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작가들에게 그림 그리는 것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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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시대적 의무 (上) - ‘어떻게’ 재현할 것인가.

만화(웹툰) 작가들에게 그림을 그리는 것이란? 10화

2025-03-30 문종필

작가의 시대적 의무 () - ‘어떻게재현할 것인가.


  만화가들에게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일까. 그림을 잘 그리는 것일까. 그 어떤 사람도 설득할 수 있는 탄탄한 서사를 완성하는 것일까. 만화는 그림 그리는 것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으니 그림을 잘 그려서 나쁠 것은 없다. 만화 역시도 시간을 담보로 흘러가는 장르이니 짧거나 긴 서사 속에 최적의 형식을 활용할 수 있다면 더는 바랄 것이 없겠다. 하지만 이런 요소보다도 창작자들에게 꼭 필요한 요소 하나가 있다. 그것은 바로 동시대를 기록하고 기억하는 작가의 의무이다.

  창작 방법이야 시간을 들여 배우거나 익힐 수 있지만, 동시대를 기억하고 기록하는 행위는 단순히 배워서 되는 것이 아니다. 동시대의 감각을 온몸으로 체득해야 하는 과정에서 느낄 수 있는 소중한 감정이다. 이 과정에서 창작자는 시대를 꿰뚫어야 하고, 이 감각으로 옳은 것과 덜 옳은 것을 구분해야 한다. 우리는 이것을 시대적 감수성이라고 부를 수 있겠다.

  그러니 이런 특별한 감정이 부재된 만화가라면 그를 재미있거나 재치 있는 만화가로 부를 수 있고, 인기 있는 만화가라고 치켜세울 수 있을진 몰라도, 훌륭한 만화가라고 부르기는 힘들다. 그에게는 시대를 온몸으로 읽으려는 마음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마음을 먹는다고 해서 좋은 작가가 되는 것도 아니다. 한국현대사의 가슴 아픈 상처를 온전히 느끼는 과정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새롭게 서사를 갱신할 수 있어야 한다. 이 방법은 정해져 있다기보다는 창작자 홀로 험난한 과정을 통과해야 한다. 그럴 때 한편의 아름다운 작품이 완성된다. 여기서 아름답다는 말은 단순한 아름다움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작가가 바라보고 재구성한 당대의 아픔을 독자들이 공감하는 과정에서 온몸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경험 자체를 의미한다. 따라서 작가는 되기의 방식으로 누군가의 삶을 아프게 통과할 줄 알아야 한다. 이것을 우리는 작가에게 필요한 윤리적인 마음가짐이라고 부를 수 있겠다. 이 마음을 품은 것은 쉽지 않다.

  최근에 내가 소속되어 있는 어느 한 만화단체에서 공동작업 하나를 준비하고 있다. 아직 정식으로 공개되지 않아서 구체적으로 적을 수는 없지만, 상식적이지 않은 일을 계속해서 반복하는 정부에 대항하는 기획을 준비 중이다. 국가 폭력과 관련된 만화를 찾아 리뷰하는 과정에서 옳지 않은 일을 자행했던 정부에 쓴소리하기 위함이다. 이 작업으로 많은 사람이 부조리한 국가의 실체를 응시하게 되는 과정에서 잘못된 것이 무엇인지 알리는 것이 최종 목적이다. 한마디로 말해 만화로 보다 나은 세상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 작업을 통해 만화를 그리는 사람과 만화를 좋아하는 예술가와 평론가 사회운동가가 모여 함께 뜻을 모으기로 했다. 한국현대사의 굵직한 아픔을 통과하는 과정에서 국가는 개인을 지켜주기보다는 아무렇지 않게 짓밟게 되는데 이러한 흔적을 응시한 만화 텍스트를 찾아 검토함으로써 독자들에게 잘못된 국가의 폭력이 무엇인지 알리려고 한다.

