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초기화
글자확대
글자축소

만화에서 펼쳐지는 먹방의 세계: <오무라이스 잼잼>

꾸준히 인기 있는 '먹방' 문화, 오감을 만족시키는 먹방 웹툰

2024-03-08 손유진


‘먹방’ 문화, 식사 장면을 공유하는 매체는 어느덧 십여년 간 꾸준한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음식을 최대한 먹음직스럽게 연출하여 그 맛과 향을 설명하는 컨텐츠인 ‘먹방’은 개인 방송 플랫폼에서 그치지 않고 공영방송, 심지어 만화까지 그 영역을 확장시켜 왔다. 음식에 대한 테마는 세대를 막론하고 인기를 얻었지만, 식사와 음식 자체에서 즐거움을 찾는 먹방 문화가 하나의 키워드로 부각되며 매체에 새로운 물결을 불러들였다. 특히 기존의 요리만화는 주로 요리를 소재로 하는 모험만화가 대세로 통했다면 현재에 들어 요리만화는 다양한 변화와 세분화를 거쳐가는 추세이다. 특히 소탈한 개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일상에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요리들을 묘사하는 만화들은 먹방의 도식을 충실하게 따르고 있다. 이러한 먹방 만화 장르는 하나의 메뉴를 위주로 한 세대의 향수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에피소드를 구성하고 있다. 기존의 요리만화와 먹방 만화를 비교하고 그만의 특색을 알아보기 위해 만화의 계보에서 요리만화는 어떠한 변화를 거쳐 먹방 만화에 이르게 되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기존의 요리만화는 크게 두 가지 부류로 나뉜다. 이는 모험만화, 혹은 배틀만화와 요리 지식을 위주로 하는 정보성 요리만화 장르이다. <신 중화일미(번역 제목 요리왕 비룡)>, <따끈따끈 베이커리> 등 주인공이 요리 실력으로 정점에 도달하기 위해 라이벌과 겨루는 일련의 과정을 주요 서사 골자로 채택하는 작품들이 전자에 속한다 할 수 있다. 이러한 경우 요리는 그 자체보다 주인공의 실력을 측정하는 서사적 장치로서 작동한다. 한편, 정보성 요리만화에는 대표적으로 <식객>이 있는데, <식객>의 경우 음식에 관한 전문적인 지식을 제공함과 동시에 개개인의 에피소드를 다룬다는 점에서 현재의 먹방 만화와 상통하는 지점 또한 존재한다. 한편 먹방 만화에 부합하는 조건을 갖춘 요리 만화는 이미 그 골자가 완성되어 있었는데, 개인의 일화를 요리와 결합하여 재구성하는 전개는 오래된 장르적 문법이기 때문이다. <심야식당>이나 <고독한 미식가>는 소박한 메뉴를 중심으로 소시민이 살아가는 모습을 소박한 필치로 다루고 있는데, 미식이나 과장된 맛을 자랑하는 만화적 요리와 달리 독자의 삶과 깊게 연관한다는 점에서 먹방 만화의 원류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기성 요리 만화와 다른 먹방 만화의 특색을 바로 여기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먹방 만화는 기존과 달리 새로운 전개 방식을 사용하는 장르는 아니나, 현 시대에 도드라지게 인기를 끌고 있는 장르로서 정의할 수 있다. 이는 식문화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증가하고 대규모의 서사만큼 소박한 이야기가 집중을 받은 점이 요인으로 지목될 수 있다. 상술한 두 요인이 바로 먹방 만화의 주요 구성요소로, <심야식당>을 예로 들자면 비엔나 소시지나 계란말이 같은 서민적인 메뉴에 얽힌 소소한 희로애락을 담담한 어조로 그려낸다는 점에서 이 조건에 부합한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정리하자면 먹방 만화의 특색은 첫째, 단편적인 에피소드 위주로 서사가 진행되며 둘째, 우리에게 익숙한 맛을 통해 독자에게 접근한다는 점이다. 

