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초기화
글자확대
글자축소

<키스 앤 코리아> : 타자의 시선으로 담아낸 고통과 희망

<키스앤코리아>/김나임/카카오웹툰

2022-11-24 윤정선

<키스 앤 코리아> : 타자의 시선으로 담아낸 고통과 희망

external_image

[출처] 카카오웹툰/키스앤코리아/김나임

 

한국을 처음 방문한 외국인들의 여행 프로그램이 요즘 들어 인기를 끌고 있다. 그들은 한국식 치킨에 열광하고, 산과 강으로 둘러싸인 서울의 경관에 경탄하며, 24시간 불 켜진 채 풀가동되는 한국 도시의 밤 문화에 놀라워한다.

얼마 전 서울에서 버스를 타고 가다가 저 멀리서 모습을 드러낸 남산이 문득 반가웠던 이유도, 어쩌면 외국인이라는 타자의 시선들 덕분에, 늘 똑같아 보이는 풍경을 다시 바라보았을지도 모를 터. 그렇다, ‘타자의 시선은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일상에 거리를 두어,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해 준다.

 

실존 인물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하다

웹툰 <키스앤코리아>에서도 그러한 시선을 만날 수 있다. 언제부턴가 우리에게 피부처럼 익숙해져 온 일제강점기의 수탈과 고통, 3·1 만세운동이라는 역사를, 엘리자베스 키스라는 한 이방인의 시선을 통해 다시금 생생하고 묵직하게 전해 주고 있는 것이다. 엘리자베스 키스는 실존했던 영국의 화가다. 1919년 처음 한국에 와서 우리나라 곳곳의 풍광(風光)을 화폭에 담아내었다. 그러니까, <키스앤코리아>는 바로 화가 엘리자베스 키스가 그린 여러 그림들을 모티브로, 상상력을 발휘해 넣은 일종의 팩션 웹툰인 셈이다.

external_image

[출처] 카카오웹툰/키스앤코리아/김나임

 

주위에서는 조선이 미개한 야만인의 나라라고 만류했지만, 그는 용기 내어 조선을 찾아간다. 그리고 조선의 아름다움에 곧 매료되고 만다. 이러한 조선 문화에 대한 키스의 시선은, 서구인들이 동양에 대해 흔히 갖고 있는 오리엔탈리즘의 자기중심성을 비껴간다. 키스는 조선의 풍경을 있는 그대로 그림으로 담아낸다.

이러한 키스의 시선은 시간 속에서 중첩되어 조선을 더 가까이 알아 가고 발견해 가는 연결고리가 되어 준다. 알록달록 화려한 한복을 입은 아이들을 그리며, 아이들 등 뒤로 펼쳐진 풍경, ‘하늘과 땅과 조선을 감싸고 있는 듯한 높은 산, 마치 처음부터 한 몸인 양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있는 조선의 초가를 실감하는 것이다.

오백 년 동안 조선을 지켜 온 웅장한 동대문의 부서진 성곽을 바라보는 키스의 시선은 또 어떠한가? 그는 이곳에서 일제 문화침탈의 실상을 안타깝게 직면하지만, 조선의 사람들이 들려주는 생명의 소리도 듣는다. 부서진 성벽 옆에서 가만히 눈을 감고 있는 키스의 귓가에 사람들이 흙 밟는 소리가, 또 나뭇잎을 밟는 소리, 짚을 밟는 소리가 들려왔는데, 그것은 마치 독립을 향한 사람들의 염원과 희망이 뒤섞인 소리처럼 다가오는 것이다.

external_image

[출처] 카카오웹툰/키스앤코리아/김나임

 

이야기 하나가 끝날 때마다, 마지막에 키스가 직접 그린 그림들이 보이는 장면들 또한 인상적이었다. 키스의 그림들은 조선의 살아 있는 소리와 어우러져, 흑백 화면 같은 오래전 역사를 색채가 있는 질감의 장면들로 만들어 버리는 것만 같았다. 이를테면 동대문의 부서진 성벽 옆에서 키스가 눈 감으며 들었던 사람들의 발소리, 그 이후에 등장하는 키스의 실제 그림 <달 빛 아래 서울의 동대문>이 그러하다.

 

독립운동의 희망으로 확장되어 가는 이야기

무엇보다도, 엘리자베스 키스의 그림 여행기가 당시 항일 운동의 정신과 연결되어 펼쳐진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키스에게 조선의 알려 주는 길잡이와도 같은 역할을 하는 양반가 자제 문현을 비롯한 순이와 아지 같은 항일 운동을 하는 조선 젊은이들 이야기가, 키스의 시선을 넘어 또 하나의 이야기로 확장되어 가는 것이다.

external_image

[출처] 카카오웹툰/키스앤코리아/김나임

 

키스는 3·1 만세운동에 참여하고 감옥에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하는 소녀 아지를 찾아가 모진 고문을 당하면서도 왜 독립운동을 포기하지 않는 거죠?’라고 질문을 던진다. 그러자 아지는 금낭화가 많이 피어나는 고향 이야기를 들려준다. 고향에는 두 살 아래 동생부터 젖먹이 갓난아기까지, 동생들이 많이 있다고, 일제의 수탈 대상이 되어 버린 우리 민족이 독립하지 않는 한, 일제의 손아귀에서 영원히 도구로 착취당할 뿐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소녀 아지는 말한다. 독립운동을 여기서 포기한다면, 그래서 저항하지 않는다면, 다음 희생양은 동생들이 될 거라고. 앞으로 이 땅에 태어날 아이들이 이 땅에서 제대로 살게 하기 위해, 목숨 바쳐 독립운동을 하는 것이라고.

고문으로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단단한 미소를 지으며 독립의 꿈과 의지를 말하는 소녀 아지를 보며, 키스는 마침내 생각한다.

일본은 왜 이렇게 잔인하게 구는 걸까? 이 어린 학생들은 왜 학교 밖으로 나와야 했을까? 스스로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는 고백한다. ‘겨우 조선에 3개월간 머문 나는 알 수 없었다고.’

이방인의 시선으로 그려진 우리의 고통스러운 역사가 감동으로 밀려오는 것은 왜일까? 그것은 아마도 그림 그리듯 있는 그대로, 이 땅의 풍경과 사람들을 관찰하고 바라본 키스의 시선 너머, 그 시절을 살았던 사람들이 간절히 품었던 희망까지 웹툰 <키스앤코리아>에서 만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external_image

[출처] 카카오웹툰/키스앤코리아/김나임

 

동대문의 부서진 성벽 아래, 눈 사이에 피어난 꽃을 발견한 키스에게 문현이 던지는 말은 그래서,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큰 공명이 되어 전해진다. 

“3월의 마지막 눈이었나 봐요. 이 눈이 녹고 나면 봄이 올 거예요. 우리에게도 이 땅에게도.”

 

 

필진이미지

윤정선

만화평론가
<2021 만화평론공모전> 신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