△ 2009120일 철거민이 망루에 올라 협상을 요구하던 중, 경찰특공대에 의해 진압당한다.
안타깝게도 이 과정에서 화재가 발생하고 이 사고로 6(시민 5, 경찰특공대 1)의 소중한 생명을 잃게 된다.

  내가 맡은 부분은 서울시 용산 재개발 보상대책에 반발한 철거민과 경찰이 대치하는 과정에서 6명의 사상자를 낸 용산참사(2009120)’2014416일 인천에서 제주도로 향하는 청해진해운 소속 여객선의 침몰을 다룬 세월호만화이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이 작업을 반복하는 것은 의미 없다. 이 작업의 후속 작업으로 용산참사세월호 참사를 다룬 작품을 단순히 서술하기보다는 한국현대사의 가슴 아픈 상처 중 하나인 용산참사에 국한해 작가들이 어떻게 부조리를 응시하고 다루는지 창작 방법과 관련해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이 과정은 자연스럽게 만화가에게 필요한 윤리적인 책임 의식을 강조하게 될 것이며, 이런 시대적 의무를 저버리지 않아야 한다는 점을 미래의 만화 전공자들에게 전달할 생각이다. ‘세월호는 언젠가 꼭 긴 글로 다루는 날이 있으리라.

  용산참사가 일어난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강로 2가 남일당 건물에 올라가 망루를 설치한 사람들은 거창한 것을 바라지 않았다. 남들처럼 가족들을 챙기고 싶었고, 당장 살 공간을 잠시만이라도 안전히 유지하기 위해 목소리 높였던 사람들이었다. 그중에는 서울이 아닌 수원에 사는 사람도 있었다. 재개발로 인해 누군가가 피해 본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마음을 나누고자 용산으로 달려와 준 마음씨 좋은 사람이었다. 자신만의 이득을 챙기기 위해 노력한 사람이 아닌, 자신의 아픔이 타인의 아픔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직감한 고마운 사람들이었다. “2억이 넘는 융자에, 인테리어, 집기, 권리금이 5, 6!”이 들어갔음에도 재개발 평가금이 고작 5이라는 말에 조금이라도 나은 협상을 위해 망루에 오른 이웃이었다. 어렵고 가난한 현실을 자신의 대에서 끊기 위해 망루로 올라간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이들에겐 따뜻한 위로나 대화는 없었다. 구속당할 마음을 먹고 망루에 올라 생존을 위해 싸웠지만, 기다린 것은 물대포와 경찰특공대의 무력 진압이었다. 이들은 버티고 버티다 경찰의 진압 과정에서 목숨을 잃게 된다. 화재가 원인이었다. 하지만 목숨을 잃은 것이 화재 때문이었는지 특공대의 과격한 진압이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진압이 있었기에 경찰관 한 명과 시민 다섯 명은 안타깝게 목숨을 잃었다. 당시 국가의 진압이 없었더라면 그 누구도 다치지 않았을 것이고, 현재도 이 계절을 온전히 느끼며 곧 다가올 봄의 새싹들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 참사가 국가의 의도적인 계획에 의해서 자행된 작전이라는 점이다. 사고나 실수(부주의)가 아닌 의도가 명확한 작전이었다는 점에서 국가의 폭력적인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러니 2009년에 일어났던 용산참사는 가슴 아픈 한국현대사의 상징적인 사건이자 국가 폭력의 민낯을 보여준 부끄러움 자체이다. 그렇다면 만화가들은 이런 현대사의 아픔을 어떤 방식으로 통과하고 재현할까. 이 대목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기억하는 행위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서다. 흔히, 예술가들을 향해 특정 사고(재난)나 사건에 대해 마지막까지 기억하고 기록하는 사람들이라고 말하게 되는데, 이는 만화가들에게도 통용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그러니 훌륭한 만화가는 이 작업을 충실히 이행해나간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생각해야 할 것은 충실히 이행해 나가는 행위가 무조건 의미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행하는 행위에 대해 나은 것과 덜 나은 것을 따져 물을 수 있어야 한다. 가슴 아픈 상처를 만나게 되는 과정에서 함께 눈물을 흘릴 수 있는 것이 작가에게 중요한 것일 수 있으나, 이 눈물만으로는 모든 창작 행위가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이유는 마음을 먹는 것과 이 마음을 새롭게 재현하는 것은 다른 문제이니 그렇다.

