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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하지 않고, 흔하지 않은 판타지 <잔불의 기사>

독창적인 판타지 세계관 속, '약함'을 숨겨야 하는 주인공의 이야기

2024-02-09 최윤석

캐릭터, 그중에서도 주인공을 매력적으로 보이게 만드는 것은 작가에게 있어 숙명이자 가장 어려운 작업 중 하나이다. 하지만 수많은 작품이 만들어졌고, 그 과정에서 나름의 공식 아닌 공식이 생기기도 하였다. 특히, 이 웹툰 시장에서는 그러한 공식이 좀 더 두드러진다. 가령, 주인공의 능력치를 최대로 만들고, 성격을 괴팍하게 만들면 코믹하면서도 통쾌해 보이는 캐릭터성을 지니게 하기 좋다. 특별한 고민 없이, 부담 없이 볼 수 있는 캐릭터가 되는 것이다. 아니면 ‘강함’을 숨기는 캐릭터도 있다. 모종의 이유로 힘을 숨기는 주인공이 객관적으로 보이는 위기를 가만히 지켜보다가 가장 중요한 순간에 너무나도 쉽게 해결하면서 카타르시스를 제공하는 방식이다. 이런 경우, 상황을 관망하며 여유롭게 구는 것이 매력이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오늘 이야기할 작품인 환댕 작가의 <잔불의 기사> 속 주인공도 뭔가를 숨김으로 매력을 드러낸다. 다만, 조금 다른 게 있다면 ‘강함’이 아니라 ‘약함’을 숨긴다는 것. 그리고 주인공 캐릭터의 이러한 특성은 이 작품의 매력을 관통하는 요소가 된다.



| ‘약함’을 숨기는 주인공

견습 기사 중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로 강자였던 ‘나진’. 그가 어느 날, 죽는다. 그리고 주인공이자, ‘나진’의 쌍둥이 형 ‘나견’은 그의 죽음의 배후를 밝히고 복수하고자 ‘나견’이 아닌 ‘나진’으로 거짓된 삶을 살기로 한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동생은 강하고, 형은 약했던 것. 그렇게 ‘나견’은 본인의 약함을 숨겨야만 하는 핸디캡을 지닌 채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사실 주인공에게 핸디캡, 그것도 약한 주인공에게 핸디캡을 부여한 경우, 전개를 풀어내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무력이 강한 캐릭터라면 어떻게든 무력으로서 문제를 해결하여 나아갈 수 있지만, 이러한 경우엔 부득이하게 ‘지력’을 무기로 사용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형성된다. 그리고 ‘나견’은 바로 그 ‘지력캐’에 해당한다. 근데 그 정도가 상당하다. 단순히 머리가 좋다 수준은 가볍게 뛰어넘는다. 상황 파악과, 눈치, 임기응변 등으로 무력이 약함에도 불구하고, 위기 속에서 언제나 탈출구를 찾아낸다. 그 덕에 굉장히 독창적인 이야기 전개를 보여준다. 어떻게 해결할까 하는 기대감을 심어주고, 전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거나, 어떤 경우에는 해결하지 않고, 뜻밖에 상황으로 문제를 보류시킴으로써 예상을 웃돈다. 

오히려 그에겐 모든 것이 무기가 된다. 자신이 지닌 ‘약함’이라는 핸디캡조차 말이다. 자신이 약하다는 걸 알게 된 상대가 어쩔 수 없이 자신을 지킬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든다거나, 혹은 강자로 인식되던 ‘나진’이라는 이름값과 더불어 강함을 흉내 내는 ‘연기력’만으로 칼 한 번 제대로 뽑지 않고, 강자로 인식되게 만든다. 그 결과, 실제로 작품 내에서 만약 전투가 벌어지면 순식간에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허약 체질임에도 불구하고 먼치킨류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뭘 해도 걱정 안 되는 주인공’ 포지션을 가지는 특이 결과가 도출된다.



| 판타지의 매력은 독창적인 세계관

말 그대로 판타지 작품의 매력은 독창적인 세계관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리고 이 작품은 바로 그런 매력적인 세계관을 지니고 있다. ‘약함’을 숨기는 주인공, 그리고 그의 주변에는 강함을 담당하는 이들이 존재한다. 바로 ‘기사(knight)’이다. 기사는 그간 많은 판타지 세계관에서 모습을 보아 왔다. 그리 특별한 게 없다고도 볼 수 있는데 판타지의 매력은 바로 이런 의미 없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여 새롭게 만드는 것에 있다. 이 작품 안에서의 ‘기사’는 여타 작품에서의 기사와는 사뭇 다르다. 단순히 작위, 직업 같은 류가 아니라. 하나의 상징성을 지닌다. 강함. 그것도 아주 강함의 상징성 말이다. 작중 기사란 미친 재능의 소유자들로 보통의 경우, ‘수련을 통해 강해져 기사가 된다.‘는 말이 성립되지만, 이 세계관에서는 성립되지 않는다. 철저히 재능에 의해 강함이 결정되고, 기사 여부가 결정된다. 그래서 작중 기사란 결국 인간을 넘어선 힘을 지닌 존재로 묘사된다. 이러한 특징은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는 환댕 작가의 전작 <애늙은이>에서 강조되는데 <애늙은이>의 주인공은 불로불사로 긴 세월을 죽지 않고 살면서 검을 미친 듯이 수련하기도 하지만, 아무리 수련을 해도 기사 하나 제대로 이기기 힘든 존재로 묘사된다. 타고난 재능이 없다면 아무리 수련을 해도 소용이 없다는 것. 그렇기에 환댕 작가의 작품을 본 이라면 <잔불의 기사>에서 주인공이 갑자기 기연을 통해 강해질 것을 기대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매력이다. 이러한 매력적인 세계관을 만들고, 그 안에서 명확한 컨셉을 지닌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녹여냄으로 흔치 않게 완성도 높은 판타지 작품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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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석

만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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