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의 밤> : 안식이 부재한 노인들의 낮과 밤
[출처] 네이버웹툰/안식의 밤/연제원
얼마 전 지하철에서 노약자석에 앉기를 거부하는 할아버지를 보았다. 그는 자리를 양보하려는 젊은 남자에게 힘찬 목소리로 말을 했다.
“ 나, 노약자가 아니라 노강자야! 노강자! 그러니까 자리 양보 안 해도 돼. 괜찮아! ”
노약자(老弱者)가 아닌 노강자(老强者)라니? 지하철 여기저기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지하철에 있는 사람들 시선이 모두 손사래를 치는 할아버지에게로 향했다. 검은 선글라스, 짧은 반 팔 티셔츠 차림 덕분에 훤히 드러난 노인의 근육 진 팔, 햇볕에 그을린 목 주변에서 중량감 있게 출렁이는 금목걸이를 보는 사람들의 눈이 호기심으로 빛났다.
순간, 마을에서 폐지를 모으며 하루하루 생계를 연명하는 노인들이 오버랩되었다. 지하철에서 만난 ‘노강자 할아버지’와는 달리 우리 사회 대부분 노인들은 노약자석 밖에서는 전혀 제대로 된 보호를 받고 있지 못하는 약한 존재들 아닌가?
K-문화 열풍 이면에 자리한 세계 1위의 노인 빈곤율과 노인 자살률. 하루가 멀다 하고 뉴스에 올라오는 독거노인의 고독사는 우리 사회의 어두운 그림자가 된 지 이미 오래다.
고독사와 연쇄살인의 상관관계
<안식의 밤>은 바로 이러한 독거노인의 고독사를 주제로 한 웹툰으로, 고독사로 처리된 노인들이 사실은 연쇄살인의 피해자일지도 모른다는 상상력에서 출발한다.
[출처] 네이버웹툰/안식의 밤/연제원
주인공은 조폭이나 다름없는 철거 용역업체 직원인 장태성. 그는 재개발을 추진하는 달동네에서 이사 가기를 거부하는 노인들을 쫓아내는 일을 하고 있는데, 어느 비 오는 밤, 마을에서 이사하기를 거부하는 할머니를 설득하기 위해 집을 찾았다가 살인 사건의 용의자로 누명을 쓰게 된다.
집에서 죽어가는 할머니를 발견한 장태성이 범인을 쫓아가다가 난투전을 벌이던 중에 정체불명의 약물을 주사로 투여 받는 바람에, 그만 길에서 정신을 잃어버리지만, 다시 정신이 들어 깨어난 곳이 바로 죽은 할머니의 집이었기 때문이다. 졸지에 살인 용의자가 된 장태성은 그때부터 경찰에 쫓기는 신세가 되고 만다.
[출처] 네이버웹툰/안식의 밤/연제원
하지만 그는 누명을 벗기 위해 마을의 문화센터에서 노인들을 대상으로 독서토론 강의를 하는 노인 손금택의 집을 찾아간다. 할머니가 살해되던 날, 낮에 할머니 집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이 바로 손금택이어서다. 전직 형사인 손금택을 통해 마을에서 고독사한 노인들이 실은 연쇄살인을 당한 것일지도 모른단 사실을 마주하게 된 장태성은 스스로 범인을 잡기로 결심하는데....
존엄한 삶에 관한 질문
웹툰 <안식의 밤>은 탄탄한 스토리와 개성이 확실한 캐릭터들이 어우러져 시종일관 흥미진진하게 이야기를 따라가게 만든다. 적재적소에 배치한 복선을 순발력 있게 회수하며 이야기가 전개되기 때문에, 몰입과 긴장의 강도도 꽤 세다.
[출처] 네이버웹툰/안식의 밤/연제원
혼자 외롭고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노인들에게 안식을 준다는 명분으로 살인을 하는 범인이 끝내 왜곡된 가치관을 고수하며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도, 스릴러의 서스펜스를 유지하는 동인이 되어줄 터.
무엇보다도 ‘살인이 안식’이라는 범인의 굴절된 생각은, 웹툰 <안식의 밤>이 전하려는 메시지를 깊이 파고들게 만든다. 어머니의 방화 자살 시도로 죽을 뻔한 위기를 겨우 넘기고 식물인간이 되어 버린 아버지를 힘겹게 부양하고 있는 장태성에게 살인범이 ‘내가 안식을 주는 것으로 인해 아버지는 고통스러운 삶을 끝내고 너는 자유로워지는 거다.'라고 말을 하기 때문이다. 범인이 장태성의 아버지가 있는 요양병원에서 이 말을 할 때, 아버지가 누운 침대 앞에서 장태성이 잠시 혼란스러워하며 망설이는 장면은, 그래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마지막에 결국 범인은 잡혔지만, 웹툰 <안식의 밤>은 뭔가 다 해결되지 않은 듯한, 개운하지 않은 뒷맛을 남긴다. ‘노인 빈곤율과 자살률이 제일 높은 이 나라에서 내가 안식을 행하지 않는다 한들, 그들이 죽음을 기다릴 뿐인 건 변하지 않아.’라는 범인의 말이 그렇다.
범인이 자신의 살인을 스스로 합리화하는 말이란 걸 뻔히 알면서도, 범인의 말은 이상하게도 내내 머릿속을 맴돈다. 왜 그럴까?
우리 사회의 노인들에게 안식(安息)이란 과연 존재하는 걸까? ‘존엄한 삶’이란 과연 무엇인가? 또 그러한 존엄을 서로 지켜 주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웹툰 <안식의 밤>은 많은 질문들을 우리에게 무겁게 던져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