△ 〈용산개 방실이표지

  가령, ‘용산참사에 대해 다룬 용산개 방실이(책장과 더불어, 2011)가 좋은 예가 될 듯하다. 내가 이 텍스트가 좋은 예가 될 수 있다고 말한 것은 작가가 용산참사를 다루는 데 있어서 창작 방법을 편집 후기에 직접적으로 적어 놓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의 이 의도가 작품에 온전히 재현되었다고 단정할 지을 수는 없겠지만, 명확한 작가의 의도를 통해 작품이 성공했는지 실패했는지 가늠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가치 있다. 그렇다면 용산참사라는 가슴 아픈 역사적 상흔을 작가는 어떻게재현하려고 노력했으면, 이 의지의 결과물은 실제로 어떠했을까. 우선 창작방법론을 확인해 보자.

  “용산은 어떤 방식으로든 계속 기억되어야 하고, 오래 기억되려면 구체적으로, 생활 속 이야기로 전해져야 한다는 생각에 이 이야기를 책으로 내기로 결정했다. ‘개발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망루에 올랐다가 경찰의 폭력 진압으로 사망했다.’는 건조한 이야기로는 사람들 마음속에 오래 살아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310)

  〈용산개 방실이의 창작자는 의도가 다분하다. “개발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망루에 올랐다가 경찰의 폭력 진압으로 사망했다라는 단순한 구호(서사)로는 그 누구도 설득(기억)시킬 수 없다고 말한다. 따라서 이 창작자의 진정한 목적은 만화가로서 용산참사를 고발하는 방식으로 그리는 것이 아닌 누군가의 마음에 오래도록 머물게(기억하게) 만드는 것이다. ‘용산참사를 르포 형식으로 재현하는 방식을 넘어 독자들이 잊지 않게 서사적인 장치를 활용하겠다는 의지로도 읽힌다. 그렇다면 그 방법은 무엇일까. 그것은 구체적인 생활 속 이야기로 용산참사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용산참사에서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시민들은 총 5명이다. 식당을 운영하는 고 윤용현 씨, 수원에 살다가 2009120일 망루에 오른 고 한대성 씨, 용산에서 5년째 삼호복집을 운영했던 고 양희성 씨, 용산에서 레아호프을 연 고 이상림 씨, 용인과 성남에서 철거당해 천막에서 삶을 이어나갔던 고 이성수 씨가 그들이다. 창작자는 이미 고인이 된 이들 중, 삼호복집을 운영했던 양희성 씨의 사연에 집중했다. 그가 생전에 살아가던 삶 자체에 집중하기보다는 양희성 씨가 키우던 반려견 방실이에 초점을 맞추었다.

△ 〈용산개 방실이260, 280.

