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마의 시
김동화 작가. 아니, 김동화 화백. 뭔가 좀 더 높여서 불러주어야 할 듯한 이름으로 느껴지는 것은 그만큼 그가 대단한 인물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일 것이다. 1950년에 출생하여 1975년 [나의 항공]으로 데뷔한 이래 만화작가로 30년 가까이 이름을 알려왔다는 세월과 숫...
2002-12-21
정모아
김동화 작가. 아니, 김동화 화백. 뭔가 좀 더 높여서 불러주어야 할 듯한 이름으로 느껴지는 것은 그만큼 그가 대단한 인물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일 것이다. 1950년에 출생하여 1975년 [나의 항공]으로 데뷔한 이래 만화작가로 30년 가까이 이름을 알려왔다는 세월과 숫자에 따른 관록도 관록이지만, 만화작가로서, 하나의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화백’이라는 호칭이 자연스러워진다. 그의 작품은 2000년대의 10대에게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거나 아예 낯설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사실 김동화 화백은 20대 중에서도 중반과 후반, 그리고 30대에게 익숙한 작가다. 40대들도 친숙하게 여기고 있다. 1980년대에 순정만화의 세계를 경험했던 사람들이라면 [아카시아] [내 이름은 신디] [우리들의 이야기] 등 김동화 화백의 작품을 한번쯤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김동화 화백을 달콤한 로맨스 만화 작가로 알고 있을 것이다. 특히 [요정 핑크]는 김화백의 대표작이며 당시 10대였던 이들에게는 잊을 수 없는 작품이다. 지금부터 소개하려는 작품 [목마의 시] 역시 80년대에 순정만화를 좋아하던 사람들에게서 인기가 있었던 작품 중 하나이다. 1982년 [여학생]이라는 잡지에 연재되었던 순정 만화이다. 사진 작가였던 아버지를 잃고 엄마와 살고 있는 ‘새별’은 엄마와 단 둘이 살면서도 어둡지 않고 쾌활한 성격을 가진 예쁜 소녀이다. 어느 날, 이웃집에 새로 사람들이 이사 들어오고 새별은 이들과 친해지게 된다. 그 집 주인은 검사이며 슬하에 두 아들을 두고 있다. 밝고 자상한 성격을 가진 ‘김훈’, 그리고 거친 행동과 말투로 자신을 감추며 가슴 속에 깊은 상처를 간직한 ‘김진’이 바로 그들이다. 날마다 삐뚤어져가기만 하는 동생 진을 바라보던 훈은 동생이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 밖에 없는 무엇이 있음을 느끼고, 그것을 파헤치고자 애쓴다. 그러던 중 죽은 진의 연인 ‘수하’와 자신들의 아버지가 관련이 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검사 생활을 막 시작하던 시절, 훈과 진의 아버지는 어머니의 강요에 못 이겨 한 사람을 법정에서 사형으로 몰고 갔는데 그 사람이 바로 진의 연인이었던 수하의 아버지였던 것이다. 그 때문에 괴로워하던 진을 새별이 위로해주게 되고, 진은 새별에게 사랑을 느끼게 된다. 그러면서 서서히 가슴 속 상처들을 하나씩 극복해나가게 된다. 새별을 좋아하는 마음을 품고 있었던 훈은 두 사람의 진정한 사랑 앞에 자신의 사랑을 과감히 포기한다. 다시 되찾은 가정의 평화와 마음의 상처를 씻어낸 진의 밝은 얼굴을 바라보면서. 그렇다면 왜 제목이 [목마의 시]일까? 진이 여기서는 목마로 표현된다. 목마는 비가 와도 피할 수가 없다. 마음이 있어도 어찌할 도리가 없는 목마. 여기에 우산을 든 숙녀 새별이 타면서 목마는 사랑을 알게 되고 변화를 겪게 되었다는 것이다. 70년대 눈물 제조공장이었던 멜로 드라마를 보는 것 같은 진부함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지금의 관점에서 그렇다는 것일 뿐이다. 아니, 어쩌면 오히려 지금 이런 내용의 만화가 발표된다면 또 신선할 지도 모르겠다. 이런 내용이 지금은 없으니. 90년대를 지나 50줄에 접어든 2000년이 넘어서도 꾸준한 작품활동을 하고 1999년 타이페이 아시아 만화제 최고창의상과 2001년 오늘의 우리만화 특별상을 수상하는 등 작가로서 명예를 누리고 있는 김동화 화백. 지금은 진부하다 말하지만 [목마의 시]는 바로 그런 대가가 일궈온 우리 나라 만화 역사의 소중한 산물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