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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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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통(沈痛)의 ‘월화(月化/月華)’와 그 공명(共鳴)의 희망 <침묵 공장>

이 작품은 성폭행 피해 아동들의 고통을 응시하고 그 고통에 감응하는 어른들의 협력을 통해 희망을 탐색한다

2024-02-02 박동성


끝내 직면할 수밖에 없는 것들이 있다. 아동 성폭력이 그렇다. 만화책 『침묵 공장』(테아 로즈망 글, 상드린 르벨 그림, 김모 옮김, 이숲, 2022. 이하 이 글에서 괄호 안에 쪽수만 표기된 것은 모두 이 책에서 인용된 것임을 밝힌다.)도 그렇다. 『침묵 공장』은 침묵을 강요받은 성폭행 피해 아동들이 각자의 증상으로 표출하는 고통을 응시하고 그 고통에 감응하는 어른들의 협력을 통해 희망을 탐색한다. 이 작업의 요체를 잘 파악하기 위해 『침묵 공장』의 문법이 상징에 상당 부분 기대고 있다는 점을 알 필요가 있다.


옥타브가 어린 프레디를 어두운 숲으로 몰래 유인하는 장면에 그려진 다채로운 향연과 흑백의 뒤안길은 아동 성범죄 관련 현실을 적나라하게 대변한다. 연출 감각도 눈에 띈다. 범행 현장은 고요한 장면이나 은유적 이미지로 대체된다. 성폭행을 겪은 후, 프레디의 머리와 본체가 분리되는데, 이는 정신적 충격과 육체적 고통으로 인한 분열 상태를 참혹하게 형상화한다. 프레디의 말풍선이 공백인 이유도 아픈 진실을 은폐한 발화의 공허성에 있다. 그 진실을 억압함으로써 성폭력을 재생산하는 침묵 공장은 가시가 돋은 악마성을 연상케 한다. 아르튀르도 몸에 가시가 돋는데, 이는 성폭력 피해로 인한 부정적 감정이 공격성으로 표출되는 현상을 상징한다. 아르튀르처럼 성범죄 피해 아동들은 몸이 줄어들거나 커지는 등 상이한 증상을 보인다. 이러한 변이는 각기 다른 형태들을 지니지만, 일정한 주기로 겉모습을 바꾸되 실체는 같은 달처럼, 그 근원은 동일하다.


이 만화에서 달은 중요한 상징이다. 달의 변형태들과 그 종합이 『침묵 공장』 전체를 비추고 있기 때문이다. 부모의 이혼으로 아르튀르와 떨어지게 된 오필리아는 그에게 “내가 달을 볼 때 너도 쳐다 봐. 그러면 두 개의 달이 되겠지.”(18쪽)라고 말한다. 이 속삭임 앞에서 슬픔은 나누면 배가 되게 된다. 성폭행을 당한 뒤 학교에서 만난 남매의 두 빈 말풍선이 합쳐져 더 큰 하나가 되지 않았던가. 자신도 성폭행 피해자인 마리아도 성폭행 관련 악몽을 꾸고서 두 보름달이 밤하늘에 뜬 환영을 봤었다. 이렇듯, 성폭행의 격통은 피해자의 마음뿐만 아니라 그에 공감하는 이들의 마음에도 선명한 달빛으로 새겨져 잔인하게 공명한다. 침묵 공장을 폭파하는 마리아는 은폐당해 왔던 아동 성범죄의 실상을 폭로하는 선각자를 상징한다.


침묵이 감추어 왔던 아픔은 모든 이들을 괴롭히는 위력을 내뿜는다. 성폭력 피해자가 성폭력을 가하는 괴물이 되고 실존하는 악을 모두가 모른 척하는 세상이 “생지옥”(81쪽)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그 지옥을 없애기 위해 “모두 다 같이”(103쪽) “각자 생각을 말해보”(105쪽)고 타인의 그런 말들을 경청하여 “모든 의견을 관련 법 개정에 반영하도록”(107쪽) 노력하는 자세에서 희망의 가능성은 꽃핀다. 휠체어가 망가진 마리아를 친구들과 돕고서 그녀에게 엄지손가락을 세우는 아르튀르의 모습에서 사회 구성원 전체의 협력이 아동 성범죄의 병리를 해소하는 데에 종요롭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 구체적 입법 방향을 제시한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그런 노력과 희망이 헛되지 않았듯, 심리 치료사가 된 아르튀르는 자신의 딸에게 앵무새로 나타난다. 앵무새는 사람의 말을 따라 해 그대로 다시 들려준다. 이 반향 기능은 성폭력의 상처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그 상처를 대면하고 재경험하는 과정이 필수라는 점을 일깨워준다. 연필은 그런 상처를 기록하면서 아동 성범죄의 예방과 근절을 위해 의견을 개진하는 노력을, 꽃은 그런 노력으로 피울 수 있는 희망을 상징한다.


무엇보다도 "전 어린이예요! 이제 어른들이 나서야죠!"(102쪽)라고 외치며 도움을 촉구하는 아르튀르의 호소는 묵중하다. 사회악을 폭로한 영웅이지만 아픈 과거를 곱씹는 인간 마리아, 그런 마리아에게 왜 성범죄 사실을 밝혔느냐고 원망하는 아르튀르, 마리아의 고발 행위에 반발해서 그녀를 때리고 도망간 악인들. 이 모든 시련들이 뒤엉켜 "날 자꾸 아프게"(83쪽) 한다. 그대는 그 어린이들을 위해 그 고난들을 직면할 수 있는 어른이냐고.


필진이미지

박동성

2023 대한민국 만화평론공모전 신인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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