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일 만화는 가볍기도 하고, 날카롭기도 하며, 우습기도 하고, 썰렁하기도 하다. 낙서체와 명랑체를 오고가는 그의 그림들은 만화책 말고도 지하철 광고나 다른 책자 등 여기저기서 눈에 띄인다. 그의 그림뿐만 아니라 그걸 흉내낸 그림들도 상당하여, 그의 스타일은 트랜드가 되었다. 이우일은 자신의 그림이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을 즐겁게 하는 데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미술대학에 다니며 만화 동아리를 하던 시절, 자신의 동료들의 스타일리시한 그림들을 보고 그가 내린 결론은 자신은 그만큼 할 수 없다는 거였고, 어린 시절부터 익숙하게 한 방향으로 나가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그것이 그를 오히려 돋보이게 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우일의 만화가 흥겨움와 재미가 녹아있는 것은 그가 어린 시절부터 언제나 고수해왔던 원칙 곧 즐거움의 원칙에서 벗어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즐거움은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창작을 가능케 하고, 자유로운 창작은 만화의 영역을 확장시킨다. 이우일은 ‘이야기하는 그림, 혹은 그림으로써 하는 이야기’라는 만화에 대한 정의의 가장 넓은 땅을 뛰어논다. 이우일 만화와 그림의 재미는 항상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데에 있다. 읽을 것이 있는 그의 그림들은 한 컷이더라도 눈을 사로잡는다. 무언가 재미난 것이 있을 것이라 찾게 된다. 짜여지지 않은 칸은 여백과 여기 저기 빈 공간을 만들고 그곳에서 독자는 숨을 쉬고 사고를 한다. 헐렁한 그림들이 주는 편하고 쉬운 재미를 맛볼 수 있다.
그는 익숙함 속에서 새로운 변화를 시도했다. <호메로스가 간다> 는 그의 이전 만화들에 비해 좀 더 서사적이고 극화적이다. 그에겐 모험이었을 테지만, 한편으로 독자입장에서는 반가운 변신이기도 하다. <호메로스가 간다> 를 하는 와중에도 만화가 현태준과 <도쿄 여행기> 를 낼 만큼 이우일은 언제나 무언가를 끊임없이 생산한다. 멈추지 않는 만화공장, 이우일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 그림: 호메로스가 간다, 그림: 도쿄 여행기
Q. 일러스트레이션과 만화... 얼핏 밖에서 보기에도 일이 많고 바쁘실 것 같습니다. 많은 작업의 아이디어는 어디서 어떻게 나오는 겁니까?
A. 일을 받아서 하는 것 대신 개인적인 작업은 많이 줄었습니다. 대부분 클라이언트 작업이죠. 컨셉이 정확하게 있으면 아이디어는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 같습니다. 여러 가지 일을 늘어 놓으면 서로 시너지가 생기는 것 같기도 하구요.
Q. 자신이 만든 캐릭터 중 가장 애정이 가는 것은 무엇인가요?
A. 글쎄요. 아직도 그린다음 하룻밤만 지나면 유치해 보이는 것들 뿐입니다. 사실 그 동안 그렸던 양에 비해 "성공한" 캐릭터가 없는 편이죠. 그래도 하나 고르라면 ?아빠와 나? 정도일 것 같습니다.
Q. 전에 어느 인터뷰 글을 검색해 보니 만화가로 소개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하셨는데요. 일러스트레이터 일과 만화가로서의 일을 스스로 구분하시는지, 아니면 같은 일로 느끼시고 작업하시는지요?
A. 개인적으로 이런 선입견은 있습니다. 일러스트레이터 보다 만화가가 더 자기 것에 대해 많은 책임을 가져야 한다는. 하지만 말 그대로 선입견일 뿐입니다. 일러스트레이션과 만화는 기능면에서 약간 다른 역할을 할 뿐 어느 일이 우위라거나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Q. 일러스트레이터로서 트렌드를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의뢰하는 쪽에서 이우일 스타일로 해달라는 말을 많이 한다고 주변에서 들었습니다. 만화 스타일의 이미지와 기호, 그리고 가벼운 느낌의 작업은 만화와 일러스트레이션 간의 경계를 허무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본인이 생각하는 만화와 일러스트레이션의 경계는 어떤 것입니까?
