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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은 그저 제목일 뿐 아무래도 좋다고 해도 좋을 정도의 스타일 <친애하는 20세기>

<친애하는 20세기>는 책날개나 머리말을 건너뛰고 아무 데나 몇 장 읽어도 작가의 고유한 개성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2024-04-01 이복한솔

* 제목이 중요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절대로 아니다.



서핑, 혹은 ‘웹 서핑(Web Surfing)’이라는 조어가 있다. 정보를 찾아 인터넷을 돌아다닌다는 뜻이다. 정보는 바다를 이루고 파도가 되는 물방울만큼이나 많다. 오늘날에는 어지간한 정보를 이부자리에 누워서 코 앞에 있는 디스플레이에 띄우기까지 물리적으로 대단한 수고가 들지 않는다. 부족해서가 아니라 너무 많아서 필요한 정보를 얻기가 쉽지 않을 때도 있다. 균형을 잃기 무섭게 서프보드에서 미끄러져 바다에 빠져버리곤 한다. 내가 뭘 모르는지도 모를 때 특히 더 그렇다. 이 와중에 안내하겠다고 나서는 사람도 많다. 사람이 정보만큼 많을 수는 없겠지만, 길잡이를 발견하고 고르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친애하는 20세기>는 책날개나 머리말을 건너뛰고 아무 데나 몇 장 읽어도 작가의 고유한 개성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예컨대 참고 문헌 항목에는 참고 문헌 목록에 해당 도서의 일러스트가 추가되어 있다. 아니, 지면에서의 비중을 따지자면 도서 일러스트에 참고 문헌 정보가 추가되어 있다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큼직한 그림, 비교적 작은 글자, 넉넉한 여백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스마트폰이나 흑백 단행본에 익숙한 독자라면 시야가 넓어지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시선을 옮기고 있노라면 박물관을 거니는 듯하다. 명도와 채도가 높아 경쾌한 색이 조명처럼 패널을 채우고 있고, 인류의 업적과 주역은 패널을 포함한 전체 지면에서 눈에 잘 띄는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여기서 가장 화려하고 강렬한 색은 흑과 백이다. 개척자, 예술가, 20세기의 등장인물들은 검고 얇은 선과 새하얀 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인쇄와 디스플레이 기술이 발전한 덕에 제대로 출력할 수 있게 된 색상. 선의 질감에서 판화 일러스트나 연필 스케치가 연상되는 흑백 캐리커처. 서로 대비되는 것들이 어우러져 있다. 정보와 해설, 그리고 가벼운 농담도 비슷한 방식으로 균형을 이루면서 관람객, 아니 독자에게 ‘정보를 읽는’ 즐거움을 준다.



이 책에 수록된 만화는 각각 다른 두 매체에서 연재된 바 있다. 둘 다 지금은 없는 매체라 연재분이 어떤 모습이었을지 정확하게 확인하기는 어렵다. (연재처의 배열레이아웃 안에서 만화가 어떤 식으로 보이는지, 각각 다른 곳에 게재된 만화의 대사나 편집 방식 등 서로 다른 부분이 있는지 등등) 그 대신 다른 경로를 통해 아카이브를 접할 수는 있다. 둘 다 같은 색상, 같은 그림인데도 책으로 엮인 버전과 모양새가 아주 다르다.

온라인 중앙일보에 게재된 버전에는 <김재훈 연재만화>라는 제목이 붙어있다. <먼나라 이웃나라>처럼 패널이 빽빽하게 나열돼 있고, 패널이 해설과 말풍선과 그림으로 꽉 차 있다. 책과 비교하면 내용, 그림, 농담까지 없는 부분이 꽤 많은데도 주어진 지면보다 내용이 많아 보여서 밥과 반찬을 꽉 채워 담은 도시락처럼 뭐가 하나라도 튀어나오거나 흘러나올 것만 같다.

현대카드 유튜브 채널에서는 애니메이션으로 재구성한 <라이브러리 카툰>을 볼 수 있다. 내용은 만화와 같지만, 정보가 소개되는 순서가 다르다. 내레이션은 대부분 대사로 바뀌었고, 대사는 쉽게 읽히고 좀 더 잘 들리는 문어체로 바뀌었다. 말풍선 모양도 다양해졌다. 여기에 경쾌한 배경 음악과 전문 성우의 연기까지 더해져 있어서 구색이 훨씬 화려하다. 단, 매끄러운 전개를 의식한 탓인지 <김재훈 연재만화>에 있던 농담마저 빠지거나, 나오더라도 배경처럼 잠깐 나왔다가 반짝 사라져 버리곤 한다.



어떻게 변형하고 가공하더라도 존재감을 잃지 않고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은 정보와 스타일이다. 정보는 멋진 목걸이처럼 잘 꿰어져 있다. 스타일은 얼핏 봐도 인상에 남는다. 김재훈의 작품을 아직 접해보지 않은 독자라면 그를 안내자로 선택해 볼 수도 있겠다. 가볍게 즐겁게 소소하게 얻을 만한 게 있을지도 모른다.


[참고]

* 온라인 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18032514

* 현대카드 https://youtu.be/Z7diEMXzIHM

* https://youtube.com/playlist?list=PL4sB5ujmFsJ0q5DEUgZe67CQAqC606BbO&feature=shar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