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이아리> : 그것을 사랑이라 말했다
[출처] 딜리헙/다 이아리/이아리
‘이아리’가 ‘이아리’에게
이아리 작가의 만화 <다 이아리>에서 ‘이아리’는 작가의 필명이자 작중 데이트폭력 피해자인 주인공의 이름이다. ‘누구나 겪지만 아무도 말할 수 없던 데이트폭력의 기록’이란 부제처럼 만화는 작가의 자전적 경험을 토대로 그린 데이트폭력 피해자의 ‘다이어리’다. 허구보다 실화기반의 이야기는 파급력이 크고, 독자의 몰입이 극대화되어 공감대를 형성한다. 2015년 레진코믹스에서 연재를 시작해 2017년 우리만화대상을 수상한 단지 작가의 만화 <단지>를 기점으로 우리 사회에서 여성이 겪은 폭력과 갈등에 관한 만화가 꾸준히 발표되고 있다. 만화 <다 이아리>도 이와 일직선상에 있는 작품이며, 연인 사이에 발생하는 ‘데이트폭력’에 초점을 맞춘 이야기다. 사랑하는 사람이 폭력을 행사하는, 대처하기 힘들고 복잡한 현실이 구체적으로 묘사되어 독자에게 적잖은 충격을 안긴다.
[출처] 딜리헙/다 이아리/이아리
일상/스릴러
만화 <다 이아리>의 장르는 일상/스릴러로 분류된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데이트폭력 피해자의 일상툰’이다. ‘이아리’는 연인의 폭언, 폭행, 가스라이팅, 스토킹에 시달리다 경찰까지 개입하는 전쟁 같은 이별을 거쳐 일상을 회복하기 힘든 후유증을 겪는다. 일상툰 + 스릴러는 픽션보다 더 피부에 와 닿는다. 희생자가 위험에서 벗어나는 과정을 보며 안도감을 느끼기엔 우리 모두 ‘이아리’가 될 가능성을 품기 때문이다. 만화 속 위압적이고 냉랭한 공기는 물리적, 사회적 약자가 된 경험이 있다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이를 증명하듯 2019년 만화의 연재공간이기도 한 작가의 SNS계정에 연재 당시 구독자가 10만 명 넘게 불어났다. 독자들의 뜨거운 반응 덕분에 같은 해 출판만화로도 발행되어 만화는 더 많은 ‘이아리들’과 만난다. 이는 오롯이 작가-독자 간의 소통과 공감으로 이룬 귀중한 성과이며, 작가-독자 간의 밀접한 관계는 단행본 구성에도 반영된다.
[출처] 딜리헙/다 이아리/이아리
작가의 말-만화-독자의 말
20살부터 일기를 썼다는 이아리 작가는 연애 기간과 피해 당시의 상황을 상세하게 기록해 뒀다. 때문에 만화 속 ‘이아리’에 묘사된 사건과 상황은 마치 오늘 발생한 일처럼 생생하게 묘사된다. 특히 웹툰이 아닌 단행본 만화 <다 이아리>는 페이지를 할애해 연재 당시의 독자 반응도 기록한다. 먼저 작가의 담담한 회고가 담긴 서문을 읽고, 뒤이어 본 만화를 본다. 만화를 본 뒤 연재 당시 독자들이 남긴 댓글로 마무리된다. 독자는 댓글을 통해 자신의 감상, 경험, 후회, 위로, 깨달음을 전한다. 이런 구성 덕분에 연재 당시의 ‘현장감’이 단행본임에도 고스란히 전달된다. 그러나 피해자 시점이라고 해서 읽기 부담되는 만화는 아니다. 이아리 작가는 무겁고도 긴 이야기를 인스타툰이라는 짧은 분량에 압축하고자 간결한 그림체와 은유적인 묘사로 표현하고, 작가만의 색다른 조형미를 창조한다. 바로 ‘말’의 시각화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우리는 만화를 볼 때 말풍선을 따라간다. 만화에 명대사는 금방 떠올라도 명장면은 쉽게 꼽기 힘들다. 그래서 등장인물들의 대사가 그림보다 더 여운이 길고 그림보다 선명하게 기억에 남는다. 만화 <다 이아리>에는 가해자와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고 그들은 모두 ‘이아리’에게 말한다. 욕한다. 협박한다. 여성성을 비하한다. 무력함을 비난한다. 무지함을 힐난한다. 무성의하게 위로한다. 네가 만만해 보이고 복이 없는 탓이라고 2차 가해를 한다. 작가는 이러한 말들을 특정 폰트 없이 직접 쓰고 그려 시각화한다. 만화 <다 이아리>가 에피소드 별로 10~20컷 짧은 만화임에도 독자에게 감정적 충격이 강한 건 말의 시각화가 효과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가슴에 비수처럼 꽂힌 말 때문에 ‘이아리’의 상처는 내면으로 곪아간다. 그러나 상처받은 ‘이아리’를 일으키는 것도 결국 말이었다. 가족, 연인, 친구의 위로, 정신과 의사와의 상담, 그리고 스스로 건넨 말. “과거의 네가 잘 버텨 줘서, 지금의 내가 존재할 수 있었어. 고마워. 정말…. 고생 많았어, 아리야.” 이아리가 이아리에게 전하는 위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