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ways (올웨이즈)
야마나시 오치나시 이미나시’(やまなし おちなし いみなし). 기복도 결말도 의미도 없다는 이 일본어 문장을 줄여 만들어진 단어가 바로 ‘야오이’이다. 거슬러 올라가면 1975년경부터 그 루트를 찾을 수 있는 이 개념은, 일본의 여성 동인지서클들에게서 파생된 단어로서 ...
2002-04-11
이가진
야마나시 오치나시 이미나시’(やまなし おちなし いみなし). 기복도 결말도 의미도 없다는 이 일본어 문장을 줄여 만들어진 단어가 바로 ‘야오이’이다. 거슬러 올라가면 1975년경부터 그 루트를 찾을 수 있는 이 개념은, 일본의 여성 동인지서클들에게서 파생된 단어로서 시대에 따라 그 구체적인 의미가 조금씩 바뀌어오기는 하였지만 일반적으로 만화적인 기승전결과 무관하게 자기가 좋아하는 남성캐릭터 (그것이 허구의 인물이던 실제 인물이던)들을 이른바 ‘커플링’시켜 작품 속에 등장시키면 OK라는 뉘앙스로 사용되어왔다. 2002년 현재 한국에서도 ‘야오이’란 단어는 이미 정착된 외래어로서 통상적으로 남성간의 동성애를 그린 - 적나라하게 이야기하자면 호모커플을 소재로 만화, 소설, 애니메이션을 총체적으로 지칭하는 단어로 여성만화 독자사이에서 널리 쓰이고 있다.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성의식에 대해 19세기적인 고리타분함이 진하게 남아있는 한국에서는 비정상이라는 수식어를 붙일 수 있는 그 어떠한 성표현도 터부로 여겨왔다는 점을 되새기면, 최근 2,3년 사이에 부쩍 눈에 띄게 된 이런 소재가 햇빛을 보게 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놀라운 일이지만, 이런 것을 가지고 놀랍다고 말하는 자체가 벌써 고리타분한 고정관념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일 수도 있다. 한 마디로 이야기하자면, 야오이는 여성들의 판타지이다. 현실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그러한 설정과 그러한 관계. 바로 여성들만의 망상의 세계인 것이다. 남성 독자들에게 있어서는 역시나 비현실적인 포르노가 그에 해당한다면, 여자들에게 있어서 야오이란 바로 그런 비현실의 도피처일 것이다. 그 속에서 묘사되는 우정과 사랑의 미묘한 줄타기는 많은 남성독자들에겐 참으로 불가사의한 것일 수 있다. 현실적으로 ‘사내’들에게 있어서 우정이란 많은 남성관객들이 공감한 영화 [친구]와 같은 방법 - 이 역시 판타지에 불과하지만 - 으로 존재해야만 한다면, 이른바 커플링을 통해 사랑으로 끼워 맞춰진 망상 속의 남자들의 우정이란 ‘사내’들에겐 용서받지 못할 존재로 보이는 게 당연하다. 그런데 그게 어쨌단 말인가. 외설과 예술은 종이 한 장 차이라지만 만화적 상상력이라는 점에서는 도리어 재미있기까지 하다. 외설보다는 예술에 가까운 쪽이기도 하고, 이미 야오이라는 개념이 연령대를 가리지 않고 여성독자 전반에 일종의 유행처럼 광범위하게 퍼져있다고는 하지만 「CAKE」에 연재되었던 『ALWAYS』는 그런 점을 다 고려했을 때도 조금은 의외인 작품이다. 거슬러 올라가 권교정과 야오이의 접점을 확인 할 수 있는 한 가지 물증이라면 시리즈명이 아주 노골적인 [YAOI BOOKS] 시리즈의 「홍차맨과 홍차매니아」라는 소설의 삽화 정도가 있기는 하지만, 이제는 새로운 독자들도 순식간에 사로잡는 카리스마를 가지게 된 그녀가 비록 그 수위가 높지는 않다 하더라도 여중고생 대상지에 우정과 사랑의 경계가 미묘한 남자들의 이야기를 실었다는 사실이 의외인 것이다. ‘군대’라는 장애물이 두 사람 사이를 잠시 갈라놓는 지극히 한국적인 마지막을 끝으로 책을 덮으며, 비록 자의반 타의반의 작품이었다고는 하지만 『헬무트』와 같은 중세물과 더불어 『어색해도 괜찮아』, 『정말로 진짜』같은 학원물을 특기로 하는 조금은 특이한 GYO월드의 한 구석을 엿보게 해주었다는 것만으로도 팬들에게는 가치가 있는 일일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