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날로그 혹은 클래식
<더 콩쿠르>는 음악 만화다. 음악을 소재로 한 대표적인 만화는 일본의 <노다메 칸타빌레>가 있다. 일본에서는 드라마와 영화로 제작되었고, 국내에서도 드라마로 제작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음악이 중심이 된다는 소재는 같지만 <더 콩쿠르>는 확실히 한국의 환경과 정서를 명확히 드러낸다. 특히 ‘콩쿠르’를 치르고 변화하는 모습을 여실히 드러낸다. ‘콩쿠르’에 직간접적으로 얽혀있는 인물들은 어떤 식으로든 자신의 불안과 두려움을 인지하면서도 새로운 시작을 도모한다. 우승과 우승 상품인 ‘과르넬리’는 결승이 치러지면서 점차 의미를 잃는다. ‘나는 인정을 받을만한가?’, ‘나의 연주는 타인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가?’, ‘나는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것을 정말로 좋아하는가?’ 등의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들에 대한 대답만이 남을 뿐이다.
| 순수한 찬가
<더 콩쿠르>가 자극적인 만화와 웹툰이 가득한 상황에서도 여전히 사랑받을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캐릭터들이 지닌 매력 때문이다. 그들의 연주를 직접 들을 수는 없다지만 우리는 만화의 장면을 통해 그들의 연주를, 그리고 연주에 임하는 자세를 충분히 ‘볼’ 수 있다. 콩쿠르에 참가한 연주자들은 각자의 개성을 뽐낸다. 자연과 교감을 하면서 자신의 연주를 상상해보는가 하면, 누구보다도 열심히 연습하여 정교한 테크닉을 뽐내기도 한다.
재미있는 것은 콩쿠르에 참여하는 연주자들이 다른 연주자들을 바라보며 바이올린을 대하는 마음가짐을 새로 다지는 것에 있다. 이들은 재능있는 연주자들을 ‘부러워’하지만, 추악하게 질시하지 않는다. 그나마 의주 어머니가 호경이에게 불편한 감정을 드러내는데, 이 또한 오래가지 않는다. 의주를 사랑하고 지원하는 만큼 속상했던 마음을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더 콩쿠르>가 순수한 음악 만화로만 남을 수 있는 것은 연주자는 물론 주변 인물 모두가 음악에 ‘진심’이기 때문이다.
| 달 세뇨 알 피네(D.S. al Fine)
주인공인 호경이와 의주는 어릴 때부터 함께한 친한 친구다. 의주는 어렸을 때부터 바이올린을 배웠고, 바이올린을 궁금해하던 호경이에게 4/3 바이올린을 건넨다. 바이올린은 단단한 우정의 관계에 미세한 균열을 낸다. 호경이 바이올린 연주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기 때문이다. 의주가 사사받고 싶어하던 랜콧 하우슨은 호경에게 유학을 권유한다. 호경이는 바이올린을 계속 해야할 이유보다 그만두어야 할 이유를 찾아낸다. 우선 가정형편이 문제였다. 그리고 의주에 대한 미안함으로 바이올린 레슨을 그만두고 만다. 하지만 여전히 바이올린 연주에 대한 미련이 남아있던 호경이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혼자서 음악을 듣고, 분석하고, 덩치와 맞지 않는 작은 바이올린을 굴다리에서 연습한다.
의주 또한 호경이에게 미안한 감정을 지니고 있다. 호경이가 자신 때문에 바이올린을 그만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지니지 못한 ‘특별함’에 의주는 호경이에게 복잡한 감정이 든다. 단순한 살리에르 증후군은 아니다. 열등감과 우정의 복잡함에서 의주는 언제나 우정을 택하려고 한다. 의주는 늘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아이였다. 하지만 호경이의 연주를 보고난 후 스스로에 대한 의심을 지울 수가 없다. 자신이 한계가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의주는 손목을 다친 채로 콩쿠르를 치르게 된다. 이로인해 바이올린 연주에 대한 간절함이 생기고 비로소 호경이를 완전히 이해하게 된다.
호경이와 의주는 서로를 제대로 마주한 적이 없었다. 서로에 대한 미안함과 배려가 오히려 서로의 눈을 가렸기 때문이다. 콩쿠르에 와서야 호경이와 의주는 서로가 어떤 마음으로 바이올린을 연주하는지 명확하게 알게 된다. 따라서 서로의 연주와 자리를 누구보다도 인정할 수 있게 된다. 서로의 최선을 제대로 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 아 프리마 비스타(a prima vista)
호경의 연주는 의주, 호경의 반주자 은석이, 일찍이 호경이의 재능을 알아본 향이의 새로운 악장을 열게 된다. 의주와 은석이, 향이가 늘 관성처럼 행동했던 것은 두려워서다. 혹시 잘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가능성’이 남아있어야 나 자신에 대한 실패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작은 어렵다. 성공하지 못할 때 마주해야 하는 패배를 인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것, 재능이 있는 것, 하고 싶은 것과의 충돌은 점차 격렬해진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도전을 해야 하지만, 쉽사리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도전할 수 있는 모든 조건이 갖춰진다고 하더라도, 가장 중요한 자신에 대한 확신은 스스로가 믿어야만 하는 것이기에.
<더 콩쿠르>의 마지막 장면 “새로운 시작을 고한다”면서 끝나는 것은 호경이만을 위한 대사는 아니다. <더 콩쿠르>의 모든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며, 작가가 독자들에게 건네는 따뜻한 위로와 응원이다. 새로운 도전을 앞두고 있을 때 위로를 받고 싶다면 여유롭게 책장을 넘겨보는 것도 좋겠다. 아마 당신의 도전은 분명 새로운 시작이고 늘 축복받아 마땅하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