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획> : 명작의 조건
[출처] 투믹스/획/박지용
남성향 19금 성인 웹툰으로 유명한 플랫폼 ‘투믹스’에서 숨은 명작을 찾는 미션이 주어졌다. 숨은 명작의 조건으로 첫째, 투믹스 독점일 것, 둘째, 완결작일 것, 셋째, 순위 밖에 있을 것. 이상 세 가지를 정하고 투믹스 내 작품을 샅샅이 뒤졌다. 그러던 중 거칠면서도 유려한 작화가 인상적인 무협시대극 <획>을 발견했다. <획>은 박지용 작가가 2014년 6월 ‘네이버 도전만화’에 연재를 시작, 3년여의 휴재를 거쳐 2017년 1월부터 재연재했고, ‘베스트도전’으로 승격되어 2017년 12월에 투믹스에서 정식연재를 하게 된 사연이 있는 작품이다. 연재 과정과 기간에서 작가의 뚝심을 느낄 수 있었으며 ‘베스트도전’의 독자들을 투믹스로 유입시켰다. 로그 라인은 ‘임진왜란에 탈을 쓴 인간병기들이 나타났다’이다. 명작의 향기가 느껴졌다.
임진왜란, 안티히어로
임진왜란. 7년간 온 나라가 강탈, 강간을 당한 역사적 사실은 민족적 트라우마를 형성했다. 나라는 지켰으나 그 손실이 막대해 400년이 지나도 대중의 관심을 사로잡는다. 거의 불패라 할 수 있는 임진왜란 콘텐츠는 주로 실존 인물을 기반으로 군사, 정치, 외교에 초점을 맞추는데 <획>은 임진왜란이라는 세계관에 ‘인간병기’라는 허구를 끼워 넣은 팩션이다. 조총과 화약, 대포가 전쟁 무기인 시대에 인간병기라니?
[출처] 투믹스/획/박지용
이야기의 시작은 이렇다. 외세의 침략에 대비해 십만양병설을 주장한 이이가 임금과 조정 대신들의 반대에 부딪히고, 비밀리에 소수정예 인간병기를 양성한다. 이들은 오랑캐에게 가족을 잃은 전쟁고아들로 가혹한 훈련을 거치고 감정을 거세 당하며 살수로 키워진다. 초승달 모양의 칼을 쥔 살수들의 액션은 장도를 휘두르는 것과 다른 장면을 창조한다. 사정 거리가 필요한 조총을 비웃듯 적진 깊숙이 들어가 닥치는 대로 도륙하고 적장의 목을 베어 낸다. 지휘관을 잃은 병사들은 오합지졸에 불과하며 마무리는 의병에게 맡기고 유유히 사라진다.
[출처] 투믹스/획/박지용
검은 망토에 하회탈을 쓰고 나타나 피바람을 몰고 오니 왜군에게 저승사자로 불린다. 그 중 ‘그놈’으로 통하는 살수는 가장 빨리 적진으로 돌진해 적장의 목을 베는 인물이다. 그러나 ‘나는 단 한 번도 이런 삶을 바란 적 없다’ ‘자꾸 억울한 느낌만 든다’라며 임무의 의문을 갖고 애국심이나 정의감이 없는 안티히어로다. 적장의 목을 베는 성취감만 남은 ‘그놈’에게 자신보다 빠르게 적장의 목을 베어 오는 라이벌이 출현한다.
내부의 적
<획>에 나타나는 주된 감정은 분노다. 작품 전반에 외세에 침략 당하고 유린 당한 분노가 무겁게 깔려 있다. 주인공 ‘그놈’은 의지와 상관없이 살수로 키워지고 전쟁이 끝난 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해 화가 난다. 그 분노는 자신을 능가하는 라이벌에게 향하고 보다 확대된다. ‘그놈’은 왜군의 틈바구니에서 적장의 목을 베는 임무보다 오직 라이벌을 찾아 그를 꺾고 자신의 강함을 증명하길 원한다. 라이벌을 죽이고자 왜군들 앞에서 라이벌과 싸우며 살수라는 정체성마저 잃어버리고 저승사자들의 수장에게 ‘낙오자’로 찍힌다. 한편, 임금은 지원군으로 온 명나라의 이여송 장군을 통해 저승사자의 존재를 알게 된다.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인간병기는 명황제의 심기를 건드리는 역당의 무리로 단정된다. 그러나 왕의 허락 없이 만들어졌을 때부터 저승사자는 존재 자체가 비밀이며 역사에 남아서도 안 되고 언제든 산화시킬 수 있는 도구였다. 전쟁 막바지지만 결코 해방될 수 없는 저승사자들의 미래가 예고된다. 이처럼 <획>은 외부의 침입보다 저승사자를 없애려는 임금, ‘그놈’과 아군인 라이벌의 대결, ‘그놈’의 정체성 혼란 등 갈등의 흐름이 내부로 향한다. 위태로운 내부 전쟁의 끝엔 무엇이 있을까. ‘그놈’은 해방될까.
명작의 조건
<획>은 임진왜란 세계관에 안티히어로를 창조해 예측할 수 없는 스토리텔링을 한다. 전형성에서 벗어나 자칫 불친절한 느낌을 받을 수 있으나 끝까지 긴장을 늦추지 않는다. 이처럼 완결까지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주인공을 따라갈 수 있었던 건 작화에서 느껴지는 작가의 투지와 결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출처] 투믹스/획/박지용
‘획’의 사전적 의미처럼 바람이 세차게 불 듯 빠르고 힘 있는 액션 장면을 구현한다. 대사보다 작화로 내용을 전달하며 40화를 정주행하면 한편의 애니메이션을 본 인상을 준다. 명작의 조건을 더한다면 목 끝까지 차올라서 내 놓지 않을 수 없는 이야기가 아닐까. <획>이 명작인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