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규 만화> : 삶에 도움이 되는 개짓하기
[출처] 흔/혐규 만화/송현규
냉소의 사전적 의미는 “쌀쌀한 태도로 비웃음”이다. 어휘의 해석 범주를 좁히기 위해 더 자세히 쓴다면 “정다운 맛이 없고 음산하고 차가운 마음가짐이 드러난 자세로 흉을 보듯이 빈정거리거나 업신여기는 일” 정도가 될 것이다. 어느 면으로 봐도 긍정적이거나 호의적인 자세로 해석하기는 어려운 태도다. 한편 냉소를 영어로 바꾸어야 한다면 ‘시니컬(cynical)’ 혹은 ‘사르카스틱(sarcastic)’가 적합하다. 두 형용사가 가진 의미의 교집합은 ‘비꼬다’ 정도인데, 궁극적으로는 ‘비웃음’ 정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과 영어 두 언어가 지닌 냉소가 궁극적으로 향하는 곳은 비웃음인 셈이다.
비웃음은 <혐규 만화: 삶의 면역력을 키워 주는 병균 같은 만화>(송현규 作, 도서출판 흔, 이하 <혐규 만화>)를 이해하는 데 가장 핵심적인 키워드다. 2019년 단행본으로 출판되었으나 여전히 인스타그램(@gyuhyeom)을 통해 연재되고 있는 이 4컷 만화에는 일상 세계와 삶에 대한 냉소로 가득하다. “삶의 면역력을 키워 주는 병균 같은 만화”라는 부제와 “이 실수와 함정으로 가득한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막연한 긍정’이 아니라 ‘현명한 냉소’”라는 책 소개처럼 <혐규 만화>는 명확하게 세상을 냉소적으로 보고자 한다.
[출처] 흔/혐규 만화/송현규
<혐규 만화>가 세상을 냉소적으로 보고자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것이 진실에 가깝고 삶에 도움이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냉소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진실에 가깝고 삶을 유익하게 한다는 믿음은 생각보다 오래되었다. 이러한 흔적은 냉소라는 단어 자체에 녹아있다. 냉소를 뜻하는 영어 ‘시니컬’은 견유학파를 뜻하는 ‘키니코스(Kynicos)’에 어원을 두고 있다. 견유학파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개와 관련이 있다. 키니코스는 개를 뜻하는 희랍어 ‘키니(Kyni)’에서 왔다. 정확히 말하면 대표적인 견유학자인 디오게네스의 생활을 두고 그리스인들이 말했던 ‘개와 같은 생활(Kynicos bios)’에서 왔다고 할 수 있다.
고대 그리스에서도 ‘개와 같은 생활’, 좀 더 날것의 언어로 말하면 ‘개짓하는 생활’이 뜻하는 바는 현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디오게네스는 자연을 따르는 생활이 인간에게 훌륭한 삶을 전해줄 것이라 믿었고, 그것은 인위적인 생활 양식을 벗어나는 행위를 통해 가능하다고 믿었다. 그래서 디오게네스는 고대 그리스가 그토록 중시하던 염치(Aidos)를 벗어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지혜를 찾아 먼 길을 찾아온 알렉산더 대왕에게 태양을 가리지 말라 내 앞에서 비키라고 일갈하는가 하면, 그의 제자 크라테스는 디오게네스와 같은 개가 되기 위해 부유했던 집안의 재산을 바닷속으로 던져 버렸다.
적극적으로 세상이 가진 관습과 제도적 사고를 비웃는 견유학파의 가르침(?)은 오늘날 우리 사회에 ‘시니컬’이라는 유산을 남겼다. 간혹 이들의 ‘시니컬’은 선을 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크라테스는 여성을 소유하지 않겠다는 디오게네스의 가르침을 따라 공공장소에서 아내 히파르키아와 교접하는 ‘개짓’을 하기도 했다. 이는 마찬가지로 견유학자였던 히파르키아가 동의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러한 견유학파의 모습은 자연을 따르는 삶보단 배설에 가깝게 보일 순 있다. 그러나 견유학파는 피할 수 없는 욕망이라면 큰 속박보다는 작은 속박을 택했을 뿐이다.
[출처] 흔/혐규 만화/송현규
<혐규 만화>의 냉소 역시 이와 비슷하다. 누군가는 비관이라고, 또 다른 누군가는 허무라고 비난할 수 있다. 완전히 틀렸다고 말할 순 없겠으나 <혐규 만화>는 피할 수 없는 좌절이라면 그나마 견딜만한 좌절이 될 수 있도록 냉소를 택했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남에게 비웃음을 당하는 것이 견딜 수 없다면 자조하면 되는 것이고, 뺏기는 것이 그대를 무너뜨린다면 포기하면 된다는 태도. 분명 개 같은 태도이지만, 도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