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군으로 살어리랏다> : 연산군 아니고 ‘무종’
[출처] 카카오웹툰/대군으로 살어리랏다/도파민&김태형&구사
연산군. 조선 시대의 최고의 폭군으로 여전히 회자되는 인물이다. 두 번의 사화를 일으켰고, 사치와 향락에 빠져 조선을 위태롭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연산군은 여전히 매력적인 콘텐츠다. 연산군이 지속적으로 주목받는 이유는 폭정이 어머니 폐비 윤씨의 잔인한 죽음이 상당히 많은 지분을 차지하기 때문일 것이다. 잔혹한 성정이 어머니로 인해 부분적으로 동정심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연산군이라는 인물은 단순히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사료 속 폭군으로만 바라보지 않는다. 실록 속 연산군의 잔인한 기록들의 행간에 주목하는 것이다. 콘텐츠에서 만나는 ‘연산군’의 모습은 상상을 덧붙여 입체적인 인물로 현현된다. 사료의 빈 칸을 채울 때에서야 연산군의 존재를 다시금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웹툰 <대군으로 살어리랏다>는 연산군 이융과 중종 이역을 소재로 한 대체 역사물이다. 연산군 시대, 이미 무오사화는 일어났고 갑자사화가 일어나기 1년 전의 조선이 배경이다.
[출처] 카카오웹툰/대군으로 살어리랏다/도파민&김태형&구사
주인공인 이현호는 아주 평범하다. 대학 졸업 후 면접을 보며 취준생으로 지내고 있던 중 잠이 들고 깨어나니, 조선 시대의 ‘진성대군’이 되어 버린다. ‘흙수저’로의 삶이 아닌, 금수저 ‘대군’으로의 삶을 즐기다 자신이 연산군의 동생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폭군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던 이현호는 연산군을 두려워하지만 직접 만난 후, 본인이 알고 있던 연산군과는 다르다고 느낀다. 역사대로 자신이 중종이 될 것을 이미 알고 있는 이현호는 적극적으로 역사를 왜곡하고자 한다. 아주 개인적인 사유인 자신의 부인과 헤어지지 않기 위해서 연산군을 성군으로 만들어 자신에게 왕위가 오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행동한다. 이현호는 진성대군의 자리에서 천연두를 예방하고, 사화를 막아 내고, 반정을 제압한다. 이런 과정에서 연산군은 올바른 선택을 하고 인간적인 면모를 보인다. 이후 연산군은 반역을 겪으며 진성대군에게 왕위를 양도하며 상왕으로 추대되고, ‘무종’이라는 칭호를 얻는다. 이현호는 ‘중종’으로 왕위를 계승받으며 ‘대한제국’으로 발돋움하는 데에 큰 공을 세운다.
<대군으로 살어리랏다>는 연산군 시대만 차용하여, 완전히 다른 ‘역사’를 서술해 나간다. 미래의 사람이 역사에 개입하면서 그 시대의 문제점들을 개인의 힘과 경험을 통해 사건들을 해결해 나가며 역사를 바꾸는 것이다. 사실 이런 과정은 대체 역사 장르의 기본적인 문법이다.
[출처] 카카오웹툰/대군으로 살어리랏다/도파민&김태형&구사
하지만 <대군으로 살어리랏다>에서 주목할 점은 주인공 이현호가 ‘가족’을 내세우며 역사를 왜곡하고자 한다는 지점이다. 연산군을 믿는 것도, 끊임없이 돕는 것 모두 가족이기에 가능하다고 말한다. 동시에 연산군이 자신의 가족을 사랑하는 모습에 주목한다. 천연두에 걸린 자식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어 방 안에서 처용무를 추며 울부짖고, 중전에게 미안한 마음을 지니고 있어 미역국을 직접 끓이기도 한다. 또한 애첩인 장녹수는 맹목적인 애정의 대상이 아닌
어머니에게 사랑받고자 하는 마음으로 어머니의 대용으로 생각한다. 웹툰 외전에서 드러나듯 ‘어머니의 죽음으로 인한 애정 결핍이 있고, 트라우마가 있는 인물’로 연산군을 상정하는 것이다.
[출처] 카카오웹툰/대군으로 살어리랏다/도파민&김태형&구사
따라서 주인공은 이현호이지만, 주목받는 것은 연산군이다. 연산군의 마지막 폭정이 진성대군에게 왕위를 물려주는 것이라는 점에서, 연산군은 오히려 성군으로 거듭난다.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스스로 물러나고자 하는 것이다. 반정이 아닌 선위를 통해 부국강병을 이루고자 하는 연산군의 결단은 결국 자신의 동생에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연산군이 무종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은 어쩌면 역사 속 연산군의 처연한 외로움을 직시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역사에 ‘어쩌면’이란 가정은 사실 전혀 쓸모가 없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가 ‘어쩌면’이라는 단서를 붙이는 것은 안타까운 개인의 모습에 주목하기 때문은 아닐까. 잔혹한 연산군을 사랑으로 채워 주었다면 어쩌면 성군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적극적인 역사 왜곡으로 행간을 채운 연산군은 더없이 인간적인 모습이다. 상왕 무종, 대한제국. 가능하지 않은 과거와 미래를 만들어 내는 이야기가 여전히 주목받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