또한 다른 개성으로는 요리 자체를 서사의 중심으로 삼는다는 것과 먹방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음식의 맛과 향을 섬세하게 표현해낸다는 것이 있다. 기존의 요리 만화가 음식을 전개의 부수적 요소로 사용하거나 음식에 대한 정보만을 전달했다면 먹방 만화는 음식이 전적으로 중심이 되고 있으며 이에 대한 리액션을 충실히 재현하고 있다. 네이버에서 연재 중인 <누루누루 음식만화>는 철저히 메뉴에 대한 이야기만을 주제로 택하고 있는데, 음식이 가진 외형적 디테일과 생생한 맛의 묘사, 각 메뉴의 특색이나 장점에 집중한다. 한편 판타지 세계관에서 몬스터로 요리를 하는 신선한 소재를 선보였던 <던전밥>의 경우, 모험 만화의 문법을 따르고 있으나 요리의 레시피를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인물들의 기호와 식문화를 자세히 다룬다는 점에서 색다른 방식을 선택한 먹방 만화의 일종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먹방 만화의 특징과 강점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는 원초적인 감각을 자극하여 흡인력을 극대화시킨다는 점이다. ‘먹는 낙’이라는 표현이 있을 정도로 식사는 문화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다. 따라서 우리가 주로 접하는 요리를 묘사하는 작품은 대중을 사로잡는 공감대를 형성할 수밖에 없다. 또한 이미 알고 있는 맛을 묘사함으로써 감각적 강렬함을 더욱 강화할 수도 있다. 단순하지만 강력한 이 자극은 일견 일차원적으로 보일 수 있는 먹방을 소통의 측면에서의 예술로 승화시킨다. <던전밥>이 몬스터를 요리 재료로 삼으면서도 먹방 만화로서 기능할 수 있는 것은 바로 맛에 대한 묘사가 사실적이기 때문이다. 슬라임이나 거대 전갈의 맛을 현실에 존재하는 재료의 맛을 연상하게끔 묘사하여 독자의 궁금증과 공감을 동시에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듯 맛에 대한 공감대는 작품과 독자가 소통할 수 있게 하는 중요한 요소라 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보편적 공감을 통하여 작품의 흐름에 더욱 집중할 수 있는 부수적 효과도 누릴 수 있다. 

두 번째 역시 오감과 관련되어 있다. 만화가 시각 예술인 만큼 심미적 측면 또한 중시되어야 하는데, 먹방 만화는 요리를 위주로 진행되는 만큼 요리의 외양을 섬세하고 먹음직스럽게 재현하는 것을 특색으로 하고 있다. 특히 <오무라이스 잼잼>은 그래픽 디자이너 이력을 가진 작가가 그려내는 특유의 일러스트가 작품의 간판 역할을 하고 있는데, 단순히 음식을 묘사한 그림을 넘어 예술적 가치를 지닌 하나의 화풍으로 가치를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음식의 질감과 실루엣을 절묘하게 묘사해낸 일러스트를 보면 먹방 만화의 삽화 또한 디자인적인 요소를 충분히 갖춘 시각 예술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은 먹방 만화가 기존의 요리 만화의 장점을 충분히 흡수할 수 있다는 점이다. 모험 만화나 정보 만화로서의 요리만화가 가지는 특징들을 먹방 만화가 구현할 수 있다는 의미인데, 전자의 경우 섬세함을 넘어 과장된 리액션을 묘사하는 것이 먹방 만화에서 허용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후자의 경우 조리법이나 내레이션을 통해 음식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제공할 기회가 충분히 주어진다는 점에서 먹방 만화는 기존 요리 만화를 계승한다고 볼 수 있다. <오무라이스 잼잼>과 같이 조경규 작가가 연재한 <차이니즈 봉봉>은 과장된 리액션에 충실한 작품으로, 개성 있는 주인공들을 내세워 유머러스한 방식으로 맛을 묘사하는 것이 작품의 묘미라 할 수 있다. 또한 <차이니즈 봉봉>은 생소한 중국 요리를 상세히 설명하며 어디서 맛볼 수 있는지 또한 제공하므로 이러한 점에서 본작은 정통 요리만화와 그 맥락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상술한 먹방 만화의 요건을 모두 충족하는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오무라이스 잼잼>을 언급할 수 있다. <오무라이스 잼잼>은 작가의 일상을 위주로 진행되는 작품으로, 작가와 그의 아내, 그리고 두 자녀가 겪는 식사 시간을 에피소드 형식으로 엮어낸다. 각 화의 제목부터 요리의 이름인 만큼 음식에 대한 각종 디테일과 일화들이 등장하고 있다. 믹스 커피를 주제로 하는 에피소드에서는 등산 중 작가가 겪은 믹스 커피에 대한 황당한 추억을 소재로 다루고 있으며, 돈까스 에피소드는 한국식 돈까스와 일식 돈까스를 비교하거나 돈까스가 어떻게 발명되었는지 설명을 제공하기도 한다. 이렇듯 본작은 크고 작은 스케일을 아우르는 다방면의 묘사가 포함되어 있다. 특히 작가의 디자이너로서의 경험과 옛 추억에 대한 일상이 반영된 에피소드들은 음식을 넘어 문화 전반에서의 역사를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가 된다. 또한 가족을 주인공으로 하는 만큼 작가와 자녀들의 성장이 음식을 통해 묘사된다는 점이 특기될 만하다. 작가의 두 남매인 ‘은영’과 ‘준영’은 여러 음식을 맛보고 경험하며 그들만의 추억을 쌓고 성장한다. 특히 다양한 맛을 통해 자신의 세계를 넓혀가는 두 아이를 보자면 식사가 한 개인에게 미치는 중요한 영향이 어떠한 것인지 엿볼 수 있기도 하다.

