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의 봄> : 목격되었으면 하는 ‘오류’들
[출처] 만화경/섬의 봄/052
<섬의 봄>(052, 만화경)은 존엄사를 택한 로봇의 이야기다. 사람들이 떠나 무인도가 된 섬이 다시 관광지가 될 수 있게끔 섬을 돌보기 위해 만들어진 로봇 ‘봄이 씨’와 그를 지켜 보는 관리자 ‘하루’의 이야기. 인간과 로봇 사이의 우정이나 인간다운 로봇에 관한 이야기는 이제는 꽤 흔한 것이 된 것 같다. 심지어 현실에서 일어나기도 할 것이다. 그런데도 나는 이 만화가 각별했다. 고작 8편의 만화를 읽는 것만으로 마음 한 곳이 움푹 패 작지 않은 공간이 생겼고, 그 자리에 이런 장면들이 고였다.
학교 운동장의 플라타너스를 노을이 질 때 보면 잎들이 은빛으로 반짝거린다. 감각이 유독 섬세했던 한 친구가 이 낭만적인 진실을 알려준 뒤로 풍경을 보는 눈이 완전히 달라진 경험이 있다. 플라타너스 잎의 짙고 선명한 녹빛 앞면과 옅고 탁한 잿빛 뒷면이 바람에 뒤집히길 반복할 때, 멀리서 보면 그 모습이 마치 나뭇잎이 반짝거리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었다. 그 친구가 한동안 외국에 가 있게 됐을 때 그리운 마음이 들어 저녁에 운동장으로 가 보니 거짓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바람결을 따라 몸을 떠는 나뭇잎은 반짝이는 것처럼 보였고, 존재감 없던 잎의 잿빛 뒷면이 노을을 받아 은빛으로 보였다. 반짝거리는 나무를 볼 수 있는 눈을 선물 받은 셈이었다.
[출처] 만화경/섬의 봄/052
<섬의 봄>에 그 장면이 나온다. 눈을 뜬 지 얼마 되지 않은 봄이 씨가 세상을 익혀가는 대목에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를 ‘반짝거린다’고 생각하는 순간이 놓여 있다. 바다, 하늘, 구름, 새, 바람을 하나하나 새기고 반짝거리는 나무에 감탄하는 모습을 보며 그가 내 친구만큼이나 섬세한 이인 것을 알았다. 멋진 나무라 되새기며 오래 응시하는 모습에선 목격한 아름다움을 꼼꼼히 간직하려는 다정함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렇게 섬세하고 다정한 이라서, 봄이 씨가 느꼈을 슬픔 역시 짙고 촘촘했을 것이 분명해 만화를 읽는 일이 서글펐다.
[출처] 만화경/섬의 봄/052
<섬의 봄>을 덮은 뒤에도 오래 생각나는 또 다른 장면은 봄이 씨가 무언가를 바라고 선택하는 순간들이다. 봄이 씨는 ‘e-15’라는 이름(이라 할 수도 없는 것)으로 태어났지만 ‘봄’이라 불리기를 원했다. 기분이 좋을 때면 습관처럼 귀를 흔들기로 정했다. 섬의 옛 주민인 할아버지의 추억이 담긴 그러나 지금은 버려진 집을 구태여 수리하고자 했다. 섬의 관리자로서 섬 밖으로 벗어날 수 없는 처지였으나 먼 곳의 바다까지 보기를 원했다. 새 버전의 로봇이 준비되면서 12월에 폐기가 예정되어 있었지만, 가을이 오기 전에 폐기되기를 스스로 선택했다. 하루가 섬을 떠나게 되면서 외로움을 견딜 수 없기 때문이었다.
로봇과 존엄사와 선택이라는 단어가 과연 한 자리에 놓일 수 있을까? 로봇도 감정을 가질 수 있을까? 가진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인정해야 할까? <섬의 봄>을 통해 그런 질문들을 던져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것들보다 봄이 씨가 느꼈을 기쁨과 슬픔을 켜켜이 응시하는 일에 마음이 기운다.
로봇으로서 역할과 운명이 모두 결정된 속에서 스스로의 의지로 이름과 습관과 생의 끝을 정하며 선택을 쌓아 올린 봄이 씨가 마주했을, 그 선택의 높이만큼 깊었을 외로움과 슬픔과 절망을 헤아려 본다. e-15가 아닌 봄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기쁨, 바다를 처음 봤을 때의 생경함, 하루에 대한 애정, 함께할 수 없게 되면서 깨달은 외로움, 결코 섬을 벗어날 수 없는 채로 아무도 찾아 오지 않을 것처럼 막막하게 펼쳐진 바다를 목격했을 때의 절망감 같은 것들 말이다.
이 모두는 설계 밖의 일들이기에 단지 기계에 발생한 ‘오류’라고 치부되었지만, 그런 취급이 부당하다고 느껴질 만큼 깊고 선명하며 아름다운 감정들이 한 장면 한 장면 작품에 수놓아져 있다. 솔직히는 이렇게 문장으로 요약되는 것조차 충분치 않다고 느낀다. 반짝거리는 플라타너스 잎처럼 어떤 풍경과 사정들은 섬세한 눈으로 직접 목격할 때만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이 만화의 장면들, 봄이 씨가 하루에게 남긴 유언의 말들이 그렇다.
어쩌면 겨우 만화 하나를 보고, 그 속의 (엄밀히는 사람도 아닌) 주인공을 실존하는 이처럼 대하며 울고 웃는 일도 누군가에게는 오류처럼 느껴질지 모르겠다. 그러나 단지 흔들리는 것일 뿐인 나뭇잎을 반짝거리는 것으로 포착해 내는 착시처럼, 생의 어떤 아름다운 장면들은 설명하기 어렵고 왜곡된 것들 속에서 비로소 발견되기도 한다. 유폐된 것이나 다름없는 채로 홀로 섬에서 품었을 봄이 씨의 마음을 오래 되새기고 간직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