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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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백

화가 난 사람처럼 잔뜩 입안에 물을 머금고 퉁하니 짓누르던 하늘은 이내 빗줄기를 내리 쏟았다. 그러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이 늦여름의 시들지 않은 햇살이 물기를 쫓아내는 거리. 만화가 박시백을 만나러 가는 길은 그렇게 조금은 짓궂었다.

2000-09-01 최경주

"일상에서 길어내는 따뜻한 희망"

화가 난 사람처럼 잔뜩 입안에 물을 머금고 퉁하니 짓누르던 하늘은 이내 빗줄기를 내리 쏟았다. 그러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이 늦여름의 시들지 않은 햇살이 물기를 쫓아내는 거리. 만화가 박시백을 만나러 가는 길은 그렇게 조금은 짓궂었다. 한겨레 신문사로 달리는 차 속에서 질문들을 재차 정리하면서 만화가 박시백이 우리에게 주는 것도 시원한 빗줄기와 따스한 햇살의 교차가 아닐까, 억지를 부려봤다.

정신없이 돌아가는 신문사 사무실 안쪽 자리에 다소간 여유롭게 앉아있던 박시백 씨를 본 첫인상은 어디선가 들은 말을 떠올리게 했다. 그림은 주인을 닮아간다는. 박시백 씨는 그의 그림세상에 등장하는 선량한 시민군(群) 캐릭터가 살아 나온 듯한 인상의 소유자였다. 서글서글하면서도 약간 축축하게 젖은 눈동자는 첫 대면에서 오는 불안감을 일시에 해소시키기 충분했다.

자리를 옮겨 시작된 인터뷰.
첫 질문은 기본적인 신상명세에 관련된 것들이었다. 나이, 가족 관계, 고향 등등. 활자로 옮겨보자.
성명 : 박시백. 나이 : 37세(64년생). 고향 : 제주도. 자녀 : 둘. 한겨레 그림판 1년, 현재는 박시백의 그림세상을 월, 수, 금 세 차례 연재. 이 정도는 미리 알아보고 갔어야 할 것들임을 박시백 씨 또한 웃으며 짚어 주셨다. "사전 조사가 부족하네요."
비록 신상명세에 대한 사전 조사는 부족했지만 박시백 씨의 만화만큼은 정말 열심히 봤다는 자부심이 나를 지탱해줬다.
"만화를 그리신 건 언제부터 였나요?" 내심 그림과 연관된 다양한 경험이 나올 거라 예상하며 던진 질문이었지만 대답은 의외였다.


"본격적으로 그리기 시작한 건 한겨레 입사하고 나서예요."
33세에 한겨레 그림판을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단다. 습작기도 없이? 그건 아니다. 입사 전에 2년 정도 습작기를 거쳤다고 한다. 하지만 만화를 그리기 위해 기초적인 그림 수업을 받은 적도 없고 관련 학과를 다닌 적도 없이 2년의 독학 끝에 만화가라는 호칭을 얻은 것이다. 박시백 씨 스스로 인정하듯 그건 일종의 행운이었다. 뭔가를 새로 시작하기엔 다소 늦은 감이 있는 서른줄에 접어들어 독학으로 시작한 지 2년만에 신문사의 만평을 담당한다는 것은 행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의 이력을 들어보면 박시백이란 만화가의 힘은 습작의 시기에서 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84학번으로 대학을 들어 간 박시백 씨는 재학중 시국사범으로 투옥된 경험이 있고, 그 뒤로는 노동현장에 투신을 했었단다. 해서 그의 그림들은 그가 젊은 시절동안 간직했던 삶에 대한 태도를 선과 면으로 하나씩 풀어놓은 것이다. 그렇게 보면 그의 습작기는 청춘의 전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만화를 좋아했어요. 만화가를 꿈꾸기도 했구요."
만화가의 꿈은, 물론 그 꿈을 위해 구체적인 노력을 하진 않았지만 단 한번도 버린 적이 없었다고 한다. 그의 이력을 볼 때 언뜻 연결은 안 되지만 그의 만화들을 자세히 보고 있노라면 그가 보낸 모든 시간들 속에서 현재의 만화들이 차츰 성장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만화를 무척 좋아한다는 말에 이런 질문을 던져 보았다.

"좋아하는 만화가가 있겠네요?"
사실 인터뷰 대상자에게 이런 말은 예의에 어긋나는 말이지만, 만화 얘기로 들어가자 박시백 씨의 얼굴은 천진난만 그 자체였다. 화제를 돌리지 않으면 밤새도록 해도 끝이 나지 않을 것 같은 만화 편력기. 그 중에서 몇 편의 만화를 뽑아 보자면 이렇다. 현재 모 신문에 연재되고 있는 허영만 씨의 타짜, 기생수, 내 사랑 엘리스, 아키라, 몬스터등등.