이렇듯 <오무라이스 잼잼>은 개인이 속한 세계의 지평을 넓히는 역할로서 식사가 가지는 중요성을 표현하기도 하는데, 세대를 막론하고 이어져 내려오는 친숙한 메뉴들을 톺아보고 있자면 식문화의 보편적인 가치에 대하여 독자가 충분히 공감할 수 있을 만하다. 따라서 댓글 등을 통하여 독자들이 작품에 적극 참여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작가가 의도하는 일이기도 하다. 댓글란에 라면 레시피를 공유하도록 하고 이를 단행본에 싣는 등 작품에 독자의 참여를 반영하기도 한다. 이는 대중적으로 맛볼 수 있는 요리를 다루는 만화로서 그 접근성을 최대한 낮추고 공감대를 최대화하고자 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작화의 완성도를 보았을 때 시각적 만족감 또한 상당하다. 단행본과 별개로 컬러링 북이 나올 만큼 개별의 일러스트 또한 완성도가 뛰어난데, 소스나 면발의 묘사가 사실적이어서 ‘아는 맛’을 상기시키기 충분하다. 이는 작품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첫째 독자로 하여금 작품에 몰입하면서도 심미적 감흥을 느끼게 할 수 있으며 둘째로 식문화를 상세히 기록하는 자료가 되기도 한다. 특히 후자의 경우 앞서 언급한 음식의 정보와 어우러져 가히 요리 사전이라고 할 만한 작품의 색채를 강화한다. 전자 또한 무시할 수 없는 강점으로 디자인적 요소를 십분 발휘한 삽화들은 내용과 정서를 전달하는 데 도움을 주며 그 자체로도 작품적 가치를 갖게 된다. 이렇듯 섬세한 묘사가 동반된 일러스트는 작품에서 큰 역할을 차지하고 있다.

먹방 만화로서 <오무라이스 잼잼>은 전통적인 요리 만화를 계승하면서도 시각적 요소와 공감적 요소를 극대화하여 요리 역사의 기록이라 할만한 가치를 자아낸다. 개인의 경험과 그로 인한 성장, 이를 통한 독자의 작품 참여, 정보의 제공이 어우러져 작품 그 자체로 하나의 총체적 생태를 구성하게 된다. 식문화의 안과 밖을 아우르는 이 작품은 개인의 역사이자 동시에 사회의 흐름에 대한 충실한 기록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식문화의 예술은 중요하다. 예술이 주로 다루는 소재가 인간을 구성하는 필연적 요소임을 고려할 때 의식주에 대한 기록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비중을 가질 것이다. 인간의 관념적 욕망을 다루는 작품만큼이나 실질적 세계에서 가질 수밖에 없는 욕망을 들여다보는 일 또한 매우 중요한 가치를 가진다. 오히려 이러한 양자의 대비를 통하여 유의미한 고찰을 발견할 수 있으며 양자의 종합을 통하여 예술적 관찰의 지평을 넓힐 수도 있을 것이다. 생을 구성하는 필수불가결한 소재로서의 음식은 더욱 깊고 넓게 다루어질 필요가 있다. 


필진이미지

손유진

만화평론가(2019 만화평론 공모전 신인 부문 가작 수상)
텍스트의 의미를 중심에 두고 글을 쓰고 있습니다.