  방실이는 양희성 씨가 망루에서 안타깝게 목숨을 잃게 되자, 음식을 먹지 않고 끝내는 죽게 된다. 이 사연에 집중함으로써 망루에 올랐던 양희성 씨의 안타까운 사연을 강조하려 했다. 초점을 방실이라는 반려견에 맞춤으로서 인간의 죽음을 온전히 느끼지 못할 것 같은 동물마저도 용산참사의 아픔을 느낀다는 설정을 통해 2009년 서울 용산에서 일어났던 부조리한 국가 폭력을 고발했다. 하지만 이런 치밀한 작가의 의도가 온전히 성공했다고 볼 수는 없다. 초반부에 확인할 수 있는 지나친 구체성은 오히려 긴장을 덜 불러일으키게 한다는 점에서 독자들의 흡입력을 방해하는 요소로 작동한다. 300쪽 분량의 장편이라는 것 역시 구체성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이지만, 칸과 칸 사이에서 발생하는 에너지가 조금은 덜 절제된 듯한 인상도 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의미 있는 것은 창작자가 어떤 방식이든지 부조리한 용산참사를 잘 기억하고자 애썼다는 점에서 값진 가치를 부여할 수 있다. 실패든 성공이든 기억하고자 애쓰는 행위 자체가 옳은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용산참사를 기억하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가 직접적으로 표현된 텍스트라는 점에서 이 책은 기억될 필요가 있다.

△ 〈파란집표지

  그다음으로 살펴볼 텍스트는 파란집(보리, 2010)이다. 용산개 방실이가 의도적으로 건조한 이야기를 피하고 생활 속에서 전해지는 잔잔한 서사에 관심을 보인 것이 문제적이라면, 파란집의 작가 이승현은 책의 제목처럼 파란집을 지키려는 사람들을 상징은유의 형식으로 재현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 그는 이 텍스트에서 말풍선을 제외하고 그림만으로 국가 폭력에 대해 말한다. 이승현의 그림(만화)책은 판화에서 볼 수 있는 굵고 거친 선과 진한 색의 형태로 국가의 부조리를 고발한다.

△ 〈파란집의 장면들이다.
텍스트는 가로로 편집되었으나,
이 글에서는 세로로 편집해 인용하기로 한다.

  첫 페이지에서는 수많은 파란집에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주민들의 일상을 보여준다. 어느 순간부터 재개발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의 모습이 빠른 속도로 펼쳐진다. 마을 주민들은 버티어 보지만 강압적인 제지로 인해 대부분 고향을 떠나게 된다. 그래도 일부의 주민들은 이곳이 아니면 갈 곳이 없었기에 두 주먹을 불끈 쥐며 끝까지 버틴다. ‘파란집에 머문 소수의 사람은 물대포를 맞아가며 버티고, 지상에서 불 질러진 지독한 타이어 냄새를 맡아가며 대화와 협상을 간절히 바란다. 그러나 협상이 잘 될 리 없다. 대화가 융통성 있게 진행될 리 없다. 오히려 경찰은 특공대를 투입하기로 마음먹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망루에 올라선 시민들은 진압당한다. 안타깝게도 망루를 지켰던 일부의 사람들은 화재로 목숨을 잃는다. 가장 좋지 않은 비극과 직면하게 된 것이다. 슬픔은 그렇게 지속되고 시간이 흐른다. 시간이 흘러 이 장소는 새로운 아파트가 들어서 버린다. 공간과 장소가 새로운 아파트로 대체되니 과거의 묶인 기억은 안타깝게 증발한다.

