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툰 장르만큼 웹툰이라는 매체의 탄생에 결정적인 기여를 제공했으며, 하나의 시장을 형성하는 과정을 함께했다고 말할 수 있는 장르도 많지 않을 것이다. 2000년 정철연의 <마린블루스>(2000~2007, marineblues.net)를 시작으로, 조석의 <마음의 소리>(2006~2020, 네이버), 가스파드의 <선천적 얼간이들>(2012~2013 / 2023~, 네이버), 자까의 <대학일기>(2016~2019, 네이버)까지 다양한 독자들을 끌어모으며 그만의 생태계를 구축했고, 그 생태계의 중심에는 캐릭터가 있었다. <마린블루스>의 ‘성개군’, <마음의 소리> 속 노란 티셔츠를 입은 ‘조석’ 등은 그 자체로 하나의 브랜드를 형성하며 이모티콘을 비롯한 각종 굿즈들을 생산했다. 이는 웹툰으로 큰 성공을 거둘 수 있다는 하나의 신화를 형성했고, 다양한 예비작가들은 자신의 SNS 계정과 ‘베스트도전’과 같은 페이지들을 통해 그 신화의 주인공이 되고자 경쟁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생활툰은 강한 빛만큼이나 어두운 그림자들을 만들어냈다. 꾸준함을 회차가 지날수록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에피소드들을 생산하기 위해 애썼고, 그 결과 장르에 대한 깊이와 작가의 표현보다는 독자의 니즈에 맞추기 위한 경쟁으로 전도되어갔다. 경쟁에서 살아남은 몇몇 생활툰은 메이저 플랫폼 남아 예비작가들에게 일종의 형식적 기준을 제공하기 시작했고, 이는 시장이 자발적으로 획일화된 서사들을 생산하는 양상으로 이어졌다. 이는 생활툰이라는 장르에 일종의 젠트리피케이션을 일으키는 결과로 이어졌다. 장시간 작화를 요하는 작업 환경으로 변하기 시작하며 장기간 연재를 기대하기 어렵게 되었고, 이는 캐릭터의 생명력 또한 짧게 만드는 악순환으로 귀결됐다. 이 악순환을 피해 수많은 예비작가가 ‘인스타그램’을 포함한 SNS로 활동영역을 이주하기 시작했고, 생활툰은 메이저 장르에서 풀뿌리 장르와 비슷한 포지션으로 지위를 옮겨갔다.
최근 이런 악순환을 끊고 생활툰 장르의 새로운 흐름을 만들기 시작하는 작품들이 더러 보인다. 닥터베르의 <닥터앤닥터 육아일기>(2019~2021, 네이버)와 심우도의 <나의 꼬마 선생님>(2022.05~2022.10)과 같은 작품이 그렇다. 이 작품군의 특징은 00년대의 생활툰처럼 유머 대신 드라마를 일구는 데 주요한 소구를 둔다는 특징이 있다. 작가 자신이 육아를 겪으며 느낀 감정들을 최대한 자세하고 내밀하게 묘사하는 데 집중한다. 이 과정에서 작가들은 자신의 색깔을 보다 선명하게 드러내고, 궁극적으로는 독자에게 요구받은 이야기가 아닌 본인의 이야기를 창작하는 데 집중한다.
특히 심우도의 <나의 꼬마 선생님>은 이 특징에 있어 주목할만한 작품이다. 마치 일본의 사소설을 읽는 듯한 감상을 준다. 물론, <나의 꼬마 선생님>이 일본 사만화(私-)의 거장 아베 신이치의 작품과 같은 감상을 주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사건보다도 개인의 사적체험과 그로 인한 내면의 변화들에 집중하는 <나의 꼬마 선생님>의 이야기 흐름은 한국만화에서 ‘생활툰’이라는 장르가 미국의 ‘자서전 만화’나 일본의 ‘사만화’와 뚜렷하게 구분되는 특징을 가진 장르가 아닌, 에세이라는 커다란 틀 안에서 이해를 시도해볼 기회들을 만들어나가고 있다고 느껴진다.
물론 <나의 꼬마 선생님>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생활툰이라는 장르적 가치보다 심우도 작가가 직접 육아를 하며 느꼈던 감정들을 본인만의 필치와 화풍으로 세공해놓았다는 데 있다. 가령, 스스로 자라나는 아이를 보며 “아이가 더 크면 나는 아이에게 얼마나 많은 기대와 요구를 하게 될까” 걱정하는 모습은, 적어도 심우도 작가가 만화의 프레임 안에서 본인을 솔직하게 표현하고자 노력한 흔적들로 보인다. <나의 꼬마 선생님>는 장르의 전통은 거창하고 복잡한 특징들보다 이러한 조그만 노력으로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을 새삼 일깨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