그런데 이상하게 생각되는 것은 박시백 씨가 그리는 만화들과 열거한 만화들 간의 어떤 공통점도 없다는 사실. 해서 추가적으로 질문을 던져 보았다. 지루하게 늘어놓은 질문을 요약하자면 만화에서 중요한 게 뭘까요, 였다. 발상과 다양성.내 사랑 엘리스나 기생수의 경우 발상이 놀라웠고 그 점 때문에 좋아한다는 설명이었다. 그렇다면 발상이 뭘까. 풀어 보자면 누구나 느끼고 볼 수 있는 것을 뒤집어 보거나 비틀어 볼 줄 아는 힘. 결국엔 비슷비슷한 이야기를 어떤 관점에서 보고 어떻게 접근하느냐가 중요하다는 얘기이다. 다양성 얘기는 기자의 고리타분한 질문에 대한 박시백 씨의 현명한 답변이었다. 아무래도 시사 만화가니까 만화의 의미성에 대해 할 말이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다양한 만화가 나와야죠." 한다. 각 장르의 만화들이 다 나름의 가치가 있다는 얘기다. 대답을 듣고 보니 기자 같은 사람들 때문에 국내 만화 시장이 협소해 지는구나, 자책감이 들 정도였다. 사실 국내 만화시장의 실태를 생각해 볼 때, 다양성의 문제는 아픈 부분과도 연결되는 지점이다. 사건의 발단은 그림세상의 단행본 출판 문제로부터 시작되었다.


"박재동 씨도 그림판을 단행본으로 냈었는데 그러실 생각은 없으세요?"
그림세상을 시작한 지 벌써 3년이 되었으니 단행본 분량은 충분할 것이었다. 그런데 대답은 현실적인 문제였다. 과연 시사 만화 단행본이 시장성이 있냐는 문제가 바로 그것이다. 시장성에 대한 예측이 불분명한 만화를 낼 출판사가 없다는 것은 시비를 따지기 전에 극히 당연한 일.
그래서 기자가 조금 잘난 척을 하며 끼어 들었다.
"사료적인 가치가 있을 것 같은데...
" 비록 잘난 척 하며 끼어 들었지만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기자의 말에 대한 박시백 씨의 답변이 거의 예술이었기 때문이다.
"좀 건방지게 말하자면, 시사 만화는 일종의 풍속화라고 생각해요."
장르의 특성상 시사 만화는 일회적일 수밖에 없다. 그날 그날 신문을 통해 볼 때의 카타르시스가 시간이 지나면 흐릿해지는 것이 당연할지도 모른다. 그 점이 단행본 출판으로 가는 걸림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박시백 씨의 이 말을 꼭 들려주고 싶다. 풍속화. 우리가 어떻게 살았으며, 무엇을 보고 분노하고 기뻐하고 슬퍼했었는지를 되새겨주는 일상의 소사. 바로 우리 시대의 자화상인 셈이다.


그의 말을 빌려 표현하자면 풍속화가 박시백인 것이다. 그렇다면 그에게 가장 힘든 것은 무엇일까.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는 것이 소재의 문제일 것이다. 그것을 제외하곤 역시 표현의 문제였다. 차라리 어떤 것을 보고 똑같이 그리라면 쉬울 텐데 자신의 화법으로 옮겨놓는 작업이 그리 수월하지 않단다. 박시백 씨의 만화가 갖는 매력은 단순함의 미학인데, 사물이 사물이게끔 하는 단순화에 많은 애로점이 있다고 한다. 때론 정말 그리고 싶은 소재를 표현이 못 따라가서 포기한 적도 있다고 했다.

표현과 관련되어 또 하나의 애로점은 그가 만화를 그리는 공간이 유력한 일간지라는 사실이었다. 그건 그림보다는 대사에 관련된 문제인데, 언어 선택에 있어서 표현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기 때문이다. 직접적인 욕설을 집어넣고 싶어도 신문사의 이미지상 그게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터넷이라는 좀더 자유로운 세상을 그 역시 꿈꾸고 있었다. 느낌 그대로의 표현, 이것은 표현하고자 하는 인간 모두의 자연스러운 욕구일 터이니 말이다. 그런데 그것이 언제가 될지는 모른단다.

그러나 언젠가 인터넷상에서 질펀하게 쏟아내는 우리 일상의 풍속화를 볼 날이 올 것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전해졌다. 만화에 대해 말하는 그의 눈빛이 그걸 또박또박 말해주었기 때문이다. 소박하고 따스한 만화가, 아니 우리 시대의 풍속화가 박시백. 그와 대화를 나누며 보낸 시간들은 만화는 펜만으로 그리는 것이 아니고 가슴으로 만들어내는 우리들 삶의 일부라는 것을 아주 차분하게 일깨워준 귀한 시간이었다. 대화를 끝내고 나온 거리는 여전히 따스한 햇살로 가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