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 보고 걷는 아이> : 땅을 보면서라도 계속 걸을 수 있기를
[출처] 네이버웹툰/땅 보고 걷는 아이/다온
하필 이런 때 이런 작품을 만나서 곤란하다고 밝히지 않으면 이 글의 모든 문장이 기만이 될까. 근래의 나는 몸 상태도 그다지 좋지 않고 문장은 말라 더없이 빈곤한 처지인데 그런 때에 이런 작품에 대해 써야 한다니. 웹툰 <땅 보고 걷는 아이>를 보며 내내 그런 생각을 했다. 작품이 보여 준 무게감과 진솔함에 어울리는 글을 쓰기란 쉽지 않겠다고 말이다.
[출처] 네이버웹툰/땅 보고 걷는 아이/다온
<땅 보고 걷는 아이>는 가정 폭력에 관한 자전적인 이야기다. 몽유병에 걸릴 정도로 학원 뺑뺑이를 돌리며 공부를 강요당하고, 초등학교 때부터 어린 남동생의 엄마 역할을 하길 요구받고, 잘못했다고 말하지 않으면 가위로 입을 찢어 버리겠다고 협박을 당하고, 폭언을 듣고 얻어맞는다. 일일이 다 적기 어렵다. 너무 많고 다양한 방식이 폭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옮겨 적기도 조심스러운 폭력의 서사가 태아 때부터 성인이 된 후까지 적나라하게 기록되어 있다. 거기에 부모의 불화, 아버지의 음주, 이혼 후 외할아버지 집에서 살게 되면서 겪는 면박(9시 이후로는 소리도 내지 못하게 퍼붓고 틈만 나면 고아원에 보내 버렸어야 한다고 하는 게 ‘면박’이란 말로 요약될 수 있다면)이 끔찍한 자장처럼 성장기를 둘러싼다.
[출처] 네이버웹툰/땅 보고 걷는 아이/다온
가정 폭력 경험이 없는 사람조차도 <땅 보고 걷는 아이>를 괴롭지 않은 마음으로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흑백으로 절제된 색감이 무색하게 폭력의 경험이 높은 해상도로 묘사되어 있다. 무력하게 견뎌야 했던 주인공 ‘겨울’처럼 읽는 이 역시 이 모든 상황이 지나가기만을 바라며 견디는 마음으로 스크롤을 내리게 된다.
그걸 그리는 사람은 오죽했을까. 작품은 2019년 봄부터 2020년 겨울까지 1년 반 동안 연재되었다.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폭력을 주제로 이야기를 그려 나간다는 것은, 육체적으로도 힘들었겠지만 정신적으로도 만만한 작업이 결코 아니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자전적인 이야기이기에 더 그렇다. 끔찍했던 기억은 더듬는 것만으로도 고통을 낳는다. 작품을 위해서는 더듬는 정도가 아니라 그 안에 들어가 헤집고 뒤엎고 그러모아야 했을 것이다. 그렇게 가져와 다른 이들 앞에 꺼내 보이는 일은 아팠을 테고, 때로는 위험하다고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밖에 뭐가 있을지 모르는 곳에 가장 여리고 아픈 속살을 내던지는 일을 어떤 마음으로 감당해 냈을까. 글을 쓰며 마주하곤 하는 어려움이 밟혀서 작품을 읽는 내내 걱정과 감탄을 오갔다. 보통 아닌 끈기와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출처] 네이버웹툰/땅 보고 걷는 아이/다온
지난한 폭력의 서사는 집을 나오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화해가 아니라 절연으로 해소되는 관계도 있다. 풀고 다듬는 것보다 잘라 낼 때 더 많은 것들이 가능해지기도 한다. 집을 나온 겨울이가 뒤돌아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다친 기억은 잊기 힘들고 폭력의 상흔은 몸의 흉터로, 일그러진 성격으로, 여러 차례 실패할 관계들로 존재감을 드러내겠지만 그냥 거기서 계속 걸어갔으면 좋겠다. 작품을 그리는 쉽지 않았을 시간이 작가에게도 회복에 가까운 시간이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