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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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잔인하게 더 현란하게" 디디 작가 <열 손가락>

인간의 몸을 소재로 강탈하거나 절단하는 등 잔혹한 바디 호러 장르 영화가 떠오르는 작품

2024-02-13 박민지


| 더 잔인하게 더 현란하게

지난 10월 완결된 디디 작가의 웹툰 <열 손가락>은 제목에서부터 끌어당기는 무언가가 있었다. 작품을 읽어보면 상당히 직관적이지만 이만한 제목은 없단 생각이 들었다. 웹툰 표지를 보면 가장 먼저 의수(義手)를 장착한 손이 눈에 띈다. 정확히는 인공적으로 만든 손가락이다. 손의 주인인 남자가 정면을 응시한다. 그의 이름은 ‘현민궁’. 그의 양팔은 장모 ‘기무녀’와 손윗동서 ‘만 서방’이 팔짱을 끼고 있지만, 마치 인질을 포박한 모습에 가깝다. 그의 손가락은 어쩌다 저리 행방불명 된 걸까? 작품 속 주요인물의 관계성을 담은 참으로 의미심장한 쓰리 샷이다.


| 이상한 나라의 둘째 사위

민궁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비트코인 투자재벌로 방송에도 나온 인물이다. 젊은 나이에 불로소득으로 번 부(富)에 취해 오만방자했다. 투자실패 후 빚만 20억에 답 없는 인생이 되고 게임중독자, 은둔형 외톨이가 된다. 결혼이 등가교환 법칙 기반의 비즈니스라면 민궁은 내세울 것 하나 없는 형편없는 신랑감이다. 그는 의심했어야 했다. 왜 자신을 부잣집에서 데릴사위로 모셔가는지. 인생 막장에서 내려온 동아줄을 잡은 그는 기씨 집안의 둘째 사위, ‘현 서방’이 된다. 거대한 타운하우스에서 굿을 하는 기무녀를 필두로 비즈니스를 총괄하는 만 서방, 기무녀의 수양딸 기서현, 집사 견 여사, 보안부장과 보안요원들은 하나의 경제공동체이며 공범들이다. 민궁은 기무녀의 둘째 사위라는 위치지만 모르는 것투성이 이방인의 입장이다. 사람들이 그를 응시하지만 그건 보호가 아니라 감시라는 걸 깨닫는데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그들은 현 서방에게 대체 무엇을 감추고 있을까?


| 非 인간극장

그는 장모 기무녀는 음신을 모시는 무당이다. 사회 기득권층의 의뢰로 굿을 할 때마다 기씨 집안 사위로써 인간 제물로써 현 서방의 손가락을 잘라낸다. 죽은 아이의 시신으로 길흉화복을 점치는, 공포물의 소재로 종종 쓰이는 ‘태자귀’의 변형이다. 누군가는 소원을 이루려 돈을 내고 누군가는 귀신을 부르며 누군가는 손가락을 제공한다. 손가락을 자르는 과정은 끔찍하고 처절하다. 음신의 효험이란 기무녀의 퍼포먼스가 얼마나 현란하고 잔인하냐에 따라 진정성을 갖는다. 현 서방은 고통과 자괴감에 몸부림치지만, 계좌에 찍힌 잔액을 보고 금융치료를 받는다. 열 손가락이 잘리면 빚도 갚고 부자가 될 것이다. 그것이 헛된 희망이라도 그는 품을 수밖에 없다. 인간을 수단화하며 심지어 자기 자신마저 수단화하는 이 비인간적인 인간군상들은 돈을 버는 것이므로 당당하다. 모든 것을 체념한 현 서방은 되뇐다. “그게 불법이든, 요행이든, 등신짓이든 상관없다. 인생을 걸고 있다는 게 중요할 뿐.” 현 서방의 손가락은 아홉 개가 남았다. 텐 카운트는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 장기연재되는 바디 호러 (Body Horror)

만화 <열 손가락>을 보자면 인간의 몸을 소재로 강탈하거나 절단하는 등 잔혹한 바디 호러 장르 영화가 떠오른다. 영상에선 사람의 몸을 파괴하거나 취하는 과정이 100분 내외로 끝난다면 장기연재되는 웹툰 속 주인공이 겪는 고통은 호흡이 매우 길다. 지난주에 손가락이 잘린 남자는 이번 주엔 후유증에 몸부림친다. 다행히 현 서방의 열 손가락은 구성상 비약을 통해 하나하나 잘려다가는 과정을 고스란히 담지 않는다. 새로운 의뢰인의 상황과 요구에 따라 혹은 현 서방의 심리변화에 따라 과정은 변주되며 지루함을 탈피한다. 장면이 지나가면 머릿속에서 휘발되는 영상과 달리 웹툰은 천천히 하강하는 스크롤을 통해 감정도 이미지도 쌓인다. 또한, 격투기 선수 출신인 만 서방은 대적할 수 없는 광폭함으로 사람을 피떡으로 만들어 바디 호러의 한 축을 담당한다. 그의 감정 기복은 폭렬하게, 마치 폭우처럼 쏟아지고 해소된다. 등장인물 간의 관계성과 서사가 한 꺼풀씩 벗겨지면 누구 하나 정붙일 캐릭터는 없지만 스크롤을 내리는 손가락이 바빠지는 건 이 징글징글한 만화가 계속 궁금해지기 때문이다. 혀가 저릴 정도로 얼얼하고 맵지만 자꾸 생각나는, 이 마라 맛 바디 호러에 빠져들 것이다. 


필진이미지

박민지

만화평론가
2021 만화평론공모전 신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