쳐주시면 감사하겠구요.
A. 문계주 : 김수연(캐쉬걸) 이라든가 김상희 등이 있어요. 이 사람은 인터넷쪽 주로 하다가 밍크에 단편 하나내고, 그랬죠.
Q. 하 림 : 현재 참여하고 있는 만화작가들의 모임이나, 다른 모임이 있습니까?
A. 문계주 : 없어요. 여만협 생길 때 일이 많던 때였는데 여기저기서 부르더라구요. 근데 소속되는 집단이 없으니, 요즘에는 그런 일이 잘 없어요.
Q. 차대원 : 문계주의 작품을 기다리는 사람이 많이 있는데요, 이후의 계획은?
A. 문계주 : (지금 하고 있는 롤플레잉)게임 끝나면요. 질렸으면 좋겠는데, 빠져들면 그게 안 질리더라구요. 5회 정도의 작품을 계획하고 있는데 밍크는 아니고 다른 지면으로 계획이 잡혀있습니다. 아동지는 중학생이하로 모든 설정을 잡아야 하니까 한계가 있더라구요. 주인공이 중학생이하여야 되고 그 이상이면 이해를 못한다고 하니까. 공주를 잡아라도 안되겠다고 하는데 그냥 싣게 된 거에요. 아동지를 오래 하게 되니 아무래도 신경 쓰이는 부분도 많고 표현에 한계도 있어서 많이 지치게 됩니다.
즐겁고, 활기차고, 꾸밈없는 (그리고 상당히 긴) 인터뷰가 끝나고 만화가 문계주를 인터뷰한 것이 아니라, (엄마는 요술쟁이에서의)비란이 엄마를 인터뷰 한 기분이 얼핏 들었다. 문계주의 작품은 얼핏보면 달콤한 과자로만 이루어진, 비현실적인 세계로 보일 수도 있으나, 한컷 한컷에 그자신의 생활과, 경험과 세계관이 녹아있기 때문이리라. 아마도 비란이 엄마는 그녀 자신일 것이다.
추신하자면, 게임은 만화의 적이다! 라는 말을 실감한 하루였다. 단순히 시장을 야금야금 점유하고 만화독자를 빼앗아가는 차원을 넘어서서, 이제는 만화가의 신작작업을 방해하기까지 하다니. 그러나 기자는 게임이 끝날때 시작될 새로운 문계주의 작품을 기대한다. 기다릴수록 작품은 가치있어진다. 물론 너무 기다리면 지치는 수도 생기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