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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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힘이 되는 세상의 ‘독자’, <전지적 독자 시점>

'색다른 시점'이 작품을 더욱 흥미롭게 만드는 작품 '전지적 독자 시점'

2023-10-19 최윤석


영화 <트루먼쇼>를 처음 봤을 때가 생각난다. 그 영화를 보고 나면 괜스레 한 번쯤 상상해보게 된다. 나의 세상은 ‘진짜’일까. 혹, 정해진 각본이나 연출은 아닐까. 하고 말이다. 영화는 그런 ‘나만의 세상’을 의심하면서 벌어지면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반면, 웹툰 <전지적 독자 시점>은 그 반대의 구조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웹툰은 주인공이 본인이 좋아하던 소설 속 세상이 현실에 도래하면서 겪게 되는 이야기를 담았다. 한 마디로 소설 속 이야기가 현실이 된 것이다. 여기서 포인트는 주인공 ‘김독자’만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그 소설의 결말까지 본 존재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차이는 영화와는 다른 관점으로 이야기를 끌게 만든다. 영화는 아무것도 모르던 주인공이 세상을 의심하다 결국 세상 밖으로 나가는 이야기라면, <전지적 독자 시점>은 모든 걸 아는 주인공이 허구의 세상임을 인지한 채 이 세상 안에서 살아가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이러한 방식이 ‘독자(讀者)’라는 정체성을 가진 주인공 ‘김독자’가 될 수 있게 만든 것이다.


<전지적 독자 시점>은 바로 이러한 비유적 관계가 굉장히 중요하다. 하나의 ‘이야기’, 그리고 이를 쓴 ‘작가’, 또 이를 보는 ‘독자’. 이 세 요소 모두 작품 안에서 중요하게 쓰이는 키워드임과 동시에 핵심이다. 그리고 이를 하나하나 살펴보자면 굉장히 흥미롭다.

  먼저, ‘이야기’. 이 세계관 안에서 ‘이야기’는 단순히 이야기가 아니다. 힘, 권력, 재력 이 모든 걸 대체할 수 있는 자원이기도 하다. 이 작품의 대표적인 특징 중 하나인 ‘성좌’라는 요소만 봐도 그렇다. 여기서 ‘성좌’라는 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위인이나, 신화, 설화 속 존재들을 뜻한다. 설명하기에 따라 여러 방식으로 설명할 수도 있겠지만, 가장 간단하게 핵심적으로 말하자면 결국 다 저마다의 이야기를 지닌 유명한 존재들이라고 보면 쉽다. 그리고 얼마나 많은 이야기로 알려졌는지가 그 성좌의 힘과 격을 결정하게 된다. 예를 들어, 수많은 매체에서 이야기로 만들어져 유명한 ‘손오공’ 같은 경우엔 세계관 내에서 차지하고 있는 힘의 크기가 상당하다. 


결국 우리가 <전지적 독자 시점>에서 가장 재밌게 보는 부분이 바로 이 독자가 만들어내는 서사이다. 김독자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기존의 없던 새 이야기를 써 내려간다. 김독자가 어떻게 이야기를 바꿀지가 궁금하고, 그로 인해 얼마나 많은 이득을 얻을지 기대하게 된다. 구조적으로 우리는 ‘독자’가 써 내려가는 ‘이야기’를 보는 독자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부분은 상당히 이색적인 재미를 준다.


다음, ‘작가’는 이 작품 안에서 세계관과 더불어 미스터리적 요소를 담당한다. 확장되는 세계관을 보다 보면 이 정도 규모의 세계관을 나름의 체계를 갖춰 설계했다는 점에서 놀라움을 준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외부적인 시선. 즉, 우리란 ‘독자’의 시선이다. 세계관 속 캐릭터들이 느끼기에 이 게임 같은 세상은 물음표를 떠올리게 만든다. 도대체 누가 어떤 목적으로 이러한 행위를 하게 만드는가. 표면적으로는 여러 인물이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것을 하나의 ‘이야기’로 보고, 이를 성좌들이 관람하고자 하는 걸로 보인다. 그리고 이를 ‘도깨비’라는 이야기꾼이 관리자 같은 존재로 등장하여 진행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이 일어날수록 그 끝에는 항상 한 가지 질문을 던지게 된다. 그럼 ‘김독자’가 보던 소설의 작가는 대체 누구이며. 그 작가는 신인가. 신이라면 대체 왜 그런 짓을 하는 건가. 작중, 김독자도 몇 번이나 그런 궁금증을 가진다. 작가를 가장 궁금해하는 건 다름 아닌 독자일 테니까 말이다. 그리고 이러한 궁금증을 해소하고 싶은 욕망이 이 작품을 끝까지 보게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 서서히 풀려가는 복선들이 회수해가는 과정을 보는 건 작품을 즐기는 큰 재미 중 하나인데 이 작품이 바로 이러한 재미가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셈이다.


마지막으로 ‘독자’다. 이 작품의 주인공 이름은 특이하게도 ‘독자’이다. 물론, 작중에서 밝히는 이름의 뜻은 홀로 독(獨)에 아들 자(子)로 혼자서도 강한 남자라고 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 이름이 책을 읽는 이를 뜻한 독자(獨子)를 중의적으로 사용했다는 걸 모르지 않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생각해보면 이 작품은 초반부에 ‘김독자’에 대해 많은 걸 알려주지 않는다. 소설 속 세계관으로 세상이 변했고, 그 소설의 결말을 알고 있는 게 ‘독자’라는 것뿐이다. 그 외에는 대체로 전개되면서 조금씩 설명할 뿐. 설명하지 않는다. 딱, 그 정도. 그리고는 오로지 급작스러운 사건 속에서 생존하기 위한 주인공의 활약으로 전개될 뿐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몰입하고, 흥미롭게 바라본다. 이를 가능케 하는 것은 ‘김독자’ 개인에 대한 정보보다는 ‘독자’로의 모습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독자가 이 소설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왜 이 소설이 김독자에게 중요한지를 강조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이해한다. 기존 소설 속 주인공인 ‘유중혁’을 대하는 태도만 봐도 그렇다. 자신이 좋아하는 이야기의 주인공을 실제로 보는 것. 때론 갈등하기도 하고, 도움을 주기도 하며 여러 일을 겪지만, 궁극적으로 그 배경에는 애착이 있다. 그 결과, 궁극적으로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전지적 독자 시점>가 되는 것이고, 이러한 색다른 시점이 작품을 흥미롭게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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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석

만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