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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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그리 베스트 5

1992년 「소년 챔프」를 통해 정식 연재되기 시작한 이래, 이노우에 타케히코의 『슬램 덩크』가 국내 만화 시장에 끼친 영향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실제 판매부수를 통해 만화의 상품성을 인식시키고, 일반 대중에의 영향력을 과시했으며, 각종 미디...

2002-03-14 황규석
1992년 「소년 챔프」를 통해 정식 연재되기 시작한 이래, 이노우에 타케히코의 『슬램 덩크』가 국내 만화 시장에 끼친 영향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실제 판매부수를 통해 만화의 상품성을 인식시키고, 일반 대중에의 영향력을 과시했으며, 각종 미디어 매체에서 이슈화됨으로 인해 수많은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슬램 덩크』는 NBA의 인기와도 맞물려 겉잡을 수 없는 상승효과를 이끌어내었고, 그 결과 다수의 농구 만화가 국내에 등장하게 된다. 흐름에 민감한 대본소 시장은 물론이거니와, 독자와의 거리가 보다 밀접한 스포츠 신문의 만화면이 이런 조류를 무시할 리가 없다. 아쉬운 것은 이런 풍조하에 등장했던 대부분의 농구만화들은 자기만의 독특한 소스를 담는 데 실패하고, 나쁘게 말하면 아류작 선에서 그치고 말았다는 점이라 하겠다. 이규형, 허무영의 『헝그리 베스트 5(전 21권, 하늘 미디어 발행)』 또한 이런 시대 흐름에 영향받아 파생된 만화였다. 「스포츠 서울」의 신문 만화로서 연재되던 『헝그리 베스트 5』를 보게 되었을 때, 묘한 기시감(데자뷰)을 느낀 사람은 적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분명히 몇 년 전엔가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본 기억이 있었다는 것이고, 이규형이라는 이름 석자를 발견하고서야 무릎을 친 사람도 있으리라. 이규형이라고 하면 『미미와 철수의 청춘스케치』를 비롯해 소설가로서, 영화 감독으로서, 현재는 일본문화와 관련된 비평인으로서 다양한 활동을 벌여온 사람이다. 그리고 그의 창작 활동 가운데 하나인 소설 『블루 스케치』도 『헝그리 베스트 5』에 영향을 끼쳤음은 미루어 짐작 가능하다. (이 소설이 영화화되었을 때, 촬영상의 어려움 때문인지 농구는 야구로 바뀌었고, 제목은 『청 블루 스케치』가 되었다. 국내 제작 영화인 경우 제목에 영어만이 들어가선 안된다는 거짓말같은 규칙때문이었다고 한다.) 이규형이 농구 선수 허재의 팬이라는 점은 누차에 걸쳐 스스로의 입을 통해 말해진 바 있다. 허재와 이충희가 한국 농구계의 걸출한 플레이어로서 우뚝 서 있던 시대를 접한 사람으로서, 이규형은 그 감상을 자신의 출세작 『블루 스케치』 안에 담았고, 주인공의 스타일은 물론 실재했던 플레이를 토대로 재구성해 묘사하였다. 그리고 이후 『헝그리 베스트 5』에 손대기 시작했을 때, 이규형은 그때의 감상들을 다시금 되살려서 작품에 반영시켰으리라. 사실, 이것은 창작인의 태도로서는 과히 칭찬하기 어려운 자세일지도 모른다. 이를테면 자기 작품의 소재들을 스스로 다시 차용해서 쓰는, 자기재생산적인 창작활동이 아닌가. 『헝그리 베스트 5』를 하나로 통털어 보았을 때는 물론 많은 발전들이 엿보인다. 하지만 독자들이란 생각보다 민감한 존재여서, 메인이 되는 이미지가 예전의 것과 겹쳐보일때 쉽게 식상하고 마는 것이다. 이규형과 같은 인물의 아이디어 뱅크가 그렇게 좁을 리는 없을 터이건만, 왜 그러했는지는 다소 의문이다. 이 만화는 1995년 영 프로덕션을 통해 극장용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 개봉되었다. (캐릭터 디자인과 스토리 보드등 상당 부분을 일본에 하청주었다고 한다) 그러나 신문 연재시에는 나름대로 좋은 퀄리티를 유지하고 있던 『헝그리 베스트 5』는, 만화영화화되고서 8만명 정도의 입장객에 그치고 말았다. 애니메이션 자체의 완성도가 흥행에 있어서 가장 큰 영향을 주었겠지만, 그런 결과가 나온 데에는 앞서 말했던 바와 같은 요소들도 작용했을 것이라 생각된다. 독자는 언제나 새로운 것을 추구하며, 또 의외로 잊지 않는 존재이다. 작은 컬럼이건 대형 소설이건 아니면 만화의 스토리를 쓰건 간에, 재기 있는 글장이로서 이규형이라는 인물이 이런 점을 잊지 않았으면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