  그러나 이승현은 아파트 벽 틈 속에서 노란색 민들레 한 송이가 벽을 뚫고 자란다는 설정을 통해 공간과 장소가 사라지더라도 그때 그 당시에 용기를 낸 사람들은 잊히지 않고 기억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힘겹게 자라는 노란색 민들레를 통해 오래도록 잊지 않고 사람들이 이들을 기억해 줄 것이라고 믿는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말풍선 하나 없이 두꺼운 선과 톤으로 선명하게 재현한다. 이 작품이 의미 있는 것은 용산참사를 말하는 방식이 다른 작품과 확연히 다르다는 점이다. 판화 형식을 재현하는 것이 새로움일 수 있겠으나, ‘용산참사를 새로운 형식으로 기억했다는 점에서 재현의 다양성을 보여준다고 볼 수 있고, 창작자들은 이 형식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 철거민이 희망을 품고 싸운 시간을 민들레로 표현한 장면,
민들레가 피는 과정에서 재개발된 아파트 벽에 금이 가 있는 연출은 가슴 아픈 사연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밖에 눈여겨봐야 할 작품으로는 만화가 김성희, 김수박, 김홍모, 선상식, 앙꼬, 유승하가 공동으로 합작한 단편 모음집 내가 살던 용산(보리, 2010) 을 들 수 있다. 이 텍스트는 망루에 오르다 목숨을 잃은 이웃들을 만화가가 한 명씩 맡아 자신만의 방식으로 애달픈 사연에 귀 기울인 공동 작품집이다. 이 텍스트는 시대적인 맥락과 실력파 만화가들의 공동작업으로 많은 사람에게 읽혔다.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책이 7쇄이니 웹툰 시대에 적지 않게 팔린 책이라고 볼 수 있다. 이 텍스트의 장점은 2009년 당시 망루에 올라 목숨을 잃은 이웃들의 개별적인 사연을 다양한 만화 형식으로 재현했다는 점이다. 만화가들이 이미 고인이 된 한 사람의 사연에 집중함으로서 시대에 놓인 한 개인의 아픔을 어떻게재현할지 고민했을 것이고, 독자들은 이 고민의 흔적을 직접적인 작품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창작자들에게는 중요한 텍스트가 된다.

  우리는 그때 그 당시 여러 매스컴을 통해 경찰 특공대의 무력 진압이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판단할 수 있다. 진압으로 인해 억울하게 목숨을 잃은 사람을 떠올릴 수 있다. 하지만 이 사실만으로는 망루에 올랐던 사람들의 섬세한 결과 사연을 모두 알 수 없다. 그러나 내가 살던 용산은 그것이 가능하다고 말해준 텍스트라는 점에서 의미 있다. 희생된 존재들이 누구인지 다 알 수는 없지만, 고인이 된 누군가를 만화가들이 섬세하게 재현하는 과정에서 독자들은 간접적으로나마 그들에게 손을 내밀어 볼 수 있다.

  만화가들은 용산참사가 있었던 시기에 작가적인 책무에 대해서 생각했을 것이다. 자신이 그리는 만화로 억울하게 돌아가신 사람들을 어떤 방식이든지 일반 대중들에게 알리고 싶었을 것이다. 이들이 무슨 이유로 망루에 올라야만 했었는지, 어떤 이유로 싸워야만 했었는지에 대해 구체적이면서도 섬세한 만화 형식을 통해 과거를 온전히 소환해 내고 싶었을 것이다. 이 방식을 통해 그들은 폭력적인 국가에 저항하고 싶었을 것이고, 독자들에게 자신의 만화로 옳은 것과 옳지 않은 것을 바로 잡아야 한다고 목소리 높이고 싶었을 것이다.

  이 행위는 의미 있다. 시대를 기억하고 잊지 않기 위해 노력한 만화가들이 우리 곁에 있다는 것은, 먼 미래에 다가올 부조리에도 물러서지 않고 저항해 정직하게 기록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정치는 썩어가고 부패 되어가고 있지만, 다양한 영역의 작가들이 시대를 응시하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는 그래도 제법 괜찮은 사회가 될 수 있다. 인간은 기억을 쌓은 존재다. 좋은 기억도 쌓아야 할 필요가 있지만, 잊지 말아야 할 기억도 잃어버리지 않게 보관해야 한다. 그러니 창작자들은 끊임없이 이 시대를 응시해야 한다. 응시하는 것을 멈추면 안 된다. 우리에겐 그럴 의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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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종필

글쓴이 문종필은 평론가이며 지은 책으로 문학평론집 〈싸움〉(2022)이 있습니다. 이 평론집으로 2023년 5회 [죽비 문화 多 평론상]을 수상했습니다. 그밖에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서 주최하는 대한민국만화평론 공모전 수상집에 「그래픽 노블의 역습」(2021)과 「좋은 곳」(2022)과 「무제」(2023)을 발표하면서 만화평론을 시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