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마녀 이야기> : <마녀 배달부 키키>, 그리고 <두 마녀 이야기>
[출처] 새앙북스/두 마녀 이야기/방새미
한 작품을 소개하기 위해 다른 작품을 꺼내 올 때는 항상 주의를 기울이려고 한다. 생뚱맞은 비유가 되지 않도록, 혹은 소개하려고 하는 작품이 그 비교 대상에 먹혀 버리지 않도록. 얻을 건 적은 데 비해 잃을 것만 많은 방식이지만, 종종 그 어려운 길을 감수하며 이야기를 풀어 놓고 싶은 작품이 있다. 그리하여 이번 글은 만화 <두 마녀 이야기>가, 마찬가지로 일상적인 모습의 마녀를 그리는 영화 <마녀 배달부 키키>와 어떻게 비슷하고 다른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를 확인하는 여정이 될 것 같다.
잠깐 양해를 구하며, <마녀 배달부 키키(이하 ‘키키’)> 이야기를 해 보겠다. ‘키키’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 영화로, 이제 갓 만 13세가 된 견습 마녀 키키가 낯선 도시에 정착하는 내용을 담는다. 빗자루를 타다 경찰관에게 잡히고, 우연히 오소노를 만나고, 빵집의 배달부로 일하는 등, 낯선 곳에서 다수의 무관심과 일부의 불편한 시선, 그리고 소수의 호기심과 호의 아래 조금씩 적응해 나가던 일이 떠오르니, ‘키키’가 막 상경한 젊은이들 사이에서 인기를 얻었던 이유를 알 것 같다.
만화 <두 마녀 이야기>에도 어린 마녀 틸리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리세라는 아이가 있는 가정집에서 집안일을 돕고 아이를 돌보는 역할로 지내던 틸리는, 정식으로 자신을 입양하겠다는 리세의 어머니의 제안을 들은 그날 그곳을 떠난다. 남들은 보지 못했던, 숲속의 어느 외딴집을 떠올리고는 그곳에 간 틸리가 만난 것이 샤치. 자신을 마녀이자 소설가, 그 밖에 여러 일을 하는 사람으로 소개한 샤치는 아무것도 묻지 않은 채 틸리를 받아들인다. 키키가 오소노를 만나 마을의 마녀 배달부로 자리를 잡아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틸리 또한 마치 샤치의 가족처럼 지내면서 온전한 자신만의 자리를 찾게 된다.
1. 언뜻 보기에 두 마녀에 관한 작품은 같은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쭈글쭈글한 피부, 나이가 많은 노파,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고 은둔하는 생활, 마녀라는 단어에 함께 따라오는 이미지들은 두 작품 모두에서 찾아볼 수 없다. 키키는 어린 견습 마녀로 사람들을 돕고 또래 아이들과 함께 어울리는 평범한 아이다. 샤치는 평범한 옷을 입고, 평범한 생활을 영위하며, 빗자루가 아닌 자전거를 타고 난다.
[출처] 새앙북스/두 마녀 이야기/방새미
눈썹 할머니-더스-의 말처럼 보편적이지 않은 겉모습은 혐오의 이유가 될 수 없음에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다. 그리고 무엇보다, 실제로-적어도 <두 마녀 이야기>에서는-코랑 턱이 자라는 마녀는 사실 없으며, 남자 마녀인 마법사는 이와 대조적으로 화려하고 대단하게 여겨진다. 마녀의 흉측한 외모란 다시 말해 겉모습에 따른 부당한 혐오이기 이전에 마녀라는 존재에 대한 두려움이 구현된 인공물이요, 두 작품은 사회적으로 구성된 마녀의 이미지에 갇히지 않고 이들을 우리 곁으로 데려온다는 점에서 똑같은 주제 의식을 공유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나는 했었다.
2. 그렇지만 앞의 해석은, 키키에게 처음 호의를 보여준 사람이 비-마녀인 오소노였던 것과 달리 틸리에게 먼저 손을 내민 샤치는 마녀라는 차이를 미처 포착하지 못한다. 앞선 마녀에 관한 담론은 작품의 설정이나 사회적 의의를 설명할 수 있을지언정, 작품의 전개를 설명하는 데는 충분하지 못하다. 이는 작품의 제목을 살펴보면 더 분명해진다. 두/마녀/이야기로 나눠볼 때, 1의 설명은 그중 둘이라는 숫자를 제외한 마녀에만 집중한다. 그러니 1의 이야기가 작품이 말하고자 한 전부는 아니었을 거라고 조심스럽게 짐작하며, 내가 생각하는 <두 마녀 이야기>의 또 다른 매력을 좀 더 들여다보려고 한다.
[출처] 새앙북스/두 마녀 이야기/방새미
키키의 성장담은 키키라는 단일한 주인공이, 비-마녀의 세계에서 마녀라는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그 일원으로 자리를 잡아가는 과정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와 달리 <두 마녀 이야기>에서도 샤치와 친분을 유지하는 사람들이 그려지지만, 그 방점은 어디까지나 틸리-샤치의 관계에 찍혀 있다. 이는 키키와 틸리가 각각의 공동체에서 어떤 위치를 갖는지를 살펴보면 명확하다. 키키는 빗자루로 비행하는 자신의 능력을 활용하여 마녀 배달부라는 하나의 직업을 획득한다. 그에 비해 틸리를 묘사하는 것은 특별한 능력이 아닌 샤치와의 감정적인 교류이며, 그에게는 특정 직업보다는 샤치의 가족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해 보인다. 그리하여 같은 마녀를 내세우지만 ‘키키’가 자신과는 다른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모습을 그리며 <두 마녀 이야기>는 그들 간에 이뤄지는 조건 없는 환대를 희망한다. 이렇게 쓰고 보니 각각의 작품에 그 시대가 필요로 하는 가치관이 반영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3. 마녀에 대한 편견을 뒤집는다는 점에서 닮은 두 작품이, 그 목적지에 있어 상반된 면을 보인다는 사실이 재미있어 시작한 글이 여기까지 왔다. 새로운 걸 접할 때 내가 아는 것과의 접점을 발견해야만 흥미를 느끼는 탓에, 이래저래 불필요한 주석을 붙이느라 글이 늘어진 것 같다. 그렇지만 비교는 첫째 익숙한 것에 새로운 것을 덧붙이는 온고지신의 자세에 더해 비슷한 결의 가지들이 이루는 방향성을 읽어 낼 수 있다는 데에 그 가치가 있지 않나 싶다. 모쪼록 재미있게 읽혔으면, 그런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