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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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푸의 마녀 라야

보통 사람들이 흔히들 생각하는 ‘마녀’의 이미지란 어떤 것일까. 검은 옷에 펄럭이는 망토, 요망한 웃음소리를 내며 빗자루를 타고 날아다니고 부글거리는 항아리 속에 냄새나는 온갖 재료를 넣어 수수께끼의 물약을 만들어내는 음험하고 사악하며 알 수 없는 존재라는 정형화 된 ...

2002-04-11 김정묵
보통 사람들이 흔히들 생각하는 ‘마녀’의 이미지란 어떤 것일까. 검은 옷에 펄럭이는 망토, 요망한 웃음소리를 내며 빗자루를 타고 날아다니고 부글거리는 항아리 속에 냄새나는 온갖 재료를 넣어 수수께끼의 물약을 만들어내는 음험하고 사악하며 알 수 없는 존재라는 정형화 된 모습이 아닐까? 이러한 고약한 상상이 만들어 낸 마이너스적인 이미지에 더불어 유럽의 역사상에 남아있는 ‘마녀사냥’이라는 기록에서도 알 수 있듯이, 실제로 존재하지도 않으면서도 여성들에게는 지대한 폐악을 끼쳐온 마녀라는 존재지만, 적어도 엔터테이먼트의 세계에서 ‘마녀’란 참으로 흥미롭고 써먹을 만한 - 크리에이터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소재가 아니었을까 싶다. 물론 그것이 영화 『블레어위치』의 스타일이던 홈코메디 『아내는 요술쟁이』의 스타일이던 말이다. 바로 그 후자 - 아무래도 마녀에 대해 어둡고 음침한 이미지가 강했던 유럽보다 훨씬 자유롭고 기발한 상상이 가능했던 미국이었기에 만들어 낼 수 있었던 6,70년대의 유명한 미국산 홈코메디 『아내는 요술쟁이』(Bewitched) , 『귀여운 마녀 제니』 (I Dream of Jeannie)등이 일본에 영향을 끼쳐 우리에게도 친숙한 『요술공주 샐리』를 필두로 한 이른바 마?코(魔女っ子마)시리즈, 일명 마법소녀 시리즈를 만들어 내었음은 이미 상식이 된지 오래이다. 60년대의 샐리는 물론 이거니와 그 유명한 『마녀배달부 키키』나 최근의 『꼬마마법사 레미』에 이르기까지 일본의 만화, 애니메이션들에는 흉악함과는 거리가 먼 귀엽고 깜찍한 마녀들이 자주 등장해왔고, TV애니메이션이나 만화 등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수입된 그러한 문화를 보고 즐기며 자란 세대들이 바로 지금의 한국의 2,30대 들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못된 마녀’의 개념이 완전히 사라져 버린 것은 아니지만, 아무리 만화나 애니메이션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요술공주 밍키』라는 제목 정도는 들어보았을 정도로 젊은 세대들에게 ‘마녀’라는 단어는 밝고 친숙할 수도 있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지금까지 국내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특이한 - 귀여운 - 터치의 화풍을 구사하는 『레드푸의 마녀 라야』역시 그러한 영향을 받고 자란 젊은 작가의 마녀이야기이다. 건방지게 담배도 피우는 말하는 고양이와 함께 사는 마녀라고는 해도, 귀엽고 발랄하며 산뜻하고 다양한 패션과 팬시 문화, 인터넷 통신을 즐기는 요즘의 20대 젊은이들과 그다지 다를 바 없는 라야의 모습은 마치 20대 초반의 작가 그 자신이다. 뾰족하고 날카로운 선이 없는 펜선을 통해 때때로 게으르고 무계획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까지 그렇다. 그렇기에, 비록 동화니 마녀니 하는 만화적 배경을 가져다 붙이긴 했지만, 라야가 마녀가 아니라도 그다지 이상할 것이 없을 것만 같다. 동화 속에 사는 인물들의 좌충우돌 이야기를 중심으로 매회 4페이지 정도 격주간지에 연재되며 처음에는 작가가 평소가지고 싶었던 옷가지나 액세서리를 그려 넣는데 주목한, 전적으로 ‘귀여운 캐릭터’에 의지한 이 만화에서 비록 뚜렷한 스토리나 주제의식 같은 거창한 것을 기대하기는 힘들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요새 만화다운 ‘만화로서의 재미’는 쏠쏠하다. 그런, 키치문화니 서브컬쳐니 하는 그 용어의 정의도 확실하지 않은 단어로 밖에는 설명할 수 없는 점이 신세대 작가다운 만화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결국 만화가는 그림으로 이야기한다는 승부에는 일단 승리한 듯한, 한눈에 그녀의 만화라는 것을 알아볼 수 있는 ‘요요’라는 신인의 독특한 색깔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은 무척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