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아이> : 이상(理想)과 이상(異常) 사이
[출처] 네이버웹툰/보통아이/까를로스&범스테드
보통의 삶이란 가장 이상적인 말이다. 모든 면에서 평균점을 받아야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보통아이>는 보통이 아니기에 보통을 바랐던 어느 모자의 이야기다. 엄마 연희는 경찰로 아들 도연이를 혼자 키운다. 도연이는 완벽하다. 외모도 성적도 뛰어나다. 심지어 언제나 엄마를 배려하고 위한다. 언제나 행복할 것만 같던 모자의 주변에서 살인 사건들이 연달아 발생한다. 도연이의 중학교 때 친구인 아민이 살인 사건의 용의자로 특정되면서 이야기는 진행된다.
보통의 감각
도연과 아민의 관계는 웹툰 속에서 지속적으로 서스펜스를 유발한다. 잇따라 발생하는 살인 사건의 진범을 추리하는 동시에 둘의 미묘한 관계의 구조를 과거의 사건들을 통해서 유추하도록 구성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진범은 웹툰 초반부터 클리셰를 통해 충분히 예측가능하지만, 아민의 에피소드가 추가되면서 진범보다 더 중요한, 사건이 일어난 이유에 대해 집중하도록 한다. 누구보다도 보통을 갈구했던 아민이와, 보통의 삶을 강요받았던 도연이가 만났음에도 보통의 삶을 살아가지 못 한다.
아민이는 ‘보통’이라는 조건을 감각하도록 한다. 아민이는 보통의 선 밖에 서 있는 인물이다. 알비노로 인한 외형적 특질로 인해 평범한 삶과 유리된 아민이는 가정의 불화를 겪는다. 심지어 화재로 인해 자신을 사랑하던 엄마를 잃고, 폭력을 행사하는 아버지만 남게 된다. 이후로도 학교에서도 주변에서도 아민이는 수용되지 못한다. 아민이는 보통에서 밀려난 삶이었기에 도연의 눈에 든다. 누구보다도 똑똑했던 도연이는 아민이가 다른 존재임에도 ‘틀린 존재’로 평가받고 있다는 것을 인지했기 때문이다.
아민이 또한 도연이 보통과는 다르다는 것을 인식한다. 그러나 아민이는 도연이를 벗어나지 않는다. 자신을 구해준 구원자이자 자신을 지옥으로 떠미는 악마라는 것을 알았지만 도연이만 ‘보통’의 사람으로 대해주었기 때문이다. 아민이가 연희가 만들어준 떡볶이를 지속적으로 언급하는 것은 집 밖에서 처음으로 맛보았던 보통의 집 맛이었기 때문이다.
[출처] 네이버웹툰/보통아이/까를로스&범스테드
다름과 틀림, 응답하지 못하는 대답들
<보통아이>는 얼핏 윤리적인 문제를 제기하는 듯 보인다. 도연이를 통해 ‘다르다’와 ‘틀리다’에 대해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 <보통아이>에서조차 다름과 틀림을 제대로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질문에 대답하기도 전에 사건은 끝이 난다. 수많은 희생자만을 남기고 해결되지 못한 대답만이 산적해 있을 뿐이다. 남겨진 문제들은 폭발하지 못하는 감정들과 배경의 부재에서 기인한다. 도연의 트리거는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또한 연희가 보통아이를 바라는 이유 또한 큰 설득력이 없다.
사실 <보통아이>의 모든 사건은 ‘보통’을 강요했던 연희에서 기인한다. 도연은 사건을 행하는 인물로 자신의 행위에만 몰두할 뿐이다. 하지만 연희는 다르다. 연희는 자신을 이루는 환경 모두를 선택할 수 있는 인물로 표현된다. 하지만 연희라는 인물의 복잡하고도 미묘한 설정이 충분하지 않다. ‘보통’이라는 조건을 위해 도연이의 모든 상황들을 자기의 시선으로만 바라본다. 사건이 진행되면서 몰랐다고 말하는 연희의 모습이 유난히 균열되어 보이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출처] 네이버웹툰/보통아이/까를로스&범스테드
당위성의 부재
경찰이자 엄마라는 위치의 위태로움과 고민 또한 충분하지 않다. 윤리적인 문제가 가장 증폭될 수 있는 지점이 바로 연희의 선택과 선택의 이유다. 하지만 연희의 선택은 급작스럽다. 경찰로서 지닌 정의감도, 피해자를 지키지 못했던 죄책감도 모두 부재한다. 아들의 단죄는 연희의 개인적인 일로만 치부된다. 이로 인해 웹툰을 이끌던 긴장감은 단숨에 무너진다. 엇갈린 모정, 애매한 정의만으로는 <보통아이>를 이끌던 사건들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보통아이>는 마땅히 고민해야 할 것들을 충분한 시간과 설명을 배제했기 때문이다. 웹툰을 이끌고가던 스릴감을 유지시키기 위해서는 인물들의 행동에 대한 당위성이 필요하다. 결말이 아쉬웠던 것은 결국 <보통아이>의 사건들이 독자를 설득시키지 못했다는 반증이다. 어쩌면 <보통아이>가 가장 필요로 했던 전제조건은 ‘보통의 삶’에 대한 이상적 삶의 방식은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