A. 그건 또 다른 선입견 때문에 생기는 문제인데요. 일러스트레이션은 ?이러이러 해야 한다?라는. 애당초에 누구도 일러스트레이션의 형식을 구획하지 않았는데, 만화는 일러스트레이션이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의외로 많은 것 같습니다. 그 둘은 구분할 필요도 없고 그렇게 해 봐야 별 의미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Q. 이우일 작가님이 딴지일보에 존나깨군을 연재하던 때와 시간이 많이 흐르고 인터넷 만화도 스타일을 잡아가며 나름의 양식을 찾아 형식적인 면에서 안정화 된 것 같습니다. 현재의 인터넷 만화에 대해서 어떻게 보시나요?
A. 많은 작가들이 자연스럽게 인터넷을 자신의 매체로 잘 활용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매체만 달라졌을 뿐 만화 본연의 것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재미있고 독특한 것들이 살아남겠지요. 저도 요즘 새로 한 포털 사이트에 연재를 다시 시작했습니다. 예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다시 한번 도전해 보는 것이지요.
Q. 얼마 전에 현태준 작가님과 일본 여행기를 내셨죠? 가벼운 작업도 하시고, 한편으로 <호메로스가 간다> 를 보면 변화에 대한 욕심도 많으신 것 같습니다. <호메로스가 간다> 에서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무엇입니까? 의도대로 되었는지요?
A. 그리스 로마신화의 내용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시각을 변형 시켜보는 것이 가장 큰 실험이었습니다. 첫 권은 나름대로 잘 시작했다고 생각합니다만, 아직 갈 길이 험해서 자평을 하기엔 이르다고 생각합니다.
Q. 여행에 대한 것. 영화에 대한 것 등 많이 그렸습니다. 언젠가는 이우일 작가님이 본 만화에 대한 책을 보여준다면 어떨까 싶은데요...
A. 하하. 그것도 재미있겠네요.
Q. 아직도 이우일 작가님을 언더그라운드 성격의 작가로 보는 사람이 많은 것 같습니다. 90년대 초반에 언더그라운드 만화 판에 개성적인 스타일의 많은 작가들이 있을 텐데 자신이 주목을 받은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는가?
A. 글쎄요. 사실 언더그라운드라는 게 별로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언더그라운드 만화서클은 상당히 정치적인 색이 짙었죠. 만화를 수단으로 이용하는 느낌이랄까. 그에 비해 저는 순수한 욕망에 사로잡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유치할 정도였죠.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은 그런 시절의 그런 그림을 봐주는 사람들이 생겼다고 생각합니다.
Q. 자기 개성을 가지면서 대중적인 관심을 원하는 작가지망생들에게 한 말씀하신다면...?
A. 그 두 가지가 상당히 동전의 앞 뒷면과 같아서 동시에 보기가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역시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그려라’ 라는 뻔해 보이는 말 밖에는 해 드릴 것이 없군요.
Q. 어떤 작가가 되길 원하시나요? 어떤 작품을 하고 싶으신가요? 전 같이 막 나가는 작업이 기대가 되기도 하는데요...
A. 은근히 ?이우일은 좀 막 나가야 맛 아냐? 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으신 것 같습니다. 지금으로선 <호메로스가 간다> 가 가장 중요한 작업이고 열 권을 무사히 끝냈으면 합니다.
Q. 다른 계획은 없으신지요? 만화나 일러스트레이션이 아닌, 해 보고 싶은 다른 건 어떤 게 있으신가요? 아니면 다른 어떤 것이라도....?
A. 여행기를 계속 낼 생각입니다. 우선 두 권이 더 계약되어 있습니다. 당연히 글쓰기가 수반되는 작업이구요. 앞으로도 글쓰기에 좀더 신경을 써 볼 생각입니다.
Q. 그렇군요, 긴 시간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