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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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컬 오렌지 (Cynical Orange)

‘찰랑이는 긴 생머리. 청초한 눈매. 건드리기만 해도 상처가 날 것같은 연약한 몸매(그러나 반드시 글래머일 것). 그 모습은 그대로 소년의 로망. 그리고 소녀들 최대의 적’. 『시니컬 오렌지』의 주인공 황혜민은 그런 소녀다. 게다가 연애시뮬 주인공같은 분위기라니...

2003-11-27 김동연
‘찰랑이는 긴 생머리. 청초한 눈매. 건드리기만 해도 상처가 날 것같은 연약한 몸매(그러나 반드시 글래머일 것). 그 모습은 그대로 소년의 로망. 그리고 소녀들 최대의 적’. 『시니컬 오렌지』의 주인공 황혜민은 그런 소녀다. 게다가 연애시뮬 주인공같은 분위기라니 그 미모의 정도가 짐작도 가지 않지만, 일단 이 초절정 미녀가 연예계로 진출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작가에게 감사한다. 연예인 주인공은 그렇지 않아도 많다. 뛰어난 미모 때문에 시달리고 냉소적인 성격 탓에 시달림이 가중되는 혜민, 그리고 그에 못지 않은 과정을 거친 오신비. 이 괴팍한 인물들을 통해 작가가 하고 싶었던 말은 무엇이었을까? 우리는 상대가 내 진심을 얼마나 알아주는지 알 수 없다. 스스로도 상대의 진심을 얼마나 알 수 있는지 모른다. 쉽게 선입견을 가지고 대할 만한 전형적인 사람이라도 만나면 그 사람에 대해 정당한 평가가 당장에 내려지지 않는다. 예쁘고 착한 여자와 예쁘고 착하지 않은 여자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할 수 있을지. 어느 쪽이든 트집 잡히기는 마찬가지다. 심술을 부리자면, 예쁜데 착하기까지 하면 뭔가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 것이고 예쁜데 착하지 않으면 얼굴만 믿고 성질을 부린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그래서 미녀는 괴로운가? 혜민에겐 선배뻘의 캐릭터가 있다. 유시진의 『쿨핫』에 등장하는 김동경 말이다. 예쁘고 똑똑하고 폐쇄적인 얼음 공주. 부유한 가정환경으로 인한 귀티까지 지니고 있다. 같은 계층이 아니라면 동경을 마음 편하게 대할 친구는 거의 없을 것이다. 실제로 이런 친구가 있다면 ‘너 정도면 친구 없어도 잘 살겠네’ 하는 생각이 절로 머리에 떠오를지도 모른다. 물론 동경의 성격 형성에 영향을 미쳤을 가정사를 모른다는 전제로 말이다(안다 한들 이해하기 쉬운 상황도 아니며 동경이 손을 내밀 리도 만무하다). 혜민은 동경이와는 다르게 마음을 열 여지가 많아 보인다. 혜민이 친구를 사귀기 어려운 이유는 남자 때문이다. 친구의 남자친구가 혜민을 좋아하게 된다든지 남학생들의 과잉 친절이 여학생들을 눈꼴시게 한다든지 말이다. 그러니 혜민이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가만히 있어도 이유 없는 호의와 근거 없는 적개심에 매일 시달리는 혜민이 안쓰럽다. 혜민이 잘못한 것도, 괴롭히는 아이들이 잘한 것도 없다. 그런데 그것 뿐일까? 우리는 몸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다이어트, 미용, 성형수술. 아름답게 태어났다는 것 자체로 그 사람은 높은 부가가치를 가진다. 일상에서 외모의 영향이 없다고 단언할 수 있는가? 외모가 하나의 재능이고 재산인데, 완벽한 미모를 가진 혜원에 대한 평범한 여자 아이들이 갖는 일차적 감정은 뻔하다. 게다가 혜원의 가정환경은 부유한 듯 보인다. 어쩌면 혜원과 평범녀들의 대결은 계층 간의 갈등일지 모른다. 갑갑한 학교 안에서 민감한 감정은 증폭되고 일그러진 증오가 폭력이 되어 혜원에게 쏟아진다. 학교를 벗어나 사회에 나갔을 때 혜원이 취하게 될 혜택과 자신들이 받을 불이익을 그들은 이미 알고 있는 것일까? 혜원을 괴롭힌다고 나아질 것이 없는데도 말이다. 편견을 편견으로 돌려주는 악순환. 혜원과 평범녀들이 원망해야 하는 것은 서로가 아니라 이 사회여야 하지 않을까? 윤지운의 『시니컬 오렌지』는 2002년 독자만화대상 장편부문 4위를 기록할 정도로 독자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위에 언급한 문제들을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재미가 충분한 작품이다. 2위를 차지한 작가의 전작『HUSH』도 마찬가지. 밀고 당기는 감정표현이 탄탄한 일품이다. 현재 「슈가」에 연재 중인 『시니컬 오렌지』의 앞으로의 전개가 궁금하다. 더불어 윤지운이 다른 장르의 작품으로 독자를 찾아오면 어떨까 기대를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